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매거진 [레전드인터뷰] 재즈 연주자, Chris Varga | 레전드매거진

재즈 연주자, Chris Varga

여름의 끝자락, 가을의 문턱에서 그와 마주했다.
지난주에 태국에서 열린 소규모 재즈 페스티벌 공연을 마치고 한국에서의 다른 공연을 위해 다음 날 바로 귀국했다고.
그가 처음으로 한국에 온 것은 1998년 말 이맘때쯤이었다.
낯선 땅이었던 이곳이 집이나 다름없게 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함께한 지난 20여 년과 드럼과 비브라폰을 다루는
타악기 연주자로서의 그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포근한 색채와 차가운 속성을 아우르는 드넓은 스펙트럼

근황 이야기

Q. 최근에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한동안 야외 페스티벌 공연이 많았어요. 지난주에는 태국에서 소규모로 개최하는 재즈 페스티벌 무대를 마치고 왔어요. 저희 공연도 하고 다른 팀들 공연도 보면서, 약간은 놀러 가는 기분으로 다녀왔어요.

Q. 태국은 관광지로도 유명하잖아요. 공연 외 시간들에 여행도 하셨나요?

아니요. 그다음 날 경기도 광주에서 또 다른 공연 일정이 있어서 무대를 마치고 바로 귀국했어요. 그러고 보니 요즘에 꽤 바빴네요. 또 올해 7월부터 매주 목요일과 토요일마다 인천공항 인근에 위치한 파라다이스 시티 호텔의 라운지에서 재즈 연주를 하고 있어요. 주로 라운지 고객들이 커피나 와인을 마시며 이따금씩 저희 공연을 보고 듣는 정도의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공연이 진행되고, 비브라폰과 기타, 베이스 구성으로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연주하고 있습니다.

고향, 미국

Q. 고향에 가실 때는 주로 무얼 하세요? 뉴욕의 유명한 재즈바가 많은데 자주 가시는 편인지. 고향에서 음악을 하는 친구들에게 연락 오는 경우도 종종 있으실 것 같아요.

제가 살던 곳은 뉴욕과는 거리가 있어서, 뉴욕에 가기 위해서는 국내 비행기를 타야 해요. 그래서 뉴욕이나 다른 지역에 갈 때는 아예 여행으로 생각하고 따로 가요. 매년 7월이면 고향에 가곤 했는데, 올해는 일이 많아서 못 갔어요. 2년 전에 갔을 때는 말씀하신 것처럼 다른 뮤지션들과 공연도 하고, 시카고로 건너가 2주 간 공연과 녹음을 병행 하기도 했어요. 그러고 보니 작년에 갔을 때도 녹음을 했었네요. 고향에 가는 원래의 목적은 휴식인데, 제가 가는 게 소문나면 오는 김에 함께 연주하자고 음악인들로부터 연락이 와요. 저도 그런 제안을 받으면 막상 쉬려다가도 하고 싶은 작업이면 결국 수락하게 돼요. 그래서 잘 못 쉬는 편이에요.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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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녹아있는 음악의 자취

Q. 음악은 언제부터 시작하셨어요?

어릴 때 어머니가 피아노를 연주하셨어요. 대학교 1학년 때까지 전공을 하셨고, 전공을 그만둔 뒤로도 취미로 계속 연주를 하셨어요. 그래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저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셨어요.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미국에서는 진로를 정할 때쯤 음악 선생님께서 리스닝 테스트를 거쳐 재능이 있다고 판단되는 학생에게는 음악가로서의 진로에 대한 긍정적인 조언을 해줬어요. 어머니를 통해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 연주를 하나의 놀이로 인식할 만큼 즐겨왔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선생님께서 제게 앞으로도 계속 음악을 해보라고 하셨어요. 당시 여러 가지 악기들을 해봤어요. 트럼펫도 잠깐 했었지만 저와 안 맞는 것 같아서 그만두고 독학으로 드럼을 익혔어요. 저희 삼촌이 취미로 드럼을 연주하셔서 지하실에 드럼 셋이 있었기 때문에 손쉽게 연습할 수가 있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드럼을 접하게 된거고, 그 뒤로도 계속 드럼을 연주했어요.

음악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음악을 들으면서 자랐어요. 아버지의 차를 탈 때면 포크 음악과 재즈, 초창기의 테크노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어요. 부모님이 이혼하신 뒤 만난 새아버지는 LP중고 가게 사장님이었어요. 그래서 매일 새로운 음악이 담긴 LP음반을 접할 수 있었고, 집 안에는 항상 음악이 흘러나왔어요. 또 새아버지의 친구들이 락밴드를 했는데, 동생과 함께 그 밴드의 공연도 보고 합주하는 걸 구경하기도 했었어요. 이런 경험들도 제가 음악을 시작하기까지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 같아요.

미국에는 거의 대부분의 고등학교에 빅밴드가 있어요. 저는 학교 빅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했어요. 그 밖에도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함께 카피밴드도 하고, 락 밴드도 하면서 여러 가지 장르의 음악을 보고 듣고 연주하면서 지냈는데 그땐 진지한 연습 개념이라기보다는 그저 놀이였어요. 이렇듯 음악가 집안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재능과 관심, 자라면서 받은 환경적인 영향들로 인해 음악을 시작하게 됐던 것 같아요.

대학교에서는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면서 재즈는 개인 레슨으로 따로 배웠어요. 고향의 대학교에는 재즈 전공이 없었거든요. 비브라폰은 대학교 1학년에서 2학년쯤 시작했어요. 실은 재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대학교에 입학하고 음악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부터 였어요. 고향에는 비브라폰 연주자가 많지 않았어요. 고향뿐 아니라 아시다시피 세계적으로 비브라폰 연주자는 다른 악기 연주자들에 비해서 수가 적은 편이에요. 그래서인지 비브라폰의 소리를 좋아하는 분들은 많은데, 좋아하는 연주자가 있냐고 물어보면 잘 모르는 경우도 많아요.

학사과정을 마친 뒤 재즈를 더 깊이 있게 공부하기 위해 시카고에 있는 대학원에 입학했어요. 시카고는 재즈를 배우기에 정말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어요. 환경으로는 미국에서 뉴욕 다음으로 재즈를 공부하기에 좋은 곳이죠. 함께 음악을 할 수 있는 연주자들도 많고, 연주할 수 있는 클럽과 카페도 많고요. 아무튼 시카고에 처음 가서는 큰 충격을 받았어요. 실력이 뛰어난 연주자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그들과 함께 팀을 꾸려 비브라폰이나 드럼을 연주했어요. 저는 특히 비브라폰 연주를 좀 더 하고 싶어서 제가 직접 공연을 기획하거나 프로젝트를 만들기도 했어요.

웰컴 투 코리아

Q. 그럼 한국에 오신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1998년 말쯤 처음 한국에 들어왔어요. 중간에 몇 번 왔다 갔다 하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20년 넘게 거의 늘 한국에서 지냈어요. 당시 한국의 유명 호텔 재즈바에서 좋은 조건으로 계약하고 연주 일을 하는 후배가 있었어요. 어느 날 그 후배가 제게 연락해 함께 한국에서 음악을 하자고 했어요. 한국에 대해서 잘 모르고, 기껏해야 박찬호라는 야구선수 이름 정도만 알던 터라 굳이 갈 생각이 없었는데 그 친구가 한국 사람들도 좋고 연주할 기회도 점점 많아지고 있으니 같이 해보면 어떻겠냐며 설득해서 한국에 처음으로 발을 들이게 됐어요.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어요. 잠깐 연주하면서 돈도 벌고 여행도 하는 정도로 생각했죠. 그때가 마침 IMF가 끝나가고 한국 경제가 회복되어 가던 무렵이었는데, 썩 좋은 상황은 아니었어요. 그런 이유로 원래 연주를 하기로 약속되어 있던 리조트 건설은 무제한 연기되고, 후배 소개로 연주를 하기로 했던 삼청동 카페도 문을 닫았어요. 다행히 운이 좋아서 올 댓 재즈, 천년동안도, 야누스 등 유명한 재즈 클럽에서 연주를 하게 되었어요. 특히 올 댓 재즈 사장님을 만난 건 저에게 큰 행운이었는데, 사장님이 뮤지션들을 아끼셔서 여기저기 소개도 많이 시켜주시고 섭외 연결도 해주시면서 도움을 주셨어요.

그렇게 한국에 들어온 지 6개월쯤 되었을 무렵, 함께 온 후배는 한국 생활에 지쳤다며 미국으로 떠났어요. 저도 그때 함께 들어갈지, 아니면 한국에 남아 좀 더 활동을 할지를 고민했어요. 그런데 한국에 슬슬 아는 뮤지션들도 많아지고 일도 많아지고 있어서 그대로 미국으로 돌아가면 후회할 것 같았어요. 또 제가 다른 외국인들보다 한국어를 빨리 배운 편이에요. 한국인들과 하루 종일 연주도 하고 뒤풀이도 하며 사람들과 어울리다보니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익숙해졌고, 책을 보고 단어를 외우며 틈 날 때마다 한국어 공부도 하면서 적응하고 나니 한국에 오래 머무르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 결국에는 남기로 했어요. 그때만 해도 몇 년 더 있을 줄 알았죠. 20년 뒤에도 제가 한국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그랬는데 아직 여기 있네요(웃음).

Q. 처음에 한국에 오셔서 하려고 계획했던 일들은 다 틀어지고 친구는 미국으로 돌아 갔는데도 한국에 남아 언어도 익히고 연주 활동도 찾아다니시고 뮤지션들과 친분을 쌓는 등 많은 노력을 하셨던 것 같아요.

특별히 제가 많은 노력을 했다기보다는 타이밍이 좋았어요. 비즈니스를 잘하는 성격은 아닌데,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 그러니까 1998년부터 2000년 무렵까지 한국에는 재즈 연주자가 지금보다 훨씬 더 적었어요. 그런 시기에 한국에 들어왔기에 연주자로서 적응하는 게 조금 더 수월했던 것 같아요. 1990년대 말쯤 미국이나 네덜란드로 건너가 음악을 공부하며 유학생활을 하던 한국인들이 2001년부터 2003년까지 한국으로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한국에도 재즈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거고, 그전까지는 재즈 연주자들은 제가 느끼기에는 소수였어요.

1999년에 한국에서 전 부인을 만나 2000년도에 결혼했어요. 2001년에 아이가 생긴 뒤로는 줄곧 한국을 집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일도 계속하고 있고, 가족도 생겼으니. 어쩌면 그래서 지금까지 남아있게 된 걸지도 모르겠어요. 이상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가끔은 제가 한국을 선택한 게 아니라 한국이 저를 선택한 것 같기도 해요. 간혹 누군가 한국이 음악인들에게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닌데, 미국에서 할 수도 있는 걸 굳이 한국에서 하느냐고 물어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면 한국의 환경은 상대적으로 정말 좋은 편이에요. 물론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고, 안 좋은 점도 분명하게 존재해요. 하지만 어딜 가도 음악 하는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기가 쉬워요. 그래도 한국에서는 연주자의 실력만 좋다면 어딜 가도 적당히 돈을 벌 수가 있고, 자기 가족을 부양할 정도의 경제적 여건도 마련할 수 있는 것 같아요.

Q. 한국 사람들이 워낙에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회가 많은 걸까요? 페스티벌이나 공연도 자주 있는 편이고요. 아무튼 음악을 사랑하는 민족임은 확실한 것 같아요.

동의해요. 정말 좋은 현상이에요. 그런데 한가지 안타까운 점도 있어요. 이건 꼭 한국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닌데, 요즘 무대에 설때면 연주를 즐기기보다는 SNS 게시용으로 사진이나 영상만 찍고 공연은 잘 안 보는 경우도 많아요. 물론 티켓을 구매하고 그 자리에 와 주시는 것만으로도 관객분들에게 감사한 일이지만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조금 더 우리의 공연에 귀를 기울이고 집중해서 봐주셨으면 해요. 유난히 인증샷에만 집착하는 분들을 발견할 때면 기분이 조금 상할 때도 있어요. 열심히 준비하고 좋은 연주를 들려드리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공연을 즐기는 데에 더욱 집중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클럽 팜, 소중한 기억

Q. 한국에서 기억에 남는 공연장이 있나요?

예전에 홍대 쪽에 클럽 팜이라는 공연장이 있었어요. 사장님께서 음악을 너무 사랑하시고, 특히 재즈와 클래식을 좋아하셨어요. 협소한 공간이었지만 밴드 세트가 구성된 무대가 있고, 피아노도 한 대 놓여 있었어요. 홍대 인근에 사는 뮤지션들과 함께 그곳에서 함께 연주하며 좋은 시간들을 보냈는데, 그 시간들이 지금도 저에게 소중하게 남아있어요. 연주를 할 때면 관객들의 분위기도 정말 좋았어요. 행복한 추억들이 너무 많아 하루를 콕 집어서 말할 수가 없네요.

그곳은 지금은 없어졌어요. 지금까지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건, 당시 사장님께서 가게 사정이 힘든데도 끝까지 공연장을 운영하시고 손해를 보면서라도 뮤지션들에게 페이를 주면서 공연을 이어갔어요. 당시 잼 세션을 하는 클럽이 많지 않았는데 그곳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잼 세션을 할 수 있어서 그것도 너무 고마웠고.. 매주 같은 요일에 뮤지션들의 정기공연이 있었는데, 정기공연은 뮤지션들에게 정말 좋은 기회거든요. 같은 팀의 프로젝트로 매주 무대를 쓰면 팀 사운드도 계속 발전되고, 레퍼토리도 생기기 때문이에요. 사장님께서 뮤지션들을 아끼고 음악을 사랑하셨기에 그런 좋은 무대를 계속 만들어 주셨던 것 같아요.

제가 2012년 초부터 2015년 말까지 미국에 있었는데, 클럽 팜은 그 무렵 문을 닫았어요. 아마 그 사이에 월세도 오르고,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겠죠. 그럼에도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주신 것에 대해 지금도 늘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사장님께 지면으로나마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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