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매거진 가수 김학래 - 레전드매거진

가수 김학래

김학래는 1979년 명지대 재학 시절 MBC 대학가요제에 임철우와 함께 ‘내가’로 참가해 대상을 차지하며 가요계에 데뷔했다. ‘내가’와 함께 그의 대표곡 ‘하늘이여’, ‘슬픔의 심로’, ‘겨울 바다’, ‘해야 해야’ 등이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은 ‘7080 대표 싱어송라이터’다.

세심하고 차분한 성격, 특유의 온화한 이미지로 ‘가요계 신사’로 불리며 왕성한 활동을 하던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돌연 독일로 건너갔다. 결혼전 그의 연인이었던 동료 여자 연예인과의 ‘미혼모 스캔들’에 휘말렸을 때도 그는 ‘배려의 침묵’을 이어갔다.

침묵은 금이라 믿고 침묵하는 그에게, 세상은 ‘연인을 미혼모로 만들었다’ 또 ‘무책임하다’며 근거 없는 비난을 퍼부어대며 긴침묵은 오히려 오해가되어 독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침묵’을 지켜내기위해, 그일이 있은후 20년간을 방송을 하지 않고 패션사업 실패후 국내에서 음반, 공연 기획, 제작을 하다, 독일로 건너가 한식당을 운영하며 평범한 삶을 이어갔고, 1988년 6집 앨범 발표 후 2011년 8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2012년 kbs콘서트7080 크리스마스 특집에 특별 출연하며, 2015년 7집 정규 앨범 ‘NEW & GOLDEN’을 발표하며 다시 무대에 검백했다.

다시 팬들의 곁으로 돌아온 그를 만나 지난 30여 년간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인간 김학래 마음속에 있는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학래]

레전드 매거진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렇게 다시 여러분께 인사드리게 되어 너무나 반갑습니다. 가수 김학래입니다.

‘내가’라는 곡으로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으며 여러분 앞에 설 수 있었고, ‘슬픔의 심로’와 ‘해야 해야’, ‘하늘이여’ 등의 곡으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200여

학창 시절에 故김정호 선배님의 음악을 즐겨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대학 동기였던 임철우 씨가 지난해 대학가요제를 탈락해 다시 도전하려 하는데 함께 해달라 제안하더군요.

저는 ‘내가’란 곡을 만들고 임철우 씨와 대학가요제에 출전해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런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지원했던 ‘강변가요제’에도 ‘내가’가 결선 진출하게 되었어요.

어떻게 될지 모르니 둘 다 넣어봤던 거죠. (웃음) 당시 강변가요제는 라디오 방송이 던 터라, 기왕 하는 거 TV에라도 한번 나가보자 하는 마음에 대학가요제에 출전해 대상을 받게 된 거예요. 그렇게 저의 음악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군 복무를 마치고 ‘슬픔의 심로’가 담긴 1집 앨범을 발표하며 가수로 정식 데뷔하게 됩니다. 이 앨범에 담긴 ‘겨울바다’도 많은 사랑을 받았죠. 또 제2집 수록곡 ‘꿈에서 새벽까지’는 당시 국내에는 생소했던 ‘뮤직비디오’를 시도한 곡이기도 합니다.

4집 ‘해야 해야’를 발표하며 저는 말 그대로 국민 가수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김학래, 그리고 김경호]

하지만 개인적인 상황으로 1988년 발표한 6집 앨범을 끝으로 가수로의 활동을 잠정 중단하게 된 저는 패션 사업을 벌였다 큰 실패를 맛보기도 했습니다.

그후 모 엔터테인먼트에서 기획이사로 있을 때 김경호를 발굴해 앨범 제작까지 마쳤습니다. 김경호는 당시 다른 기획사의 소속이었는데 대표와 함께 상의해서 데려왔죠.

저는 직접 CD를 들고 방송사를 뛰어다니는 매니저 역할까지 했습니다. 당시 한국 가요계는 댄스가 대세였기 때문에 슬픈 록발라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딱 한 번만 믿고 써봐라, 반응 없으면 두 번 다시 부탁하지 않겠다’며 줄기차게 무모한 도전을 이어갔고, 결국 그의 노력 덕분에 김경호는 방송에 출연해 객석을 뒤집어 놓게됩니다.

말 그대로 대박이었죠 (웃음). 한번 기회를 잡은 김경호는 국내 샤우팅 가수로 1호로 등극하게 됩니다.

[김학래, 그리고 독일]

그렇게 일을 하다 2003년 독일로 건너가 2011년까지 8년을 살게 되었습니다. 독일로 간 것을 도피라 오해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아이의 교육 때문이었습니다. 아이의 유학을 결정하고 아내와 아이가 독일로 건너가 저는 기러기 아빠 생활을 했죠.

그래서 6개월 만에 다시 한국으로 불러들였습니다. 하지만 아이와 아내가 독일 유학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 저를 설득해 결국 우리 셋이 독일로 떠나게 된 겁니다.

저는 독일에서 가만히 앉아있을 수는 없었기에, 예전에 한번 식당을 운영해봤던 경험을 살려 한식당을 차렸습니다.

육체적으로 어마어마한 고생을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제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던 순간으로 기억됩니다. 제가 운영하던 식당의 주요 고객은 삼성, 현대, SK, LG 등 국내 기업의 독일 주재원과 그 가족분들이었습니다.

저는 직접 주방장이 되어 한식은 물론 중식과 일식, 양식 등 200여 가지 메뉴를 조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웃음)

[김학래, 그리고 침묵]

사실 2010년, 제가 독일에서 거주할 당시 저는 저의 심경을 담은 글을 제 블로그에 올렸는데 그 내용은 대략 이러합니다.

“오해가 너무 많아 어느 정도의 진실 규명이 필요함을 느끼게 됐다. 교제를 했지만 더 이상 맞지 않아 헤어졌고, 3개월 뒤 임신 사실을 알았다. 서로 신중한 고민 끝에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평화로운 합의를 했다. 이후 상대방이 출산을 했고 지금의 아내와는 그 이후 만나게 됐다”

라는 글을 올리게 되었는데 그 글이 왜곡되어 저와 제 표현이 큰 논란이 되었습니다. 장문의 내용을 자극적으로 제목과 함께 편집하여 많은 언론사들이 내보낸 부작용이었죠.

저는 당시 저와 관련된 모든 악소문의 고리를 끊어버리기위해 ‘고백’을 했던 것인데, 이는 일부언론이 어처구니 없게 ‘변명’으로 몰아가는 부작용을 초래하게 된것입니다.

세월이 지나 다시 생각을 해보니 ‘침묵’을 지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걸 저를 아끼는 주위분들이 많이 얘기해주시더군요.

여러분 앞에 당당히 서서 저 김학래를 사랑해주시던 모든 분들께 더 늦기 전에 노래와 무대로 보답하는 것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해야 할 일이라 조언을 받았고 느꼈습니다. 이렇게 다시 인사드리게 되어 진심으로 반갑고 또 기다려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마지막 메시지]

먼저 이번 인터뷰를 통해 제 인생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더욱 앞으로의 행보에 신중하게 깊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제가 만든 ‘내가’라는 곡이 대학가요제 대상을 수상했던 순간도, 또 제가 만든 곡을 히트시키며 여러분 앞에서 불렀던 그 무대들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 오랜 시간 떠나 있었습니다.

그렇게 무대를 떠난 저는 생계를 위해 주방 일을 하기도 했고, 또 가수의 매니저 일도 했습니다. 저 ‘김학래’는 아직까지 대중에게는 유명했던 가수로 각인돼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무대에 서지 않는 동안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저를 믿고 기다려주고 다시 돌아오시는 팬들을 위해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저의 노래를 여러분께 성숙된 자세로 들려드리려 합니다. 항상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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