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매거진 우리 시대의 영원한 마왕, 신해철 – 레전드매거진

우리 시대의 영원한 마왕, 신해철


안녕하세요. 많이 보고 싶었고, 불러보고 싶었습니다. 신해철 님,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늘 똑같죠.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며 새로운 음악적 시도에 골몰해 있습니다. 요즘은 천국의 계절변화를 주제로 이전에 시도해 본 적 없던 새로운 방식의 타악곡을 만들고 있는데 가을비가 내릴 무렵 들려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9월 말에서 10월의 중순으로 저물어 갈 무렵의 어느 날 오후 문득 비가 온다면, 또 그날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유별나게 청명한 리듬을 가지고 있다면 제가 전하는 음악일 테니 귀 기울여 반갑게 맞이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러고 보니 벌써 31년 전이에요. 신해철 님은 1988년에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데뷔하셨죠?
네. 무한궤도라는 이름의 팀을 만들어 ‘그대에게’라는 곡으로 대상을 받았습니다. 실은 그 노래는 가족들 몰래 만들었어요. 저희 집에서는 제가 음악을 하는 걸 싫어했었거든요. 음악을 하다가 아버지에게 들키면 혼날까 봐 이불을 뒤집어쓰고 동네 문방구에서 산 멜로디언을 이불 속에서 훅훅 불어가며 그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신디사이저나 피아노 같은 건반 악기로 작곡을 해보고 싶었지만 살 돈도 없고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멜로디언을 구입했었죠. 부피가 작아서 들킬 염려도 적기도 했고요. ‘그대에게’라는 곡 안에는 제가 추구하는 모든 것이 다 들어있습니다. 길이도 4분 정도로 알맞고, 드라마틱 한 도입부와 절정에서의 선율감, 장중한 마무리까지 당시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을 전부 담았어요. 그래서인지 아직까지도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꼽더라고요.

그 당시 대학가요제 때 심사위원이 조용필 씨였는데, 조용필 선배님은 뮤지션과 음악과의 관계에 대해서 저의 롤모델이기도 합니다. 사운드 퀄리티를 향한 집요한 자세와 셀프 프로듀싱을 하는 과정을 그분을 보며 많이 배웠어요. 워낙 존경하는 선배인지라 평소에 조용필 씨를 장군님이라고 부르기도 했죠.

팬들 사이에서는 마왕이라고도 불리시죠?
‘ 고스트 스테이션’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청취자들이 붙여준 별명이에요. 그 별명 덕분에 지금은 영원한 마왕으로 불리게 되었네요.

본인이 발매하신 앨범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앨범이나 곡을 하나만 꼽자면 어떤게 있나요?
없습니다. 저는 앨범이 출시된 이후에는 거의 듣지 않습니다. 발매 후 2개월만 지나도 다음 작품을 만들고 싶어져요. 부끄러워지는거죠. 그래서 매 앨범이 늘 학습입니다. 그래도 한 곡을 꼽으라고 한다면.. ‘그대에게’를 꼽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당시의 제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것을 녹여낸 곡이거든요.

한국에서 가장 독특한 음악적 시도를 많이 한 대중 음악가 중 한 분이 아닐까 합니다. 앨범 작업을 하실 때 가지는 신해철님만의 철학은 무엇인가요?
네. ‘HOME’이라는 앨범의 수록곡 ‘증조할머니의 무덤가에서’와 ‘모노크롬’앨범의 ‘무소유’등에서 국악과의 크로스오버의 흔적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것도 새로운 시도 중 하나였죠.

앨범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저는 앨범을 준비할 때 컨셉을 함께 구상합니다. 넥스트의 두 번째 앨범을 준비할 때를 예로들자면 당시 세 개의 컨셉을 구상했습니다. 첫 번째로 가졌던 생각은 시적인 뉘앙스를 가진 언어가 아닌, 일상적인 언어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성장 과정 속에 스며 있는 현실적 사회적인 문제를 직설적으로 표출하고 토로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마지막은 7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에서 집중적으로 시도되었던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문제들을 음악으로 풀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두 번째로 언급한 주제입니다. 저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우리는 갈팡질팡하는 교육 정책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비단 동시대의 청년들뿐만이 아니지요. 지금도 이 땅의 모든 십 대들은 대학입시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들을 당시에 음악을 통해 짚어보고 토로하고 싶었습니다.

음악으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하려면 제도적 질서와의 전쟁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음반 사전심의제에 반대하고 폐지를 주장하던 음악가들 중 한 사람으로서 결국 사전심의제가 개설된 지 63년 만인 1993년에 폐지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음악인들의 표현의 자유와 창의력, 상상력을 억압하던 제도였죠.

곡 작업을 할 때는 대중음악판에서의 지형을 머릿속에 그리며 저의 역할을 가늠합니다. 음악가의 비참한 점은, 치열한 고민 끝에 아무리 좋은 걸 만들어도 남들이 만든 것 중에 훨씬 좋은 음악이 많다는 거예요. 그래도 계속해야죠. 거대한 작업물을 한 바늘씩 꿰는 작업을 계속한다고 생각하면서. 이건 우리 음악인들이 안고 가야 할 숙제입니다. 모두의 인생도 다를 게 없어요. 맞닥뜨리는 삶의 부조리를 극복하고 해결해 가는 건 현
세대가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할 숙제인 거죠. 한 바늘씩 꿰어 가면서.

어쩌면 상투적인 질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음악은 신해철 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아시다시피 사회적인 의식은 늘 깨어있게 하며 저의 발언을 던지는 데 거리낌이 없었지만, 모든 행동과 생각의 중심에는 음악이 있었습니다. 일생을 음악적인 도전과 새로운 시도에 목말라 있었으며 남들이 보기에 불가능해 보이는 음악적인 미션을 해결해 나가는 것에 희열을 느껴왔죠. 특히 밴드를 한다는 것은 저에게 남다른 의미입니다. 밴드로 음악을 시작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밴드는 제 마음의 고향과 같습니다. 컴퓨터 음
악을 몇날 며칠 붙잡고 있다가도 기타를 한번 후려치고 나면 숨통이 트이죠. 저는 음악인입니다. 단 한 번도 지지하는 정치인을 위해 노래한 적은 없습니다. 연설을 위해 단상에는 오르되, 그를 위해 노래를 하지는 않았죠. 음악인으로서의 신해철을 철저히 지켜왔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제 꿈은 영원히 음악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늘 지켜왔던 음악을 향한 헌신적 배움의 자세는 앞으로도 굽힐 마음이 없습니다.

팬들이 많이 그리워하는 것 알고 계시나요?
제 입으로 말하기는 어색하지만 저를 가수 이상의 존재로 하나의 인생관이자 세계관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반면 저는 그런 열혈팬들 못지않게 안티 팬들도 많이 거느리고 있습니다(웃음)

민감한 소재에 대한 발언 혹은 음악적으로 이를 표현하는 데에도 거침없으셨어요. 영향력 있는 한국 가수 순위에도 오르셨었는데.
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소재들에 대해서도 제 소신을 밝히곤 했었죠. 다들 말 한 마디 조심스러울 때에도 연예인으로서 제 소신을 분명하게 밝혔으니 주변의 우려도 있었죠. 하지만 저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해야 했습니다.

트랜지스터의 시대가 되면서 음악을 휴대할 수 있게 되었잖아요? 우리는 자기가 원할 때 원하는 곳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과거에 원할 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뮤지션을 고용하고 있는 왕과 귀족밖에 없었어요. 누구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지금과 같은 시대에서는 대중음악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어떤 비극이 찾아와도, 또 어떤 변화를 겪는다 할지라도 극심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사람들이 음악을 듣는다는 사실 하나는 변하지 않아요. 이것이 우리가 음악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죠. 따라서 예술은 정치적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저는 정치를 혐오합니다.
이전에 다른 인터뷰에서도 이야기 한 적 있는데, 현실적인 사람들이 비현실적인 꿈을 꿀 때 세상은 아주 조금씩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것 하나 비판하지 않고 혼자서만 잘 한다고 바뀌는 게 아니라요. 꿈꾸지 않는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은 내 자식들이 살 수 없는 세상입니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으신 말씀은?

세계가 몰락하지 않는 한, 락의 정신은 항상 살아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다들 락의 정신으로 살아가시다가 언젠가 만납시다. 음악인들은 계속 음악을 해주시기를. 그리고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은 지금처럼 음악을 잘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감동적인 것에는 감동하고 슬픔은 슬픔으로 느끼며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라 말해 주세요. 불합리한 일들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작은 움직임이 앞으로 저의 자식들과 그 아이들을 이어갈 후손들의 시대를 점점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거예요.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현실적으로 아무 힘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그 무엇도 부럽지 않을 것이며, 그 누구도 우리를 패배자라고 부를 수 없을 거예요.

故 신해철 님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용기 있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머뭇거리는 우리를 대신해 먼저 앞으로 나아갔던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는 나이가 들어도 남과 다르게

소신껏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해방구 같던 말들로 심야의 라디오를 호령하던 똑똑한 사람이며

마음 한편에 자리하던 따뜻함을 잃지 않았으며,
그 무엇보다도 동시대에 존재했다는 것을 감사하게

되는 훌륭한 음악가입니다.

마흔여섯 살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그를 추모하고

깊이 애도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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