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인터뷰] 기타리스트, 한상원 | 레전드매거진

기타리스트, 한상원

펑크(FUNK) 기타의 선구자
기타리스트 한상원

“아버지께선 제게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며
기타리스트가 되는 것을 허락하셨어요.
기타리스트로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요? 전 항상 행복합니다.”

안녕하세요 한상원 선생님. TV를 통해 보다가 직접 뵙게 되니 더욱 반갑습니다. 최근엔 무엇을 하며 지내셨나요?

안녕하세요. 기타리스트 한상원입니다. 제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일 두 가지를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하나는 후배 음악인을 육성하는 것으로, 호원대학교 실용음악학과에서 교수직을 맡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요. 또 다른 하나는 클럽에서 연주를 하는 것으로, 낙원동에 있는 ‘천년동안도’와 청담동에 있는 ‘원스인어블 루문’이라는 곳에서 매주 한 번씩, 그리고 이태원에 위치한 ‘올댓재즈’라는 곳에서 한 달에 한번씩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천년동안도’는 제가 20년가량 연주하고 있는 곳으로 최근에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나왔던 곳이 바로 이곳이고요. ‘원스인어블루문’은 분위기가 좋은 재즈클럽으로 이곳에서도 15년 이상 연주하고 있으며, ‘올댓재즈’ 역시 제가 많은 뮤지션을 만났던 곳입니다. 세 군데 모두 서울의 3대 재즈 클럽으로 유명세와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매주 무대에 서면 지치실 법도 한데, 그렇게 꾸준히 공연을 하시는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그럼요, 공연은 제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제가 이제 곧 60이 되는데, 이 나이까지 무대에서 버티려면 그 소리를 직접 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지 않고 방에서 홀로 연습만 한다고 하면 감각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래선 절대 안 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에게 클럽 공연을 권하고 있는 데, 바쁘거나, 쑥스럽고, 빈약한 페이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사양하시는 분들이 계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외국은 유명한 뮤지션들도 클럽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대가가 된 이후에도 클럽에서 라이브 연주를 계속하고 있어요. 저 역시 음악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실전에서 연주를 하는 게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방에서 연습할 때근육의 씀씀이와 무대에서 연주하는 근육의 씀씀이가 다르고, 마음가짐도 마찬가지로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무대에 서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한상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는 작은 안경인데, 이제는 일종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것같아요. 패션을 고수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평소에도 안경을 자주 쓰지만, 처음부터 작은 안경을 쓰던 건 아니었어요. 1997년, 저의 2집 <Funky Station>을 발매한 디지털 미디어라는 기획사에서 알이 작은 안경을 껴보는 건 어떻냐고 권유를 했었어요. 처음엔 영 불편하고 이미 지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자꾸 권유하셔서 마지못해 몇 번 껴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주변의 반응이 괜찮아서 자꾸 쓰다 보니 익숙해져서 어느새 제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것 같아요. 오히려 이제는 알이 큰 일반적인 안경을 쓰면 어색해져 버렸어요. 특히 무대에 오를 땐 꼭 색이 들어간 안경을 끼고 있어요. 제가 연주할 때 저도 모르게 인상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그러다 어느 날부터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인상을 많이 쓴다는 것을 깨닫고, 그 이후엔 더욱 신경 써서 쓰기 시작했어요. 안경을 끼면 표정에 신경을 안 쓰고 훨씬 자연스럽게 연주에 집중할 수 있고, 마치 제복을 입듯이 안경을 쓰는 게 나름대로 의식이랄까요. (웃음)

클래식 기타로 입문하였는데 현재는 일렉 기타를 치고 계시잖아요. 어떤 이유에서 전향하신 건가요?

제가 클래식에 빠져있을 때 저희 큰형은 그룹 사운드를 하고 있었어요. 형은 멀티 플레이어였 는데 키보드, 기타, 베이스 가릴 것 없이 다 다룰 줄 아셨죠. 제가 방에서 바흐나 베토벤의 음악을 듣고 있을 때, 형은 딥 퍼플, 레드 제플린,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재니스 조플린의 음악을 듣고 있었죠. 종종 문 머너로 음반에 맞춰 연주하는 형의 애드리브(즉흥연주)가 들리곤 했는 데, 그저 신기하다고 생각만 했었지 큰 관심은 없었어요. 하루는 형 방에 들어갔는데 에머슨 레이크 앤파머(Emerson, Lake & Palmer)의 <Trilogy> 라는 음반이 눈에 뜨였어요. ‘저게 도대체 무슨 음악일까?’하는 호기심이 생겨 재생을 해보았는데, 신기하게도 첫 트랙의 제목부터 ‘From the Beginning’이었어요. ‘처음 듣는 음악의 제목이 처음부터라니 이거 희한한 일이다’라는 생각에 더욱 호기심이 생겼고, 앉은자리에서 그 음반 전체를 다 들었어요. 마치 한번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것처럼 스토리가 머릿속에서 그려졌고, 트랙 하나하나가 전부 이야기로 연결되는 느낌과 이루 말할 수 없는 너무나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그러면서 형이 가지고 있는 음반에도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죠. 훗날 알게 된 사실인 데, 제가 클래식을 들을 때 건넛방에서 형이 듣던 바로 그 음반이 <Trilogy>였던 거죠. 그렇게 깊은 감명을 받은 저는 클래식 기타에서 일렉 기타로 전향하게 되었어요. 그때가 중학교 2학년 내지는 3학년 때였죠.

형님의 영향으로 일렉 기타를 시작하게 되셨군요. 그때는 어떤 음악을 좋아하셨어요? 펑크 (FUNK) 기타계의 대부가 되기까지 어떤 뮤지션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일렉 기타로 전향한 이후에는 에머슨 레이크 앤파머나 킹 크림슨, 예스 같은 프로그레시브 락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제 연주를 본 형들은 “상원아, 넌 빨리 칠 줄만 알지 블루스(BLUES)가 없어.”라고 이야기했어요. 제가 “브루스…? 그게 뭐예요?”라고 물어도 “아 글쎄 그런 게 있어~” 라면서 제대로 알려주진 않고 연주에 블루스가 없다는 핀잔만 들었죠. 블루스가 궁금해진 저는 명륜동에 있는 바로크 레코드사로 가서 블루스에 대해 물어보았고 사장님은 비비 킹의 음반을 들어보라 하셨어요. (이분이 지금 ‘천년동안도’의 사장님이신 임원빈 씨였죠.) 당시 기타의 신이라 불리던 에릭 클랩튼도 자기는 프레디 킹이나 비비 킹의 흉내를 내는 사람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하였기에 기대에 차 비비 킹의 음반을 찾아 보았죠. 그런데 온 동네를 아무리 뒤져도 찾기 어려웠어요. 포기하고 있던 어느 날, 신세계 백화점 옆의 도깨비 시장에서 우연히 어떤 음반을 보았는데 표지에 ‘B.B. King’이라고 쓰여있는게 아니겠어요?! 어찌나 기쁘던지.

긱스 시절과 그 이후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긱스는 슈퍼 밴드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는데 결과물에 아쉬움을 표하는 사람이 많기도 했어요.

연주 활동을 하며 알게 된 키보드의 강호정, 정원영, 베이스의 정재일, 드럼의 이상민, 보컬의 유진하 씨와 함께 한상원 밴드를 결성하여 인지 도를 쌓아 나가다, 보컬의 유진하 씨가 사정상 그만두게 되고 이적 씨가 들어오며 프로젝트 밴드 긱스로 발전하게 되었어요.

긱스는 대중적인 감각을 지닌 이적 씨의 영입으로 곡이 한층 업그레이드되었고, 멤버들도 연주력 향상과 더불어 작, 편곡 실력이 무르익으며 데뷔하기 전부터 최고의 밴드라는 찬사를 들으며 대중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어요. 그러나 노래가 너무 앞서갔기 때문일까요? 1999년 발매한 1집 앨범인 <GIGS>가 그리 성공적이진 못했 어요. 저희 스스로도 그런 대중의 반응에 놀라기도 했고, 내부적으로도 피드백을 거쳐 팀의 컬러를 다잡고 2003년에 2집인 <GIGS 02> 발표했는데 2집의 성적도 기대보다 저조했어요. 그래도 워낙에 쟁쟁한 멤버들이었기 때문에 라이브 위주로 즐겁게 활동을 하였으나 점차 활동이 뜸해지며 각자의 음악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유재석 씨와 함께 공연을 하셨잖아요. 유플래쉬와 한상원의 만남! 그런데 생각보다 괜찮은 콜라보였어요. 그때의 감상을 듣고 싶어요.

방송국에서 섭외를 받은 뒤 처음엔 가벼운 마음 으로 현장을 갔어요. 그런데 유재석 씨가 드럼을 치는 모습을 보니 같이 공연을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제작진에게 유재석 씨와 함께 공연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드렸는데 반려하는 눈치였어요. 저는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지만, 제가 자꾸 요청하면 폐가 될 것같아서 나중에 다시 조용히 말씀을 드렸고 마침내 공연이 성사되었죠. 사실 공연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유재석 씨 연주의 좋은 부분에제 연주를 맞추면 가능한 일이거든요.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인데, 흔히안 되는 부분에 집중해서 그걸 고치려고만 해요. 그런데 좋은 부분에 집중해서 장점을 극대 화하는 게 더욱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드럼을 49일 치신 유재석 씨와 기타를 49년 연주한 제가 화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면 얼마나 좋은 메시지예요. 꼭 전문적인 음악인이 아니어도 함께 할 수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유재석 씨는 전체를 포용하는 능력을 갖고 계시 더라고요. 그리고 절대 무리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셨어요. 사실 그건 평생을 연주한 우리들도 힘든 건데, 유재석 씨는 다른 경험을 통해서 체득을 하신 거였죠. 무대 뒤에서 전체를 아우르는 시야와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물 같은 대처법에 대해 알고 계셨던거죠.

49년, 기타리스트로의 인생을 돌아볼 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신가요?

항상이요. “하고 싶은 걸 할 때 가장 행복하다” 는 아버님의 말씀처럼, 제가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일도 음악이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음악이며, 제가 하루 종일 생각하는 것도 음악, 제가 즐기고 좋아하는 것이 모두 음악이에요. 또 기타를 손보고 세팅하는 것도 나의 즐거움중 하나죠.

제가 해야 하는 일은 명확하고 그걸 위해서 오늘도 고민하고, 내일도 또 고민한다는 것. 전 지금도 기타를 꺼내서 제가 부족한 부분을 연습해 요. 그것이 절 찾는 시간이에요. 전 항상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에 더욱 열중하게 돼요. 갈증이 없으면 물을 취하려 하겠어요?

“끝으로 저는 많은 분들이 제게 자주 하시는 질문중 하나인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점에 대한 답변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프로는 자기가 무얼 모르 는지 아는 사람이고,
아마추어는 자기가 아는 것만 아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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