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매거진 [레전드인터뷰] 작곡가, 슈퍼창따이 | 레전드매거진

작곡가, 슈퍼창따이

사람과 음악을 사랑한 작곡가

슈퍼창따이

“사람에 대한 애정은 영감의 원천이자 저를 지탱해주는 동력이에요”

안녕하세요. 저는 슈퍼 창따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곡가 김창대입니다. 아마 본명보다는 예명이 여러분에게는 더 익숙하실 거예요. 반갑습니다.

[음악에 푹 빠진 순수한 소년]

다섯 살 때 처음으로 노래를 만들었어요. 너무 어려서 제가 하고 있는 게 작곡이라는 자각은 없었지만요. 가족에 대한 노래였는데, 현업 작곡가가 된 지금 기억을 꺼내어보면 구성감이 좋고 제대로 된 곡의 형식을 갖추고 있더라고요. 그게 제 첫 번째 곡이었고요. 미래에 대한 꿈이 막 피어날 무렵이었던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음악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구체적인 꿈이 생긴 계기는 듀스였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듀스를 보고 대중음악 작곡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학창시절에는 유쾌하고 밝은 분위기 메이커였어요. 친구들과 함께하는 학교생활은 늘 즐거웠답니다. 친구들에게 생일 선물로 직접 노래를 만들어 주거나 학교에서 랩 잘하고 노래 잘하는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와 팀을 꾸려 음악을 만들며 즐겁게 음악을 했어요.

저의 형제들은 다들 클래식을 전공했어요. 어릴 때부터 형과 누나가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음악은 자연스럽게 저의 일상의 한 부분으로 스며 들었습니다. 단체에서 경음악을 연주하는 밴드를 마칭 밴드라고 하는데,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 그리고 군대에서도 쭉 마칭 밴드의 소속이었어요. 군악대 마칭 밴드 시절에는 어릴 때부터 너무 익숙한 생활이었기 때문에 금방 적응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렇게 오랜 시간의 경험이 쌓이다 보니 마칭 밴드, 빅밴드 스윙 분야에 정말 자신 있어요. 특히 이 장르를 미디로 하는 작업은 국내 최고 퀄리티를 보여드릴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대중음악 작곡가가 되다]

클래식 장르에 일평생을 바친 거장들을 항상 마음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클래식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몇백 년 몇천 년이 지나도록 보존해야 하는 분야죠. 형제들은 다들 클래식을 전공했는데 제가 대중음악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된 이유요? 머리가 자라나면서부터 저는 기존의 틀을 깨부수거나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해 새로운 시도를 하며 다이내믹하게 음악을 만들고 싶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과거의 것을 보존해야 하는 클래식 장르는 저의 성향과는 맞지 않았죠.

10대 시절에는 듀스와 서태지와 아이들의 빅 팬이었어요. 그들의 음악에 내재된 리듬감은 생전 처음 접하는 것이었는데, 미치도록 좋았습니다. 동시에 락도 정말 좋아했어요. 스키드로우의 음악을 들으면서 이 재미있는 코드 진행을 힙합 리듬과 섞으면 어떨까? 이런 구상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중음악 작곡가의 길로 접어든 것 같습니다.

[듀스, 현도형, 나의 첫 번째 스승]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듀스의 이현도 형의 집에 무작정 찾아갔어요. 당시 청담동에 듀스의 사무실 겸 집이 있었어요.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에 동사무소에 방문해 길을 물어가며 발품 팔아 무작정 찾아가 벨을 누르고는 “안녕하세요. 저는 강원도 원주에서 온 진광 고등학교 3학년 김창대라고 합니다. 제 노래를 한 번만 들어봐 주시겠습니까?”라고 인사했어요. 현도형이 굉장히 퉁명스럽게 “들어와, 틀어봐”라며 집으로 들여보내주셨어요. 가장 아끼는 가방에 보물처럼 담아온 카세트테이프를 꺼내 그 안에 담긴 제 노래를 떨리는 손으로 재생했어요. 들으시더니 민망할 정도로 엄청 크게 웃으시더라고요. 그러고는 “야, 100점 만점에 10점 줄게. 네가 음악을 만들었다는 것에 1점. 그리고 내 앞에서 튼 용기에 9 점이다, 가봐.”라고 하셨어요. 그 이후에 어떻게 됐냐고요? 형 집에 매주 주말마다 찾아갔어요. 현도형은 저를 음악인의 길로 이끌어준 첫 번째 스승이랍니다.

[작곡가의 삶 : 영감과 악상에 관하여]

저는 보통 오후 두 시쯤에 작업실로 출근해서 밤 열두시에서 새벽 한시 정도에 퇴근하는 편이에요. 작곡가의 하루는 마음만 먹으면 한량처럼 한가롭게 보낼 수도 있고, 회사원보다도 더 바쁜 하루가 될 수도 있어요. 당장 급한 작업이 없으면 마음껏 돌아다녀도 아무도 뭐라 안 하죠. 작곡가 활동 초기에는 동네 사람들이 저를 백수로 착각하기도 했다네요(웃음) 작업이 막히면 강남역을 한바퀴 돌아보거나 쇼핑센터 구경도 많이 해요. 분위기 환기가 중요한 것 같아요. 이건 굉장히 일상적인 거고 마감일이 가깝거나 작업이 많으면 2,3일 밤을 새우는 건 기본이죠. 시간이 정말 너무 부족해서 퇴근은 꿈도 못 꾸고, 자면서도 작업물을 듣다 보니 꿈속에서도 작업을 해서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정신없이 보내기도 해요.

연주자보다는 녹음을 하는 일이 적성에 맞았어요. 여담이지만 제가 뭐든지 녹음하고 보관하고 기록하고 수집하는걸 좋아해요. 초창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작업들을 전부 보관하고 있어요. 요즘도 가끔 8~9년 전 가수들과 함께 작업했던 앨범을 들어볼 때가 있어요. 노래를 부른 당사자들에게 트랙을 보내주면 기겁을 하면서 놀라더라고요(웃음)

의뢰가 들어오지 않아도 작업을 하고, 의뢰가 들어와도 작업을 해요. 그렇게 완성해 차곡차곡 곡을 쌓아가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몇 년 전에 쓴 곡인데 세상에 내보낼 타이밍이 찾아오기도 해요. 항상 곡을 만들어요. 작곡가의 삶인 거죠. 작곡에 정해진 방법은 없는 것 같아요. 지금처럼 인터뷰 진행 중에 어떤 단어에 꽂혀서 갑자기 곡이 나올 수도 있는 거고, 오랜 시간동안 고민해 아이디어를 짜낼 때 문득, 혹은 다양한 샘플과 음악을 듣고 여러가지 스타일들을 시도해 보다가 만들어지기도 하죠.

백아연의 ‘느린 노래’라는 곡을 만들 때의 일화를 들려드릴게요. 의뢰 당시 전화를 받았는데, 느린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어?느린 노래 괜찮은데? 헤어지면 다들 느린 노래(발라드)를 듣잖아.’ 이런 생각에 ‘느린 노래’라고 제목부터 정하고 가사를 써 내려갔어요. 그런 식으로 찰나의 아이디어를 곡의 완성까지 끌고가는 경우도 있어요.

작곡을 할 때 반드시 트렌드를 고려하여 대중들의 입맛에 맞추려고 애쓰지는 않아요. 한때는 대중들의 귀를 이해하고 트렌드에 맞춰 가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기도 있었어요. 그런데 한해 두해 시간이 지나가면서 깨닫게 된 것은, 대중들은 우리가 들려주는 것에 귀 기울인다는 거예요. 우리가 유행을 만드는 거죠. 지금 미국에서 어떤 스타일이 유행한다면 참고는 해야겠지만 굳이 그걸 따라 해야 할 필요는 없어요. 2PM의 ‘니가 밉다’, ‘기다리다 지친다’ 같은 곡이 당시만 해도 많이 새롭고 앞서간 곡이었는데, 그 곡들을 발표한 뒤 비슷한 스타일의 곡들이 다양하게 발표되고 유행하는 것을 보면서 느꼈어요. 아티스트는 유행을 좇는 자가 아니라,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덧붙이자면 트렌드는 학습으로 따라잡을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아요. 그 시대 사람들이 원하는 리듬감과 스타일 등 트렌디한 장르에 대한 시대적 관점은 계속해서 변화하기 때문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평소에 많이 듣고 즐기며 경험으로 쌓아두고 꾸준하게 작업한 결과물들이 어느 시기를 만나 세상에 발현되는 거죠.

영감의 원천이오? 작곡가 친구들끼리 농담으로 “오늘은 영감님이 안 오셨어 언제쯤 오실까?” 이런 이야기를 해요. 작업을 하다가 막혀서 어떤 선을 넘어가면 그때는 전부 내려놓고 외출을 해요. 북적북적한 시장에도 가보고, 지방에서 열리는 5일장에도 홀로 다녀보고, 이리저리 돌아다녀요. 다만 그 선을 넘기 전까지는 작업을 계속 붙잡고 있어요. 작업을 계속 켜둔 상태에서 소파에서 쪽잠 자며 새벽에 자다 깨서 작업하고는 해요.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끼니도 컵라면으로 대충 때우며 매달리죠. 그렇게 며칠 불쌍하게 지내다 보면 곡이 나오더라고요. 완성된 곡들의 70% 이상은 이렇게 힘들게 작업했어요. 어쩔 때는 이렇게 지내는 게 너무 힘들어서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이 일을 평생을 하지? 이걸 내가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 번은 소속사 대표님이 이정도면 됐다고 (작업을) 그만하라고 말린 적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타협할 수가 없었죠. 그렇게 혼을 쥐어짜 결국 작업이 끝나고 곡이 완성되면 너무 기쁘고 행복해서 작업하는 동안 힘들었던 건 전부 잊어버려요. 그러다 몇 주 뒤 다시 의뢰를 받아 곡을 작업하고, 작업이 막히면 또 며칠 밤을 새우며 골골대는 삶을 반복하죠(웃음)

[작곡가의 삶 : 작업기]

다양한 장르의 곡을 작업해왔어요. 어떤 장르이건 악기를 이해하고, 분석을 통해 색을 입혀가는 과정들이 필요해요. 예를 들면 전 기타 연주를 잘 못해요. 대신 작곡하는 곡에 어떤 기타 리듬을 넣고 싶으면 그 주법을 유튜브로 공부했어요. 그런 다음 코드만 바꿔서 제 노래에 넣어보고, 그래도 안되면 느낌만 비슷하게 연주한 다음 연주자분들을 섭외해 요청하죠. 빅 밴드나 스트링 오케스트라 음악은 제가 악보를 짜서 드리는데 시간적 여유가 없으면 입으로 녹음해서 드려요. 입 바이올린, 입 첼로요. 오히려 이걸 악보보다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다른 아티스트들과 협업할 때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한 편이에요. 특히 2PM 멤버들과는 의형제라 할 정도로 친해요. 제가 원래 농담을 좋아하는 편이고, 형이라고 군기 잡는 타입은 아니라서 작업할 때도 즐겁게 하는 편이에요. 평소에도 후배들에게 재미있는 말 많이 하고, 재미난 것들 많이 찾아서 보라고 조언해줘요. 저에게는 농담이 불편한 심리적 장애물을 없애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작업 활력소이기도 하죠.

[에이핑크 : Seven Springs Of Apink]

에이핑크의 미니 1집 의 1번 트랙 Seven Springs Of Apink에 나오는 플루트는 제가 불었어요. 제가 플루트를 전공했거든요. 그래서 빅 밴드와 오케스트라 편곡 작업은 머릿속에서 악기 라인과 하모니가 그려져요. 예전에는 영감이 너무 자주 떠올라서 오히려 힘들 정도였어요. 서점에서 책 제목만 봐도 머리에 곡이 그려질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새로운 시도도 많이 했고, 곡 제목들도 독특하게 지었어요. 대표님이 ‘이런 제목은 좀 그만 써달라’고 할 정도였죠. 지금은 그때처럼 흘러넘치는 영감이 필요한 시점이에요. (웃음)

출시되기 전에 앨범의 스타일이 계속 바뀌었어요. 걸스 힙합을 컨셉으로 잡았다가 듀스같이 용감한 컨셉으로도 갔다가.. 하도 바뀌니까 제가 클래식을 제안했어요. 댄스 음악인데 풀 오케스트라가 나오는 건 어떻겠냐고. 일단 그렇게 던져 놨는데.. 곡이 안 나오는 거예요. 영감님이 지독하게도 안 찾아오셨어요. 계속 딜레이 되니까 대표님이 여행이라도 다녀오라고 등을 떠밀어서 바다를 보러 갔어요. 테라스에 앉아서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다 거실에 비스듬히 앉아 TV를 켰는데, <웰컴 투 동막골>이라는 영화가 방영되고 있었어요. 영화 속의 구수한 사투리를 듣는데, 사투리와 비슷한 뉘앙스로 ‘이러지 마요~’라는 가사를 넣으면 어떨까 라는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랐어요. 그 길로 곧장 곡을 완성했고, 곡의 안무에도 영화에서의 캐릭터가 연상되는 동작을 넣었어요. 사실 여행 갔을 때 곡에 대한 압박감으로 호텔 테라스에만 앉아서 가만히 앉아있었어요. 에이핑크의 곡을 너무 맡고 싶었는데, 그 일을 꼭 해내고 싶었는데 잘되지 않아서 속상한 마음에 울컥하기도 했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곡을 완성하고 나서는 너무 신이 나서 곧장 서울로 올라왔어요.

[공동작업의 의의]

2010년도 초반, 제 또래의 작곡가들의 주류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공동작업이라는 개념이 없었어요. 기존의 방식은 작곡가가 작사·작곡을 모두 맡거나 작사 정도만 분담했는데, 지금은 공동작업의 비율이 미국에서 일반적인 방식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에서도 80% 가까이 될 정도로 보편화되었어요. 완성된 악기 트랙들 위에 다양한 아티스트들에게 멜로디를 받아 입히는 방식인데 악기 트랙을 멋지게 만드는 작업을 트랙 메이킹, 멜로디를 따로 만드는 작업을 탑 라인 작업이라고 불러요.

처음에는 저희 세대 작곡가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방식이었죠. 하지만 이런 문화에 서서히 적응해갔던 것 같아요. 이런 작업 방식은 분명한 장점이 있어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멜로디가 나오는 걸 보는 게 재밌죠. 해외 작곡가와 협업을 하다 보면 저와는 곡 해석이 완전히 다를 때도 있습니다. 다만 지분을 나누는 것이 쉽지만은 않아요. 퍼블리셔가 제공하는 가이드라인은 있지만 작곡가들의 생각을 반영해서 진행을 하기 때문에 공동작업의 지분을 나누는 방식은 모두를 완벽하게 만족시키기가 어려운 거죠. 그래서 저는 작업률을 따지기보다는 동등하게 나누어 가지려고 하는 편이에요. 편하게 생각하려 해요. 좋은 아티스트와 협업할 기회가 생겼다는 것에 더 큰 의의를 두는 거죠.

[소박하지만 원대한 꿈]

제 꿈은 아이들이 음악교육을 받을 수 있는 보육 시설을 운영하는 거예요. 음악을 하고 싶은데 환경적인 문제로 음악을 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교육적인 기반을 마련해주고 싶어요. 아마도 은퇴를 하면 그런 일을 하면서 평생을 보낼 것 같습니다.

약 10년 전부터 고아원에 다니며 봉사활동을 했어요. 처음에는 밥을 사주거나, 과자를 잔뜩 사들고 가서 함께 먹으며 아이들과 대화를 한다거나, 연예인 이야기를 해주는 정도가 전부였어요. 그러던 중 제 직업이 작곡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음악 봉사를 해보는 건 어떻겠냐는 주변의 권유를 받았죠.

그런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연주자가 아니니 악기를 가르쳐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다가 아 나는 아이들과 함께 음악을 만들면 되겠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곧장 노트북과 전자 키보드를 주섬주섬 들고 낑낑대며 지하철을 타고 아이들을 만나러 갔어요. 그날 이후로는 모든 게 달라졌어요. 더 이상 봉사의 목적이 과자를 사다 주거나,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는 게 아니었죠. 아이들에게 곡을 만들면서 생긴 좋은 추억과 나도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물론 그 시간은 저에게도 추억이기도 하거니와, 대화의 폭과 시야가 넓어지는 뜻깊은 시간입니다.

강원도의 공기 좋은 동산 어딘가에 교육 시설을 만들고, 시설 관리는 부모님께 맡기고(웃음) 그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방학 때마다 송 캠프를 하고 싶어요. 제 노래를 함께한 가수들과 연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아이들의 선생님이 되는거죠. 음악을 열심히 해서 더 유명해지면, 좋은 악기를 많이 사서 아이들이 그 악기를 하나하나 만져보고 배워볼 수 있도록 시설에 비치해두고 싶어요. 그런 꿈을 꾸고 있어요.

제가 평소에 봉사를 갈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하루는 2PM의 우영이가 저를 데려다주겠다면서 집 앞으로 차를 갖고 왔어요. 어 좋지! 하고 차를 탔는데, 사실 나도 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날 함께 보육원에 갔어요. 그리고 그 친구가 저에게 혼자서 하는것에만 그치지 말고, 제가 하는 일을 SNS를 통해 전국적으로 알리고 홍보하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했어요. 위선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하다가, 그 친구 말에 용기를 얻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많은 음악가분들에게 연락이 왔어요. 함께 하고 싶다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이야기하라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뜻을 함께 해주신 분들 덕분에 많이 힘이 되었고, 지면을 빌어 감사드린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예명 : 슈퍼창따이]

한때 콧수염을 기르고 머리를 빡빡 깎고 다녔어요. 그런 제 모습을 보고는 대표님이 너 중국 무술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 같다면서 억양을 흉내 내며 창따이라고 놀렸어요. 처음에는 너무 싫었는데, 듣다 보니 정감이 가기도 하고.. 그러다 앨범 크레딧에 제 이름을 ‘슈퍼창따이’로 등록을 했어요. 이왕 이렇게 한 거, 장르별로 예명을 달리해서 트로트는 울트라 창따이, 댄스 가요는 슈퍼창따이, 일본에선 그레이트 창따이 등.. 다양한 이름으로 활동할 원대한 계획을 세웠으나 예명 등록 조건이 까다로워 일단은 보류했어요. 예순쯤 되면 이름을 바꿔서 신분세탁하고 활동하려고요.(웃음) 농담이고요, 지금도 사실 슈퍼 창따이라는 이름이 그리 달갑지는 않아요. 어른들이 가끔 창따이를 잘 못 알아듣고 ‘칭따오?’ 이렇게 되 물어보시기도 하죠. 그래도 형들이 저를 귀엽게 봐주셔서 붙여준 예명인지라 고맙기도 하고요. 애증의 예명이네요.

싸이월드가 유행하던 시절에 쪽지를 한 통 받았어요.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중국 유학생이었는데, ‘같은 중국인이 JYP라는 큰 기업에서 작곡가로 활동하는 게 너무 멋있다. 응원한다’는 내용이었어요. 차마 그 학생의 꿈을 깰 수 없어서 감사하다고 답변한 적이 있어요(웃음). 중국에 일하러 가면 예명 때문에 종종 혼혈로 오해를 받기도 해요.

[취미 : 빈티지 음향기기 모으기]

빈티지 음향 기기를 모으는 취미가 있어요. 예를 들면 오래된 전축 같은 기기를 구매한 다음 고쳐서 쓰는걸 좋아합니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구하기가 어려워 해외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공수해 오는데, 처음부터 고장 난 걸 구입할 때도 있고, 분명 멀쩡했던 제품인데 한국에 도착하면 다 분해가 되어있는 경우도 있어요. 간단한 수리는 제가 할 수 있지만 복잡한 수리는 못하기 때문에 사설 수리점을 종종 찾아가기도 하죠. 모으는 이유요? 뭐랄까.. 그렇게 수리해 제 작업실 한편에 비치해둔 낡은 음향기기들은 바라보고만 있어도 정신적으로 치유가 되는 것 같다고 할까요.

[JYP]

JYP에서 나온 지 4년이 됐는데, 지금도 많은 작업을 함께 하고 있어요. 그래서 아직 JYP 소속으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죠. JYP라는 이름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신인 작곡가들과 아티스트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금전적 여유인데, 본인에게 열정만 있다면 충분한 기회를 제공받고 보상을 받을 수 있어요. 시스템적으로 준비가 된 회사라 본인이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죠.

진영이 형을 보면서 많은 걸 배우고 느꼈어요. 인성적으로도 사업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에요. JYP를 나온 건 혼자 부딪혀 보고 싶은 마음이었죠. 쉽지 않은 결정이었어요. 어른들도 ‘이왕이면 큰 회사에 있지 그러니’라고 만무하셨지만 그때는 독립적으로 일해보고 싶은 마음이 강했어요. 어쨌거나 지금도 함께 작업하고 있습니다.

[후배 음악인들에게]

음악인들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반갑고 기쁜 일이에요. 음악인들에게는 선후배 관계를 떠나 가족 같은 유대감과 동질감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후배들이 곡이 잘 안 나온다고 고민을 털어놓을 때면 저는 니가 쓴 곡을 받는 가수의 팬이 되어 보라고라고 조언해 줘요. 그 사람을 알면 그에게 걸맞은 음악이 들려온다고요.

소프트웨어와 기계에만 의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작곡은 악기가 없어도 입 만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음악을 만들고,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기본이니까요. 요즘 친구들은 툴을 너무 잘 다뤄요. 그건 훌륭한 거지만, 감성적인 부분을 등한시해서는 안 되죠. 또, 계속해서 음악을 만들기를 바라요. 멈추지 않고 흘러가기를. 계속해서 생각하고 노력해야 발전할 수 있다고 조언해 주고 싶어요.

인터뷰 전문은 레전드매거진 8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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