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매거진 조용준, 역사여행작가 – 레전드매거진

조용준, 역사여행작가

다소 딱딱할 수 있는 ‘역사’에 부드러운 ‘여행’을 가미해 누구나 쉽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어내고 있는 문화탐사 저널리스트 조용준. 그는 동아일보에서 정치부 기자, 주간동아 편집장을 거친 언론인 출신이다. 2002년, 꿈의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 주변에서는 의아해하고 우려했지만 지금은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그를 부러워한다.

세계 70개국의 문화 탐사를 통해 도자기와 타일 문명의 이동 루트를 답사해 세계 도자기의 과거와 현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유럽 도자기 여행’ 세 권(동유럽 편, 북유럽 편, 서유럽 편)을 펴냈다. 아시아 지역으로는 ‘일본 도자기 여행-규슈의 7대 조선 가마’ 편을 시작으로 혼슈 지역의 도자기를 다룬 ‘교토의 향기’와 ‘에도 산책’ 편도 출간했다. 중국 도자기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우선 ‘동남아 도자기 여행 : 타이, 베트남, 타이완, 오키나와’ 편이 내년 쯤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일본 메이지 유신 150주년(2018년)을 맞아 메이지 유신이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집중적으로 탐구한 ‘메이지 유신이 조선에 묻다’와 영국의 펍 문화에 담긴 영국 역사를 되짚어보는 ‘펍, 영국의 스토리를 마시다’, 그리고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의 예술과 라벤더 문화를 알아보는 ‘프로방스 라벤더 로드’라는 책도 펴냈다.

문화예술에 담긴 역사, 그 역사의 현장을 직접 답사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는 조용준 작가를 만나 문화탐사 저널리스트로 살아가는 그의 인생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어봤다.

[조용준]

안녕하세요, 저는 문화탐사 저널리스트 조용준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인사드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 레전드 매거진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한 가지 주제를 찾아 그 주제를 심층 있게 분석하고 정보를 수집해 역사적 흐름을 되짚어보는 스타일로 집필하고 있습니다.

언론사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기 때문에 책을 좋아할 거라 많은 분들이 생각하시겠죠. 사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책을 참 좋아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만화를 많이 좋아했죠(웃음).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도 시간만 나면 동네 만화방에 가서 시간을 보냈고, 만화를 보며 한글을 스스로 깨치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저희 어머니는 초등학교에 선생님으로 계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배려로 방과 후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죠. 하도 책만 보니 어머니께서는 책 좀 그만보고 나가서 친구들이랑 놀라고 할 정도였습니다(웃음). 초등 3학년 때 저는 시골에서 청주라는 도시로 전학을 왔습니다. 당시에는 ‘자유교양대회’라는 행사가 있었는데, 국민들이 교양서적을 읽게끔 계몽하는 차원에서 책을 읽고 시험을 보는 행사였습니다.

당시 초등부와 중등부가 한 팀, 고등부가 한 팀으로 나뉘어 시험을 보았는데 충북지역 예선에서 초등학교 4학년이던 제가 고학년과 중학교 선배님들을 모두 제치고 1등을 차지했습니다.

그렇게 충북에서 1등을 하고 지역 대표로 서울 결승에 참가했을 때, 육영수 여사님께서 저희 결승 진출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할 만큼 큰 행사였죠. 당시 심한 감기 몸살로 청와대를 방문하지 못했던 것이 지금까지도 참 안타까운 순간으로 기억됩니다. 나중에 정치부 기자를 하며 청와대를 자주 드나들기는 했죠(웃음). 그렇게 문예에 빠져 중·고등학생 시절을 보내고 대학에 진학해 저는 교내 ‘대학신문’ 기자로 활동했습니다.

당시 많은 대학교들이 교내 신문을 광화문 조선일보 윤전실에서 인쇄했었는데요, 저 역시 매주 토요일 황금 같은 주말을 조선일보 윤전소에서 보냈습니다. 활자판으로 글씨 하나하나 조합해 인쇄를 하다 보니 요즘 인쇄 시스템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죠.

[조용준, 동아일보 기자]

대학신문 기자로 활동하며 틈틈이 동아일보 ‘김중배 칼럼’을 읽고 스크랩하며 이런 멋진 글을 쓰는 기자와 문필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습니다. 대학 졸업 후 잡지사 기자를 거쳐, 저는 그렇게 꿈에 그리던 동아일보 기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기자라는 직함은 누구나 만날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유명한 분들과 친교를 맺을 수 있었고 저는 그런 생활을 즐기며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오로지 일밖에 모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저는 기자라는 직업의 ‘치명적 약점’을 발견했습니다. 나이가 들고 직위가 올라가다 보니 저는 어느새 더 이상 기자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젊은 기자들이 취재해 온 기사들을 정리하고 검수해 송고하는 ‘데스크’라 불리는 일정의 ‘관료’가 되어있었죠.

저는 더 이상 제가 직접 취재하고 글을 쓰는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제 그런 자리가 너무 싫었습니다. 회사에서는 기명 칼럼을 쓰는 영광도 주었으나, 칼럼을 쓰려 해도 취재하러 나갈 시간이 없으니 글의 폭도 좁아졌다는 걸 실감했죠.

그러면서 제가 과연 기자란 직업을 그만두고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해봤습니다. 당시 한국은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틀 안에서 살아가기 싫었습니다. 선진국은 이미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있었고, 이제 곧 여러 번 직업을 옮겨 다니는 시대가 올 것이란 미래학자들의 진단을 들으면서, 우리나라도 곧 그런 시대가 올 거라 직감했죠.

가장 큰 고민은 기자를 그만 두고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었습니다. 사실 기자라는 직업은 사람을 ‘헛똑똑이’로 만들어버리는 일입니다. 예전 기자라는 직업은 ‘갑중의 갑’이었습니다. 만나는 사람 누구나 기자에 맞춰주다 보니 기자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바보가 되는 거죠.

그래서 당시 ‘사기 치기 가장 좋은 사람들이 선생님과 기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는데 저는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기자를 그만두고 사회 일선에 나가는 순간 ‘갑’에서 ‘을’이 되는데, 평생 ‘을’로 살아본 적이 없으니,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고, 사회생활을 하기 쉽지 않은 거죠.

저는 이런 고민을 30대 때부터 해왔습니다. 그리고 45세 이전에 기자를 그만두리라 다짐했습니다. 기자라는 타성에서 벗어날 필요성을 느끼며, 자유로운 글을 쓰는 문필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죠. 또 기자는 ‘남의 얘기’만 쓰는데 저는 ‘나의 얘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기자를 그만둬야 내 글을 쓸 수 있겠다’라는 다소 역설적인 발상이었죠.

어느 날 부인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사표를 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제 집사람은 펑펑 울며 통곡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나 하는 걱정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돈 많은 친구들 만나면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게 남편이 동아일보 기자라는 것 하나뿐이었는데 이제는 어떡하냐”며 정말 서럽게 울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어찌 됐든 일을 그만두었으니 자유나 만끽하고자 1년간 집사람과 세계 이곳저곳을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통장 잔고가 점점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다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저는 일반 직장 일을 해봤자 기자직 사표를 낸 의미가 없으니 공공기관에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공공기관은 일단 야근이 거의 없다는 게 너무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또 흘러갔습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니 어느 날 문득 제가 예전 제 모습으로 돌아온 것을 느꼈습니다. 상급자가 되다 보니 예전 신문사 데스크로 일했던 당시의 일상과 똑같은 생활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무작정 열흘 휴가를 신청해 프랑스 프로방스로 향했습니다.

프랑스 니스에서 엑상프로방스로 가는 고속도로를 시속 160km 이상으로 마음껏 내달리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자유의 눈물이었죠. 태어나 처음으로 갖는 해방감이었습니다. 프로방스의 라벤더가 만들어낸 보랏빛 지평선을 보면서 여행이 주는 희열의 절정감을 맛보았습니다. 프로방스는 유명한 예술가와 문예가들이 노년을 보내고 죽음을 맞이하러 찾아오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그만큼 아름다운 곳이죠. 샤갈, 피카소, 마티스 등 세계적인 화가들이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왔는데 그 이유는 프로방스가 가진 색채가 화가들의 눈에도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와 영화배우들, 수많은 셀럽들이 이곳에서 말년을 보냈습니다. 저 역시 멋진 문필가가 되어 이곳에서 노년을 맞이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됐죠.

<사진: www.pariscityvision.com>

[조용준, 역사를 읽다]

제가 본격적으로 역사에 여행을 가미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2005년 유럽 여행차 방문했던 런던에서였습니다. 버스에 앉아 길가를 구경하는데 모든 ‘펍’의 간판에 상호가 글로 쓰여 있는 게 아니라 그림만 그려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일종의 규칙이었던 겁니다. 호기심에 여행을 마치고 귀국해 자료를 찾아보니 이 그림 간판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의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 그림 간판은 사실 당시 사람들이 글을 모르니 그림으로 표시를 했던 아주 단순한 사회적 환경에서 출발합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이 그림 간판은 단순한 그림에서 벗어나 마치 ‘다빈치 코드’처럼 그 심벌에 영국의 역사를 담은 암호 들이 됐습니다. 그림간판 만으로 영국의 역사를 읽을 수 있는 거죠.

세월이 지남에 따라 이 그림 간판은 단순한 그림에서 벗어나 마치 ‘다빈치 코드’처럼 그 심벌에 영국의 역사를 담은 암호 들이 됐습니다. 그림간판 만으로 영국의 역사를 읽을 수 있는 거죠.

저는 이 그림간판과 얽힌 영국의 역사를 공부해 ‘펍, 영국의 역사를 읽다’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그리고 자유의 눈물을 흘리며 여행했던 프로방스 지역의 역사적 배경을 해석해 ‘프로방스, 라벤더 로드’라는 책도 집필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저의 집필 방향을 사람들이 단순한 여행을 하기보다, 인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그곳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생각을 현실화하고 있죠.

[조용준, 도자기를 보다]

제가 이런 생각을 현실화하며 찾은 또 하나의 주제는 바로 ‘도자기’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뚱딴지처럼 왜 갑자기 도자기냐?’고 물어봅니다. 제가 우즈베키스탄 여행을 했을 때 사마르칸트라는 도시를 여행했습니다. 타슈켄트가 수도라면 이 사마르칸트는 우리나라 경주와도 같은 도시입니다. 몽골이 쇠퇴하고 다시 재건한 티무르 제국의 수도가 사마르칸트였는데, 이 도시의 모든 건물과 거리의 장식은 타일로 만들어졌습니다. 심지어 공동묘지도 타일로 장식되었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타일’로 만든 건축물에 일종의 문화적 충격을 받은 차에, 우연히 NHK 방송에서 포르투갈 여행 다큐멘터리 보게 되었습니다. 그 다큐멘터리는 기차 안에서 포르투갈 역을 보여주는데, 정말 우연하게도 제가 우즈베키스탄에서 봤던 타일 장식이 포르투갈 역사에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마르칸트의 타일 장식이 어떻게 저 멀리 포르투갈까지 왔는지 거대한 궁금증이 생겨서 타일 장식의 이동경로에 대한 심도 있는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와 관련한 어떤 책이나 논문이 없는지라 아마존 등에서 외국 서적을 구입해 읽고, 구글 리서치를 통해 연구했습니다. 오랜 시간 공부 끝에 저는 드디어 도자기와 타일 등 ‘세라믹 문화’가 동양에서 서양으로 이동한 이른바 ‘세라믹 로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라믹 로드는 중앙아시아에서 시작한 도자문화와 타일이 이슬람 번영의 물결을 타고 중동으로 이동합니다.그리고 중동에서 북아프리카로 건너가고, 711년 북아프리카에서 이베리아 반도를 침공할 때 이 세라믹도 함께 이베리아 반도로 건너와 퍼지게 되는 것이었죠. 이베리아 반도에서 지중해를 통해 이태리와 프랑스, 네덜란드 등 서유럽으로 건너가게 되고 이는 다시 영국과 북유럽까지 그 여정이 이어집니다.

지금이니까 짧은 시간에 쉽게 얘기하지만 이는 이 루트를 찾아내기 위해 각 국가를 일일이 방문하고 어렵게 취재해 밝혀낸 결과물입니다. 세라믹 로드에 관한 책을 집필하는 것이 제 일의 완성이지만, 현재 가장 핵심 국가인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시리아가 봉쇄되어 그럴 수 없는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마지막 메시지]

해외 세라믹 루트를 연구하면서 자연스레 우리 한국 도자기에도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제가 공부를 하며 느낀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 도자기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는 우리 도자기 상식은 ‘예전 청자와 백자가 단해서 중국과 일본에서도 탐내는 물건이었다. 일본에게 우리가 도자기 문화를 전해주었다’ 정도가 거의 끝입니다.

우리나라 도자기산업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일본이 많은 사기장(도공)을 일본으로 끌고 가면서 황폐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광해군 때는 제사 지낼 제기(祭器)가 없어 전국에 징발령을 내릴 정도였습니다. 이후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그 참상은 더 심해졌죠. 그런데 우리나라 도자기의 흥망성쇠를 집대성한 책 한 권이 없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 문화의 수준이고 민낯이죠.

비단 도자기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렇게 많은 것들을 놓치고 빼앗겨왔습니다. 2016년은 조선 이삼평 사기장이 일본으로 끌려가 그들에게 백자 제작 기술을 전수한 지 40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이후 이삼평 사기장에 의한 우리 도자문화가 일본에서 어떻게 계승 발전돼왔고, 일본 열도 전체로 퍼져나갔는지,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는 책 한 권이 없었습니다. 제 ‘일본 도자기 여행’ 시리즈가 나오기 전까지는.

저는 우리 후세들이라도 올바른 역사를 배우며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게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얼마나 위대한 나라였는지,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우리의 역사적 사실을 전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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