[레전드인터뷰] 찰리 채플린 | 레전드매거진

찰리 채플린

비애를 담은 몸짓이 환희가 되기까지

‘리틀 트램프’(Little Tramp)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이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몸에 꼭 끼는 재킷에 헐렁한 바지와 커다란 신발, 작은 중절모와 인상적인 콧수염을 한 채 지팡이를 쥐고 우스꽝스럽게 걷는 작은 신사.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는가?

올해로 106주년을 맞이하는 리틀 트램프는 〈베니스에서의 어린이 자동차 경주〉에서 첫 선을 보이며 찰리 채플린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급부상한다. 대중은 채플린을 원했고, 채플린은 독특하고 기발한 작품으로 이에 답했다. 초창기 그는 자신의 출연한 작품 대다수를 제작했다. 주연을 맡음과 동시에 각본을 쓰고, 편집을 했으며 음악까지 선정하는 등 감독의 업무를 자청 했다. 자신의 영화에 대해 완벽주의를 고집하였고, 자신의 스튜디오를 설립한 이후엔 이러한 경향이 더 강해지며 본격적으로 영화감독으로의 길을 걸었다.

그의 영화는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하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특색을 이룬다. 자신을 자조적 시선으로 바라보며 희비를 극명하게 교차시켜 메시지를 극대화하였다.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많은 이들에게 웃음과 위로를 안겨준 찰리 채플린. 그가 보여준 다양한 모습은 지난 세기 동안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작품에 영향을 미쳤으며, 스크린을 종횡무진 활보하던 리틀 트램프를 우리는 앞으로도 기억할 것이다.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Q: 영국의 코미디언이자 전 세계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얼굴 중 한 분인 찰리 채플린 씨를 모시겠습니다.
A:
안녕하세요. 영국의 배우이자 코미디언, 영화감독이자 음악가인 찰리 채플린입니다. 런던에서 태어난 저는 열 살 때부터 극단에서 활동하며 연기를 시작했고, 스무 살 무렵 할리우드에 정착하며 리틀 트램프라는 캐릭터를 통해 여러분께 익히 알려지게 되었죠.

Q: 찰리 채플린 씨는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이자 감독이신데요.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A: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 배우 출신인 어머니로부터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5살 때 아픈 어머니를 대신해 무대에 오른 걸 시작으로 각종 연기를 하게 되었고, 키스톤 영화사에서 전속 계약 제의를 받으며 미국으로 건너 가 영화배우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 후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표현한 방랑자, 리틀 트램프가 대중의 호응을 얻으며 본격적인 배우로서의 삶이 펼쳐졌습니다.

Q: 그러면 감독으로 데뷔하게 된 경위는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A:
제가 데뷔했던 키스턴 영화사는 제대로 된 프로듀싱을 갖추지 못한 곳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기획이나 시나리오 없이 쪽대본으로 구성된 줄거리에 의존하여 원시적 코미디를 보여주기에 급급한 곳이었죠. 이런 제작 방식에 불만을 여러 차례 표했고 제가 직접 제작을 희망했으나 제작사에선 매번 이를 만류하였습니 다. 하지만 영화관에선 제가 출연한 작품을 원하였고, 결국 감독 권한을 맡아 〈20분 동안의 사랑〉이라는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거의 매주 감독으로서의 노하우를 터득해나갔죠.

Q: 감독으로서 수많은 작품을 내셨는데 그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들을 뽑는다면 어떤 작품일까요?
A:
고민하지 않고 첫 장편 영화인 〈키드〉와 〈위대한 독재자〉를 뽑겠습니다. 〈키드〉를 촬영할 당시 저는 감독이었을 뿐만 아니라 제작자, 각본가, 연기자, 편집자였습니다. 모든 촬영을 마쳤을 때 영화사와 갈등을 빚어 원본 필름을 뺏길 위기에 처했습니다. 120㎞에 달하는 필름을 호텔방에 숨어서 편집한 끝에 영화를 상영할 수 있었죠. 그렇게 저의 첫 장편영화인 〈키드〉가 탄생할 수 있었어요. 그 작품을 통해 배우와 동시에 감독으로서의 자질을 동시에 인정받았기 때문에 〈키드〉를 가장 아낍니다. 〈위대한 독재자〉는 항상 무성 영화만 촬영하던 제가 유성영화라는 새로운 시도를 한 작품이기에 선택하였습니다.

Q: 〈위대한 독자〉는 대중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그 이후에도 힘든 시기를 보낸 이유는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A:
〈위대한 독자〉와 〈살인광 시대〉를 출시 후, 미국 문화계에는 ‘매카시즘’ 광풍이 불었고 저도 결국 매카 시즘의 표적이 됩니다. 결국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영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으로부터 재입국 불허, 즉 일방적으로 추방 명령을 통보받기에 이르렀죠. 할리우드 땅을 다시 밟기까지 20년이 걸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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