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매거진 [레전드인터뷰] 배우 박철민 | 레전드매거진

배우 박철민

명품 조연이 터놓는 담담한 진담
이목을 빼앗는 사나이
박철민

안녕하세요 박철민 님. 이달 개봉을 앞둔 〈소리꾼〉을 비롯하여 상반기에만 벌써 4개의 작품에 출연하셨는 데요, 이후의 일정은 어떻게 되어있나요? 근황을 듣고 싶습니다.

반갑습니다. 연기자 박철민입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먼저 말씀드리면, 현재는 소리꾼의 촬영을 무사히 마쳐 잠시 숨을 고르며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있습니다.
7월부터는 다시 촬영에 들어가는데, 정지연 감독님의 영화 〈소년들〉에서 수사과장을 맡게 되었어요. 정지연 감독님과는 작품 활동을 함께 해본 사이로, 날카로운 감각으로 사회를 꿰뚫어 보는 안목을 지닌 분이라 어떤 작품이 탄생할지 아주 기대가 됩니다. 그리고 언제 나처럼 연극 〈늘근도둑 이야기〉로 무대에 올라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으며, 틈틈이 연극이나 드라마를 보며 연구를 계속하고 있고 좋아하는 야구 연습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업계의 상황은 아무래도 코로나 사태로 인해 굉장히 위축되어 있습니다. 관객분들도 좋은 작품을 접할 수없다는 데에서 아쉬움을 느끼고 계실 테지만 특히나 우리 같은 배우들은 생존을 위협받고 있기 때문에 아주 힘든 시기이지요. 다행히 최근부터 극장가가 다시 문을 열기 시작했는데 안전장치를 아주 철저하게 마련 하여 감염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입구에서 체온을 재고 문진표와 방명록을 작성하며, 좌석도 십자 모양으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배치하고, 극장 내에서도 마스크 착용을 필수로 준수하고 있습니다. 동원할 수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방역 유지에 힘쓰고 있는 만큼 많은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역시 쉴 틈이 없으시네요. 식상한 질문이지만 박철민 님의 어린 시절이 궁금합니다. 언제부터 배우의 꿈을 키우기 시작하셨나요?

과거를 돌이켜보면 어느 시점부터 배우를 결심하고 연기에 매진했던 건 아닌 거 같아요. 다만 제가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된 데에는 친형의 영향이 아주 크게 작용 했습니다. 저와는 다섯 살 터울이던 형님은 어릴 때부 터 연극을 아주 좋아하셨어요. 본가가 광주였기 때문에 연극을 접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형님에게 물리적 거리는 아무 의미가 없었지요. 연극을 보기 위해 어머니 지갑에서 입장료를 몰래 빌려다가 서울로 올라갈 정도였으니까요. (웃음) 형님의 일탈은 매번 들통나 부모님께 꾸중 듣기 일쑤였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 되었지요. 그렇게 당시에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을 관람 하고 온 형님은 저를 마당의 한쪽 구석에 앉혀놓고 연극을 재연하곤 했어요. 완력에 굴복하여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던 저는, 고독하고 유일한 관객이 되어 특등 석에서 형님의 모노드라마를 관람하는 호사를 누리곤 하였습니다.

현재는 연극,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남다른 입지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지만 연극배우로 데뷔하신 만큼,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봤을 때 남다른 의미를 갖는 작품이 있다면?

〈늘근도둑 이야기〉가 떠올라요. 1989년 초연을 시작 으로 30년이 넘게 롱런하고 있는 작품으로, 2002년에 캐스팅되어 현재까지도 주연을 맡고 있는 각별한 작품 이지요. 제가 맡은 ‘덜 늙은 도둑’은 작중의 나이가 환갑인데요, 37세부터 그 배역을 시작하여 무대에 오르다 보니 어느덧 제 나이가 환갑을 6년 앞두게 되었습 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참 감사한 일이죠. 모두 관객 여러분의 사랑과 끝없는 관심 덕분이라 생각하고 있으 며, 환갑을 넘어서도 같은 배역을 이어갈 수 있다면 개인적으로도 너무나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늘근도둑 이야기는 긴 시간을 함께 해온 작품인 만큼 저를 많이 성장시켜 주었어요. 초반에는 거칠고 무모한 연기, 철없고 과감한 코미디를 선보여왔죠. 그런 데 세월이 쌓여가며 스스로 조금씩 다른 맛을 깨닫기도 하고, 관객들의 반응에서 지표를 찾아 연기의 방향 성을 수정하고 그것을 보며 새로이 반응하는 관객에게서 또다시 에너지를 받기도 하는 등 마치 생맥주처럼 살아있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장의 묘미를 깨닫게 해준 작품이에요.
어떤 날은 너무 힘들고 지쳐 무대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파기할 수 없는 관객과의 약속에 이끌려, 도살장에 끌려가는 죄수마냥 아주 무거운 마음으로 백스테이지를 지나 무대를 향해야만 하죠. 그런데 무대에 오르면, 박수와 웃음 커다란 리액션을 선물하는 관객 속에서 나도 모르게 몰입하여 최고의 에너지를 뽑아내고 있고, 최고의 에너지가 관객들에게더 큰 웃음을 선사하여 어느새 피로도 잊은 채 더 역동적으로 연기하는 자신을 맞이하게 됩니다. 에너지가 고갈되어가는 것을 느끼다가도 관객들의 어마어마한 사랑에 뜨겁게 감동하기도 하고 열정이 재충전되는 것을 느끼며 무대가 저를 지키고 보살펴주고 있지 않나 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늘근도둑 이야기는 포근한 보금자리 같아요.

자신을 성장시켜준 작품을 말씀해주세요.

두 편의 영화가 떠오르는데요, 약장수와 스카우트입니 다. 조치언 감독의 〈약장수〉는 이름 그대로 약 팔이들의 이야기입니다. 그간 제 캐릭터는 가볍고 까불대며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경우가 많았었잖아요.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아주 악랄하고 잔인하며 비겁한 방법으로 할머니들의 주머니를 터는 역할로 등장합니 다. 기존의 이미지에서 벗어난 배역이 들어왔다는 것자체가 신기하기도 했고, 늘 새로운 배역에 갈증을 느껴왔기 때문에 굉장히 고맙고 의욕이 솟기도 했어요.
작품을 준비할 때부터 많은 생각과 설정을 세우며 촬영에 들어갔고, 작업이 끝난 뒤 스크린에 비친 제 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습니다. 기존에는 볼수 없던 악인의 모습, 잔인한 시선과 교활한 표정, 악 독한 감정을 내 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에 행복했 고, 박철민이라는 배우의 스펙트럼을 한층 성장시켜준 영화입니다.
그리고 김현석 감독의 〈스카우트〉는 5.18 항쟁이 일어 나기 직전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로, 투수를 스카우 트해오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코미디를 그린 영화입니 다. 제가 태어난 고향인 광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고, 작중의 시대상을 과하지 않게 묵묵하면서도 아주 사실적으로 영화에 녹여냈 습니다. 그 작품에서 제가 맡은 역할은 건달입니다. 해바라기처럼 여주인공만 바라보는 인물로, 그 배역이 마치 1980년대를 살아가던 나의 모습, 과거의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는 이야기인 것 같아서 더욱 기억에 남고 오랫동안 가슴 한편에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소리꾼>을 촬영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이 있을까요?

촬영장에 가면 늘 사연이 많이 생겨요. 거친 일정에 지쳐있다가도 그 맛에 작품을 마칠 힘을 얻기도 하죠. 흔히 세트장의 분위기를 가리켜 가족적이라는 표현을 쓰잖아요. 촬영을 위해 오랜 시간 동거 동락하다 보면 자연스레 가족 같은 친밀감이 들기도 하고, 또 의례히 형식적으로 따라붙는 수식어이기도 하지만, 이번 작품은 특히나 분위기가 좋았어요.
사극을 촬영하게 되면 아무래도 지방 세트장을 많이 쫓아다니거든요. 보통은 자신의 촬영 분량을 마치고 식사를 하거나 내일의 준비를 위해 자리를 뜨는 경우가 흔해요.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 주연을 맡은 친구들은 누가 몇 시에 끝나던 늦게까지 그시간을 기다려주고 지켜보며 응원해주었어요. 그래서 8~9시에 모여 하루를 마감하고 내일을 기약하며 한두잔 하다 보니 참 막걸리를 많이 마신 작품이 되었는데, 그렇게 다져진 의리가 스크린을 통해서도 드러나지 않았나 싶어요.
막걸리 이야기를 하니까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르네 요. 저희가 촬영 중에 우연한 계기로 막걸리를 협찬받 게 되었어요. ‘별산 막걸리’라고 아주 마시기 편한 프리 미엄 막걸리인데, 감식초를 잘 숙성시켜 자칫 거부감이 들기 쉬운 막걸리의 신맛을 잘 살린 전통주예요. 달콤하면서도 새코롬한 그 맛이 사람을 아주 환장하게 만드는데, 덕분에 촬영 내내 실컷 마실 수 있었죠. 그러다 보니 이제는 다른 막걸리에 손이 잘 안 가게 됐어요. 그런데 별산까지 내려가서 막걸리를 먹자니 쉽지가 않고… 아~ 촬영 딱 일주일만 더 했으면 좋겠는 데. (웃음)

영화를 보면 직접 북을 연주하는 씬도 있던데 장단을 따로 배우신 건가요?

북에는 크게 두 가지, 판소리에 쓰이는 소리북과 풍물 놀이에서 장단을 만드는 장단 북으로 나뉘어요. 장단 북은 대학시절과 대학로에서 마당극을 할 때 배운 경험이 있는데, 소리북은 전혀 경험이 없었어요. 물론 채로 치는 기본적인 타법은 비슷하지만 장단이나 연주 방향성 자체가 워낙 다르다 보니 처음엔 고생을 했죠.
다행히 주연을 맡은 이봉근 씨가 워낙 명창인 데다가 소리북도 수준급이었어요. 소리꾼들은 대개 직접 쳐가 면서 연습하기 때문에 명창이라면 북도 어느 수준에 올라와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석 달 동안 작업실을 들락거리며 저는 연기 연습을 도와주고 이 친구에게 소리북을 배우는 그런 시간을 가졌죠. 그 덕에 작품에서 나오는 장단을 비슷하게 흉내를 내고 제법 자세가 나오는 수준까지는 된 거 같아요.

박철민 님은 능청스럽고 유쾌한 캐릭터로 존재감을 어필하면서도, 작중에 잘 스며드는 연기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시죠. 개성 넘치지만 과하지 않은 캐릭터를 형성하는 데에 어려움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연기자 생활을 해오며 늘 느끼는 것이지만, 명품 조연 이다, 씬스틸러다 이런 소리를 듣는 게 아직도 어색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요. 스스로 탁월한 재주가 있어 눈부시게 빛나는 연기를 펼친다고 생각하지는 않거 든요.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고 또찾아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지요.

제게 애드리브의 비결에 대해서 많이들 물어보세요. 애드리브를 잘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만 그리 자랑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사실은 제가 대본을 잘 못 외워요. 연기적 암기력이 뛰어난 선후배들은 10분이면 다 외울걸 저는 100, 200분 동안 외워야 겨우겨우 비슷하게 할 수 있어요. 그러다 보니 똑같은 대사를 아주 많이 반복해요. 화장실에서, 침실에서, 식당에서, 심지어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그렇게 해야만 대사를 가지고 놀 수가 있게 돼요. 그런 시간이 길다 보니 외우다 지쳐 형용사를 바꿔보기도 하고 은유나 과장을 섞다 보면 종종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와요. 그걸 기억해 두었다 현장에서 시도해보고 반응이 좋으면 감독님에게 제안드리는 과정에서 “쉭, 이것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여.” 같은 애드리브가 탄생하는 거지, 일부로 만들거나 목적을 가지고 하지는 않아요.

유쾌한 애드리브의 뒤에는 이런 사연이 숨어있었군요. 그렇다면 배우가 아닌 인간 박철민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제가 넉살 떨고 익살스러운 역할을 많이 맡았기 때문에 실제 제 성격도 대범하거나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이들 계신데요. 실제 제 모습은 소심하고 늘 불 안에 떨고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의문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연기를 할 때에도 매번 만족스럽지 않아 모자람을 느껴 반성하는 태도로 자신을 돌아 보곤 하고요. 그런데 워낙 변덕이 많은 데다 누군가 답답함을 느끼면 제가 더 답답함을 느끼다 보니 그걸 풀어주려고 까불대고 즐겁게 만들어주기 위해 밝게 웃고 떠드는 그런 사람입니다.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바르게 살고 있는 걸까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배우 박철민의 연기 철학은?

철학이라는 단어는 제게 너무 거창한 거 같고 연기를 하는 태도가 적당할 거 같아요. 저는 〈전국 노래자랑〉같은 배우가 되자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전국 노래자랑은 최고의 가수가 나와서 음악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 주는 무대는 아니지만, 동네의 어디서나 볼수 있는 형 동생, 아줌마 아저씨들이 나와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우리네 사연을 가지고 노래를 부르잖아요. 약간 아마추어적 이기도 하지만 그런 모습에 박장대소하거나 때로는 굵은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등 가슴 깊이 공감하곤 합니다. 저 역시 다소 부족하 지만 모두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연기, 잊고 있던 희로애락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감정을 해소해주는 그런 배우를 모토로 연기를 계속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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