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인터뷰] 모터스포츠, 김의수 감독 | 레전드매거진

모터스포츠, 김의수 감독

한국 1세대 카레이서가 들려주는 자동차 이야기
제일제당 레이싱 김의수 감독

반갑습니다 감독님. 먼저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제일제당 레이싱의 김의수 감독입니다. 저는 오프로드 시절부터 지금까지 약 30여 년간 레이싱을 해온 1세대 카레이서예요. 그동안 내내 선수생활에 전념해왔다면 작년 한해는 감독으로서의 포지션에 더 집중했던 기간이었습니다.

이력을 살펴보니 ‘1993년도 청포대 레이스 오프로드’에서 처음 프로로 데뷔하셨습니다. 데뷔 당시인 1990년대 초반과 2020년 현재를 비교해 볼 때, 카레이싱 종목에서 종합적으로 느껴지는 변화는 어떤 부분이며, 언제 가장 크게 변화를 실감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전반적으로 다양한 변화가 있었죠. 모터스포츠는 여타의 구기 종목들과는 다르게 자동차라는 기계와 사람이 함께 풀어가는 스포츠잖아요. 아무래도 가장 크게 변화를 실감하는 것은 확연 하게 진화된 기술적인 부분들과 압도적인 차량의 스펙이죠. 카레이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변화했어요. 세대교체 및인터넷 활성화와 함께 찾아온 변화라고도 할 수 있는데, 과거 에는 모터스포츠 분야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루트가 한정적이었다면 요즘은 웹 브라우저에서 검색만 해도 팀 이름부터 선수의 기록까지 한 번에 알 수 있죠. 90년대의 세대는 조금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공부와 일이 삶의 전부였던 세대라 면, 요즘 세대는 관심사가 다양하고 주관이 뚜렷하며 경험을 중요시하는 적극적인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그간 해외로부터 유입된 새로운 문화로 인한 영향이라고 할 수도 있을것 같아요.

앞으로 모터스포츠가 국민들에게 더욱 친숙한 스포츠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보시나요?

1세대 모터스포츠인으로서 가장 절실히 느껴온 부분은 모터스포츠에 대한 많은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이에요. 소위 그들만의 리그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하는 일을 대중들에게 지속적 으로 어필해야 하죠. 정규 매체에서 모터스포츠의 방송 편성 시간대를 보면 보통 새벽인데다 경기 횟수도 구기종목에 비해 적은 편이라 흥미를 가지던 사람들도 금방 잊어버리기가 쉬운 게 현실이에요. 하지만 유튜브를 비롯한 다양한 채널들은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통로로 작용하죠. 제가 유튜브를 시작한 건 이런 이유예요. 모터스포츠인들이 대중들에게좀 더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본보기가 되고 싶었습니다. 이 나이에 혼자서 방송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모터스포츠의 역사를 비롯해 흥미로운 부분들을 전달하는 데에 있어 그동안 많이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이상은 그들만의 리그라는 말을 들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운영한 유튜브 채널이 1년 사이에 팔로워 5만 명을 기록하면서 의도한 목표를 어느 정도는 달성했구나 싶어 뿌듯했죠. 사람들에게 더욱 친숙한 스포츠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유대관계를 형성해야 하죠. 저는 지금이 바로 모터스포츠인들에게 이런 노력이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해요.

유튜브 채널 운영하시면서 인상 깊었던 일화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재작년에 읫차채널 방문자들의 연령대와 성별을 통계 내보니 남성 99프로, 여성 1프로, 연령대별 비율은 10대가 0.05프로 정도였어요. 최근에 통계를 내보니 여성 16프로, 10대가 7프로로 일 년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죠. 또 현재 구독자 수에 비례해 봤을 때 한국에서 3천 명에 가까운 아이 들이 저희 채널을 보고 있다는 계산이 나와요. 지난 해 마지막 경기 때 부모님의 손을 잡고 방문해 흥미 진진하게 경기를 관람하던 어린이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지나가니 ‘김의수다!’라며 저를 알아보더라고요. 유튜브를 통해 아이들이 쓴 댓글을 제가 읽어주고 질문에도 열심히 답변하고 있거든요.
가끔 그 아이들의 부모로부터 편지를 받아요. 집에서 온종일 게임만 하던 아이가 제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모터스포츠에 관심을 갖고, 경기장에 가보고 싶어 하는 등 활동적인 아이로 변했다며 감사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요. 채널을 운영하면서 가장 뿌듯한 순간은 그런 피드백을 받을 때죠.
한편으로는 새로운 책임감도 생겨요. 40대 남성분들 중에는 이런 분도 있었어요. 카레이싱이 자신의 로망 이었는데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저를 통해 질문을 마음껏 할 수 있어서 좋다는 분. 한 번은 저희 채널을 통해 모터스포츠 차량을 정비하는 매케닉 분야에 관심을 보이던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 에게 저희 공장에 오라고 했고, 지난해에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정직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정말 일 잘해요. 이런 일들을 통해 모터스포츠의 저변 확대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메시지 보낸 것을 계기로 실제로 매케닉이 된 직원이 있다니 놀랍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달라졌네요.

실은 문의가 정말 많이 와요. 저 혼자서는 다 감당할수 없어서 이력서를 모아서 감독들에게 뿌리기도 해요. 사람들이 그동안 모터스포츠에 관심을 가졌는데 다가갈 기회가 없었고 방법도 몰랐다면, 저를 통해 새로운 일에 도전하거나 정보를 얻게 되는 이런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이렇게 여러 가지 일들을 바탕으로 올해 2020년의 목표를 세웠습니다. ‘의수네 자동차’ 팀을 만들어 일반인들도 쉽게 참여할 수있는 모터스포츠 동호회나 카트 팀을 만들 거예요.
모터스포츠의 장벽은 생각보다 높지 않아요. 물론 참여하는 데 있어서 많은 비용이 드는 현실적인 한계는 존재하지만, 일반인들의 이러한 한계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모터스포츠의 매력을 느낀 건 언제였고, 무슨 일이 있었나요?

어릴 때부터 차를 너무 좋아해서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를 전부 혼자 배웠어요. 그저 차를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던 제가 본격적으로 모터스포츠에 눈을뜬 건 1990년 울산에서 열린 자동차 레이스를 관람하면서부터였습니다. 당시 우연한 기회로 대회의 홍보물을 보게 됐죠. 그전까지는 그런 세계가 있다는 것조차 꿈에도 몰랐어요. 그렇게 찾아가 비포장도로 에서 펼쳐지는 경기를 관람하면서 이 길이 내 길이라는 것을 직감했어요. 자동차가 제 운명임을 알았죠.
당시만 해도 재산으로 간주되던 자동차로 박치기를 하고, 날려버리는 그 경기는 저에게 새로운 세계나 다름없었어요. 한편으로는 자동차는 제가 죽기 전까지 절대 사라지지 않고 진화를 거듭할 것이며, 앞으 로의 발전이 기대되는 분야였기에 사업화를 할 경우 생길 긍정적인 효과까지 큰 그림으로 머릿속에 펼쳐 졌어요. 드라이버들끼리 경기를 마치고 함께 어울려 노는 모습과 분위기도 너무 좋아 보였고요. 대회가 끝난 후 수소문을 거쳐 대회에 출전했던 레이싱 팀을 무작정 찾아갔어요.

선수생활을 시작하셨을 당시 롤모델이 있었나요?

모터스포츠 분야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할 경우 아직 까지는 장래를 예측할 수 있는 분명한 루트가 없어 요. 축구를 예로 들면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국가대표로 선발되고, 이후 코치나 감독으로 가게 되는 루트들이 있잖아요. 또 제가 처음 레이싱을 시작할 당시에는 아직 초반이다 보니 선배들이 곧 경쟁자이 기도 했어요. 당시 경쟁에서 반드시 이기고 싶은 사람이 있었어요. 박정용 감독님인데, 지금은 레이스는 직접 안 하시고, 협회 쪽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계세요. 그분의 플레이를 보며 나도 저렇게 타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자극이 되었죠.

감독으로서 팀을 이끌어 나가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2019년 나이트레이스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을 때. CJ에서 레이싱 팀을 분리해서 운영 한 건 2016년부터였어요. 실은 그때 굉장히 힘들었어요. 팀 성적도 별로 좋지 않았었고. 그러다 2019년에 서주원, 김동은 선수를 영입해 레이스를 했는데 결과적으로 김동은 선수가 1위, 서주원 선수가 3위를 기록해 더블 포지엄에 올라가며 단번에 기록을 세웠죠. 매번 우승을 하던 팀이 2등이나 3등을 하면 사람들이 왜이렇게 못하냐, 연습을 안했냐는 반응을 보이잖아요.
그런데 매번 잘 안되던 팀이 조금씩 기록이 좋아지며 성장하면 지켜보는 팬들도 재미가 있죠. 경기가 끝나고 나서는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동안의 서러움이 감정적으로 폭발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정말 통쾌하게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에 더욱 기뻤어요. 가끔 1등을 해놓고도 찝찝한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라이 벌이 뭔가 실수를 해서 어설프게 1등을 했을 때가 그렇죠. 결과적으로 승부에서 이겨 KPI를 달성한다고 하더라고, 제대로 승부를 해서 1등을 한 것만큼 기쁠 때는 없어요.

감독으로서 힘들 때는 그럴 때예요. 가끔 모험을 할때가 있어요. 불확실한 상황에서 결단력을 갖고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죠. 경기가 시작되기까지 시간은 3 분 남았고, 어떤 결정을 1분 안에 해야 하는 상황에서 감독으로서 선수에게 확신을 주지 않으면 매케닉도 드라이버들도 모두 자기 드라이빙에 최선을 다하지 못해요. 그렇지만 겉으로는 확실하다 이야기하고 속으로는 확률이 반반이라는 것을 알기에 혼자서 끙끙 앓아요. 제 판단이 옳았기를 바라면서.

그밖에 앞으로 또 다른 계획은요?

적은 비용으로도 레이스를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사람들을 모아 레이싱 관련 행사를 하며 우리만의 레이스를 만들고 싶어요. 그렇게 계속 이 분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거예요. 노후에 이루고 싶은 한 가지 꿈이 있는데, 65 세 무렵에 대학을 설립하는 거예요. 항공, 선박, 자동차와 관련된 교육을 통해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기관으로 누구나 배우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등록금을 내지 않고도 다닐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싶어요. 아직까지는 먼미래의 이야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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