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인터뷰] 가수 임병수 | 레전드매거진

가수 임병수

남미의 뜨거운 열정과 유쾌함이 넘치는 가수
임 병 수

아이스크림 사랑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임병수는 어린 나이에 볼리비아행
이민 길에 오른 최초의 이민자이다.
“모르는 나라로 갔다가 모르는 나라로 다시 돌아왔다.”고
자신의 이민 경험을 밝히는 그의 음악엔 남미의 감성과 더불어 분명한
한국인 피가 흐르고 있다.
84년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약속>으로 데뷔한 이후,
2집 앨범의 ‘아이스크림 사랑’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유명세를 얻기도 하였고,
소속사의 문제로 앨범 활동이 중지되는 등굴곡을 겪었지만 태생적으로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었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남미의 뜨거운 열정과 아이스크림처럼 시원한 즐거움 속에 인생의 그늘마저
넘치는 유쾌함으로 승화시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오렌지 티를 안 드신다는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오랜만에 뵙는 것 같아 더욱 반갑기도 한데요, 최근에 새로운 곡도 발표하시고 좋은 소식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고 계셨나요?

Hola~! 임병수입니다. 제가 원래 장난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시작할 때 긴장을 몰아서 해버리면 나머지는 편하게 인터뷰할 수 있겠죠? (웃음) 지난 10월에 신곡 <오라 오라>를 발표했습니다. 어서 오라는 뜻의 ‘오라’와 스페인어 ‘Hola(안녕하세요)’를 제목으로 다 같이 모여 신나게 놀아보자는 콘셉트로 작곡한 흥이 넘치는 라틴풍의 노래인데요, 최근에 뮤직 비디오 촬영을 끝마쳤고 유튜브 지니뮤직 채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근황을 이야기하자면 한국을 떠나지 않고 꾸준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방송 출연이 뜸하면 볼리비아로 돌아간 줄 아시는 팬분들이 많으세요. 그래서 언제 복귀하냐고 묻기도 하시고, TV나 라디오 활동이 많을 때엔 또 언제 귀국한 건지 물으시는데, 한국에 거주하고 한국에서 활동하며 무대를 가리지 않고 어디서든 노래하고 있고 언제나 새로운 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과일 티를 좋아하신다고 들어서 오렌지 티를 주문하였습니다,
괜찮으시죠?”
“아, 오렌지요? 큰일 났네…”
“헉, 선생님 오렌지 티는 싫어하세요?”
“아니, 이러면… 너무 좋잖아요. (웃음)”

어릴 때 볼리비아로 이민을 가셨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그곳에서의 생활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저희 가족은 7남 3녀로 구성된 대가족이었고 그중 제가 막내예요. 어릴 땐 대전에서 살다가 5살 무렵에 볼리비아로 이민을 가게 됐어요. 저희 아버님이 황해도 분이신데 직접 전쟁을 겪으신 세대라 저희 가족을 넓고 평화로운 나라에서 키우길 원하셨나 봐요. 몇 개의 남미 국가에 이민을 신청하셨는데 그중 볼리비아에서 가장 먼저 대답을 주었고, 그 당시는 우리나라보다 볼리비아가 더 잘 살았기 때문에 볼리비아행을 결정하게 된 거죠. 저희와 함께 한, 두 가정이 이민을 갔었는데 볼리비아 최초의 이민자 1 호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볼리비아는 해발 4000M에 가까운 고산지대에 위치한 나라예요. 그곳에서 저희 가족은 나무 제재소를 운영하였어요. 산에 큰 원두막을 짓고 자연을 벗 삼아 생활하였죠. 이따금 뱀이 지나 다니기도 했고, 산 벌레를 쫓을 목적으로 부리가 큰 앵무새를 기르기도 했어요. 산에서 자라는 바나나나 야생 열매를 줍기도 하고 작은 들짐승들을 잡아먹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산속에서의 생활이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그때는 대여섯 살의 꼬맹이였기에 그런 생활이 힘든 건지 좋은 건지 몰랐어요. 그냥 형들이 시키는 걸따르며 지냈죠. 좀 더 나이를 먹은 뒤에 갔다면 넓고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며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해요. 한편으론 대자연에서 뛰어놀며 깨끗한 공기를 마시는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이 제 발성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저희가 터를 닦아 놓으니, 볼리비아로 오는 이민자분들이 으레 저희 집을 들리곤 했어 요. 그럴 때마다 저희 어머니는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시고 환영회를 열었어요. 한국인 특성상 사람이 많이 모인 장소면 노래가 빠질 수 없잖아요? 너나 할거 없이 돌아가며 노래를 불렀고, 어머님이 고향의 그리움을 노래하실 땐 울음바 다가 되기도 했어요.

특히 저는 큰집의 막내였기 때문에 제 차례가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사실 꼬맹이가 노래를 해봐야 얼마나 대단하겠어요. (웃음) 그래도 손님들이 “막내가 노래를 참 잘하네요~”라며 절 예뻐해 주셨고 아버지는 제가 칭찬받는 모습 이 보기 좋으셨나봐요. 나중엔 손님이 올 때마다 제게 노래를 시키셨고, 어떨 때는 제 노래보다 손님들의 반응에 더 흡족해 하시기도 하셨어 요. 그런 분위기였기에 제가 가수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절 밀어주셨어요.

노래와 기타는 어떻게 배우신 건가요? 낯선 나라에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게 쉽진 않았을 거같은데…

저희 가족이 워낙 대식구다 보니 형제들이 하나 씩은 특기가 있었고 전 그걸 보고 들으며 자랐 어요. 사실은 형제들도 모두 독학이다 보니 쉬운 코드나 간단한 연주법 정도밖에 몰랐는데, 그래도 여러 형들에게 배웠기에 조금씩 방향이 달랐고, 저도 나름대로 응용하고 확장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하곤 했죠. 노래도 저보다 잘 부르는 형제가 많았어요. 저때는 자식이 가수를 지망하면 매를 들어서라도 말리는 부모님이 대다수였어요. 그런데 저희 아버지는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셨죠. (웃음)

어느 날 외국분들이 저희 집을 찾아오신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어머니에 대한 노래를 불렀 는데 그걸 듣고 우셨어요. 외국인인 제가 부르는 노래를 그분들이 듣고 눈물을 흘릴 정도면 내 감정이 잘 전달되었구나, 나한테도 재능이 있구나라는 생각에 자신감이 생겨 더 열심히 했던 거 같아요.

특별히 비결이랄 건 없고 기타던 노래던 그냥 많이 반복할 뿐인 거죠. 같은 곡을 수천번씩 연습하다 보니 몸에 완전히 배고 숙달돼서 남들이볼 때는 잘해 보이는 거예요. 사실은 그거밖에 못하는 건데. (웃음) 또 제가 노래와 기타를 동시에 연주하니 틀려도 실수한 척 안 하고 능청 스레 넘어가면 그게 맞는 반주, 맞는 노래가 되는 거예요. 기타와 내가 한 몸이 되니까 멋지게 보이는거죠.

한국으로 귀국하여 본격적으로 가수로 활동할때 어떤 기분이셨어요?

모르는 나라로 갔다가 모르는 나라로 다시 돌아온 느낌이었어요. 생각처럼 의사소통이 잘 되지않는데서 오는 불편함이 있었고, 노래하길 즐기고 큰 무대를 꿈꿨지만 일이 이렇게 커질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어요. 가수에 대한 큰 꿈을 갖고 시작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힘든 일도 많았죠. 그래도 전 어디를 가던 고무 줄처럼 쉽게 늘어나고 잘 맞춰주는 성격을 가지고 있고 제가 좋아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적응했던 것 같아요.

데뷔 앨범인 <약속>을 녹음할 땐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던 시절이라 한국어 발음이 어려웠어요. 그래서 제작자들마저 포기할까 하는 상황까지 왔는데, 딱 한 번만 더 시도해보자는 소속사 대표님의 권유 덕에 겨우 겨우 앨범이 완성될 수 있었죠. 그렇게 1984년에 <약속>으로 데뷔를 했고 MBC와 KBS에서 신인 가수상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기쁘기도 하고 신기 하기도 했어요.

1985년, 2집 <사랑이란 말은 너무 흔해>의 타이틀 ‘사랑이란 말은 너무 흔해’와 ‘아이스크림 사랑’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저는 전성기를 맞이 했어요. 방송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 쉴 새 없이 방송국을 오가던 나날도 있었고, 라디오에서는 “오늘의 첫곡 임병수의 아이스크림 사랑입니다~” 라는 소개와 함께 연신 제 노래가 흘러나왔어요. 어떨 때는 모든 채널에서 동시에 제 노래가 나오기도 했었죠. 비행기에서도 최신 가요로 제 노래가 나올 정도였어요. 그렇게 3집까지 인기몰이를 하며 활동을 이어갔어요.

총 7개의 정규앨범을 발표하셨는데 기억에 남는 소중한 앨범은 무엇인가요?

약속이라는 곡이 실린 제 첫 앨범 <약속>을 꼽고 싶어요.
약속이라는 노래가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가수 임병수가 있을 수 있었을까요?

신곡 ‘오라 오라’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녹음할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주세요.

10월에 발표한 ‘오라 오라’는 우선 스페인어로 가사를 작성한 뒤 작사가와 많은 대화를 나눠서 우리나라 말로 바꾸는 작업을 거쳐서 완성했어요. 그래서인지 곡을 쓸 때 나도 모르게 남미에서 살았던 감성이 묻어있는 것 같아요.

저때는 앨범을 만든다고 하면, 참여자들이 모두 스튜디오에 모여서 녹음을 했고, 작곡가가 자리를 함께 하며 아쉬운 부분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다시 녹음하곤 했어요. 녹음 인원이 많아지면 서로의 소리가 마이크로 들어가 온전하게 악기의 소리를 녹음할 수 없는 등의 부작용도 있었지만, 다른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고 메일로 파일을 주고받으면 미묘하게 음악의 길이가 달라지거나, 현장에서 바로바로 피드백을 받을 수 없어 선호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반드시 한 장소에 모일 필요가 없게 된 것 같더라고요.

가상악기의 품질이 굉장히 좋아져서 악기를 전부 녹음하지 않아도 괜찮아 졌고, 반드시 필요한 악기도 연주자와 의견을 조율하여 완성한 초안을 바탕으로 부족한 부분만 녹음을 요청하여 전달받으면 재녹음 없이 편집만으로 하나의 트랙을 완성할 수 있어서 아예 녹음실에서 만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어요. 그런 이유로 퍼커션은 볼리비아 현지인이 녹음한 트랙을 쓰기도 했어요. 저때와는 많이 달라져서 ‘이제는 녹음 방식이 많이 바뀌었구나’라고 놀라기도 했고 척척 작업해내는 요즘 후배들을 보면 참 잘하고 대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로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시나요?

가수가 사랑을 노래한다고 해서 사랑을 잘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웃음) 마찬가지로 저도 기본적으로 단 음식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에요.
그런데 아이스크림만큼은 종종 먹게 되더라고요.
더운 열기를 식혀주는 시원함과 달콤함이 주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죠.
아이스크림 사랑은 제게 큰 성공을 안겨준 곡이기 때문일까요?
아이스크림은 제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음식입니다.

조금은 철학적인 질문일 거 같아요. 임병수에게 노래란?

1984년에 데뷔하여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35년간을 노래한 가수로서 노래란 저라는 사람을 존재하게 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요. 제 주변 사람들도 저에게 노래할 때가 제일 멋있어다고들 이야기해주고, 저 스스로도 노래할 때가 제일 즐겁고 행복해요. 너무 힘들 때면 포기할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노래가 아니면 뭘 할 수 있나란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웃음) 노래를 만들 때도 행복하고, 노래를 부를 때도 행복하고, 노래 부를 생각만 해도 즐거워지는, 나를 나로 있을 수 있게 해주는 것, 그게 노래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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