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매거진 뮤지컬배우& 가수, 제이민 - 레전드매거진

뮤지컬배우& 가수, 제이민

“가수는 하늘이 준 저의 길이에요.”

음악인이 되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지금의 삶에 이르기까지, 제이민은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열아홉, 연고 없는 낯선 땅 일본에서 홀로 데뷔하는 길을 선택한 그녀. 규모가 크건 작건, 일본 전국 곳곳에 있는 라이브 공연장이 모두 그녀의 무대였다. 앨범 작업에 들어갈 때면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엔지니어와 프로듀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것저것 요구하는 등 할 말 다 하며 씩씩하게 일했던 실력파 음악가였지만 때로 불 꺼진 빈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쓰러지듯 누울 때면 한국이 그리워 눈물이 그렁그렁 피어났다. 하지만 아무리 힘든 순간이라도 단 한 번도 가수의 길을 포기한 적은 없었다. 

고국으로 돌아와 음악 활동을 이어가면서 뮤지컬 ‘헤드윅’의 주연 이츠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제이민. 마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용감하게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그녀가 지닌 강인하고 아름다운 내면 덕분이었으리라. 

Q. 음악을 하겠다고 최초로 결심한 건 언제예요?

어릴 때 제가 음악 듣는 걸 좋아했었대요. 이제 막 혼자 앉아있기를 시작할 무렵부터 음악을 들려주면 울음을 멈추기도 하고.. TV에서 흘러나오는 말발굽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요. 또.. 노래부르는 것도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에게 뜬금없이 그랬어요. ‘엄마 나 가수가 될 거예요!’ 어머니는 쉽지 않은 길이라며 말리셨어요. 그 뒤로도 2년 동안 가수가 되고 싶다고 계속 어머니를 졸랐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My heart will go on’을 불러드렸는데, 가만히 들으시더니 드디어 ‘그래. 너 가수 해봐라.’ 이렇게 말씀하셨죠. 

Q. 줄곧 SM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계셨던 거예요? 

그러고 보니 SM과 함께한 지가 올해로 벌써 20년째네요. 저는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중 가수로서는 유일하게 춤을 추지 않아요. 처음 회사에 연습생으로 들어왔을 때는 회사에서 저에게 춤을 가르쳐 주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춤보다는 기타를 배우고 싶었어요. 그래서 춤은 그만 배우고, 기타를 배우러 학원에 다니며 열심히 연습했죠.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일본에서 데뷔를 하게 되었고요. 

Q. 일본에서 데뷔하시게 된 배경이 궁금했어요. 

그날도 어김없이 회사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연습을 하고 있었죠. 그런데 일본의 한 에이전시 회사 담당자가 업무차 출장을 왔다가 저를 우연히 눈여겨보시고는 회사에 ‘저 친구가 일본에서 먼저 데뷔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게 계기가 되어, 회사에서도 저에게 일본 데뷔를 권유하셨어요. 

결정하기 전까지 고민이 많았어요. 하지만, 뭐든지 하고 나서 후회하는 편이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어요. 조심스러운 성격이라 겁도 나고, 많이 고민했지만 결국 일본 데뷔를 결심했어요. 당시의 저에게는 크나큰 도전이었죠. 

그렇게 일본의 라이브 무대에서 음악성을 보여주며 실력가라는 것을 입증하며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워가는 길을 택했어요. 실은 고생이 많았어요. 기타 잭을 연결하고, 사운드를 체크하고, 밴드 사운드를 체크하는 등.. 이전에는 해본 적 없던 새롭고 다양한 경험들을 몸으로 부딪히며 혼자서 감당해야 했죠. 기초부터 소리를 만드는 모든 과정을 경험하고, 기타 사운드는 물론 악기 편성까지도 모두 직접 해보기도 했어요. 편곡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프로듀서 분들과 충분한 소통이 가능했어요. 비록 제가 나이는 어렸지만, 그분들이 저를 뮤지션이자 아티스트로서 존중해 주셨던 덕분이죠. 그 시간들이 저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에요. 필드에서 활동하는 음악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친분을 쌓은 것도 즐거운 일이었고요. 

Q. 밴드 멤버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기억에 많이 남겠어요.  

밴드 멤버는 저, 퍼커션, 기타 이렇게 셋이었는데 라이브 공연이나 지방 투어를 다닐 때면 대기실의 지루한 기다림 속에 멤버들과 함께 즉석 연주를 하거나, 함께 곡을 만들기도 했어요. 공연을 할 때 제가 한 번씩 가사를 틀리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즉석에서 리어레인지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계속 연주를 하기도 했어요. 프로듀서님이 무대 뒤에서 갸우뚱 거리시면서 ‘곡을 또 언제 수정했지?’라고 물어보면 옆에서 매니저 언니가 ‘그냥 틀린 거예요’ 이렇게 대답을 해주셨다더라고요. 틀린 걸 티 내지 않고 매끄럽게 넘어가며 공연을 이어갈 만큼 멤버들과는 정말 호흡이 잘 맞았죠. 매 순간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Q. 대학에서 영화학을 전공하셨죠?

처음 일본에 갔을 때 연습실-회사-집 의 반복적인 일상의 연속이었어요.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니까 자연스레 혼자 할 수 있는 취미를 찾게 되었어요. 그러다 영화에 푹 빠져 정말 많은 영화를 본 게 계기가 되어 니혼대학 영화학과에 원서를 넣게 되었어요. 

당시 일본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힘들고 우울해서 울 때도 많았어요. 성격이 원래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데다 오랜 시간을 혼자서 지내다 보니 엄마도 보고 싶고 친구들도 보고 싶고 .. 그럴 때마다 꼭 보던 영화가 있어요.  

바로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 라는 영화에요. 그걸 보면서 웃고 울다가 엔딩 크레딧을 보며 지쳐 잠이 들곤 했어요. 어느날 그 영화를 보다가 잠깐 잠이 들었어요. 그러다 잠에서 깼는데, 쿠키 영상이 나오는 거에요. 그걸 보며 잠에서 깨자마자 깔깔 웃었던 게 기억이 나요. 저는 우울할 때마다 그 영화를 재생해서 봤어요. 생각해보면 제가 가장 힘들 때, 그 영화가 저를 구해준 것 같아요. 

Q. 이력에 연세대 국제학 대학원 과정이 있더라고요. 한국에서 국제학을 공부하시게 된 배경이 궁금해요.  

일본에서의 오랜 활동 끝에 한국 활동을 시작하기 위해 막 귀국했을 무렵이었죠. 견문을 넓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었어요. 중학교를 다닐 무렵부터 NGO 활동에 대한 막연한 관심이 있었는데, 언젠가 어딘가에 내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국제학을 공부하는 것이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다양한 국가에서 공부하러 오는 학생들과 교류하고 싶기도 했고요.

국제학 뿐 아니라 언어학에도 관심이 있었어요. 다른 문화권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거든요. 그러다 고민 끝에 국제학을 선택하게 되었고, 운이 맞아 떨어졌는지 면접을 보고 입학하게 되었죠. 

대학원에 간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친한 친구들이 생겼거든요. 학업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이미 학사에서 국제법에 관해 정통하고 대학원에 입학한 친구들이 많아 제가 그들과 함께 수업을 따라가는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모르는 용어는 따로 공부해가면서 열심히 수업을 들었죠. 친구들과 즐겁게 교류하면서 관계도 돈독히 하고요.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던 건 전공 교수님 덕분이기도 해요. 교수님께서 당시 했던 말씀 한 마디가 저의 마음에 불씨를 지폈죠. 제게 ‘연예인이 우리 대학원을 졸업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마음을 독하게 먹고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일도 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니 쉽지만은 않았죠. 수업을 듣다가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쳐서 눈물이 날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럴수록 더 독하게 마음을 먹었고, 밥 먹는 시간도 줄여가면서 공부했어요. 1년을 더 다닌 뒤, 결국 졸업장을 받았어요. 

Q. 일본에서 활동하실 때는 라이브 하우스 위주로 활동을 하셨다면, 한국에서는 음악방송 위주로 활동을 하셨잖아요. 주 활동 무대가 바뀜에 따른 차이가 있었나요? 

아무래도 활동하던 주 무대가 달라지니 이에 대한 적응을 필요로 했어요. 일본에서는 주로 라이브 하우스에서 공연을 했고, 한국에서는 음악방송 위주로 활동을 시작하다 보니, 처음에 한국에서 활동을 할 때는 조금 낯설었어요. 이전보다는 퍼포먼스에 더 많이 신경 써야 하는 면도 있고.. 라이브 하우스에서 노래를 할 때는 감정이입을 하다 보면 표정이 멋대로 틀어지기도 하고 그랬는데, 음악방송은 카메라 앞에 서니까, 표정을 예쁘게 짓는 연습도 필요했고요. 

Q. 목표를 향해 꾸준히 전진해 나갈 수 있었던 열정의 원천이 궁금해요. 가수로서 현재의 위치에 올 수 있었던 비결이 뭘까요? 

무엇보다도.. 다른 일을 하면서 사는 저를 상상할 수가 없었죠. 중고등학교 때 일찍이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는 왜 이렇게 데뷔를 안 시켜주지? 그런 어린 마음에 힘들어져서 가끔 ‘가수  안 해. 다른 일 할거야!’ 라고 생각하며 장래희망을 몇 가지 적어보기도 했어요. 외교관, 아나운서 등.. 그 일을 하려면 내가 어떤 준비를 해야 하고, 어떤 공부를 해야 할지도 하나씩  써 보다가 문득.. 그 일을 하고 있을 10년 뒤의 제 모습을 상상해 보았죠. 외교관이 되어서 바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TV에서 다른 가수가 노래 하는 걸 보게 돼요. 10년뒤의 저는 가수라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다른 선택을 한 것에 대한 후회로 TV앞에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늘 원점으로 돌아갔어요. 가수는 하늘이 준 나의 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요. 

가끔은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어요. 그러다가 문득 내가 뮤지션으로서 뮤지컬 배우로서 성공을 한다기보다는, 내가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면서 마음이 편안해졌고, 마음이 편안해지니 그게 오히려 음악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어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일들과 직면하게 될텐데,’난 오로지 가수로만 살아아해!’라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여유를 갖고 시야를 넓게 볼 줄 알자고 생각했죠. 살면서 제가 얼마나 또 다양한 경험들을 하게 되겠어요. 그저 현재에 충실하고, 오늘 주어진 일에 충실하면서 한달을 보내고 1년이 지나고 나면 그 끝에 내 미래가 펼쳐질거야. 그때 펼쳐지는 내 미래에 순응하며 살자. 이렇게 결심한거죠. 그런 생각이 이따금씩 지쳐가는 상황에서 저를 버티게 하는 힘이었어요. 

그리고 어머니의 지지가 가장 큰 버팀목이었어요. 어머니께 제가 가끔 나 가는 길이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할 때면, 제가 녹음했던 음악을 재생해 함께 들으며 ‘이렇게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포기하기는 너무 아깝지 않니?’라고 말씀하셨죠. 어머니께서는 제가 힘들 때마다 너의 음악을 끝까지 하라고 지지해주며 저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셨어요. 

Q. 뮤지컬 활동에 힘을 쏟고 계신데요, 뮤지컬에 끌렸던 계기가 있나요? 

회사에서 뮤지컬을 해보지 않겠냐고 먼저 제안을 하셨어요. 처음에는 뮤지컬이 제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조승우 선배님이 주연한 ‘맨 오브 라만차’ 뮤지컬 공연을 보게 되었죠. ‘어쩜 저렇게 자유롭지..?’ 그렇게 생각하며 크게 감동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얼마 뒤 회사에서 또 저에게 뮤지컬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 했는데, 그때는 망설임 없이 ‘네. 해볼게요.’라고 대답했죠. 

첫 오디션은 뮤지컬 ‘잭더리퍼’의 주연 글로리아 역할이었어요. 오디션이 끝난 뒤, 연출님께서 ‘잘해봅시다’ 라고 먼저 손을 내미셨죠. 연습 막바지에는 ‘다음 작품은 삼총사인데, 같이 할 거지?’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렇게 연이어 큰 공연들을 하게 되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운이 좋았죠. 첫 작품부터 큰 무대에서 여자 주인공을 맡은 거니까요. 

잭더리퍼에서 제가 맡은 ‘글로리아’ 캐릭터의 직업은 매춘부였어요. 우아하고 고상한 생활과는 거리가 멀었죠. 캐릭터의 내면을 연기하기 위해서는 거친 면모를 보여줘야 했는데, 제가 그전까지 욕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연출님이 저에게 욕 연습을 많이 시키셨어요(웃음).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하나가 새로운 도전이었죠. 당시에는 정말 맹목적으로 일에 매달렸어요. 오로지 작품밖에 보이지 않았거든요. 링거를 맞아가며 수많은 회차를 모두 소화해냈어요. 몸에 무리가 가는 줄도 모를 만큼 혼신의 힘을 다했어요. 그렇다고 제가 원래 성격이 지독한 건 아니에요. 다만 뭐 하나에 빠지면 깊게 집중하죠. 

Q. 음악인으로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 

제 공연을 보신 분들이 ‘좋았어요’ ‘감동했어요’ 이렇게 말씀하실 때, 그분들의 마음에 와닿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때 가장 기뻐요. 제가 계속 음악을 할 수 있게 하는 힘이라고 느껴요. 가끔씩 저에게 과분한 이야기를 해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병상에 있었는데 제 음악을 듣고 완치를 했다거나, 우울해서 집에서 안 나오는 성격이었는 데 도움이 되었다거나. 내가 누군가의 인생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쳤다니..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Q. 제이민님의 삶에 큰 영향을 준 음악가는 누구인가요? 

뮤지컬 배우는 조승우 선배님이요.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제가 뮤지컬을 시작하는 데에 큰 동기부여가 되었거든요. 후에 작품 활동을 하다가 헤드윅에서 조승우 선배님과 함께 공연을 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어요. 당시 부족한 부분을 선배님께서 많이 이끌어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대단한 분들과 함께 공연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인 것 같아요.

뮤지션은 레드제플린이요. 제 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어요. 뭐랄까.. 제 음악의 스타일이 레드제플린을 닮은 건 아니지만,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것 같아요. 레드제플린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피가 끓는 기분이거든요! 학창시절에는 늘 레드제플린의 음악을 들었어요. 특히 “베스트앨범”의 “‘Early Days”파트를 정말 좋아해요. 아. 제가 최근에 저의 유튜브 채널에 다른 가수들의 곡을 커버한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는데, 선곡이 늘 고민이거든요? 주변에서 제 음악에 영감을 준 사람들의 음악을 커버하면 어떻겠냐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레드제플린 노래를 어떻게 커버해요(웃음). 아무튼 저의 음악적인 에너지와 영감의 원천은 락에서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Q. 운영하고 계신 유튜브 채널에 대해 소개 부탁드려요. 

채널 이름은 ‘Oh! J-Min 오 제이민’이에요. 팬분들께 조금 더 다가가고 싶은 마음에 시작하게 되었죠. 한국에서 뮤지컬로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는 있지만, 음반을 자주 발매하지는 못하다 보니 팬분들께 제 노래를 한 곡이라도 더 들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래서 이 채널을 통해 여러 가지 음악을 커버하고 있어요. 제가 직접 기획하고 선곡하다 보니 재미도 있고, 어렵기도 하고 그래요. 누군가의 음악을 나의 색깔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고민인거죠.

Q. 독서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책 추천 부탁드립니다. 

최근에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을 읽고 있어요. 라틴어가 서양 언어의 근원이잖아요. 라틴어에서 파생한 유럽권의 언어와 문화 이야기가 섞이면서 다양한 지식들이 쏟아지니까 흥미로워요. 공연하고 연습하면서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읽고 있어요. 독자분들께도 추천드립니다. 

Q. 뮤지컬 배우의 삶을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강인한 체력을 갖는 것!(웃음) 저는 어릴 때부터 허약체질이었어요. 체육시간에 오래달리기를 하면 한참을 앉아서 쉬어야만 했죠. 하지만 뮤지컬을 시작한 뒤 건강해졌어요. 원래 고기도 잘 먹지 않았었는데, 연습을 위해 많이 움직이고, 활동을 하면서 지치지 않기 위해서 이것저것 잘 챙겨 먹다 보니 예전에는 잘 먹지 않았던 고기도 잘 먹게 되었죠. 지금도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라테스 등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체력을 관리하고 있어요. 예쁜 몸매를 만들겠다는 목표는 저에게 동기부여가 되지 않아요. 그보다는 무대에서 공연을 해야 해. 멋진 공연을 해야 해! 이런 생각을 하면 어떻게든 몸이 버텨지고, 어떻게든 운동을 하게 되더라고요. 

Q. 앞으로는 어떤 활동 계획을 갖고 계세요? 

뮤지컬 헤드윅 공연을 목전에 두고 있어요. 8월 16일부터 11월 3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공연을 하고, 마친 뒤 지방 공연도 있고요. 우선은 그게 가장 큰 눈앞에 있는 목표예요. 또 오랫동안 음반 활동을 안 했기 때문에, 싱글 앨범을 발매 할 계획이 있어요. 또.. 내년 봄쯤에 작은 솔로 콘서트를 열기 위해 준비 중이에요.

Q. 마지막으로 팬분들께 한마디 해주세요. 

제가 늘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앞으로 더욱 활발하게 찾아뵐 수 있도록 할게요. 늘 응원해주시고, 사랑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앞으로도 꾸준하게 응원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29 total views,  3 views today

이 인터뷰를 널리널리 공유해주세요!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