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인터뷰] 민우혁 | 레전드매거진

민우혁

그 날이 올 때까지, 함께 걸어온 길

장신의 배우가 대극장의 문턱을 밟았다. 그는 전직 야구선수 출신으로 뮤지컬을 전공한 이들조차 쉽사리 허용되지 않는 이곳에선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유달리큰 신장을 가지고 있어 사소한 실수도 두드러졌지만, 이내 무대에 적응하며 작품이 막을 내릴 땐 자신의 배역을 훌륭하게 완수하고 있었다. 〈레 미제라블〉에서 앙졸라 역을 맡은 배우, 민우혁의 이야기다.
실수가 사라지자 그의 커다란 신장은 곧 장점이 되었다. 〈위키드〉, 〈아이다〉, 〈벤 허〉 등 내로라하는 작품에서 신체 조건을 십분 활용한 연기를 선보이며 존재감을 어필했고, 몸을 사리지 않고 열정을 불사르는 모습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대중 에게 각인시켰다. 〈프랑켄슈타인〉에서 타이틀롤을 맡으며 단순히 키만 큰 배우가 아님을 증명, 마찬가지로 배우의 한계를 검증한다는 〈지킬 앤 하이드〉와 재연을 맡게 된 〈벤허〉에서 또다시 타이틀롤의 자리를 꿰차며 성공적인 배우로서의 커리 어를 쌓고 있다.
다사다난했던 2020년, 그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한 해였다고 했다. 선수의 꿈이 좌절되며 겪은 시련, 가수의 길을 걸으며 발견한 또 다른 재능, 인생의 반려 자를 맞이하고 다시 꿈을 되찾기까지. 과거사를 담담히 터놓는 그의 눈동자에 비친 것은, 이미 놓쳐버린 기회와 후회의 괴로움이 아닌 앞으로 그려나갈 미래에 대한 기대였다. 인터뷰의 막바지, 배우로서의 역량을 자신의 키보다 더 크게 키우겠 다는 포부를 듣고 있노라니, 한층 발전된 모습으로 무대를 수놓을 그의 연기가 더욱 기대되는 바이다.

안녕하세요. 민우혁 님. 근황 이야기로 인터뷰를 열어보겠습니다. 지난달 8일 뮤지컬 〈광주〉의 서울 공연이 끝났어요. 한 달이라는 짧은 상연기간이 아쉽기도 한데, 민우혁 님에게 광주는 어떤 작품으로 남아 있나요?
광주는 제게 의미가 남다른 작품이에요. 〈레 미제라블〉로 시작된 대극장 입성 이후, 잇따른 작품들에서 매번 외국인 역을 맡아왔는데요. 〈광주〉는 처음으로 대극장에서 한국인 배역을 맡게 된 작품이에요. 뮤지컬을 준비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작품의 배경과 역사까지도 공부하게 돼요. 타국의 역사가 한 편의 훌륭한 무대로 펼쳐지는 것을 보며, 우리의 역사를 그린 작품에 참여하고 싶은 갈망을 가지고 있었어요. 제가 경연 프로에서 안중근 선생님 헌정 무대를 기획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시면 될 거 같아요. 그런 갈증에 목말라 있을 때 〈광주〉라는 작품이 절 찾아왔고, 한국인의 모습으로 우리의 역사를 노래하게 해 준뜻깊은 작품입니다.

〈광주〉에 이어 또 다른 창작 뮤지컬 〈그날들〉에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사족이지만 데뷔작 역시 창작 뮤지 컬이셨죠. 배우의 입장에서 느끼는 창작 뮤지컬과 라이선스 뮤지컬 간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규모면에서 차이가 있을 뿐, 라이선스 뮤지컬도 창작 뮤지컬도 모두 훌륭한 작품이고, 하나의 장르다 보니 뚜렷한 차이점이 느껴지지는 않아요. 다만 창작 뮤지컬의 경우, 제작 면에서 배우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주기 때문에 창작 뮤지컬에 참여한다면 작품을 직접 만들어가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줍니다.

오프닝: 함께 걷는 길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과거사를 재조명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어릴 때부터 야구 선수를 희망하여 프로 입단까지 하였으나 아쉽게도 부상으로 은퇴를 하게 되셨죠. 그러다 돌연 가수로 데뷔하셨는데요. 선수에서 가수라니, 둘 간의 연결고리가 쉽게 그려지지 않습니다.
이건 제가 배우를 희망한 계기와도 일맥상통하는 이유인데, 프로 야구는 수만 명의 관중이 내뿜는 열기와 함성 그리고 환호를 한 몸에 받는 직업이잖아요. 가수 역시 비록 무대는 다를 지라도 비슷한 위치의 직업 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은퇴 후 노래방에서 가수 제의를 받았을 때 큰 고민 없이 수락했던 거 같아요.

배우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런 질문을 드려볼게요. 연기자로 한창 주가가 오르고 있을 무렵, 돌연 결혼 발표가 있었습니다. 앞날이 기대되는 상황이었던 만큼 당황스럽게 받아들이는 분들도 많았는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주세요.
하하, 다른 분들의 눈에는 그렇게 비췄을지도 모르겠지만 제게는 전혀 갑작스러운 선택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결혼을 한 뒤로 더 많은 것을 얻은 것 같아요. 아내와 아이가 생기며 책임감을 갖게 됐고, 그 모습을 좋게 보고 격려해 주시는 분들이 하나, 둘 늘어났거든요. 절 지탱해주는 팬들의 응원에 힘입어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결혼이 제 연기 인생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죠.

서로를 밀어주고 당겨주고, 두 분을 보면 참 잘 어울리는 한쌍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뮤지컬 배우를 시작하게 된 데에는 아내인 세미 님의 공로가 큰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죠.
많은 이들의 축복 속에 식을 올렸지만 장밋빛 미래가 펼쳐져 있지는 않았어요. 결혼 후 소속사와 이별하여 당장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고, 성수동에 꾸린 신혼집은 월세에 쫓겨 김포까지 떠밀리게 되었죠. 이따금씩 아내가 일터로 찾아오곤 했는데 몇 번인가 험한 꼴을 겪은 적이 있어요. 그런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제 자신이 한심하고 아내에게 미안해서 더 이상 찾아오지 말라는 이야기를 꺼내다 말씀하신 바로 그 사건이 터지게 되었죠.
“나는 당신을 배우로 만들기 위해 결혼했는데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냐, 밥은 굶어도 괜찮으니 꿈을 찾아 라. 당신의 꿈이 나의 꿈이다.” 솔직히 당장의 생계가 우선이었기 때문에 꿈같은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 요. 그런 와중에 아내의 응원과 질타는 제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죠. 부딪히기도 전에 멋대로 벽을 단정 짓고 뒤돌아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현실에 쫓겨, 생계를 위해, 그런 핑계를 대며 애써 덮어두었던 가슴속 작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이 느껴졌어요. 때마침 〈젊음의 행진〉 오디션이 진행 중이었죠. 2011년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작품이라 다시 무대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인 뮤지컬 배우로서의 2막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민우혁의 1부: 지금 이 순간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무대로 돌아온 후 2년 만에 〈레 미제라블〉의 주연인 앙졸라 역에 캐스팅, 좋은 모습을 보이며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대극장 입성과 동시에 맡은 주역이기에 더욱 각별했을 것같은데요. 당시의 기억을 말씀해주세요.
주크박스 뮤지컬에 익숙했던 제게 오케스트라가 함께하는 〈레 미제라블〉의 음악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려웠어요. 모든 배우가 성악이나 뮤지컬 전공자였기에 그들의 연습 속도를 따라가는 것조차 버거웠죠.
상견례 현장에서 첫 대본을 받고 ‘송 스루*’를 진행하는 배우들 사이에서 저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어요. 여태껏 빠르면 빨랐지 눈치가 없단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그 작품을 하면서 처음으로 고문관 소리를 듣기도 했고요. 실수를 커버하기 위해 더욱 노력했는데 마음만 앞서니 열심히만 한다고 또 혼나고. 아주 호되게 신고식을 당했죠.

가장 인상 깊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작품을 여쭤볼게요.
남성 배우라면 누구나 한 번쯤 타이틀롤을 꿈꾸는 작품이자,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무대라 할 수 있는〈지킬 앤 하이드〉입니다. 앞서 이야기드렸던 다른 관점에서 풀어간 작품이기도 해요. 기존의 선악 구도로 구분되는 지킬이 아니라 인간의 양면성에 초점을 두고 연기했기 때문에 배우로서의 능력과 동시에 제 해석이 시험대에 오른 작품이었어요. 더욱이 전반부를 지킬이 이끌어가기 때문에 무엇보다 배우의 역량이 중요한 데, 많은 선배들이 보여준 지킬 사이에서 민우혁의 지킬이 어색하게 비치진 않을까 걱정이 많았죠. 그런 반신반의를 가지고 첫 공연에 올라 ‘지금 이 순간’을 부르는 순간이었어요.

그동안 굵직한 작품에 참여하며 많은 경험을 쌓았는데 여전히 표현하는 데 애를 먹는 감정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저는 기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어려워요. 이건 대중 앞에 서는 모든 분들의 고충일 텐데, 저희는 언제나 팬들에게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드려야 해요. 자신의 감정과 무관하게 그런 숙명을 가진 직업이란 말이죠. 깊은 감정을 끌어내는 연기는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거나 내면을 바라보면 쉽게 집중할 수 있는 반면, 밝은 연기는 미소를 지으면서도 이게 관성적으로 띄어오던 습관의 산물인지, 내면에서 드러나는 진정한 기쁨인지 스스로도 헷갈릴 때가 많아요.

인터미션

민우혁이라는 예명은 어떻게 탄생하게 된 건가요?
연기자 시절 당시의 대표님이 작명소 세 군데에서 예명을 받아오셨어요. 그중 민우혁이라는 이름을 지금의 아내가 선택해주었습니다.

파괴 왕이라는 별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파괴 왕………. 아니, 흠…. 근데, 왜 저한테만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굉장히 억울합니다. 회를 거듭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소품이 망가지는데, 간당간당한 상태에서 제 차례가 돌아오는거 같아요. 저는 절대 파괴 왕이 아닙니다.

민우혁의 2부: 9회 말 2 아웃, 박성혁의 시간

무대에 올라 배역에 몰입하여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작품이 막을 내려 박성혁으로 돌아올 때. 빛이 밝은 만큼 그림자가 더 크게 다가오진 않을까 합니다. 민우혁과 박성혁 사이에서 발생하는 내면의 갈등이 있지는 않나요?
긴 시간 준비한 작품이 막을 내릴 때면 아쉽긴 하지만 무대 안팎의 변화로 인한 감정 기복은 없는 거 같아요. 배역에 너무 심취하거나 혼자서 깊은 고민에 빠졌던 적은 없었어요. 그래도 민우혁과 박성혁 사이의 갈등은 있죠. 제가 사람을 좋아하다 보니 주변을 챙기고 다가가는 성격인데, 하나의 작품을 긴 시간 상연하다 보면 다양한 이유로 감정을 숨겨야 할 때가 있어요. 다가가고 싶어도 같은 작품을 완성해야 하는 배우라는 입장이 발목을 잡는 것이지요. 게다가 제가 무표정할 땐 약간 차가운 인상이거든요. 그래서인지 절 어려워하는 선, 후배들이 아직도 많이 계세요. 저 그런 사람 아닌데, 민우혁 때문에 박성혁이 억울할 때가 종종 있어요.

커튼콜: 이 시대의 진정한 사랑꾼

우혁 님의 취미 생활은 무엇인가요?
집에 누워만 있으면 좀이 쑤셔서 활동적인 걸 좋아하는데, 요즘은 워낙 바쁘다 보니 취미 생활을 즐길 여유가 없네요. 오늘도 아침부터 이든이 학교 보내고 이음이와 놀아주었는데, 공연과 육아만으로도 24시간이 부족해요.

마음으론 느껴도 그걸 표현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가족 사랑이 무척 각별하신 것 같습니다. 혹시 아침 인사를 대신하는 건가요?
딱히 시간을 정해두진 않고 그냥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이야기하기 하는 거 같아요. 저희 아버지가 워낙에 말씀을 아끼고 표현을 너무 안 하시니까 아버지인데도 종종 불편할 때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 에겐 더 많이 표현해주려 해요. 같은 눈높이에서 친구처럼 다가가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어요. 너무 잘놀아주다 보니 수준이 똑같은 거 아니냔 소리도 들어요, 하하. 그런데 자꾸만 들으니 기분이 묘한 게 영… 칭찬하는 거 맞겠죠?

뮤지컬 배우가 아닌 인간 박성혁의 바람이 있다면?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체력만큼은 자신이 있었어요. 누구보다 활동적으로 움직였고, 다들 힘들다고 하는 순간에도 지친 적이 없었는데, 요즘 들어 피로가 회복되지도 않고 지친다는 게 무엇인지 실감하고 있어요. 노화는 남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제게도 찾아오기 시작했네요. 바람이 있다면 여기서 더 늙지 않고 지금 처럼만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건강이 최고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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