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인터뷰] 의사/에세이스트 남궁인 | 레전드매거진

의사/에세이스트 남궁인

슬픔의 언어로 기록한 생(生)의 가치

그는 의사로서의 냉철한 면모와 문학인의 섬세한 눈빛을 동시에 가진, 내가 헤아릴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큰 우주를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와의 인터뷰를 위해 주어진 한 시간이란 내게는 한해 전부터 개봉을 기다리던 영화의 트레일러 영상이 공개되었을 때 만큼이나 기쁘고도 아쉬워서 조바심 나는 것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2주 정도 시간이 흐른 뒤,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고 싶어서 광화문에 위치한 북바이북 서점에서 열린 <제법 안온한 날들> 북토크 행사장에 방문했 다. 몇 개의 단락 낭독과 에피소드 비하인드에 대한 이야기가 한 시간 정도로 마무리되고 질의응답 시간, 누군가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다정한 의사로서의 삶은 고되지 않은가요? 다정함을 포기하면 그냥… 편하게 살 수도 있잖아요.’ 그가 대답했다. 실은 상처를 많이 받는다고. 안타까움에 대한 공감의 반응으로 객석이 한 차례 가볍게 들썩였다. 이어서 그가 말했다. ‘그럼에도, 좋을 때가 훨씬 많아요.’ 의사로서의 그는 죽음 안에서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이다. 응급실에서 마주한 피할 수 없는 불가피한 일들에 의한 번민과 잔상의 매듭은 오로지 작가 남궁 인의 몫이다. 의사 남궁인과 작가 남궁인은 어떤 날은 서로를 몰아붙이기도, 때로는 서로를 위로해주기도 하며 그렇게 치열하게 서로를 지켜주고 있었다. 좋을 때가 훨씬 많아요.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나는 그의 큰 우주의 근원에 존재하는 두자아의 깊은 유대를 느꼈다. 행사가 끝나갈 무렵 누군가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했다. ‘죽기 전 하나의 기억만을 남길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기억을 남기고 싶나 요?’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렸을 때부터 세상에 저의 글을 내보는 것이 꿈이었어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기억 하나만 남길 수 있다면, 처음으로 남궁인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낸 그 순간 하나를 남길 것 같습니다.”

| 만약은 없다

벌써 11년 전 이야기네요. 의과대학에 진학하면 열세 개 과의 막내 인턴으로 각 과를 순환하며 일을 배운 후 가고 싶은 과를 선택해요. 저는 그중 가장 힘들고 가장 지옥 같았던 응급의학과를 선택했고요.

가장 힘들었다면서 어째서 응급의학과를 선택하셨어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응급실은 언론을 통해 보도 되는 사회 이슈나 구조적인 문제들의 단면을 직접 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이어서 사회현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살아갈 수 있는 곳입니다. 또한 응급실 의사들은 본인이 진료하는 환자들에 대해 다른 과 의사들이 잘 못 보는 부분까지 보고 빠르게 처치할 수있어야 하고요. 이런 점들이 호기심이 많고 세상의 다양한 면을 알고 싶어 하는 저의 성향과 잘 맞았어 요. 그리고 응급실에서 가장 많이 하는 것 중 하나가 사망선고거든요. 저는 제가 담당한 환자가 직면한 생을 마지막까지 책임지는 즉, ‘죽음을 책임지는 사람’이고 싶었어요.

작가님의 두 번째 저서인 <지독한 하루>를 읽으며 실은 감정이입으로 인해 많이 힘들었거든요. 에피소드 하나하나에서 소개되는 상황들도 워낙 끔찍한 데다 묘사도 너무나 세밀해서요. 읽는 사람도 이렇게 힘든데 필자로서 글을 쓰기 위해 그 순간들을 다시 기억해내는 작업은 또 얼마나 고통스 러웠을까요.
얼마 전에 저희 병원에 중년의 남성이 회칼을 맞고 실려왔어요. 가해자가 칼을 찌르고 그 안에서 몇번이나 휘저었지만 결국에는 살렸어요. 회칼을 맞는다는 것 자체가 보통 일반인들에게는 출근길에 포털사이트 뉴스 메인에서나 볼법한 생소한 일이 잖아요. 하지만 이런 일들은 대단히 자주 있어요. 응급실에서 근무하면 이런 분들을 거의 매일 봐요. 그래서 한 번은 제가 응급실은 반경의 모든 불행을 수집하는 곳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었죠. 질문으로 돌아가면, 많이 힘들어요. 하지만 힘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 상황을 복기하고 반성해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글을 쓰는 것을 정신적인 치유 행위라고도 말할수 있을까요?
글 속에 모두 털어놓고 나면 개운해요. 게다가 써놓지 않으면 잊어버리게 되잖아요. 써놓음으로 인해 나의 생각을 차곡차곡 정리해 말끔하게 털어놓고 나면, 비로소 다음 환자에게로 갈 수 있어요.

| 제법 안온한 날들

의사로서의 경험이 글쓰기에 얼마나 도움이 되나요?
의사라는 자아를 가진 캐릭터의 설정이 존재한다는 것은 에세이를 쓰는 작가로서 큰 장점입니다. 저의 첫 출간작 <만약은 없다>도 응급실 의사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기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더 많이 읽힐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일상의 이야기들을 소재로 글을 쓸 때도 의사라는 직업의 영향이 있는 것 같나요?
의사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동의 일치하는 어떤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점이 저에 게도 영향을 주고, 읽는 사람들도 그것을 의식하면서 더 재미있게 받아들여지는 부분도 있겠죠. 3년 전쯤 블로그에 푸드파이터 도전기를 썼어요. 4인분 정도 되는 양의 점보 라멘을 20분 안에 다 먹으면 음식값을 내지 않아도 되는 도전이었는데, 디데 이를 앞두고 며칠 전부터 유튜브 먹방을 보며 나도 이렇게 먹을 수 있다고 암시를 걸었고, 도전하는 날 아침에는 깨끗하게 위를 비우고 가게까지 걸어가는등 최선을 다해 준비했는데 결국 실패했어요. 블로 그에는 이 일에 대해 자책과 후회가 뒤섞인 ‘2만 원짜리 교훈’에 대해 썼는데, 많은 분들이 정말 이 도전을 의사라는 양반이 직접 한 거냐. 실화냐고 묻더 라고요. (웃음)

| 차라리 재미라도 없든가

얼마 전 작가님이 참여하신 다다책방 온라인 강독 회에 참여했어요. 당시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방법을 터득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거든요.
응급실은 종합적이며 총체적인 인간군상의 밀집이 라고 할 수 있어요. 근무하다 보면 하루에 백 명 이상의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중 누군가는 오자마자 다짜고짜 화를 내기도 하고, 술에 잔뜩 취해 저에게 온갖 욕을 하는 분들도 더러 있어서 제가 살면서 안 들어본 욕이 없을 정도예요. (웃 음) 그렇다고 제가 그분들을 상대로 화를 내서는 안되잖아요. 그런 상황들을 참는 것이 일상적으로 훈련되다 보니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직업적으로 터득했다고 익살스럽게 표현했던 거예요.

그렇게 직업적으로 터득한 부분이 평소 인간관계 에도 작용하는 것 같나요? 예를 들어 친구가 나를 화나게 하는 상황에서도 덤덤하게 넘어가게 된다던가.
해석하자면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잘은 모르겠어 요. 훈련을 하다 보니 일상 속에 어떤 덤덤함이 배어있을지도요.

|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

언택트 시대와 연관 지을만한 기성 영화를 한 편쯤 골라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예를 들면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말이죠. AI와 인간의 사랑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있지 않을까요. 그것을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애초에 인간은 인간이 아닌 것도 많이 사랑하니까, 인공지능도 그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겠어요.

블로그에 7년 전 남기신 음악 리뷰 중 강아솔의 <엄 마>라는 곡에 대한 감상이 있었어요. <제법 안온한 날들>의 첫 번째와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도 어머니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등 저서에도 어머니가 자주 등장하는데, 작가님에게 어머니는 어떤 존재인가요?
글감을 주시는 존재가 아닐까요. (웃음) 어머니가 없으면 못 살 것 같아요. 어머니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정말 존경받아야 하는 분, 아들에게 한없이 따뜻한 사람이죠. 자라고 나서 보니 저의 성향과 행동 양식과 가치관 등에서 모두 어머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더라고요. 어머니가 교육한 것이 지금까지 저에게 남아있다는 게 보이거든요. 한가지 재미있는 예로, 제가 천성이 가난해서 척박한 환경도 잘 버티는 편이에요. 어머니가 평소 근검절 약을 잘하시는데 그것 때문에 천성이 가난해졌나 봐요. (웃음)

| 그리고 삶은 지속된다

몇 가지 사심 가득한 질문들을 맥락 없이 던짐으로써 인터뷰를 이어가 볼게요. (웃음) 우선 영화 이야기 하나만 더 해보겠습니다. 오래전 블로그에 이 영화의 리뷰를 쓰신 것을 봤어요. 소중한 존재들이 계속해서 떠나가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라는 영화 처럼, 영생의 삶을 누리는 나와는 다르게 소중한 존재들이 계속해서 떠나가는 삶이라면 당신은 그 안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게 될까요?
비슷한 설정의 작품들이 많죠. 도깨비라는 드라마도 있고요. 그렇게 백 년을 살아 어느 날… (웃음) 글쎄요. 아무튼 좋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런 설정 들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창작의 소재를 제공 하잖아요. 외로웠다거나 힘들었다는 내용들이 나오 고요. 끊임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나가는 삶이 라면 참 외롭지 않겠어요. 언제부터인가 누군가 나를 떠나는 게 싫어서 아무도 안 만나게 될 테고. 그영화에서처럼.

해결되지 않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할 인류의 자화상이 슬프네요. 일말의 희망과 긍정적인 면을 기대할 수는 없을까요.
제가 그 희망에 대한 글을 마감하고 있어요. 내일 까지 내야 합니다. (웃음)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를 보면 병을 이기려는 사람들은 보통사람들이에 요. 구원에 대한 사명감에 앞서 나는 의료인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상황을 극복해가는 서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위기에 직면했을 때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모여 보건대를 조작해 페스트에 맞서는 모습은 지금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있어요. 어쨌든 관이나 사기업 등등이 대의적으로는 속전속결해서 본능적으로 위기상황에 대응하고 있는 것이니 이러한 모습으로부터 말씀하신 일말의 희망과 긍정적인 면을 볼 수도 있겠죠. 과거 WHO에서 팬더믹에 국가 적으로 가장 잘 대처할 수 있는 나라를 미국으로 봤었는데 막상 상황이 되니 기존에 미국 사회가 가지고 있던 빈부격차, 계층갈등 같은 문제들이 더욱 심화되고 감염자와 사상자가 속출하면서 사회가 수습 불가한 지경에 이르렀잖아요. 그런 걸 보면, 우리 사회에서 단합으로 사망자들을 많이 줄여나갔던 모습에서 분명 희망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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