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매거진 음악교육자, 강호정 – 레전드매거진

음악교육자, 강호정

강호정이라는 이름 앞에는 교육자라는 직함이 존재한다. 서울예대 실용음악과에서 전임교수가 된 뒤 교육자로서 후세대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항상 고민해왔다. 제자들에게 새로운 시도에 대한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는 그는 최근에는 음악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예술적 표현들이 만나 생기는 융합의 에너지에 주목한다. 

독일에서 20년 간 자랐어요. 음향을 전공했고, 밴드는 스무살 때부터 했죠. 한국에는 30대가 되어서야 들어왔어요. 윤도현 밴드 만들 때 같이 있었고요, 나중에 긱스라는 밴드를 했어요. 95년부터 서울예대에서 전자 음악을 가르쳤고, 제작년까지 전임 교수로 있었죠. 교육자이며 편곡도 하고, 연주도 가끔 하고, 믹싱도 하고, 최근에는 공간사운드 디자인도 하고 있죠. 다양한 걸 많이 하고 있어요.

Q.주요 활동내역과 대표작품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 음악 커리어 중 가장 굵직한 건 윤도현 밴드와 긱스에요. 대표 작품 중 저작권 수입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부분은 윤도현 밴드의 ‘사랑TWO’와 ‘너를 보내고’입니다. 마지막으로 팀 작업을 한 건  장기호 교수님과 함께 한 ‘Kio & Hodge’라는 프로젝트인데, 한동안 못하다가 요즘 형과 자주 만나고 있어 조만간 다시 함께 할 예정입니다. 

또 영화 음악도 했었습니다. 대중들이 알만한 건 오세암 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 음악 제가 맡아 했었죠. 사실 여러편 했는데 많이 망했어요.(웃음)

Q.음악과의 인연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요? 

환경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부모님이 모두 클래식 작곡가이십니다. 어머니는 한국인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지휘를 하셨고요, 아버지는 서울대 작곡과 교수이시면서 현대음악가로 꽤 알려진 분이에요. 재미있는 건 아버지가 한국에서 최초로 전자음악을 하신 분이에요. 저는 실용음악쪽에서 최초로 전자음악이라는 전공을  만든 사람이죠. 이렇게 이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어머니는 제게 하기 싫으면 당장이라도 (음악을) 그만두라고 하셨어요. 부모님 두 분 모두 음악 하면서 고생 많이 하셨거든요. 그렇지만 저는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없어요. 피아노, 기타, 바이올린 등 어릴적부터 악기도 여러가지 다뤄봤어요. 클래식은 부모님이 하시니까 자연스레 접했고,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팝 음악은 열 다섯살때 포크기타를 사서 비틀즈 음악을 연주해 보기도 하고, 엘튼 존을 듣고 피아노를 따라 쳐 보기도 하며 배웠어요. 

전자음악을 접하게 된 계기는 83년도에 독일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는데, DX7이라는 신디사이저가 있더라고요. 완전히 매료됐죠. 당시 DX7이 150만원 정도 했어요. 큰 돈이죠. 알바 몇달 해서 모은 돈으로 그 악기를 샀고, 그게 나중에 밴드 활동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죠. 또 기계를 좋아해서 컴퓨터 프로그램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는데, 컴퓨터로 진짜 악기처럼 연주하는 연습을 많이 했어요.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스스로 배우고 터득해 나간거죠. 

Q. 음악인으로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신다. 그동안 음악활동을 하시면서 가장 즐거웠던 사건과 가장 힘이 들었던 사건을 하나씩 꼽는다면. 

음악하면서 즐거웠던 일은 셀 수 없이 많아요. 힘들었던 사건은.. 최근에 전태관 형님 돌아가시고 많이 힘들었죠. 형님이랑 같이 활동할 때 좋았던 기억들이 참 많아요. 예전에 봄여름가을겨울 밴드에서 공연 다닐 때 지겨운 버스 안에서 제가 이상하게 노래 부르면 형들이 깔깔 웃고 그랬어요. 태관이 형이 제 아재개그를 좋아했어요. 좋은 기억들이 너무 많죠. 

형들이랑 헝가리에 ‘브라보 마이 라이프’ 뮤직비디오를 찍으러 갔을 때가 생각나네요. 형들이 고성에서 뮤직비디오를 찍고 싶어했어요. 그래서 헝가리 시골에 있는 성을 찾다가, ‘Chesnecki’ 라는 폐허 성을 찾았어요. 헝가리가 재미있는 점이 나이드신 분들이 독일어를 하세요. 그래서 현지 분들이랑 제가 독일어로도 이야기 하고, 영어 통역도 하고 그랬는데. 사진작가로 오신 김중만 형님이 기분파라서 화가 나면 할말 다 하고 가고, 저는 남아서 수습하고. 그 모습 보면서 태관이 형이 껄껄 웃고. 사실 그때 제가 좀 고생을 했죠. 하여간에 촬영 다 끝나고 돌아가는 공항에서 태관이 형이랑 종진이 형이 ‘너 고생 많았다. 그냥은 못 보내겠다’ 하며 코트 하나 사주셨거든요? 그 코트, 지금은 꽤 낡았지만 버리지 않았어요. 

Q. 언제 자신이 교육자라고 느끼시나요?

저는 한가지 장르에 금방 질리는 사람이에요. 음악을 하다 보면 이건 이렇게 표현하면 되는구나. 라는걸 깨닫게 되는데, 이 깨달음이 오면 다음 단계를 하고 싶어지죠. 그렇게 계속 파고들다 보면 어느새 그 음악이 지겨워져요. 예를 들면 한때는 펑크에 미쳐서 펑크만 했는데 요즘은 펑크가 재미가 없는거에요. 펑크 비트를 참 좋아했는데, 요즘은 왠만한 펑크 비트는 제가 소화를 다 하고 있거든요. 독일에서 저는 어릴 적에 프린스같은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몇번이나 보면서 자랐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을 동경하면서도 내가 정작 그 음악에 빠지다 보면 어느 순간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러다 깨달았어요. 아 나는 교육자구나. 교육자란 내가 여태 배운 것을 제자들에게 모두 던져주고 새로운 것을 하는 사람이거든요. 

Q. 교육자로서 차세대 음악인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요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음악인들 각자의 포지션이 분명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컴퓨터로 음악을 만드는 음악인이라면 모든 악기들을 전부 다 조금씩 맛 볼 줄은 알아야 한다는 거에요. 제가 리듬교육을 특화 했었는데, 바탕이 되는 가장 중요한 것이 사물놀이였어요. 그래서 당시 작업한 이정현의 앨범에 매시브 어택, 꽹과리 사운드 등 다양한 소리가 들어가요. 새로운 시도였죠. 

제자 중 한 친구가 저에게 물어보더라고요. ‘선생님, 어떻게 이런 사운드를 만들 수가 있죠?’ 그러면 저는 반대로 질문해요. ‘가사를 들어봐라. 이걸 왜 이렇게 만든 것 같니?’ 분노의 표현인가, 어떤 찌그러짐의 표현인가, 그렇다면 너는 분명 그 찌그러짐과는 대조적으로 깨끗한 소리를 내는 법까지 배워야 한다. 그래야 이것을 뛰어넘는 사운드를 만들 수 있다. 너의 분노, 너의 찌그러짐을 표현하는 방법은 니가 직접 찾아야 한다고요. 

믹싱도 본인이 직접 할 줄 알아야 해요. 소리 하나하나 조화를 만들 수 있는 귀를 만들어야죠. 요즘에는 유명 밴드들이 만든 멀티트랙을 들어볼 수 있고, 어떤 프로그램을 쓴 건지도 쉽게 알 수 있거든요. 그들이 믹싱한 걸 들어보고, 내가 믹싱한걸 비교해서도 들어보고. 또 저같은 믹싱 선생님도 있으니까 활용해 가면서요. 어쨌든 제가 주장하는게 이제 더는 작곡, 편곡, 믹싱, 연주가 별개가 아니라는거죠. 

이런 작업과 더불어 반대의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해요. 클래식 음악이 좋아서 하다보면 일렉트로닉이 좋아지는 경우가 있듯이, 예술은 늘 반대의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 대조를 이해하는 것이 예술이죠. 하나만 보면 안되요. 가장 착한 연기를 잘하려면 가장 악한 연기가 뭔지도 알아야 한다는거죠. 

저는 후배 음악인들이 비용을 많이 들이지 않고 새로운 음악을 만들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세계 시장으로의 진출 기회와도 관련되어 있죠. 잠비나이가 어째서 전 세계의 각광을 받았을까요? 거문고를 락 기타처럼 연주하는 팀은 지금까지 없었죠. 저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었죠. 이런 시도 하나만으로도 각광받을 만한 것이라 생각해요.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는데, 아주 세련된 방식으로 보여주고 들려주죠. 이래도 되나? 라며 머뭇거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차세대 음악가들에게 새로운 시도를 겁내지 말라고 격려하고 싶어요. 

Q. 장르에 대한 이해 뿐 아니라, 사운드 디자인 적인 측면까지 각 분야를 뛰어넘는 이해도가 성립 된 계기가 있을까요? 

부모님이 학구적인 분들이라는 것이 중요한 계기였죠. 스스로는 영화음악을 한 게 큰 도움이 됐고요. 당시 작업을 하면서 일상의 모든 것들과 음악을 연관 지었어요. 예를 들어 차가 정체인데, 너무 속도감 있는 음악은 듣기가 어렵죠. 그럼 음악이 가진 속도감이란 무엇일까? 이런 고민을 한거죠. 소리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음악에 춤을 추고 싶어지는가. 춤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시각적으로 춤 때문에 음악이 확 살아나는 듯 보일 때가 있어요. 시각적으로 받는 영향이 음악에도 반드시 영향을 미친다는 거죠. 

오늘 사운드캣에서 롤리 신디사이저를 보고 왔는데요. 저는 롤리로 기타를 잘 치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보다, 롤리 신디사이저를 컨트롤 할 때 컬러가 바뀌면 재밌겠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걸 어떻게 프로그래밍할지 머리속으로 그려지더라고요. 음의 길이, 빛의 길이, 음의 밝기, 빛의 밝기. 이 모든 것에 유사한 성질이 있다고 추측할 때 융합이 시작되요. 

새로운 시대의 예술가들은 음악만 잘하는게 아니라, 프로젝션 맵핑까지 함께 그릴 줄 알아야 해요. 앞으로 이런 사람들이 많이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Q. 현재가장 집중하고 계신 프로젝트나 음악활동은 무엇인가요? 

최근에는 공간 사운드 디자인에 집중하고 있어요. 카페에서는 아무리 좋은 스피커에 좋은 세팅을 해도 중음이 많으면 사람들 대화하기 어렵거든요? 이렇게 장소의 용도와 분위기 등 여러가지를 고려해서 대화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중음을 살짝 빼주는 세팅을 하고. 그 공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운드 세팅을 구성하는 것이 공간 사운드 디자인이에요. 고가의 인테리어 비용을 들여 만든 공간들에 조악하거나 어울리지 않는 사운드가 연출되는 곳이 많은데, 이를 고쳐나가는 게 저에게 중요한 프로젝트에요. 

또 ‘아이시모어’라는 시각장애인 컴퓨터 그룹과 함께 음악을 만들고 있는데, 그 친구들이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커요. 이것도 놓을 수 없는 프로젝트죠. 소프트웨어 회사들에 이메일을 써서 시각장애인들이 패치파일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달라는 이메일을 보내기도 해요. 아직까지는 반응 해 준 적은 없지만, 시도를 하다보면 뭔가 달라지는게 생기지 않을까 해요. 시각장애인들이 음악 하는걸 보면 깜짝 놀라실거에요. 컴퓨터로 음악 하는게 참 어려워요. 근데도 해내거든요. 그 친구들이 정말 귀가 좋아요. 앞으로 더 잘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내년에 새로 시작하는 서경대학원에서의 새로운 뮤직 프로덕션 대학원 과정을 한창 준비중이에요.  저랑 장기호 교수, 유정호 교수 세명이서 준비하고 있어요. 유정호 교수는 영화 음악을, 저는 사운드 디자인 음향, 컴퓨터 음악, 그루브를, 장기호교수님은 작곡 편곡 이런 쪽으로요. 논문보다는 작품으로 졸업해야 하는 과정이에요. 학생들에게 오케스트라 녹음도 시켜보고,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는 다양한 교육을 해보고 싶어요. 저는 50대 중반이니까 일반적으로 60 대 중반까지 교수를 한다고 봤을 때, 10년이 안 남았어요. 마지막 10년, 달려야죠. 

Q.다양한 일을 하고 계신데, 평소 어떤 취미를 갖고 계신지 궁금해요. 

취미는 정말 다양한데.. 최근에는 게임도 좋아하고, 스탠딩 코미디를 보는 것도 좋아하죠. 미국의 스탠딩 코미디를 보면 정말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요. 어떻게 저런 발상을 했을까 싶어요. 다양한 것에 재미를 느낄 줄 알아야죠. 나는 펑크음악만 하겠다! 그러면 60-70대가 되서도 펑크음악이 계속 재밌다면 다행이지만, 안그런 사람들도 있어요. 재미가 사라지면 위기가 오죠. 나는 어떤 재미로 살아야하지..? 고민에 빠지게 되는거죠. 저는 늘 새로운 재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아요. 내가 지금 하는 일에만 계속 재미를 느낀다는 보장은 없거든요. 일도 취미도 마찬가지죠. 

Q. 교육자로서의 가치관, 철학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자기것을 다 주고 다음 단계로 가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이 주전공을 제자에게 다 던져주고, 그 제자가 내가 하던 일을 하게 하고. 선생님은 새로운 걸 연구하고요. 그게 선순환이라고 생각해요. 교수라는 직업이 그런 점에서 저에게 참 잘맞는데, 저는 제자리 걸음을 싫어해요. 이 직업 때문에라도 어쩔 수 없이 다음 단계에 가야 하고 새로운 걸 연구해야 하죠. 그게 저에게 크게 동기부여가 되요. 

예술계에서 교수라고 하는 존재는 시각적으로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만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것 뿐만 아니라, 남들이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까지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소리와 빛의 관계에 대해 깊이있게 이해하고, 이론적으로 설명해 내는 것이 좋은 교수가 아닐까. 또, 왜 우리는 다른 것을 해야 하나? 다른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 대중 음악의 다음 단계는 어디로 갈 것인가. 이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게 교수들의 역할인 것 같아요. 

Q. 본인의 음악적인 최종 목적, 평생을 두고 지키고픈 포부나 가치관은요? 

대중음악은요. 사람들이 익숙한걸 해주지만, 너무 익숙한 것만 주지는 않고 거기서 한발자국 더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들 하지 않는 걸 조금만 더 시도해봐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나중에 제가 음악 활동 안하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이 ‘저 사람들은 새로운 음악적 시도에 대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발전시켰으며, 통찰력이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저에게 한다면 좋은 선생님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Q. 예비 음악인들에게 하는 당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해요. 친구들이 피씨방 가자, 술 먹자고 유혹할 때 거기 가는 재미가 음악하는 재미보다 크다면 음악을 하지 말라고요. 그 유혹을 못 이기면 음악을 할 수가 없어요. 의뢰가 들어와야만 곡을 쓰는 게 아니라, 시간만 나면 곡을 쓰는 게 작곡가에요. 전 사실 스스로를 작곡가라고 말하지 않아요. 워낙 좋아하는 취미가 다양하게 많기 때문에요. 전에 스웨덴에 사는 작곡가 친구가 혹시 한국에 내 곡을 팔아줄 수 있냐고 묻길래 보내라 했더니 몇백곡을 보내더라고요. 이 곡들 다 내가 데모 만든 곡들이다. 난 하루에 한곡씩 만든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자세가 필요한 것 같고요. 

또.. 제가 DX9이라는 악기를 샀을 때, 메뉴얼을 보는데 설명이 좀 이상해서 일년 동안 그 악기를 하나씩 만져보고 다루면서 익혔어요. 아이들이 장난감 가지고 놀듯이 정말 재미있게 다뤘어요. 일년이 지나니 프로그램을 만지는 데에 익숙하게 되었고, 그 이후에 아날로그 신디사이저는 정말 쉽게 배우게 됐습니다. 

내가 음악하는 게 덜 재미있으면, 더 재미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뭐든지 쉽게 프로가 되는 건 없죠.  더 재미있어지려면 발전을 해야 하거든요. 내가 발전해서 뭘 더 해야 하고, 남들에게도 인정 받을 수 있어야죠. 사람이 제 아무리 자기 만족을 한다고 한 들, 남의 인정없이는 한계가 있죠. 자기 만족과 남이 나를 인정해 주는 부분이 함께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나. 

또.. 너무 쉬운 길만 택하지는 않기를 바래요. 쉽게 갈 수 있는데 어려운 길을 굳이 가보는 사람이 나중에 성공한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고민을 해보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사람이 있어야 음악이 발전 하는 것 같아요. 성공한 음악가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본 사람들이에요. 돈 잘 벌고, 좋은 차 타고. 그게 중요한게 아니잖아요. 20년이 지나도 그 사람의 음악 세계가 살아있는 게 진정한 성공이라 할 수 있죠.

가령, 전 지금도 윤상 1,2 집 들어보면 참 그당시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음악을 했을까 싶어요. 지금 들어도 정말 세련된 음악이에요. 대중음악인이 가끔씩 이상한 시도를 하는 것, 전 그게 참 좋아요. 

Q. 교수님이 생각하셨을 때, 현존하는 차세대 아티스트는?

류이치 사카모토. 사카모토는 어릴 적부터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했어요. 한때는 보사노바에 빠져서 클래식과 보사노바를 넘나들었죠. 그러다 전자음악도 시도해보고..  

한번 실제로 본 적이 있는데, 참 젠틀한 사람이에요. 음악가가 따라가게 만드는 힘을 가진 사람. 많은 말을 하는 대신, 음악으로 말하는 사람. 대중음악가는 대중앞에서 적당히 자기 자리를 만들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해요. 앞서가는 음악가라 해서 아무도 인정안해주는 음악만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사카모토의 음악 중에 정말 대중적인 음악도 많이 있어요. 때로 정말 실험적인 음악도 있고요.

저는 제자들에게 가사를 많이 써보라고 권해요. 새로운 단어들, 안써본 단어들을 자꾸 써보라고요. 벗어나 보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거든요. 

스팅의 음악 중에서 핵 폐기물에 대한 노래가 있어요. 음악은 정말 아름다운데, 쓰인 가사를 보면 참 신기해요. 화학 물질과 관련된 단어들이 계속 나오죠. 아름다운 음악에 이런 단어들이 나오면 안되는 걸까요? 앞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더 자유롭게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중음악가의 메시지는 파급효과가 크죠. 

Q. 구독자 및 음악인들에게 마무리 인사 부탁드립니다.  

제가 사운드캣을 몰랐지만, 와서 보니 흥미로운 물건들을 많이 취급하시고 젊은 음악가들에게 필요한걸 많이 갖고 계신 것 같아요. 저는 젊은 음악가들이 반드시 새로운 제작 툴을 많이 배워서 재미있는 음악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꼭 비싼 장비가 아니어도 좋은 게 많으니, 형편이 허락되는대로 좋은 장비를 가지고 음악을 많이 하시길 바래요. 레전드 매거진은 음악가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인터뷰를 하시잖아요? 이런 회사라면 젊은 음악가들이 좋은 음악을 많이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사운드캣과 함께 좋은 음악 많이 만드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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