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인터뷰] 모터스포츠 아나운서, 서승현 | 레전드매거진

모터스포츠 아나운서, 서승현

모터스포츠는 자동차 산업의 성장과 함께 발전해 왔다. 모터스포츠 대회는 신차의 마케팅 수단이자, 자동차 기업이 개발한 신기술을 시험하고 증명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비록 비인기 종목이지만 역사가 깊어질수록 모터스포츠를 향한 마니아들의 사랑은 더욱 커져가는 것 같다. 이번 호에서는 한국 모터스포츠 업계의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남다른 열정으로 경기장을 뜨겁게 채우는 모터스포츠人 서승현을 만나보았다.


데뷔 10주년을 앞두고
모터스포츠 아나운서 서승현

그리고 나중에  서승현도 
모터스포츠인이었다고  기억되고 싶어요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승현 님이 모터스포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와 그 시기는 언제부터였나요?

2005년도에 MBC게임에서 게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MC로 일을 했었는데, 홍보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레이싱 모델 일을 시작했어요. 그러던 중 지인분이 모터스포츠 장내 리포터 일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추천하셨어요. 고소득 프리랜서 레이싱 모델이라는 직업이 있었기 때문에 아쉬울 게 없었고, 모터스포츠에 대해서도 잘 몰랐기 때문에 처음에는 거절하는 등 몇 번이나 고민하다가 2011년에 처음으로 중계를 하게 됐어요. 실수투성이인 첫 중계였지만, 그날 일을 계기로 많은 노력과 시행착오들을 거치며 성장해갔답니다. 지금은 이 길이 저의 길이라고 생각하며 즐겁게 하고 있어요. 당시 저의 재능을 알아보고 거듭 권유해주신 지인분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하신 2011년 첫 중계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요?

2011년 4월 태백 레이싱파크 경기장에서 진행된 <슈퍼레이스> 1라운드 중계였어요. 지금도 가끔 그 날을 떠올리며 오밤중에 이불킥을 할 만큼 창피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앞서 말씀드렸듯 모터스포츠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었고, 레귤레이션 북도 안 읽어본 무식한 상태에서 마이크를 잡았어요. 현장의 흐름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도 몰랐을뿐더러 스타트 방식에 있어 가장 기초적인 용어인 롤링 스타트, 스탠딩 스타트 등의 단어도 숙지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죠. ‘출발했습니다 ‘빠르네요’ ‘진 것 같아요’ 이런 식의 중계였어요. 상상이 되시나요? 1라운드 중계를 마친 뒤, 관계자분들을 볼 면목이 없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다녔어요. 이건 나중에 알게 된 건데 그날 대회가 끝난 뒤 담당자들 사이에서는 저의 자질 문제가 거론되었고, 해고하자는 의견과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오고 갔다고 해요.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실수였던 그날의 중계를 마친 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모터스포츠 대회는 물론 농구 경기, 야구경기 등도 TV를 통해 보거나 구장에 방문해 직접 보고 듣고 필기하면서 스포츠 아나운서의 역할을 배워갔어요.

모터스포츠 아나운서로서의 커리어를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해오셨나요? 

공식적인 교육기관이 없었기 때문에 경기장 스피커가 저의 선생님이나 다름없었어요. 지금은 TV나 인터넷 등을 통해 경기 중계가 진행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중계방송이 없었거든요. 대회가 열릴 때마다 무작정 경기장을 찾아가 스피커 아래에서 열 시간이 넘도록 앉아서 중계 내용을 경청했어요. 처음에는 녹음도 해봤지만 자동차 배기음이나 소음이 함께 녹음이 돼서 알아듣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주로 들리는 대로 노트에 받아 적었어요. 선배들이 사용하는 단어와 톤, 특정한 상황에서 경기를 풀어나가는 노하우 등을 받아 적은 내용을 토대로 하나하나 분석했어요. 그리고 레이싱 모델 일을 하며 친분을 쌓았던 레이싱 관계자 분들을 직접 만나 뵙고 궁금한 점을 여쭤보기도 하고, 대회의 규정과 중계 요령들을 하나씩 배워갔어요.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대회에 관한 기사들도 빠짐없이 읽으며 정리했고요. 요즘도 이런 일들을 매일매일 하고 있어요. 본격적인 대회 중계 준비는 대회 전 이틀 동안 하는데,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온종일 전 라운드의 경기 내용을 숙지하고, 리뷰를 정리하고, 인터뷰를 준비한답니다. 앞서 말씀드린 모든 것은 이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에요.

장내 아나운서로서의 원칙이 궁금해요.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관중들에게 경기 전반의 흐름을 전하고 승패 여부를 가늠하는 중계인으로서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겠죠. 무엇보다도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중계인의 역할은 현장을 방문한 관중들이 모터스포츠의 매력에 더욱 깊게 빠지게 만드는 거예요. 중계의 복잡한 룰과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부분들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해드리고, 선수들에 대해서도 미리 파악해서 중계가 진행되는 동안 쉽고 상세하게 전달해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아는 만큼 보이게 마련이니, 제가 전달하는 정보들에 의해 흥미를 느끼고 몰랐던 부분을 하나라도 더 알게 되면 경기를 더욱 재미있게 관람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의 중계를 통해 모터스포츠를 몰랐던 분들이 레이싱팀의 팬이 되고 드라이버의 팬이 되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임무입니다.

모터스포츠에는 어떤 매력이 있나요?

기본적인 공통룰이 존재하긴 하지만 대회, 차량의 브랜드, 차종에 따라 규정이 달라지고 경기를 진행하는 방식도 달라져요. 또한 국내에는 프로 및 아마추어 등 많은 선수들이 존재하며 팀이나 선수들마다 경기 스타일도 제각각이에요. 그래서 경기를 보는 관전 포인트와 느껴지는 매력도 달라지죠. 빠르게 달리는 것이 전부인 스피드 게임으로 오해하실 수도 있지만, 경기장의 종류와 차종, 경기의 유형에 따라 많은 부분들이 달라지기 때문에 알면 알 수록, 공부하면 할수록 더 많은 매력을 느끼고 더 많이 즐길 수 있는 무궁무진한 매력을 가진 스포츠입니다. 사실 모터스포츠는 스피드 게임이 아니라 코너 게임이에요. 드라이버들의 코너 전략을 보는 재미가 있어요. 관중들도 차종과 드라이버의 특징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면 경기에 대한 이해도 조금 더 수월해지겠죠?

그동안 중계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경기는?

올 시즌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4월 경기요. 그 주에 한국에서 모터스포츠 경기가 시작된 지 약 31년여 만에 처음으로 토요일과 일요일 주말 관중수가 합산 6만 명을 돌파했어요. 이는 평소의 두세배 정도로 역대 가장 많은 관중들이 모인 자리였죠. 가득 찬 관중석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한국에서 모터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이만큼이나 늘어났으며, 제가 거기에 기여한 사람 중 하나라는 사실에 뿌듯한 감동을 느꼈어요. 이번 시즌에는 *SC상황이나 *적기상황이 많이 있었어요.
(*SC상황 = 사고 등으로 경기가 진행되기 어려운 상황에 잠시 경기의 흐름을 끊음으로써 사고 상황을 정리하고 2차 사고를 예방하는 상황)
(*적기상황=바로 경기가 재개되기 어려울 만큼의 큰 사고 발생 시 경기의 흐름을 끊는 상황, SC상황으로 해결이 되지 못할 경우 적기상황으로 이어진다.)
경쟁의 치열함은 극에 달했고 연달아 큰 사고가 발생했죠. 매 라운드마다 승부를 가리고 순위별로 포인트를 누적시켜 가장 포인트가 많이 누적된 사람이 챔피언이 되는 챔피언제 방식으로 우승자를 가리는데, 예상을 뒤엎는 경쟁이 이어져 마지막 라운드까지 챔피언의 윤곽이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끝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죠. 며칠 전에 있었던 7라운드에서는 대회에 참가한 전체 차량의 30%가 파손되었어요. 그만큼 치열했다는 거예요. 이번 시즌은 여러모로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모터스포츠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앞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차량이 파손되는 일도 빈번하고요.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안전은 어떻게 보장되나요?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경기 중 발생한 사고로 인해 드라이버가 크게 다치거나 사망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지금은 사고가 크게 나서 차가 완전히 찌그러지더라도 선수는 많이 다치지 않을 정도로 안전 규정이 강화되고 차량의 구조도 개선되었어요. 경주용 차량 내부에는 롤 케이지가 설치되어 있어요. 차체가 찌그러지지 않도록 내부구조를 잡아주는 국제 기준의 안전 파이프들을 이어 실내를 둘러싸고 있는 구조물인데, 차량이 파손되거나 전복되더라도 드라이버는 롤 케이지로 인해 보호받기 때문에 크게 다치지 않아요. 화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차 안에는 항상 소화기를 비치해두고 있고, 선수들은 대회 차량에 탑승할 때 반드시 전신에 방염복을 착용해요. 방염복을 입으면 여름철에는 평균기온 35도에 방염복의 온도까지 더해져 체감온도가 70도 정도로 올라가요. 드라이버들은 사우나를 하고 있는 기분이라 표현하고, 여름에 진행되는 경기의 전략 중 하나로 더위 극복 방법이 거론될 정도랍니다. 드라이버에게는 힘든 일이지만, 방염복을 입으면 불길이 직접 닿아도 소재 특성상 30초 정도는 불이 안 붙기 때문에 안전 시간 내에만 탈출하면 혹시 모를 긴급상황에 철저하게 대비할 수 있어요. 버튼 하나만 누르면 차량 내부의 모든 전원이 차단되는 안전장치도 있어요. 드라이버들이 가장 많이 관리하고 다치기도 하는 신체부위가 바로 목인데요, 우리가 타고 다니는 대다수 차량들의 안전벨트는 3점 식인데 반해 드라이버들의 경주용 차량 내부의 안전벨트는 6점 식으로 목은 물론 전신을 시트에 고정시켜주고 한스라는 안전장비가 헬멧부터 이어져 선수들의 머리와 목을 고정시켜줘요. 벨트와 한스 등을 착용하면 핸들을 잡은 손목과 차량을 운행하는 발끝 외에는 움직일 수가 없어요. 불편하고 힘들지만 안전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부분이죠.

모터스포츠 아나운서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즐기면서 일 할 수 있어야 해요. 다른 인터뷰를 통해서도 밝힌 적이 있는데 모터스포츠 아나운서 일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워요. 경기가 진행되는 장소가 주로 지방에 있어서 이동시 소요되는 교통비, 유류비, 톨비 때로는 숙박비까지 일당에 모두 포함되어 있어서 실질적인 소득은 적은 편이에요. 저 또한 이를 알았기에 처음부터 모터스포츠 아나운서로 큰돈을 버는 것을 목표로 하지는 않았어요. 모터스포츠가 제 삶이 된 건 이 분야가 좋았기 때문이에요. 평소에 일반 기업 행사와 연말 축제 사회 등 MC 일을 겸하고 있어요. 레퍼토리가 있으니 진행도 수월하고, 페이도 비교적 많이 주는 편입니다. 반면 모터스포츠 경기는 매 라운드마다 공부를 해야 하고, 변동되는 상황에 맞게 대처하며 중계를 해야 하기 때문에 경기 내내 흐름을 놓치지 않는 고도의 집중력과 통찰적 시야를 확보해야 해요. 끊기지 않고 말을 이어가기 위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 배경지식을 쌓기 위한 공부도 평소 게을리해서는 안되죠. 힘든 점만 이야기한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신나는 일이고 멋진 일이에요. 현재 많은 현직 아나운서들이 탐을 내는 자리이기도 하고 꿈꾸는 예비 아나운서들도 굉장히 많을 정도로 매력 있는 직업이죠. 앞으로 이 분야에 발을 담는 후배들도 같은 마음이길 바라며, 앞으로 오시는 분들이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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