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인터뷰] 싱어송라이터, 유희열 | 레전드매거진

싱어송라이터, 유희열

토이의 자화상과 안테나 뮤직의 일상
작곡가/싱어송라이터 유희열

근황이라.. 그저 단조로운 일상이죠. 루틴이 있는데, 안테나 뮤직에 출근하면 소속 음악인들의 곡 작업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고정적으로 하는 방송이 있어 정해진 요일에는 촬영을 위해 방송국에 가고요. 그 외 나머지 시간들은 집에서 뒹굴거리며 보내곤 해요. 요즘은 코로나 이슈로 스케줄이 축소되어 평소보다 여유로워지다 보니 뒹굴거리는 시간도 더 많아졌어요. 원래는 루틴에 규칙적인 운동도 포함되었는데 최근에 어깨를 다쳐서 운동은 요즘 전혀 못하고, 건강에 좋다는 반신욕만 종종 하는 편입니다.

요즘은 개인적인 곡 작업보다는 안테나 뮤직에 소속된 후배 음악인들에게 집중하고 있어요. 곡 작업을 도와주거나, 함께하는 공연을 기획하기도 하죠. 그들의 연주, 편곡, 뮤직비디오 등등 여러 가지를 다 신경 쓰다 보니 살아가면서 이만큼 음악과 관련된 작업을 많이 했을 때가 있나 싶을 만큼 작업량이 많아졌어요. 개인 작업을 할 때에 비하면 녹음실에 들어가는 횟수가 몇십 배는 늘어났으니.

ㅣ 그는 누구인가

Q. 꾸준히 따라다니고 있는 감성변태라는 단어, 만족스러운 별명인가요?

글쎄요. 제가 붙인 별명이 아니라 다른 분들이 부르는 거라서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저를 뭐라고 부르셔도 괜찮아요. 굳이 말하자면 감성변태는 팬분들이 붙여준 애칭 같기도 하고. 이름을 붙여준다는건 애정이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관심이 없었다면 별명도 없었겠 죠. 그러니 나쁘지는 않아요.

Q. 한 명만 가능하다면 둘 중 누구와 저녁식사를? <데이비드 보위 vs 마이클 잭슨>

마이클 잭슨. 어렸을 때부터 참 많이 좋아했거든요. 그의 음악을 들으며 자란 세대니 결과적으로 제 음악인생에도 영향을 많이 준 사람이고 요. 데이비드 보위는 조금 더 실험적인 음악을 한 사람이라면, 마이클 잭슨은 보다 대중적인 음악을 했잖아요. 그런 부분이 저의 성향과도더 잘 맞는 것 같고요. 만날 수 있다면 참.. 얼마나 신기할까요.

Q. 못하는 게 있어요? 유희열 님은 다 잘하실 것 같은데.

몸치예요. 운동도 못하고, 춤도 잘 못 추고. 찾아보면 더 많을 것 같은데. 아무튼 많아요. (웃음)

Q. 그럼 가장 잘하는 건 뭐예요?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 직업과도 연관되는데, 음악적인 일들과 방송활동 두 영역 모두에서 제 포지션이 갖는 공통점은 열심히 듣는 다는 거예요. 방송에서는 주로 진행자로서 질문을 하고 남의 이야기를 듣는 역할이고, 음악에 있어서는 프로듀서로서 아티스트의 이야 기를 하염없이 들어요. 다 듣고 나서 제가 듣고 싶은 답을 듣기 위한 질문이 아닌 아티스트가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질문을 하죠.

방송 이야기부터 먼저 하자면, 흥미와 재미를 만들기 위해 리액션을 기대하고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마음껏 할수 있도록 기다려줘요. 유희열의 스케치북, 알쓸신잡, 대화의 희열에 서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듣고 싶은 답을 정해두고 질문을 하지 말자.
그걸 원칙으로 삼았어요. 분명 게스트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이자리에 나왔을 테니, 그 지점에 다가가는 게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 요. 누군가와 만나 인터뷰를 할 때 인터넷으로 찾아봤을 때 다 알 수있는 이야기임에도 물어보는 이유는 그가 직접 이야기할 때의 온도 때문인 거죠. 같은 계절이라도 오늘과 내일의 날씨가 다르듯, 그날 그사람의 생각과 기분의 온도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이전에 설령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더라도 새로운 의미가 되지 않겠어요? 만약 발레리나 강수진 씨를 만나 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매체를 통해 수십 번언급되었던 그의 거친 발에 대해 또다시 이야기를 하게 되겠죠.

ㅣ 작곡가 유희열

순간. 곡을 쓸 때의 저에게 참 중요한 단어예요. 완성형의 그림 하나를 머릿속에 그리고, 그 그림 속의 어떤 순간의 어떤 감정을 곡으로 풀어내요. 예를 들면 지금 봄이니까, 벚꽃이 바람에 팔락이며 쏟아지는 거리를 뛰어가는 한 남자의 모습을 상상하는 거예요. 그 시간, 그 남자의 순간에 대한 감정의 모습을 일인칭 혹은 삼인칭으로 풀어내는 거죠. 드라 마나 영화를 볼 때, 어떤 한 장면에 매료되는 경험을 하잖아요? 그런 것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아직 손 악보를 써요. 대다수의 음악인들이 컴퓨터에 음악을 저장하는데, 저는 지금도 손 악보로 남겨요. 그리고 낮에 곡을 써본 적이 없어요. 주로 새벽에 쓰죠. 가사에 비해 곡은 빨리 쓰는 편이고, 가사를 쓰는 건 오래 걸려요. 생각도 많이 하고, 수정도 많이 하며 신중하게 쓰니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의 장면, 그 순간이 저에게 와야 비로소 곡이 풀리거든요. 그렇게 곡이 왔을 때 나머지는 기술적인 부분과 개인적인 노력으로 채워지는 부분이 있지만 가사는 달라요. 조향사가 향을 레이어링 할 때 재료의 농도가 조금만 달라져도 향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잖아요. 그런 것처럼 가사에서는 말의 행간과 단어 하나가 곡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하기도 하죠. 말이라는 게 참 어려워요. 그래서 느리게 천천히 신중하게, 가사를 써요. 그리고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같은 단어를 반복하지 않아요. 혹여라도 뻔한 클리셰가 수사적으로 반복되는 가사는 피하고 싶거든요. 물론 그렇게 해서 쉽게 갈 수는 있겠지만, 저의 취향은 아니에요. 너무 흔한 것들이 나열되는 것보다는 어떤 이야기나 어떤 문장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노력을 해보는 거죠.

ㅣ 방송인 유희열

Q. 방송매체를 통해 무엇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변화와 성장에 대한 이야기.1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요. 과거 라디오만 할 때는 디제이 유희열이나 토이는 알아도 제 얼굴은 몰랐다면 지금은 많은 분들이 저를 알아보 시죠. 직접적으로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그거고요. 유희열의 스케치북 이후 프로그램 진행자 역할에 대한 문의가 많아졌어요. 마치 나무의 줄기가 뻗어나가듯 스케치북에서 보여드렸던 저의 모습이 음악 외적인 다른 부분으로 자리 잡아가면서 제 삶의 방식을 이야기하는 또다른 지점이 생긴 것 같습니다. 타고난 방송 체질은 아니에요. 과거에는 얼굴이 드러나는 방송활동을 극도로 피해왔는데, 어느 순간 라디 오만으로는 제 역할을 다 하기가 어렵겠더라고요. 시대가 바뀐 거죠.
1990년부터 2000년까지를 라디오의 황금기라고 봐요. 다양한 대중 음악이 크게 부흥했었고, 라디오 매체의 영향력도 지금보다 컸던 시기였죠. 이후로 갈수록 영상매체의 비중이 커졌고요.

Q. 말씀하신 본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큐레이터의 역할을 말하는 거예요.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한마디로 그동안 받은 만큼 돌려주자. 이런거죠. 앞서 말했듯이 저는 라디오 매체의 힘이 크던 시대에 운 좋게 그 덕을 본 사람이에요. 자신의 이름을 걸고 객원가수를 섭외해 발매한 앨범이 세상에 크게 알려지는 경우가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곡을 만들고 작곡과 편곡을 하고 가사를 쓰고 객원가수를 섭외한 그 모든 과정이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운 좋게도 매끄럽게 이어졌어요. 이제는 영상 매체의 힘이 강한 시대이니이 시대에 걸맞은 방식으로 음악인들이 그들의 메시지를 드러낼 수있도록 저도 뭔가 해야겠다 싶었죠. 라디오에서 매일 밤 새로운 뮤지 션들을 만나 소개하고 인터뷰했던 일이 이제는 텔레비전이나 유튜브의 영역으로 넘어온 겁니다. 여기서도 제 역할은 동일해요. 음악을 하기 가장 좋은 시절에 음악을 했고 그래서 가장 많은 혜택을 받았던 제가 음악인들을 큐레이션 하는 것은 어쩌면 선배로서의 의무이자 다음 세대에게 줄 수 있는 좋은 선물이 아닐까요. 물론 꼭 후배 음악인들만 소개하는 건 아닙니다. 지금 세상을 향해 자신의 음악을 외치는 치열한 음악인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야 하죠. 제가 받았던 영애가 저에게만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음악인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저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ㅣ 유희열의 스케치북 메인 MC

Q. 최근 코로나 이슈로 스케치북에 무관중 녹화가 이어지고 있는데, 관객들이 있을 때와 MC로서 느낌이 어떻게 다른가요?

이 게스트가 나오면 관객들이 참 좋아했을텐데. 아, 이 분은 관객이 있었다면 함께 호흡하면서 더 즐겁게 무대를 했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죠. 스케치북은 무대가 있는 콘서트 형태의 프로그램이 기에 아쉽죠. 너무 아쉬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상황에서는 음악이 계속 발표되고 있고, 그들은 자신들을 소개할 무대를 필요로 하니 이 일을 계속해야 하죠. 관중이 없어서 아쉽긴 하지만 나름의 방법을 찾아야겠죠.

Q.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벌써 올해로 11주년을 맞이했는데요. 이렇게 오랫동안 한 프로그램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음악프로그램이니까요. 매주 나가서 인사하는데 매번 새로운 아티스 트들을 만나잖아요. 스케치북은 포용할 수 있는 장르와 연령대의 폭이 넓어요. 예를 들면 처음 제가 방송을 진행했을 때 초등학생이었던 아티스트들이 이제 그룹으로 나오기도 하는데 그게 자연스럽죠. 스케 치북을 지금까지 해온 건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음악 이야기가 생성되니까요. 구성이 고여있지 않고 끊임없이 순환하는 거죠. 앞으로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하고 싶어요.

ㅣ 유희열의 소중한 것들

Q. 유희열에게 토이란?

당시 저의 관심사가 모두 담겨있는 저의 총 집합체라고 할 수 있겠네 요. 토이의 지난 앨범을 들어보면 그때 제가 가장 좋아하던 것들과 저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요. 저는 세상에 없던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사람은 아니에요. 오히려 제 음악은 기술적인 영역에 맞닿아 있죠. 음악을 들을 때도 분석적인 머리가 먼저 반응할 정도이니.
보통 곡을 쓸 때는 제가 영향을 받은 어떤 것과 다른 무언가를 잘 조합해 만들어내죠. 안테나 뮤직의 아티스트들을 좋아하고, 어쩔 때는 존경한다는 표현까지 썼던 이유는 독자적인 영역의 길을 가는 모습이 많이 보여서, 그런 부분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는 거예요.

Q. 유희열에게 종점 다방이란?

간혹 팬클럽으로 오해하는 분들도 계신데, 팬클럽보다는 저를 좋아하 시는 몇몇 분들이 모여서 활동했었는데 거기서 올라오는 글들을 보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던 게 첫 시작이었어요. 운영자가 고인이 되고 사실상 팬 커뮤니티로서의 기능은 상실한 상태이지만,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이들이 모여서 그날의 이야기를 나누고 토이에 대해 기억을 가진 분들이 모여 토이와 유희열을 매개로 일상을 나누는 공간 으로 자리 잡은 것 같아요. 어쨌든 저를 매개로 그렇게 모인다는 것에 대해서, 고마운 마음이 있죠.

Q. 유희열님이 게스트들에게 자주 하시는 질문이라 준비했어요. 끝으로, 꿈이 뭔가요?

나이가 들면서 꿈의 모양새도 조금씩 바뀌는 것 같아요. 현재 시점에 서의 제 꿈은 무탈하게 사는 것. 세상 일이 좀처럼 알 수 없으니, 나와내 주변 사람들이 무탈하게 사고 없이 잘 살아가는 걸 꿈이라고 대답 해도 될까요. 누군가 나쁜 이슈로 검색어에 올라가지 않았으면 좋겠 고, 살아가면서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기분 좋은 저녁식 사를 나눌 수 있는 정도의 삶이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소박한가요? 그 소박함이 어쩌면 행복의 다른 이름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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