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者와의인터뷰] 퀸의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 | 레전드매거진

프레디 머큐리

[死者와의 인터뷰]

자유를 사랑한 리드 보컬
프레디 머큐리

‘Mama, just killed a man~’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팝송 ‘Bohemian Rhapsody’ 가사의 도입부다.
록 밴드 Queen은 몰라도 프레디 머큐리가 작곡한 이 노래를 아는 이는 많을 것이다.
독특한 콧수염을 기르고 백바지를 거의 가슴팍까지 올린 채 무대를 종횡무진 달리는
그의 모습을 실제로 본 적이 없어도,
우리는 시대를 풍미한 록스타 프레디 머큐리를 잘 알고 있다.
4옥타브를 넘나드는 넓은 음역대와 작은 감성도 놓치지 않는 세밀한 호흡,
수만 명의 관객을 한 손에 쥐고 흔드는 카리스마와 퍼포먼스로 마이클 잭슨과 더불어
대중음악사에 영원히 남을 레전드로 평가받는 프레디 머큐리.
무대 위에선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줬지만, 한편으론 파파라치들에게 시달리며
그 누구보다 자유를 갈망했고,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아픔 속에서도
이웃에게 친절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다. 그가 지닌 복합적이고 다양한 모습이
그의 음악에 여과 없이 투영되어 희로애락으로 고스란히 표현되었기에
우리는 퀸의 음악에 열광했던 게 아닐까.

“I won’t be a rock star. I will be a legend.”

그가 생전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대로 그는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별이 되었지만,
우리는 그의 음악을 통해 영원히 그를 기억한다.

Q. 반갑습니다! 퀸의 프런트맨이 아닌 프레디 머큐리 본인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프레디 머큐리입니다. 1970~198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보컬이자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지요. 저는 1946년 9월 5일 잔지바르(현 탄자니아)의 스톤 타운에서 태어났습니다. 유년기는 인도에서 유학을 하며 보냈고, 성인이 될 무렵 잔지바르가 독립을 하며 영국으로 내쫓기다시피 피신을 가게 되었죠. 타고난 재능도 있었지만, 여러 곳을 거치며 받은 영감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사실 밝히고 싶지는 않지만 본명이 ‘파로크 불사라’였어요. 인도의 뭄바이 인근, 성 피터스 기숙학교에 다닐 때 이름을 ‘프레디’로 개명하였죠. 법적으로 성을 머큐리라고 바꾼 것은 20대 중반 퀸이 막 결성됐을때고요. 본명에 대해 이야기하면 잔지바르와 인도 시절이 떠올라 여기까지만 하고 싶네요. 그다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진 않거든요.
무대 위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사석에서의 프레디 머큐리는 부끄러움이 많고 낯을 많이 가리며 타인에게 친절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두 모습이 극단적으로 다르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요. 강의실에서 노래를 부르기고 하고, 친한 친구들과는 크게 떠들면서 장난을 치는 경우도 많지만, 낯선 사람이나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는 말을 하지 않거나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런 이들과 에너지 소비를 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다고 무례하게 굴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종종 저도 모르게 무대 위의 모습이 나오기도 했죠.

Q. 동시대에 패션 테러리스트이자 패션의 아이콘. 상반되는 두 개의 별명을 가지고 계셨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패션에 대해선 너무나도 할 이야기가 많네요. 다들 제가 집착적으로 외모와 옷에 신경 썼다고 생각하고 말하는데… 맞습니다. (웃음) 그건 프런트 맨으로의 예의라고 생각해요. 이제 와서 돌아보면 남들이 소화하기 힘들어하는 옷들만 고집적으로 선택했던 것 같아요. 초창기엔 글램 록을 좋아해서 머리도 기르고, 검정매니큐어에 검은 눈 화장, 몸에 딱 붙는 발레복도 입었죠. 가죽 재질의 옷도 좋아해서 주야장천 입었을 때도 있었고요. 타이트한 트레이닝복, 흰 러닝셔츠, 화려한 재킷과 백바지 등등 엄청나게 많은 아이템들을 시도했었죠. 공연을 준비할 땐 예산의 절반을 의상과 조명에 쏟아 붓기도 했어요. 멤버들이 고생하긴 했지만, 제가 부은 노력만큼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죠. 저도 만족했고요.
저는 사회적인 분위기나 문화의 영향을 받아 의상을 선택했어요. 역사적인 성격을 가졌다고 생각해요. 물론 패션 테러리스트다, 기괴한 옷만 입는다, 동성애자 같다라며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던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그저 남 얘기를 좋아하고 깎아내려 자신의 자존감과 결핍을 애써 채우려는 안타까운 사람이라 생각해버리고 그 시간에 어떤 옷을 입을지나 고민했어요. 저는 스스로를 놀림거리로 만드는 게 재미있었어요.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거든요. 제가 진지했다면 특이한 옷도 안 입었겠죠?

Q. 퀸의 명곡 중 하나인 ‘Love of My Life`를 만들 수 있었던 일화를 얘기해줄 수 있나요?

저의 평생 친구이자 사랑하는 연인 ‘메리 오스틴’을 위해 만든 곡이에요. 저를 항상 지지해 주었고, 옆에서 항상 힘이 되어주었죠. 첫 만남은 퀸의 멤버인 브라이언 메 이의 소개였고 곧 연인이 되었어요. 동거 생활을 하며 우리는 서로 의지하는 동반자로 지냈어요. 제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진 사실을 그녀에게 털어놓으며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지만요. 하지만 그녀와의 인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서로를 위해주며 평생의 우정을 나눌 수 있었어요. 제가 다른 연인을 만난다고 해도 그녀를 대체할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제게 연인이 생겼을 때 그녀를 많이 질투하던 사람도 많았죠. 그녀는 저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고 느끼게 해 주었어요. 그런 기억이 없었다면 이런 명곡도 탄생하지 못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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