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매거진 스튜디오 엔지니어, 고현정 – 레전드매거진

스튜디오 엔지니어, 고현정

서울 스튜디오.
대중음악과 역사를 함께하며 한국을 주름잡던 대표 스튜디오이다.
이곳에서 일하고 리코딩을 배우며 경험을 쌓은 고현정은, 독립한 뒤 대중음악 전성기를 함께 한 가수들의 음반 작업을 함께 했다.
30년이라는 세월을 엔지니어로 일하며 앨범은 물론이고 영화, 드라마, 뮤지컬, 광고에서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음악이 없다.

대중음악 전성기를 써 내려간 대부
스튜디오 엔지니어 고현정

안녕하세요. 고현정 선생님 반갑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저는 뮤직 엔지니어 고현정이라고 합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스튜디오 엔지니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한강을 끼고 행주산성에 위치한 kokosound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점점 날씨가 추워지고 있어요. 최근에 어떻게 지내셨나요?

네, 계절이 겨울로 바뀌고 있네요. 구독자 여러분들도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저희 엔지니어들은 항상 실내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계절을 타지 않아 괜찮습니다. 오히려 엔지니어는 엉덩이가 무거워야 성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너무 오래 앉아만 있어서 문제죠. (웃음) 늦게까지 작업하는 건 예사고, 밤을 새워서 작업해야만 일정을 맞출 수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최근엔 발라드 작업을 많이 하고 있어요. 제가 임기훈 작곡가의 <당신과 만난 이날>이란 곡으로 데뷔하였고, 이승훈의 <비 오는 거리>라고 비가 왔다 하면 거리에 울려 퍼지던 노래로 히트하면서 발라더라는 별명으로 불렸어요. 그러다 트렌드를 따라 랩과 힙합 작업을 많이 하며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최근에 다시 발라드 의뢰가 많이 들어와 예전 생각이 나네요.

발라드요? 최근에 어떤 앨범을 작업하셨어요?

어반자카파의 <널 사랑하지 않아>, 빈지노의 첫 정규 앨범 <12>를 작업했어요. 또 폴 킴의 <모든 날, 모든 순간>이나 악동뮤지션의 발라드도 있었죠. 작업하며 발라더였던 옛 생각도 많이 났고, 트렌드가 다시 발라드로 회귀한 건가?라는 생각에 반갑기도 했어요. 어반자카파의 노래는 작업할 때부터 히트할 거 같단 느낌이 들더라고요. 작업을 하다 보면 그런 촉이 오는 작품들이 있어요.

스튜디오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평소부터 음악을 좋아하셨나요?

서울 스튜디오에 입사하면서 엔지니어로의 인생이 시작됐는데, 학창 시절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아요. 중학교 때 성적은 그리 나쁘지 않았어요. 반에서 열 손가락 안에는 들 정도였죠. 기술을 배울 생각으로 당시 서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공고인 서울 공업 고등학교 전자과에 입학했어요.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전자과는 수학을 공부해야 되더라고요. 전 수학을 끔찍이도 싫어했고, 수학에서 벗어나려고 전자과를 선택한 것이라 크게 실망을 했어요. 거의 입학과 동시에 이 길은 나의 길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고,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하여 음악다방에서 음악을 들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죠.
그런 나날을 보내던 중, 서울 스튜디오라는 곳에서 인턴을 뽑는다는 공고가 왔어요. 서울 스튜디오에선 3년에 한 번씩 인턴을 모집했는데 마침 제가 다닐 때 모집을 한 거죠. 제가 음악을 좋아하니 선생님이 추천을 하셨고 운 좋게도 뽑히게 되었어요. 스튜디오가 음악을 만드는 곳이라고만 알던 시절이었으니 정말 운이 좋았던 거죠. (웃음)


처음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대표님이 스튜디오 소개를 해주시는데,
A룸 문을 여니 이문세 씨가 작업하고 계셨고, 
B룸엔 이승철 씨가 작업하고 계셨어요.
앨범으로만 듣던 가수들을 직접 보니까 눈이 번쩍 뜨였죠.

선생님만의 믹싱의 비결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처음엔 리코딩 테크닉만 배우면 좋은 엔지니어가 될 줄 알았어요. 그래서 10여 년을 기술을 갈고닦는 데에만 목메었는데 달라지지 않더라고요. 기술만 가지곤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없는 것이죠. 미술이나 문학 같은 음악적이지 않은 영역의 감성도 접해봐야 해요. 음악을 듣는 대중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아야 하고, 음악을 제작하는 뮤지션의 마음도 이해해야요. 결국 리코딩이란 모두와 소통해야 하는 것이었고, 그건 세상만사 모두가 똑같은 일인 거죠, 엔지니어만의 비결이 아니라. 그걸 이해한 뒤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됐어요. 20년 전에 깨달았으면 대성했을 텐데 최근에 깨달은 게 조금 아쉽긴 하네요. (웃음)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고, 바뀐 뒤에도 많은 시간이 흘렀어요. 과거와 비교해서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과거엔 녹음을 위해서 장비가 많이 필요했는데 요즘은 컴퓨터 플러그 인이나 VST 소프트웨어로 많은 편집이 가능해졌어요. 저는 예나 지금이나 장비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어요. 리코딩을 업으로 삼는 엔지니어로서 나를 위한 투자라는 생각도 있고요. 제 돈 주고 구입해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공부한다는 생각도 있어서예요. 그렇게 계속 구입하고 연구하다 보니까 트렌드를 잘 따라갈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어려운 점이라면 새로운 것에 적응할 때쯤이면 또 다른 것이 나와있다는 점이네요.
장비만 바뀌었을 뿐이지. 녹음의 본질 자체는 여전히 똑같은 것 같아요. 그래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며 바뀐 점이 있다면, 접근성이 훨씬 좋아지고 입문 벽도 많이 낮아졌다는 것이에요. 한편으론 정교해진 에디팅이나 추가된 기술을 배워야 하니 입문 벽이 높아졌다고 볼 수도 있어요. 그래서 누구나 비슷비슷하게 할 수 있지만, 특출 난 사람은 없는 상향평준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희 직업은 기술이 발달하고 정교해질수록 일거리가 많아집니다. 그만큼 세밀한 수정이 가능하단 소리는 누군가 그것을 해야 된단 이야기잖아요. 달라진 부분이요? 신경 써야 되는 일이 많아졌다는 점이요. (웃음)

그렇잖아요. 
사실 작업하며 알게 된 게 고작인데 
그 사람 속마음까지 어떻게 알아요~ (웃음)

그럼 음악 외적인 부분에서 오는 어려움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아직 한국은 엔지니어의 리코딩 업무와 스튜디오의 매니지먼트 업무가 나뉘어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보니, 치프 엔지니어가 직원 관리부터 시작해서 스튜디오 녹음 일정을 조율해야 하고, 심지어는 청소까지 하는 경우도 있어요. 현업 종사자로서 시스템을 바꾸고 제도를 확립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원로 엔지니어로서 후배들에게 좋은 환경을 물려주기 위한 책임감도 느끼고 있지만 생각만큼 쉽지가 않네요.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문제들이 너무 많아요. 바꾸고 싶지만 바꿀 수 없다는 게 너무 아쉽죠. 언젠가는 바뀌어야 할 문제인데 언제가 될지…

그리고 엔지니어들은 작업물에 부가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어려움도 존재해요. 작곡가는 저작권으로 수익을 얻고, 연주자들도 미약하게나마 실연권으로 연주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고 그 권리를 위한 단체들이 생기고 있어요. 그런데 엔지니어뿐만 아니라, 헤어디자이너, 코디네이터, 조명이나 영상감독님들처럼 무대 뒤편에 존재하는 분들은 좀처럼 인정받지 못한다는 어려움이 있죠.

최근 음악 시장의 흐름에 대해 어떻게 보고 계세요?

예전엔 CD 한 장을 내기 위해 목 메기도 했는데, 요즘은 앨범 발매보다 컬래버레이션이 중요한 것 같아요. 단순히 뮤지션과 뮤지션이 만나서 새로운 앨범을 내는 것을 뛰어넘어 아티스트와 연계된 굿즈나 콘텐츠 같은 음악 외적인 것들이요. 음반 매출보다 굿즈로 더 큰 수익을 벌고 있는 뮤지션들이 많이 생기고 있어요. 유튜브라는 채널의 등장으로 시대가 바뀐 거 같아요. 뮤지션으로서 본질인 음악도 중요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선 트렌드의 흐름을 읽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삶에 음악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우리 삶에 힘든 일이 많잖아요. 정신적인 고통일 수도 있고 육체적인 고통일 수도 있는데, 삶이 점점 더 각박해져 가고 있잖아요. 그런 삶을 치유해주는 것이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엔지니어로서 뮤지션의 앨범을 작업하는 입장이고, 뮤지션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앨범에 담는 것이지만, 대중들은 그것을 들으며 마음에 위로를 얻고 지친 심신을 달랠 수 있어요. 심지어 매일 10시간 이상씩 작업하는 저 조차도, 저와 코드가 맞는 좋은 음악들을 작업할 땐 지치지 않고 오히려 힐링이 되는 것 같아요.

성공한 뮤지션들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대중을 향한 메시지가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멜로디나 가사에 어마어마한 힘이 담겨있어요. 대중들이 그것을 느끼고 공감할 때, 저도 음악에 담긴 힘을 실감하고 그런 음악을 함께 작업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때론 희열을 느끼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구독자분들에게 인사를 부탁드리며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이렇게 인터뷰 자리를 만들어주신 레전드매거진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제가 최근에 인터넷 페이지를 만들며 제 이력을 정리하다 보니 정말 많은 작업에 참여했더라고요. 추리고 추렸는데도 쓸게 너무 많다 보니 이 정도면 나도 레전드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레전드매거진에서 인터뷰 전화가 오더라고요. (웃음) 최근 잡지뿐만 아니라 종이로 된 매체들이 많이 힘든 것으로 알고 있어요. 특히나 이런 전문지들은 제작도 쉽지 않을 텐데 잘돼서 명맥을 이어가는 전문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엔지니어도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만족할만한 결과물이 나오고 잡지 편집도 마감에 쫓기지 않고 여유가 있어야 좋은 기사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마찬가지로 우리네 삶도 한숨 돌리며 정리할 여유가 있어야 더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여유를 레전드매거진과 함께 하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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