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매거진 MC 메타 – 레전드매거진

MC 메타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씬에 근거한 시선
MC 메타

힙합 불모지였던 한국에 투팍, 스눕독, 닥터드레의 랩이 녹음된 테이프가 음악좀 듣는다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건 90년대 초중반 무렵이었다. 문화의 유입으로 자연스럽게 스트리트 서브컬처로 형성된 언더그라운드 힙합씬은 차츰 외국 래퍼들의 스타일을 모방하던 방식에서 한국의 정통 힙합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진화해갔다. 가리온이 신촌 마스터플랜 공연장의 무대에 등장한 건 그 무렵이었다. 만약 언더그라운드를 상업성을 말단 순위로 두고 급기야 배척하는 창조적 예술활동이라 정의한다면 당시 그들의 지향점은 언더그라운드의 그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상업성에 대한 철저한 문제의식을 가진 비판론자 보다는 집단중심의 획일화된 사회가 개인의 개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던 시대 분위기 속에서 자유를 유일한 명분으로 삼았던 젊고 다재다능한 음악인들에 가깝다. 당신은 누구이며, 힙합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들은 주저 없이 직설적인 음악으로 화답했고, 오기로 새겨나간 발자국이 이제는 한국 힙합 음악 정체성의 일부이자 이 땅에 살아있는 노래로 남았다.

반갑습니다. 최근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대부분의 일정은 코로나 이슈로 취소되거나 연기됐어요. 10월에 잡혀있는 랜선 공연 하나 정도만 확정이에요. 학교 수업도 나가고 있는데 다음 주부터 온라인으로 진행될 예정이나 저희 수업은 특성상 비대면으로 진행하기가 어려워서 지난 학기에는 모자란 수업일수를 주말에 틈틈이 진행하는 등 보강으로 어렵사리 채워왔습니다. 이번 학기 수업도 뭔가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고요.

그동안 랩 레슨 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나요?

예전에 개인 레슨을 할 때 제주도에서 랩 레슨을 받으러 4년 동안 제주도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초등학생이 있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저에게 랩을 배웠죠. 그 학생이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저에게 처음으로 왔던 초등학교 5학년 때 했던 랩이 정말 신선했기 때문입니다. 힙합 음악이 가질 수 있는 여러 가지 매력 중 하나가 기존에 없던 신선함을 주는 건데, 그 학생이 처음 저에게 왔을 때 보여준 음악은 어떤 편견도 치우침도 없고 정말 신선하게 느껴졌어요. 대부분의 힙합 음악인들의 작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장르에 편입되어 소모되는 과정 속에서 신선함이 사라지기 때문에,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게 저희 과업이라고도 생각하거든요.

요즘 MC메타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코로나죠. 종합적인 고민을 하고 있어요.
보통은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 진행됐을 때나 피처링 작업이 끝나고 음원이 나왔을 때 그다음은 공연을 하는 수순으로 이어졌는데 지금은 그다음 차례에 뭘 해야 할지. 사실상 대안이 없어요. 최근에는 1 세대 힙합 팀 Side-B가 오랜만에 컴백해서 저도 앨범 작업에 참여했는데, 참여한곡 외에 앨범 타이틀 뮤직 비디오 촬영이 이번 주 김포에서 예정되어 있어요. 정부 방역 지침에 따라 촬영 스탭 수도 줄이고, 외부인 유입을 최대한 통제할 수 있는 폐공장을 섭외해 진행하기로 했지만 이 정도도 고민이 많고 쉽지 않은 상황이죠. 앞으로 어떻게 음악을 계속할 수 있을까. 그게 지금 상황에서 최대의 관심사이자 고민거리예요.

| 다만, 가리온

가리온 그룹 결성은 1998년, 첫 앨범 발매는 2004년 1월 10일입니다. 첫 앨범 발매까지 왜 6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나요?

1998년에 나찰과 듀오로 그룹을 결성해 활동하다가 같은 해 10월에 프로듀서 JU가 영입되어 3인조로 활동을 했습니다. 요즘은 좀 다르지만 당시에는 많은 언더그라운드 음악인들이 커머셜에 대한 혐오가 있었고, 메인스트림 시장으로 유입되면 음악적 개성이 말살된다는 두려움이 컸습니다. 공연 활동 중심의 가리온 역시 돈이 들어가는 앨범 제작을 외부에 맡기면 우리 음악에 영향이 있을 거라 생각했죠.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데뷔를 했던 힙합클럽 마스터플랜(MasterPlan)이 문을 닫고 제작사로 바뀌고 저희는 홀로서기를 했습니다. 물론, MP(마스퍼플랜)에서 제작 제안을 했지만 저희 음악을 스스로 제작하기로 결심했죠. 하지만, 음반 제작 비즈니스는 하나도 모르는 터라 진행이 어려웠습니다. 이후 멤버들 각자 개인사도 있고 생활고도 있다 보니 막막하게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자체적으로 파티를 낀 공연을 한다던가 가끔 섭외되는 무대에 올라가며 음악 활동은 계속 유지했습니다. 결국, 저희 의도와 잘 맞는 알래스 뮤직 (Ales Music)이라는 회사를 만나서 1집 계약을 하고 제작을 시작했죠. 데뷔 앨범에 수록된 대부분의 곡들은 1998년 말부터 공연을 통해 선보였던 프로듀서 JU의 비트들이었고 신곡과 리믹스 작업을 추가해서 2004년 발매하게 되었습니다. 98년 결성부터 치자면 만 6년이 걸린 셈이죠.

| 영순위, 음악

모든 예술에는 정해진 답은 없지만, ‘힙합’이라서 할 수 있는 시도와 영역은 존재할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MC메타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힙합 음악을 처음 접한 건 고등학교 3학년 때였어요. 그전에는 록 음악만 들었죠. 커널형 이어폰을 귀에 꽂고 볼륨을 최대치로 올리고는 하루 종일 귀가 터져라 록 음악을 들었어요. 잘 때도 이어폰을 끼고 잠들 정도였죠. 그때는 내가 앞으로 20년 후에 귀가 멀겠구나 싶었는데 그래도 멈출 수가 없어요. 제 안에 막혀있던 어떤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으니. 그러다 우연히 라디오를 통해 듣게 된 힙합이라는 장르의 첫인상은 정말 강렬했어요. 댄스음악 같기도 한데 템포는 느리고 독특한 창법에 매력을 느꼈죠. 무엇보다 가사에 욕이 나온다는 게 너무나 충격적이었죠. 당시 철저한 심의가 있던 한국 대중음악에서 가사에 비속어나 욕을 넣는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기에 힙합 음악은 저에게 완전히 신세계였습니다. ‘도대체 왜 욕을 할까?’ 래퍼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했어요. 처음 힙합을 듣던 시기에 대구에서 살고 있었는데 자주 가던 음반 가게 사장님을 통해서 어렵게 음반을 구하면 가끔 가사집이 수록된 경우가 있어서 하나하나 영어 사전을 찾아가며 그 의미를 해석해봤어요. 하지만 대부분 슬랭(Slang)이라 해석이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뉘앙스는 파악할 수 있었어요. 랩 가사의 내용들은 대략 미국 내 흑인 사회가 갖고 있는 오래된 인종차별 문제나 경찰 폭력, 갱스터와 범죄로 점철된 그들의 생활환경을 포함한 그 사회의 불합리함에 대한 이야기 같았어요. 가사의 내용을 파악하고 받았던 충격은 그 어떤 헤비메탈 사운드 보다 강렬했습니다. 아, 음악으로 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구나. 그 깨달음은 저에게 작은 혁명이었어요.
불합리에 맞서기 위해서건, 체제에 대항하건, 아니면 나란 존재에 대한 진한 고백과 고찰이건… 힙합이 가진 힘은 정말 강력하다고 느꼈죠. 그리고 그 힘의 근원인 메시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어요.

향후 10년 내에 이루고 싶은 바는?

1993년에 데뷔한 미국의 더 루츠(The Roots)라는 팀을 보며 언젠가 저도 저런 형태의 힙합밴드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오랫동안 밴드 구상을 했었기에 향후 몇 년 안에는 본격적으로 팀을 꾸려 활동하고 싶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밴드는 더 루츠처럼 사이즈가 크고 다양한 악기를 사용하는 형태는 아닙니다. 꽤 오래전 보았던 해외 재즈 페스티벌에서 래퍼 커먼(Common)의 무대를 보고 아 내가 하고 싶은 게 이 조합이다 싶었어요. 밴드 구성은 디제이와 키보디스트 그리고 핑거드럼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구성으로 밴드를 만든다면 너무 재밌을 것 같아요. 향후 10년 내에는 꼭 이루고 싶습니다.

 126 total views,  1 views today

이 인터뷰를 널리널리 공유해주세요!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