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매거진 [레전드인터뷰] 피아니스트, 장지원 | 레전드매거진

피아니스트, 장지원

또래 아이들이 유치원에 갈 무렵, 그는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클래식 피아노로 음악에 입문한 그에겐 피아노란 부모님의 바람이었고,
유치원이었으며, 친구들과 소통의 도구이기도 하였다.
그룹사운드에 강한 흥미를 느껴 클래식과는 멀어졌지만 피아노를 포기하지 않았고
서울예술대학에 입학하며 본격적인 연주자의 길을 걷게 된다.
클래식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자신도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불후의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음악감독으로 무대를 지휘하고 있다.

전설을 써나가는 연주자
피아니스트 장지원

안녕하세요. 피아니스트 및 음악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장지원이라고 합니다. 제 본업은 피아노 연주자로 가수나 밴드의 세션을 하고 있으며, TV 프로그램의 음악 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KBS2에서 방영 중인 <불후의명곡> 음악감독으로 편곡 및 무대 조율과 장지원 밴드의 마스터로 불후의명곡 반주를 전담하고 있고, KBS1에서 방영 중인 <노래가 좋아>에서도 음악감독과 반주 세션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호서예술대학교에 출강하고 있으며 연말이 다가와서 공연 섭외가 많아져 감사하게도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피아노와의 만남

피아노라는 악기를 접했던 건 5살 때로 기억해요. 그 당시 한국에 피아노 붐이 일어서 집집마다 피아노 한 대씩 마련하는 게 대세였어요. 대세를 따라 저희 집도 피아노를 장만하였는데, 연주할 사람이 없으니 형과 제가 피아노 학원을 다닌 게 시작이에요. 형은 금세 흥미를 잃고 저만 계속 다니게 됐는데, 너무 어린 나이라 재밌는지 아닌지도 모르고 그냥 배웠던 거 같아요. 유치원 대신 또래들과 소통할 장소로 다녔던 걸지도 모르겠어요. 어쩌면 부모님이 가라고 하셔서 마지못해 갔던 거 같기도 해요. 어릴 때부터 시작해서 고등학생 때까지 클래식 피아노를 계속 배웠어요. 중학교 2학년 무렵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했어요. 음악이 좋고 밴드를 하고 싶었다기보단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좋아서 밴드를 하게 된 거였죠. 학원에서는 클래식 피아노를, 친구들과는 밴드를 하며 지냈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더 이상 클래식은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학원을 그만두고 밴드 음악으로 완전히 노선을 바꾸었죠.

저희 세대 학업의 목표는 대학교였어요. 저도 대학을 가야만 했고 오랫동안 피아노를 쳤으니 자연스레 클래식을 전공할 생각이었죠. 그런데 클래식 피아노에는 흥미를 잃었고 대학은 가야 하니 사회체육이라는 걸 준비했어요. 공부로는 힘들 것 같으니 운동을 해서 체대에 가라는 아버지의 권유에서였죠. 왜 피아노를 고집하지 않았냐면 밴드 음악은 인정을 받지 못하던 시대였고 실용음악이라는 학과가 있다는 사실도 모르던 때였어요. 그렇게 운동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3학년으로 올라가는 해에 같이 밴드 하던 친구들이 어디서 서울예술대학이라는 학교를 알아왔어요. “야, 우리 같은 음악을 하는 애들도 인정받고 대학을 갈 수 있대.” 그 말에 용기를 얻은 저는 다시 노선을 바꿔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죠. 이번엔 클래식이 아니라 실용음악을 목표로요. 서울예대는 전문대였지만 그 당시도 굉장히 경쟁률이 높았고, 집에서는 우려를 표했지만 이미 불붙은 저를 말릴 순 없었죠. 그리고 운이 좋게도 한 번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클래식을 배운 게 도움이 많이 된 거 같아요. 클래식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대학은 물론이고 지금의 연주활동을 할 수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레슨을 할 때도 클래식 교재를 연습하라는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해요. 요즘 친구들은 클래식을 안 하고 바로 실용음악으로 오는 경우도 많거든요.하지만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테크닉에 도움이 많이 되고 기본기가 확실히 탄탄해져요.

“장지원 밴드로 부활 같은 락스타를 꿈꿔보는 건 어떠세요?”
제가 10년만 젊었다면 그런 꿈을 꿨을지도 모르겠어요. 부활 같은 팀을 넘보기엔 너무 호기로운 것 같고 밴드의 인지도를 올리는 싶은 생각은 있죠. 술자리에서 종종 우리끼리 연주 앨범이라도 만들어보자고 이야기하다가도 바빠서 진행을 못하고 있어요. 사실 바빠서 못한다는 건 결국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겠죠. 만약 앨범의 가치가 더 높았다면 벌써 모든 멤버들이 모여서 시작을 했겠죠. 그런데 말만 나오고 시작을 못하는 거 보면 그런 욕심이 있지만… 있기는 하지만… 잘 안될 거 같아요.사실 연주 앨범은 만들어봐야 잘 팔리지도 않고…
뭐, 핑계죠. 핑계긴 한데, 아무튼 그렇습니다. (웃음)

연주자로의 첫걸음

대학에 들어가니 동기나 선배들의 실력이 너무 뛰어난 거예요. 휴학을 하고 연습을 더 해야 하나 고민을 할 정도로요. 불행 중 다행이랄지, 그때 정원이 40명이었는데 남·여 20명씩 나누고 그 안에서도 악기별로 배분하면 같은 악기는 2~3명 정도밖에 안 남았어요. 저는 남자 건반이다 보니 그중에서도 특히 귀했고 그 덕분에 동기나 선배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었어요.

그렇게 친해진 선배 중 한 분이 같이 방송을 해보자고 제안하셨어요. EBS 교육방송에서 방영하던 <아름다운 세상, 커다란 꿈>이라는 프로가 있었는데, 어떤 코너가 시작하면 10여 초 정도 되는 짧은 인트로를 연주하는 백 그라운드 밴드의 멤버로 참여하게 되었죠. 그 프로는 전국에 있는 고등학교를 돌아다니는 포맷이었어요.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 관객의 흥을 돋우고 호응을 유도하기 위해 리아라는 가수의 공연이 있었는데 그 반주도 같이 했죠. 그러면서 리아 누나와 친해지고 나중에 가수로 독립할 때 자연스럽게 세션을 하게 됐어요. 사실 세션이라는 게 뭔지도 잘 모르던 시절이었지만요. 비록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프로였지만 TV 방송에 참여한 게 연주자로서의 첫걸음이었던 거 같아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도대체 어떻게 했던 건지… 제가 어려워하던 선배라는 사람도 결국 21살이거든요. 21살짜리 세명과 20살짜리 한 명이서 겁도 없이 방송을 했던 거죠. (웃음) 어린 만큼 철도 없었고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니까 가능했던 일이었던 거 같아요. 매주 수학여행 가는 기분으로 재밌게 했던 거 같습니다.

편곡의 열쇠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데, 편곡을 체계적으로 공부했던 건 대학교 수업 시간밖에 없는 거 같아요. 너무 뻔한 이야기지만 결국엔 음악을 많이 듣고 많이 연습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 이죠. 전 편곡자인 동시에 연주자이기 때문에 제가 연주할 곡의 악보를 직접 그리곤 했어요. 전 아직까지도 남이 쓴 악보를 받지 않고 제 손으로 하나하나 그리고 있는데요. 자부심은 물론이고, 악보를 직접 그리다 보면 다른 사람이 편곡해놓은 요소를 정말 많이 찾아볼 수 있어요. 처음부터 남이 그린 악보를 받아보면 보이지 않을 때가 많거든요. 물론 처음엔 실패도 많이 했어요. 어떤 이론을 대입하기보다 귀로 듣고 경험적으로 판단했기 때문에요. 그런데 지금은 경험보다 좋은 선생님이 없는 거 같아요.

곡의 느낌이 많이 바뀌면 잘한 편곡, 조금 바뀌면 못한 편곡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신 거 같아요. 제가 불후의명곡 음악감독을 맡아 숱한 곡을 편곡하며, 처음에는 무리하게 바꿔도 봤어요. 그러다 어쩔 때는 그게 너무 신물이 나서 거의 바꾸지 않았던 적도 있고요. 지금 햇수로 10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같은 곡을 또 작업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심할 땐 5번 이상 편곡을 했던 거 같아요. 이럴 땐 정말 편곡을 위한 편곡이 되어버리죠. 아직도까지도 고민 중이고 명쾌한 해답은 아니지만, 편곡의 답은 가수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수가 바뀌면 반주에 손을 대지 않아도 곡이 바뀌어요. 요즘엔 그렇게 생각하며 작업하고 있어요. 애초에 명곡으로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린 이유가 좋은 코드 진행과 멜로디 때문인데 그걸 바꾸기 위해 애를 쓴 거였죠.

제가 편곡 강의할 때 하는 말인데, 사실 어느 정도는 이론은 알아야 해요. 조를 바꾼다던지, 긴장감을 주기 위해 도미넌트 코드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그 긴장감을 어떻게 클라이맥스에서 터트릴지 이론을 알아야 써먹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이론은 알고만 있으면 되는 거예요. 그 뒤로는 경험밖에 없는 거 같아요. 음악을 많이 듣고 남의 곡을 많이 분석하고 직접 편곡해보는 거죠. 저도 처음 편곡할 땐 한 달씩 걸렸어요. 방송 편곡이야 시간이 없으니까 디테일하지 못하고 굵직하게 작업한다지만 앨범 녹음이나 디테일이 필요한 작업들은 오래 걸리죠. 노하우가 쌓여야 시간이 단축되는데 그러려면 역시 경험밖에 없죠.

제가 불후의명곡 음악감독 3~4년 차까지는 진짜 갈 데까지 가는 편곡의 끝을 보여줬어요. 처음 1~2년 차까지는 쉬웠는데 3년 차에 접어드니 슬슬 아이디어가 고갈이 돼서 4년 차부터 변화를 위한 편곡을 진행하다 보니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방송을 보면 너무 부담스러워서 듣기 어려울 정도였어요. 같은 시기 방영했던 나는 가수다나 복면가왕 같은 프로들은 녹화를 격주로 진행하는데 불후의명곡은 매주 녹화를 했어요. 월요일에 녹화가 끝나면 화요일부터 편곡을 시작해서 목요일까진 편곡이 끝나야 금요일에 가수가 노래를 받아서 금, 토요일을 준비하고 일요일에 모여서 리허설 및 최종 정리를 해서 월요일에 녹화를 하는… 쳇바퀴 돌듯 그런 일정을 4년간 매주 반복하니 지친 거예요. 그래서 다른 친구에게 편곡을 맡기고 6개월 정도 쉬면서 다른 사람의 편곡을 들어보니, 그동안 내가 너무 좁게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지금은 제가 잘할 수 있는 편곡들은 직접 하고 제가 잘 못하는 편곡은 외부로 돌려서 더 잘하는 사람에게 맡기려고 하고 있어요. 결과물도 요즘이 훨씬 좋아진 거 같아요.

보람을 느끼는 순간

저도 다른 연주자들처럼 예전엔 밴드를 꾸려서 앨범을 내고 아티스트로 활동을 했었어요. <모비딕>이나 <시리우스>라는 밴드에서 활동했는데 결국엔 잘 안됐죠. 제 타이틀이 음악감독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세션이고 남의 뒤에서 도와주는 백업이잖아요. 그렇다고 제가 주인공이 돼서 전면에 나서고 싶은 건 아니지만 아쉬움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그런 제게 <부활>은 굉장히 뜻깊은 밴드예요. 제가 오랜 시간 부활의 공연을 함께하고 있는데, 김태원 형님을 비롯한 멤버들이나 부활의 팬분들까지 저를 세션 장지원이 아니고, 부활의 객원 멤버 장지원이라고 불러주세요. 저도 부활에 소속감을 갖고 있고 보람을 느낍니다. 부활과 같이 공연을 하고 있으면 제가 세션을 하고 있다기보단 같은 멤버로서 무대를 함께 한다는 생각에 잊고 있던 아티스트로서의 희열이 느껴져요. 무대를 가리지 않고 제 연주를 인정하는 좋은 피드백을 받을 때 연주자로서 보람을 느끼지만 그중에서도 김태원 형님에게 인정받을 때가 가장 기분 좋기도 하고요.

저도 일정이 있기 때문에 부활의 모든 공연을 함께 할 수는 없지만, 그런 때에도 따로 세션을 구하지 않고 언제나 제 자리를 남겨놓습니다. 그래서 더 감사하고 가능한 부활과 함께 연주를 하려고 합니다. 공연은 물론이고 부활의 앨범 작업도 함께하기 때문에 <부활>의 멤버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 삶에 음악이 필요한 이유

만약 연주만 있다면 추상적이고 가삿말이 붙어 있으면 조금 더 구체적일 순 있는데 본질은 하나라고 생각해요. 경험을 전해주는 거죠. 사람의 인생은 한 번뿐이고 그것도 나라는 인간의 입장에 한정된 경험이잖아요. 제 생각에 음악은 남의 경험을 대신 들려주는 것이라 생각을 해요. 제가 어떤 곡을 썼다고 하면 그건 제가 겪었고, 제가 공감하고, 제가 느꼈던 이야기잖아요. 다른 사람은 겪어보지 못했던 이야기 일 수도 있고, 같은 경험을 했어도 다르게 느낄 수도 있는 거니까 제 노래를 듣고 제 이야길 경험하는 거죠. 예를 들어 제가 아주 슬픈 이별의 노래를 들었을 때, 그런 슬픈 이별을 겪어보지 못했다면 그 이별을 했을 때의 감정을 대신 느끼게 해주는 것이죠. 음악을 듣는 건 남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유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치 책을 보는 것처럼요. 

책과 음악의 차이점이요? 
눈으로 보면 책이고 귀로 들으면 음악이 아닐까요?

앞으로의 바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프리랜서인 세션 연주자들에겐 더욱 크게 와 닿을 거예요. 세션 활동에 정년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 연주를 아주 잘하거나 감이 뛰어나신 몇몇 선배님을 제외하곤 대부분 나이가 들수록 후배들에게 조금씩 밀리기 시작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저도 형들을 밀어내면서 올라온 걸 수도 있고요. 그래서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어요. 제가 원하는 건, 앞으로도 지금처럼 세션과 방송에서 연주를 하며 편곡 작업을 소화하고 제 개인 작업들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저희 밴드 역시 잘 됐으면 좋겠어요. 장지원 밴드는 음악을 하며 알게 된 마음이 맞는 친구들이 모여서 결성한 밴드예요. 제가 제일 연장자긴 하지만, 다 또래기도 하고 공평하게 나이가 들어가는 입장이니까 끝까지 같이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각자의 스케줄이 있으니 공연을 항상 같이 하는 건 아니에요. 쪼개져서 공연을 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다가도 더 신경 쓰고 잘해야 하는 공연이 섭외되면 흩어져 있다가도 “장지원 밴드 해쳐 모여” 하는 거죠. 불후의명곡 반주도 저희 밴드가 맡아서 하고 있고 10년 넘게 아이돌 가수 <신화>의 무대를 전담하고 있어요. <하이라이트>, <틴탑>, <장근석> 등 아이돌 댄스 가수의 무대도 소화 중입니다. 최근에 <H.O.T.>의 공연을 하기도 했어요. 신화에 이어 H.O.T. 까지 했으니 이제는 <god>만 남았네요. (웃음) 아이돌 댄스 가수라도 MR을 사용하지 않고 풀 밴드, 리얼 사운드로 꾸리고 있어요. 그래야 현장의 움직임에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아무래도 직접 연주하는 게 더 생동감 넘치니까요. 멤버들만 허락을 해준다면 지금처럼 계속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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