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매거진 [레전드인터뷰] 바이올리니스트, 손수경 | 레전드매거진

바이올리니스트, 손수경

동양인 소녀가 영국의 한 오디션 프로에 오르자
영국의 여러 매체가 그녀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름은 손수경,
바로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라 할 수 있는
〈Britain’s Got Talent〉에서 동양인으로선 최초로
세미 파이널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해낸다.
65%에 가까운 시청률을 자랑하며 많은 영국인의 사랑을 받는 프로그램이기에
영국이 그녀에게 관심 갖는 일은 당연했으리라.
이 소식은 모국에도 전달되어 매체의 주목을 받았지만,
‘손수경’이라는 아티스트 개인이 가진 잠재력에 주목하기보다
‘한국인’과 ‘최초’라는 타이틀에 집중한 언론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녀가 그리는 크로스오버의 새 지평
바이올리니스트 손수경

만나서 반갑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손수경 님.

안녕하세요. 바이올리니스트 손수경입니다. 레전드매거진에서 제게 이렇게 인터뷰를 요청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먼저 드리고 싶어 요. 다른 인터뷰에서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이 자리에서 풀어보겠습니다.

최근엔 무엇을 하며 지내셨나요?

지난 1월에 스위스의 다보스 지역에서 열리는 ‘세계 경제 포럼’에서 연주할 기회가 있었어요. 페이스북의 주커버그나 아마존의 베이조스 같은 저명한 기업인을 비롯해, 경제학자나 정재계 유명 인사들이 모여 세계 경제에 대해 토론하고 분석하는 장소인데 제가 그런 곳에 초청을 받다니! 너무나 영광스러운 경험을 했네요.

최근 근황을 말씀드리자면 앨범을 한 장 준비하고 있어요. 어쿠스틱하고 미니멀한 앨범인데요, TV나 어워즈 세레모니 등 여러 미디어를 통해 비친 제 모습 때문인지, 절 전자 바이올리니스트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이 계신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클래식 바이올린을 전공한 클래식 연주자랍니다. 많은 분들의 오해를 풀고자 이번엔 어쿠스틱 바이올린으로 녹음을 준비하고 있어요.

자신의 전공으로 돌아간 수경님이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 기대가 되네 요. 조금은 진부할 수도 있지만 성장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요. 어떤 계기로 바이올린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유치원 때부터 저희 언니와 함께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언니가 연주를 너무 잘하다 보니 비교가 많이 되었어요. 그게 싫어서 다른 악기를 하고 싶었고 그래서 선택한 게 바이올린이었어요. 이후에도 경기초등학교의 교육 방침이 ‘한 사람이 하나의 악기는 다룰 수 있어야 한다’였기 때문에 꾸준히 바이올린을 하게 되었어요. 사실 바이올 린뿐 아니라 성악도 배우고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 경기 음악콩쿠르’에서 바이올린으로 대상을 받으면서 바이올린에 소질이 있는 것 같아 성악보다 더 집중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 바이올린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좀 더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기 위해 유학을 결정하신 건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아버지께서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셨는데, 영국의 대학에서 교환 교수 제의를 받으셨고 고민 끝에 온 가족이 함께 영국으로 가게 된 거예요. 영국에 도착하고 나서야 찾아간 곳이 ‘ 로열 아카데미 주니어’였죠. 그곳에서 오디션을 보고 수석으로 입학 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바이올린을 전공할 수 있었어요.

그곳에서는 배운 내용 중 무엇이 가장 인상적이었나요?

화성학 이론을 배우고, 현악 편성, 관현악 편성, 전공 및 부전공 수업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악기를 대하는 그들의 문화가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었어요. 처음 바이올린 레슨을 받을 때있었던 일을 말씀드릴게요. 그때는 제 영어가 부족해서 어머니도 수업에 함께 계셨는데, 선생님은 제 연주를 보시더니 자세는 훌륭하지만 뉘앙스가 너무 기계적이라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덧붙이길 아이들의 집중력은 30분이 한계이니, 억지로 연습시키기보단 좋아하는 작곡가나 흥미가 생기는 곡을 찾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 어요. 한국에 있을 때엔 기본기를 2~3시간씩 연습하며 지루한 하루를 보냈는데 선생님의 눈엔 그게 보였던 것 같아요. 스케일이나 기본 기, 테크닉은 우리가 얼마든지 알려줄 수 있지만, 스스로 즐기는 방법을 찾지 못하면 대학을 가기 전에 흥미를 잃고 질려버릴 것이라는 말씀도 덧붙이셨죠.

이번에는 〈Britain’s Got Talent〉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참가를 결정한 계기가 무엇 이었나요? 참가할 당시에 화제가 될 걸 예상하셨어요?

전혀 못했죠.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한 것이었으니까요. 영국에는 레이블이 많지가 않아요. 소니, 유니버설, 워너, 버진 정도가 전부 죠. 그러다 보니 하나의 레이블에 수백 명의 아티스트가 몰리는 상황이에요. 저도 몇 번씩 데모를 보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어요. 그러던 중, 룸메이트 재닌과 함께 TV를 보다 저희 학교 선배들이 BGT에 나온 모습을 보고 우리도 한 번 나가볼까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죠. 큰 기대를 하기보단,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절차가 복잡했어요. 신청서를 작성하고 지원이 접수되자 방송국에서 저희에게 영상을 요청하였고 부랴부랴 영상을 찍어서 보냈죠. 그랬더니 이번에는 프로그램 제작진 앞에서 비공개 테스트가 있었어요. 그 테스트까지 마치고 나야 비로소 세분의 심사위원 앞에서 공개적으로 오디션을 볼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었죠. 사실 전자 바이올린도 이때 처음 잡아봤어요. 비공개 테스트에서 재닌이 전자 피아노를 연주했기 때문에 어쿠스틱 바이올린보단 전자 바이올린이 더 어울릴 것이라는 제작진의 판단에서였죠. 방송이 일주일도 채 안 남은 상황에서 케이블은 무엇을 쓰는지, 앰프는 어떻게 소리 내는지도 모른 채로 무작정 전자 바이올린을 구입하고 방송에 나갔죠.

그만큼 평소에도 연습을 꾸준히 하고 계셨기 때문이 아닐까요?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는 말이 지금 상황과 참 어울리는 것 같아요. 방송이 나간 후에는 많은 화제가 되었죠?

맞아요. ‘동양인 소녀, 화려한 퍼포먼스로 무대를 수놓다’ 라며 관심이 끊이질 않았어요. 집 밖을 나서면 절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신문, 방송, 라디오 등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이 끊이질 않았죠. 이렇게까지 주목받는 것은 상상치 못했기 때문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했어요.
그 당시 인터뷰에서 “I’m proud to be a Korean”이라고 이야기를한 적이 있어요. 스스로 한국인이라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했고, 우 리나라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한 발언이었는데 그것이 실수가 됐죠. 왜냐면 BGT는 Britain’s라는 이름 그대로 영국 시민권자만 참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거든요. 그 말을 한차례만 언급한 것이 아니라 여러 인터뷰에서 같은 말을 해버려서 주워 담을 수도 없었어요. 돌이켜보면 제가 나갈 수 있던 것도 재닌과 듀엣을 결성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최종적으로 저의 도전은 준결승 무대로 그치게 되었죠. 결과에 아쉬움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결승 전에 임하는 마음으로 준결승을 준비했고, 같은 조의 참가자들이 결승에서 1, 2등을 차지한 다이버시티와 수잔 보일이었기 때문에 후회나 미련이 남지는 않아요.

오랜 시간 클래식을 배우셨는데 현재는 크로스오버 영역에서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크로스오버 장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가 ‘로열 컬리지 오브 뮤직’에서 1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을 때의 이야기예요. 저도 다른 대학생들처럼 휴학계를 내고 자신의 직업을 찾기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죠. 그 당시 언니가 ‘아리랑 TV’ 의 보도국에서 일하고 있던 때라 언니를 만나기 위해 방송국을 찾아 갔는데, 그곳에서 우연찮게 어떤 프로그램의 MC 자리를 제의받으며 테스트를 한 적이 있어요. 어릴 때부터 무대에서 연주를 해왔기 때문에 카메라 앞에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는데 그 점을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그렇게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Korea 101〉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고, 제가 독특한 억양의 영국 영어를 구사하다 보니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 〈The Box Office〉나 대중음악을 소개하는 〈World Pops〉의 진행도 맡게 되었어요. 프로그램 3개를 진행하다 보니 용돈벌이가 쏠쏠했기 때문에 지치지 않고 재미있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한때는 이대로 방송일을 계속 일을 해볼까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동안 바이올린을 공부했던 것이 아쉬워서 복학을 결정하게 되었어요.

의 이야기예요. 저도 다른 대학생들처럼 휴학계를 내고 자신의 직업을 찾기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죠. 그 당시 언니가 ‘아리랑 TV’ 의 보도국에서 일하고 있던 때라 언니를 만나기 위해 방송국을 찾아 갔는데, 그곳에서 우연찮게 어떤 프로그램의 MC 자리를 제의받으며 테스트를 한 적이 있어요. 어릴 때부터 무대에서 연주를 해왔기 때문에 카메라 앞에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는데 그 점을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그렇게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Korea 101〉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고, 제가 독특한 억양의 영국 영어를 구사하다 보니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 〈The Box Office〉나 대중음악을 소개하는 〈World Pops〉의 진행도 맡게 되었어요. 프로그램 3개를 진행하다 보니 용돈벌이가 쏠쏠했기 때문에 지치지 않고 재미있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한때는 이대로 방송일을 계속 일을 해볼까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동안 바이올린을 공부했던 것이 아쉬워서 복학을 결정하게 되었어요.

지금의 손수경이 있기까지,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준 사람이 있다면 어느 분인가요?

어머니의 가르침으로 어린 시절을 슬기롭게 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어릴 때 워낙에 산만하고 주의력이 부족한 아이여서 집중 력을 기르기 위해 어머니가 운동을 시키셨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엔 학교에서 쇼트트랙 선수를 하기도 했고, 대표로 대회에 나가 입상한 덕에 학교에 쇼트트랙 팀이 생기기도 했죠. 운동을 한 덕에 지구력과 집중력이 또래 아이들보다 뛰어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것이 긴 시간 집중해서 바이올린을 연습할 수 있던 원동력이 되었고, 운동을 좋아하고 잘했기 때문에 영국이라는 낯선 환경에서도 아이들과 쉽게 어울려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은 놀면서 친해지잖 아요. 또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의 밸런스를 조절하고,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선 할 일을 먼저 마치는 것이 순서라는 것을 어머니의 가르침을 통해서 몸소 배우며 자랐어요. 아버지 역시 언제나 저를 묵묵히 지지해 주셨어요. 너무 지쳐서 힘들 때면 엄마보다 제 편을 더 들어주기도 하셨고 “넌 나의 챔피언”이라는 말 한마디에 큰 용기를 얻기도 했어요.

손수경에게 바이올린이란?

음… 설렘? 설렘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영국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소외받고 있던 절 구해준 것이 바이올린이잖아요. 바이 올린을 연주하고 아이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며 학교를 가는 것이 설레고 기대되기 시작했어요. 바이올린을 통해 클래식을 알아가며 새로운 세상을 접하는데서 오는 두근거림도 컸죠. 그리고 BGT에서 많 은 사람들에게 절 각인시켜준 것은 바이올린이었고 수많은 에이전시 에게 제안을 받으며 제 앞날을 생각할 때면 너무도 흥분돼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기도 했고요. 한국에 온 뒤로도 바이올린을 통해 많은 아티스트를 만나며 새로운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끊이질 않았죠. 여전히 바이올린의 선율은 제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어 요. 앞으로도 바이올린을 통해 어떤 일을 겪을지, 이다음엔 어떤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주 기대가 돼요. 그 설렘 때문에 지금까지도 연주를 지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대중에게 어떤 바이올리니스트 기억되고 싶으세요?

잘 만든 영화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가슴 한편에 기억되는 이미지를 남기듯, 저도 영감을 주고 여운을 남기는 바이올리니스트로 여러분의 가슴속에 오래 남을 수 있는 연주자로 기억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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