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매거진 재즈피아니스트, 송영주 – 레전드매거진

재즈피아니스트, 송영주

클래식을 전공한 동양인 유학생이 재즈의 메카 뉴욕으로 건너 가 ‘Blue Note’ 무대에 서기까지

국내 재즈계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송영주

“클래식 피아노는 악보대로 정확하게 연주를 해야 하잖아요? 하지만 재즈는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긴장감 넘치는 변칙이 가득하죠. 재즈는 제가 기존에 음악을 공부한 패턴과는 전혀 다른 장르였어요. 그 매력을 알게 되면서 새로운 음악에 대한 제 안의 갈증이 드러나기 시작했죠.”

[재즈의 매력]

클래식 공연장에 가면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숨소리도 크게 못 내고, 기침하면 큰일 날 것 같고, 박수는 어떻게 쳐야 할지 모르겠고.. 그런 어려움이 있는 반면에 재즈는 듣는 사람도 연주하는 사람도 편안한 것 같아요. 좋으면 언제든지 호응할 수 있고, 마음대로 박수를 쳐도 되고, 일어나서 춤을 춰도 되죠. 

[7년간의 유학 생활]

재즈를 공부하면서 그 나라의 언어를 익히고 문화를 이해해야 음악도 깊게 이해해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저에게 정말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 길로 뉴욕행 비행길에 올랐죠. 처음 뉴욕에서 음악을 시작했을 때는 제가 살아온 환경과 문화와는 너무 차이가 크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들을 이해하고 쫓아가기에 바빴어요.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제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상식의 틀을 깨부수는 일이라 힘들었죠. 예를 들면, 바(bar)라고 하면 한국의 사고방식으로는 술집을 뜻하잖아요. 목사님 아버지 아래서 자랐고 클래식을 전공한 제가 사람들이 어울리고 술을 마시는 곳에서 새벽 네시까지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은 한국에 있을 때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어요. 

또.. 한국에서는 자신 없고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 것에 더 익숙했는데, 뉴욕에서는 완벽하지 않아도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스스럼이 없으며, 합주를 즐기며 의견을 표출하고 음악으로 자유롭게 드러내는 문화가 있어 그런 것들이 한국과는 너무나 달랐죠. 재즈를 만나면서 저 또한 조금씩 그들의 문화에 동화되며 조금씩 저 스스로를 오픈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유학 생활에서 가장 힘든 점이 외로움이라고들 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외로울 틈조차 없었어요. 이렇게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고, 새로운 음악을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벅찼거든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애초에 2년으로 계획했던 유학 생활은 7년이 되었죠.

유학시절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한인식당에서 연주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작은 재즈클럽에서 공연을 했었는데 유명한 아티스트들을 많이 볼 수 있었어요. 한 번은 지하철에서 팻 메스니(Pat Metheny)를 만난 적도 있죠. 세계적인 음악가이지만, 그곳에 거주하고 있는 지역민이기도 하니까요. 이런 것들이 정말 신기했어요. 그들과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사실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니, 그곳에서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저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그들을 마주치는 거니까. 너무 반가웠고, 저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2010년,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교에서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앨범을 발매하고, 김현철 씨와 보아 등을 비롯하여 가수들의 세션 활동으로도 바쁜 나날을 보내던 때였어요. 너무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 그 일들 가운데 제가 지쳐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리프레시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새로운 음악을 만들기 위한 에너지가 필요했어요. 앨범을 꾸준히 발매하기 위해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는데, 반복되던 바쁜 일상 속에서 점점 그런 것들이 고갈되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하던 일을 전부 중지하고 곧장 미국으로 제2의 유학을 떠났어요. 그때는 1년을 계획하고 갔던 건데 그게 또.. 4년이 되었죠.

[재즈의 성지, 맨해튼 ‘Blue Note’ 무대에 서다.]

두 번째 유학 생활 중 블루노트에서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어요. 블루노트에서 공연을 한 한국인은 제가 최초에요. 더구나 당시 저는 어떻게 보면 무명 뮤지션이었죠. 그 뒤로도 네 번 더 블루노트의 무대에 올랐어요. 그때 전부 다 내려놓고 뉴욕행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았다면 결코 주어지지 않았을 기회였죠. 

[첫 솔로 라이브 실황 앨범 : Late Fall]

트리오, 콰르텟, 셉텟 등 다양한 구성으로 여러 가지 악기들과 콜라보 하며 10장의 앨범을 발매하기는 했지만, 솔로로 무대에 서는 것은 처음이었죠. 자작곡이니 멜로디와 코드 구성은 있지만 진행을 미리 정해두지 않고, 떠오르는 대로 즉흥연주를 하는 공연이었는데 그래서인지 공연 전에 많이 떨렸어요. 처음 무대에 오르는 사람처럼 정말 많이 긴장했던 것 같아요.

연주 중간에 드럼 솔로나 베이스 솔로가 있으면 제가 잠깐 쉴 수가 있고, 다른 악기와 함께 연주를 할 때는 제가 조금은 의존하는 면도 있었지만 혼자서 리듬, 하모니, 베이스, 솔로 그 모든 것을 이끌어 가며 한 시간 반 동안 피아노 한대로 공연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어요. 키스 자렛(Keith Jarrett), 브래드 멜다우(Brad Mehldau) 등 유명 뮤지션들의 솔로 피아노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듣기는 편해도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죠. 그래서 ‘Late Fall’은 저에게 큰 도전이었고, 음악인으로서 한 층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었어요. 

피아노가 드럼, 베이스와 조화를 이루는 멋도 있지만 오로지 피아노로만 연주할 때 느낄 수 있는 섬세한 터치와 오케스트라적인 표현이 있잖아요. 여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다른 악기가 있으면 어느 정도 진행을 정해두는데 혼자 하니까 스스로도 내가 어디로 가게 될지 알 수 없었죠. 누구에게도 구애받지 않고 제 음악이 이끄는 어느 곳이건 갈 수 있는 진정한 자유를 느꼈어요. 

두 번의 유학 생활과 한국에서의 분주했던 활동, 그리고 수많은 뮤지션들과 만나며 성숙해진 제 모습이 이 솔로 앨범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10주년 기념 앨범 : Reflection]

2015년에 저의 데뷔 10주년을 기념하는 ‘Reflection’ 앨범을 발매했어요. 이 앨범은 지금까지 발매한 열두 장의 앨범 중, 유일하게 제가 직접 편곡과 프로듀싱을 하지 않은 앨범이에요. 항상 곡을 쓰고, 편곡을 하고, 뮤지션을 섭외하고, 스튜디오를 예약하는 것 까지 모두 제가 도맡아 했었거든요. 그래서 누군가 내 곡을 편곡하고 리드할 때는 어떤 느낌일지 너무 궁금했어요. ‘Reflection’은 5집까지의 제 앨범 중에서 베스트 곡을 한두곡씩 뽑아 유명한 편곡자이자 트럼본 연주자인 알란 퍼버(Alan Ferber)가 맡아 셉텟, 7중주로 편곡했어요. 늘 피아노 트리오 같은 소규모 구성으로 공연하던 제 곡에 색채감이 입혀지니 연주하면서 너무 새롭고 즐거웠어요. 피아노 드럼 베이스에 4명의 호른 연주자와 함께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했는데, 전혀 새로운 곡이 탄생하는 것 같았죠. 그 멤버 그대로 한국에 와서 함께 공연을 하기도 했는데, 정말 행복했어요. ‘Reflection’은 저에게 가장 특별한 앨범이며, 애착이 가는 앨범이에요. 

[한국과의 문화적 차이]

해외에서 10년을 생활했다고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뿌리 깊은 저의 한국적 감성이 쉽게 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느꼈어요. 하지만 해외에서 오래 생활하면서 시야를 넓게 가질 수 있었고 의식의 변화도 있었죠. 예를 들면 한국에서 음악을 공부할 때는 모든 것에 순위를 매기고 경쟁을 붙이는 분위기에 좀 더 익숙했는데, 미국에서 음악을 할 때는 경쟁에 큰 의미가 있지는 않았어요. 너무나 다양한 음악들이 공존하고, 모두가 인정을 받으며 저마다 자신만의 색깔을 구축하고 즐겁게 음악을 할 수 있는 분위기였어요. 그런 분위기 속에 음악을 하며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말고 자유롭게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죠.  

다른 장르의 음악이라도 함께 즐기고 함께 표현하고, 준비가 되지 않아도 잼을 하면서 친해지는 편안한 분위기에 점점 동화되기 시작했어요. 스스로를 포장하지 않았고, 누가 비판을 해도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어요.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며 뮤지션들과 교류할 수 있었죠. 

[“Are you playing drums?”]

유학시절 머물던 아파트에 피아노가 있었어요. 연습을 하고 있으면 이웃집에서 문을 두드려요. 문을 열면 “Are you playing drums?”라고 물어봤어요. 저는 분명 피아노를 연주한 건데, 드럼 소리 같았나.. 그때 노이로제가 생겼죠. 혹시 컴플레인이 또 들어올까 봐 마음 놓고 연습하지 못하고 소리를 줄여서 최대한 작은 소리로 연습하곤 했어요. 나중에 연습실을 구한 뒤 마음 놓고 연주할 수 있게 됐을 때는 어찌나 기쁘던지.. 

한국은 세션을 하건 공연을 하건, 공연장에 악기가 다 구비되어있는 편이에요. 그런데 미국의 공연장은 공간을 대여해주는 쪽에 가깝거든요. 그래서 연주자가 악기를 직접 들고 가야 해요. 당시 업타운에 살았는데, 집에서 88건반과 스피커를 들고 와 낑낑거리며 택시를 잡았어요. 그리고 연주하는 클럽에 내려서 다시 낑낑거리며 옮겨 갔어요. 그렇게 공연을 했죠. 공연비를 받아도 택시비를 빼면 남는 게 별로 없었어요. 그렇게 긴 세월 연주를 했어요. 이따금씩 색소폰처럼 가벼운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 했던 기억도 나네요. 이제와서는 그런 시절이 추억이 되었죠.

[장르의 경계 너머를 향해]

음악을 하면 할수록 모든 음악이 연관성이 있고 통한다는 느낌을 받아요. 클래식은 딱딱하고 정적인 음악, 재즈는 자유롭고 동적인 음악, 락은 신나고 빠른 음악. 이런 식의 칼로 자르는 듯한 구분은 의미가 없죠. 최근에 조수미 선생님과 작업을 했었는데, 선생님께서 재즈에 굉장히 관심이 많으시더라고요. 클래식 하시는 분들 중 재즈의 즉흥성에 호기심을 갖고 계신 분들도 많아요. 요즘 팬텀싱어 팀과 함께 공연하고 있는데, 그들도 어떻게 보면 클래식을 하다가 크로스오버를 하고 있죠. 모든 음악들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특징은 연결되어 있어서 어느 지점에서 만나는 것 같아요. 제 음악 안에는 전공공부를 했던 클래식과, 20대 중반에 만난 재즈와, 어릴 적부터 다니던 교회에서 연주했던 CCM과 한국 대중가요가 조금씩 녹아있어요. 내면에 차곡차곡 쌓여있던 경험들이 어떤 경계를 넘어서면서 음악으로 표출된거죠.

“음악에 내 영혼을 담아, 다른 사람이 그걸 느낄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것이 저의 계획이고 목표였어요.”

[송영주에게 영감을 준 뮤지션]

키스 자렛(Keith Jarrett)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그 사람의 음악에는 영(Spirit) 적인 힘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굉장한 힘이 있죠. 음악에 내 영혼을 담아, 다른 사람이 그걸 느낄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것이 저의 계획이고 목표였어요. 

브래드 멜다우(Brad Mehldau)도 제게 큰 영감을 주었어요. 이분은 저희 또래의 재즈 피아니스트인데요, 이분의 음악 속에는 클래식도 존재하고, 락도 존재하며, 재즈도 있어요. 자신만의 음악 색깔을 확실하게 구축하는 너무나 멋진 음악가죠. 1~2년에 한 번씩 계속 앨범을 내는 데, 그때마다 매번 새로운 시도가 들어가 있어요. 초기 작품은 스탠다드한 재즈도 있고, 중간에는 자작곡도 다양하게 시도했고요, ‘Mehliana: Taming the Dragon’라는 앨범에서는 드럼과 듀오로 연주했죠. 이 앨범은 신시사이저의 코러스와 스트링을 잘 활용했는데 다분히 현대음악 같아요. 그의 대단한 점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도전하고, 새로운 걸 시도한다는 점이에요. 어디서 이런 창작의 힘이 나오는 것인지, 어디까지 갈지, 앞으로 무엇을 보여줄지가 기대되죠. 그의 음악은 저에게 큰 자극이 되고, 새로운 음악에 대한 도전정신을 불러일으켜요.

허비 핸콕(Herbie Hancock)도 너무 좋아해요. 재즈 음악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면서 ‘Possiblities’처럼 대중 가수들과 협업해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는데 그 안에 어마어마한 연주력이 모두 녹아있죠. 스펙트럼이 넓고 다양한 것들을 품는 뮤지션들에게 감동을 받아요. 저 또한 앞으로도 그런 뮤지션이 되고 싶어요. 

[음악, 삶의 원동력]

여러 명의 후배들이 그런 질문들을 해요. 어떻게 앨범을 열두 장씩 발매하냐고. 그 와중에 세션도 하고, 학교 강의도 15년째 쉬지 않고 할 수 있냐고. 

글쎄요. 왜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저는 스스로가 열정적이고 계획적인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후배들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가봐요. 친한 후배가 저를 ‘멘탈갑’이라 하는 것을 듣고 폭소한 기억이 있어요. 제가 멘탈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대요. 그래서 가만보니 제가 깊이 염려하고 걱정하기보다는 무언가를 하기로 결정하면 쭉 밀고 나가는 추진력이 있는 것 같아요. 앨범을 만들고나면 곧바로 다음 앨범에서는 어떤 것을 할 지에 대해 구상하거든요. 1집 내고 2집 구상하고, 2집 내고 3집 구상하고, 그러면서 지금까지 온거에요. 누가 시킨 적도 없죠. 지금은 어느 정도 습관이 된 느낌이랄까요.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은 욕구가 제 안에 있나 봐요. 그리고 좀 단순하게 시작했어요. 몇 장을 팔고, 얼마를 벌고, 이런 고민과 생각보다는 음악에만 집중하면서 추진력 있게 살아왔던 것 같아요. 

여행하며 자연을 보는 것도, 영화를 감상하거나 책을 읽는 것도, 사람 간의 만남과 헤어짐에서 오는 모든 경험과 감정들까지도 삶의 모든 부분이 음악과 연결되어 있어요. 이렇게 생각하니 곡을 계속 써야 하는 창작의 고통이 있지만, 그마저도 습관이 되어 버린 게 아닐까요? 계산하기보다는 즉흥적으로 현재에 충실하게 행동하다 보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피아니스트의 삶이란]

제가 3일 정도 너무 아파서 누워만 있었던 적이 있어요. 몸에 아무런 힘도 없고 손만 간신히 움직일 정도였어요. 그 아픈 와중에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소리가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제가 연주를 해서 아름다운 게 아니라, 피아노 소리 그 자체가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눈물이 날 정도로요. 그 순간 제가 살아있음을 느꼈어요. 몸에 힘이 없으니까 한없이 섬세한 터치가 나오잖아요. 그런 섬세함과 동시에 강하게 연주하면 얼마든지 다이내믹한 소리를 낼 수 있는 피아노라는 악기를 다루는 피아니스트라니. 정말 행복한 삶이고 축복받은 삶이죠.,

[앞으로의 계획] 

최근에 듀오 앨범을 냈어요. 재즈 보컬 ‘써니킴’씨와 함께 했는데, 얼마 전에 발매 공연도 했죠. 앞으로의 계획이라면.. 제가 그동안 가요 세션으로도 많은 경험이 있는데, 15주년에는 기존의 가요 곡들을 편곡하거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해 앨범을 발매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허비 핸콕(Herbie Hancock)이 유명 가수들이 피처링 하고 자신이 편곡 한 ‘possibilities’라는 앨범을 발매했는데, 재즈 뮤지션이 듣기에도 좋고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이 듣기에도 좋은 앨범이에요. 지금까지 제가 재즈 뮤지션으로서 계속 앨범을 냈는데, 기존 가요를 편곡해 가수들과 콜라보레이션하는 작업을 언젠가 꼭 해보고 싶었어요. 정확히 15주년에 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지만, 언젠가 꼭 발매 하고 싶은 앨범 중 하나죠. 또, 기존에 존재하던 아리아, 오페라 곡에 약간의 재즈 감성을 넣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어요. 

[레전드 구독자분들께]

저의 음악을 들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음악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음악을 해봐야 의미가 없잖아요. 

또, 구독자분들 중 음악을 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힘내서 음악으로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고 풍요로워질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위로를 받았던 기억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힘내서 좋은 음악으로 보답하며 함께 멋진 세상을 만들자고 부탁드리고 싶어요. 

음악이 가지고 있는 힘이 있어요. 저는 그걸 느끼면서 지금까지 왔거든요. 늘 쉽지만은 않았죠. 열두 장을 발매할 정도면 가요계에서는 원로가수 수준이잖아요. 그런데 수십 장의 앨범을 발매하는 것보다 대중음악 세션을 한 번 더 하는 게 자기 몸값에 영향을 많이 끼치는 것이 현실이죠. 그만큼 내 음악을 한다는 건 어렵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송영주 씨는 앨범도 열두 장 내시고 공연도 많이 하시고 세션도 많이 하시니까 걱정이 없겠네요’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 또한 1집을 냈을 때 고민이 있었고, 2집을 냈을 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고.. 그런 모든 시간들을 견디며 지금까지 왔어요. 그러다 보니 조금씩 조금씩 저를 찾아주는 분들이 생기고, 제 음악을 듣고 저를 알아봐 주는 분들이 생겼어요. 제 음악을 통해 위로받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피드백도 들리는 거예요.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죠. 그러니 여러분들도 정말 음악이 좋다면, 자신의 자리에서 필요한 역할을 해내며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바랄게요. 힘 내시란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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