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인터뷰] 을지예술센터 : 을지판타지아展 | 레전드매거진

을지예술센터 : 을지판타지아展

오래된 공간과 새로운 관념의 융합
을지예술센터 : 을지판타지아展

을지로라는 지명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단어는 힙지로였다. 종로와 명동의 배후지, 편리한 교통, 소품 하나하나에 공을 들여 진열해 둔 10평 남짓한 크기의 개인 카페, 즐비한 가게들이 어우러져 연출하는 고유의 감각과 개성, 한마디로 ‘뜨는 동네’. 이렇게 우리가 아울러 일컫는 ‘힙지로’의 실체는 무엇일까. 힙지로 3가와 힙지로 4가의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다. 3가의 힙은 정제된 트렌드를 보여주며, 4가의 힙에는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힘이 있다. 산림동 일대를 주축으로 작업장들의 세월이 응축된 오래된 공간 위에 얹어진 예술가들의 ‘리얼리티’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레전드매거진 취재진이 살펴보았다.

을지드라마
이주원, <기도하는 손>, 네온 조명, 70x70cm, 2017

<산림동, 문화예술인들의 둥지가 되다>
을지로 4가 세운상가 뒤편에는 지어진 지 50년에서 길게는 80년이 넘은 오래된 철공소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가게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베테랑 장인들이 밀집 되어 있기에, 미대생들과 공대생들은 이곳을 드나들며 필요한 재료를 구하고 장인들의 연륜을 빌려 작업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 재개발 이슈로 하나 둘 짐을 싸서 상인들이 떠나 비어있는 가게들도 많았지만, 그렇게 비어있는 자리에 젊은 예술가들이 하나 둘 모여들며 작업공간으로 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곳의 분위기도 5년 전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산림동은 오랜 업력을 지닌 장인들과 신진 예술가들이 융합되어 함께 만들어가는 거리가 되었고, 새로운 예술에 대한 화두가 끊임없이 생성되는 공간으로 변화했다.

<산림동 일대, 회색 거리를 물들인 채색>
산림동 철공소 지역에는 가게마다 색색의 셔터 아트가 그려져 있다. 구청에서 처음 제안한 작업은 벽화였으나 전후 상황을 고려한 아티스트들의 건의로 셔터 아트 작업으로 진행되었다. 셔터 아트의 시작은 을지판 타지아전의 기획자인 청두가 미술봉사를 하며 만난 청소년들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몇 차례 회의가 오간 뒤 도안이 나왔고, 밑그림 위에 아이들의 채색이 얹어지면 아티스트들이 작업을 꼼꼼하게 마무리했다.
각 공업소마다 셔터 위에는 해당 가게와 가장 잘 어울리는 그림이 얹어졌다. 예를 들면 태양 공업소의 셔터 에는 동그란 태양과 하늘이 그려지거나 하는 식이었다. 다음 날, 아이들이 작업하는 과정을 촬영한 누군가의 영상을 본 한 사장님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셔터 위에 그려질 그림은 맥락 없이 얹어질 거라 생각해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워버리려고 검은색 락카 스프레이까지 잔뜩 쟁여뒀는데, 막상 셔터 위에 얹어진 그림은 너무나 순수하고 따뜻했던 것이다. 사장님들은 아이들이 와서 그렇게 열심히 작업을 할 줄 알았다면 간식이라도 사둘 것을, 다음에는 꼭 미리 알려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렇게 입소 문을 탄 사장님들의 요청으로 철공소 골목 일대에는 셔터 아트가 하나 둘 늘어났고, 사장님들은 저마다 우리 집 그림이 가장 예쁘다고 자랑하기 시작했다. 회색 골목에 다채로운 생기가 조심스레 피어나고 있었다.

<왜 을지로인가?>
을지로 3가의 상점들에서 시작된 ‘힙지로’라는 단어는 하나의 도심에서 일어난 작은 문화현상이다. 3가와 4가의 모습만 봐도 확연한 차이를 알 수 있는 것처럼, 힙지로란 단어는 결코 을지로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을 설명해 줄 수는 없다. 일상에서도 SNS에 올라가는 포스팅이 우리의 삶을 완전하게 대변해주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을지판타지아는 실재한다고 믿었던 것과 현실은 어떻게 다른지, 무엇이 진짜인지를 돌아보고자 하는 기획 의도를 갖고 있다. 을지로의 실체를 파악하는 과정은 내 삶의 실체를 돌아보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내가 그동안 좋다고 믿고 선택해온 것들이 과연 진정 좋은 것인가, 그것들의 실존은 과연 무엇인가. 관람자로 하여금 이렇듯 치열하게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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