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매거진 [레전드인터뷰] 피아니스트, 정원영 | 레전드매거진

피아니스트, 정원영

[정원영]

정원영은 1970년대 후반부터 한국 대중음악 작곡가, 키보디스트, 피아니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로 활동을 시작했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는 그룹 ‘쉼’, ‘석기시대’, ‘사랑과 평화’, 그리고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키보디스트로 활동했고,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버클리 음대 ‘Professional Music’을 전공하며 폭넓은 음악을 경험하기도 했다.      

1993년 솔로 1집 ‘가버린 날들’을 발표했고 수록곡 ‘가버린 날들’, ‘별을 세던 아이는’ 등이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예술의 전당, 세종문화회관에서 한상원, 봄여름가을겨울과 함께 ‘Super Band’로 협연했으며, 1994년 강준혁 연출, 김덕수 예술감독의 ‘총체극 영고’에서 음악 제작과 세션으로 참여했다. 1995년 발표한 솔로 2집 ‘Mr. Moonlight’에서는 ‘다시 시작해’, ‘강남 어린이’ 등의 노래가 인기를 얻으며 대중 가수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1996년 KBS 라디오 ‘정원영의 음악세계’ DJ를 맡아 진행해 많은 청취자들의 가슴속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MBC TV ‘수요예술무대’에 출연해 깊은 밤 시청자들에게 재즈의 매력을 선사하기도 했다. 1998년 3집 ‘영미 Robinson’에서는 ‘그냥’, ‘내 안의 나’ 등의 곡들이 세련된 도회적 감각의 가요를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로서 그의 이미지를 세울 수 있도록 했다.      

한상원과 함께 ‘정원영-한상원밴드’를 이끌며 펑키하고 그루브 한 음악을 대중들에게 선사했으며, 당시 패닉의 ‘이적’을 보컬로 영입해 밴드 ‘GIGS’(긱스)를 결성하게 된다. 울트라 펑크밴드를 표방한 밴드 ‘GIGS’는 1999년 ‘1집 노올자~’, 2000년 ‘2집 동네 음악대’를 연이어 발표하며, ‘랄랄라’, ‘짝사랑’ 등의 히트곡을 남기기도 했으며, 또 ‘정재일’, ‘이상민’이라는 걸출한 신예 뮤지션을 대중음악계에 배출하기도 했다.     

2003년 솔로 4집 ‘Are you happy?’에서는 차분하면서도 깊은 서정의 미학을 담은 음악을 선보였다. 4집 홍보를 위해 제자들(홍성지, 최금비, 임헌일, 한가람, 박은찬, 박혜리)과 함께 ‘정원영 밴드’를 결성했고, 클럽과 대형 콘서트 등 여러 무대를 오가며 관객들을 만났다.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던 그에게 갑작스레 뇌종양이라는 질병이 찾아왔으나 그는 이를 극복하고 당당히 다시 대중 앞에 다시 서게 된다. 2005년 ‘정원영밴드 EP’를 발표하며 뇌종양을 이겨낸 그의 건재를 과시하듯 재즈와 록, 뉴에이지, 라운지를 오가는 휴식과 같은 풍성한 음악을 준비해 다시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2009년 정원영 밴드에 새로운 멤버(이준호, 김윤호, 김수준)를 영입하며 ‘정원영 밴드 2집’을 발표한다. 장르의 벽을 허물고 새롭게 구성된 독특함이 트랙마다 짙게 뿌려진 이 앨범은 정원영의 스타일처럼 세련되고 견고한 색채가 곡마다 화려하게 담겼다. 2010년 정원영은 솔로 5집을 발표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앨범에서 그는 사계절을 닮은 인생을 완벽히 그려냈는데, 계절이 바뀌고 세월이 흐르는 모습을 차분히 피아노에 앉아 작은 목소리로 노래해 표현해냈다. 아름다운 기억을 담은 피아노와 목소리. 또 계절의 변화에 따라 흐르는 피아노 선율이 인상적으로 기억되는 앨범이다.

2012년 전작 발표 이후 2년 만에 다시 정원영은 6집 ‘걸음걸이 주의보’, 그리고 2015년에는 거의 모든 곡이 ‘세월호’에 대한 음악으로 채워진 7집 ‘사람’으로 우리곁에 더 가깝게 다가서고 있다. 마음을 두드리는 피아노 연주와 노래로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물러 아름다운 음악을 선사하는 정원영을 만나 음악과 함께 살아온 지난 이야기, 그리고 그가 앞으로 펼쳐나갈 지금보다 더 아름답고 서정적인 그의 인생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어봤다.      

[교수 정원영]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개인적으로 인터뷰를 꽤 오랜만에 하는 것 같아 기쁘면서도 설레고, 또 약간은 어색한 느낌이네요. (웃음) 만나서 반갑습니다. 피아니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정원영입니다. 이렇게 저의 이야기를 전해주시고자 인터뷰에 초대해주신 레전드 매거진, 그리고 사운드캣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제가 만나자고 정한 곳은 대학로인데요, 이곳에서 저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그래서 수업을 마치고 바로 왔죠. 간혹 제가 활동을 중단하고 나서 몇 년 전부터 학생들을 가르친 것으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사실 저는 1991년도부터 서울예대 실용음악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교수로 재직한 지 어언 30년이 다 되어 가네요. (웃음)      

그때가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즈음이었지요. 그렇게 한국에서 음악을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진 학생들과 처음 만나게 되었어요. 저도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린 나이였는데 (웃음) 다행히 학생들은 저보다 더 어렸죠. 외모만 어렸을 뿐이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음악적 사상과 철학, 그리고 재능은 너무나도 뛰어났어요. 미국에서 막 유학을 마치고 기세 등등한 저였지만 가끔 기가 눌리기도 할 만큼 학생들은 참 매력적이었고 적극적이었던 모습으로 기억됩니다.      

제가 지금까지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 학생들이 가진 재능과 매력을 느끼는 것을 즐기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그런 친구들을 이렇게 오랫동안 만날 수 있다는 게 제 인생에서 가장 큰 복이라 생각합니다. 매년 항상 새로운 학생들이 새로운 모습, 새로운 각오로 저를 만나게 되니까요.      

지금은 각 대학마다 실용음악과가 있을 만큼 활성화가 되어있지만, 사실 90년대 초 당시만 해도 실용음악과는 서울예대 단 한 군데밖에 없었어요. 당시 서울예대 실용음악과에서는 매년 40명 정도밖에 뽑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 시절 유능하고 재능 있는 예비 음악인들 거의 대부분이 선발되어 모였으니 얼마나 그들의 재능이 빛을 바랐겠어요?      

재수, 삼수를 거쳐 오거나 아예 음악 생활을 하다가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어 입학한 꽤 나이 있는 학생들도 간혹 있었지만 대부분이 20대 초반이었어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음악적 에너지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강력했고, 그들의 이런 열정이 저를 게을리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해야만 하는 모티브가 되었죠.     

사실 제가 갓 서른을 넘겼던 때라 학생들과 10살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참 다채롭고 이상적이며 현실적인 음악관, 그리고 반대로 상당히 초현실적인 패션과 문화가 뒤섞인 매력 덩어리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최초로 개설된 실용음악과는 당시 완전히 백지상태였기 때문에 저와 학생들이 마음껏 그 백지를 채울 수 있어 좋았어요. 누군가 내린 정의를 따라야 하거나 간섭을 받을 필요도 없었죠. 너무나 자유로웠고, 이런 자유가 학생들의 재능을 완벽히 발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었던 것 같아요.      

저 역시 교수로서 제가 미국에서 배운 음악적 지식과 경험을 마음껏 학생들에게 가르쳐줬어요. 이런 환경이다 보니 당연히 좋은 학생들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었죠. 저의 팬이었던 학생이 졸업해 뮤지션이 되면 저는 다시 그 학생의 팬이 되는 참 아이러닉 한 (웃음) 일들이 빈번했어요. 그래도 기분은 너무 좋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며 동덕여대, 동아방송대에서 실용음악과를 개설했고 더 많은 학생들이 실용음악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특히 음악을 무조건 반대하던 저희 부모님 세대와는 달리 당시 학생들의 부모님들은 자녀가 실용음악과로 진학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주시는 분들이 많으셨어요. 그래서 저희 때보다도 더 자유로웠던 기억도 있습니다.      

[세대의 변화]

학교를 옮기기는 했지만 저는 거의 30년이란 세월을 학생들과 함께 해왔어요. 그렇게 한 해가 가고 또 다른 한 해가 오며 세월이 흐르고 가끔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만감이 교차합니다. 특히 당시 학생들과 지금 학생들의 차이점도 많이 느끼게 되구요. 제 기억으로는 90년대 초 당시의 학생들은 음악을 참 많이 알고 있었어요.     

아무래도 70년대, 80년대와 가까운 세대다 보니 다양한 음악을 접했을 것이고, 특히 음악을 어렵게 들었던 세대라 음악에 대한 각별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길보드 차트’라 불리던 불법 복제 테이프도 많지 않던 시절이라 당시 학생들은 어렵게 수소문해 ‘원판’보다 더 힘들게 ‘백판’을 구입해 듣던 시절이었어요. 불법 복제 음반이라고 아무데서나 구할 수 있던 시절도 아니었죠. 당연히 금액도 만만치 않았고요.     

학생들은 일단 어렵게 어렵게 용돈을 모아 앨범을 살 돈을 마련합니다. 그렇게 돈이 마련되면 이제 그 음반을 어디서 살 수 있는지 친구의 친구, 그 친구의 친구에게 물어물어 ‘백판’의 소재를 파악하죠. 학교를 다녀야 하니 시간 내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그렇게 힘들게 겨우 손에 넣은 한 장의 백판 음반은 그들에게 하나의 보물이 되어버립니다.     

그렇게 산 음반을 쉽게 들을 수 있을까요? 지금처럼 인트로 10초 정도 듣다가 내 스타일 아니라고 넘겨버리거나 삭제해 버릴 수 없었을 거예요. 내 스타일이던 아니던 음반에 담긴 모든 곡을 정독하듯 귀로 읽어 내려갔습니다. 이런 학생들이 음악적 감각이나 감성이 부족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바탕이 있었기에 당당히 그들의 열정을 내보일 수 있지 않았을까요?     

[디지털 세상]

그럼 잠시 숨을 돌릴 겸 지금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요? 일단 세대를 논하기 전에 기계적 장치화된 음악을 듣는 방법의 변화부터 얘기해야겠네요. 우리는 흔히 현시대를 ‘디지털 시대’라고 합니다. 정말 빠르고 편리해졌죠. 음악도 길거리를 걷다 듣고 앱만 열면 누구 노래인지 3초 만에 알려줍니다. 나는 그걸 유튜브에서 듣거나 구글에서 검색해 다운만 받으면 되죠. 그런데 길거리에서 듣던 부분 거기만 딱 좋고 전체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면 그냥 ‘삭제’. 끝입니다.      

이렇게 음악을 접하는데 과연 음악에 대한 각별함이 생길까요? 쌀을 하찮게 여기는 요리사가 과연 음식을 맛깔나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요즘 세대는 비단 학생들뿐만 아니라 우리 기성세대 역시 소나기처럼 쏟아내리는 디지털화된 정보를 다 소화해내지도 못하고 버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지루할 때 뉴스를 검색하며 제목만 읽고 훅훅 넘겨버리고 나서는 세상을 한탄합니다. 이러니 안된다, 저러니 살 수 있겠냐며. 그 안에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 정확히 읽어보지도 않고 세상을 비판하려 하고 자신을 신격화하죠.     

서두가 너무 길었네요. (웃음) 아무튼 이런 세상을 만난 요즘 학생들을 평가하자면 한 마디로 음악을 너무 모릅니다. 수많은 음악의 도입부 10초만 듣고 그 음악을 평가하려 하고 분석하려 하죠. 자기 스타일이면 ‘호평’을, 자기 스타일이 아니면 ‘혹평’을 늘어놓습니다. 또 다행히 요즘은 자신의 의견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댓글’이라는 시스템까지 갖춰져 있으니 그들의 생각은 또 삽시간에 퍼져 나가죠.      

그리고 특히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전공하는 분야의 음악만 듣다 보니 음악적 시각이 상당히 좁아집니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고 그냥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들보다 더 모를 때도 많아요. 음악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은 자기가 음악을 좋아하니까 그냥 편하게 여러 가지 음악을 접하려 시도하죠. 그 시도 자체가 그 사람의 음악적 시야를 넓혀줍니다. 하지만 전공자들은 최대한 짧은 시간에 입시와 관련된 음악을 독파해 합격을 해야 하다 보니 한우물만 파게 되는 것이죠.      

2000년대 초, 저는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고, 그 해결책으로 음악과 입문학 교양을 접목해 정말 감성적으로 음악을 접하고 순수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클래스를 개설했습니다. 이 클래스에서는 제가 가장 절실히 바뀌었으면 했던 ‘음악 듣는 습관’부터 바꿔보려 노력했어요. 이 클래스를 강의하다 보니 저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죠.     

‘아, 내가 지금 스무 살이 넘은 대학생들에게 아무리 교양 수업처럼 쉽고 편하게 음악을 듣는 습관을 강의한다고 바꿀 수 있는 게 아니구나’     

그 이유는 이들은 이미 성인입니다. 초, 중, 고 적어도 12년이란 세월을 세상이 짜 놓은 틀에 맞춰 음악을 듣던 아이들이었던 거죠. 10년 이상 지속된 습관을 대학에서 아무리 편하게 제시한다고 해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대학에서 이러고 있을게 아니라, 아예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음악 선생님을 하는 게 맞는 게 아닐까 고민하고 있어요.      

그때 아이들이 음악을 듣는 습관이나 음악을 대하는 태도를 잡아주는 게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요. 아무리 음악이 좋아 음악에 파묻혀 학창 시절을 보내고 대학에 진학했다 하더라도, 최소한 음악 외에 알아야 할 것들, 읽어야 할 것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놓치고 대학에 온 거죠. 저는 그래서 학생들에게 대놓고 이런 얘기를 해요.     

“만약 너희가 음악을 잘 못한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그건 너희가 음악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위험한 것은 음악만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거나 듣는 음악은 그저 잡다한 음악에 국한되어 있고, 또 그야말로 실용음악과를 진학하기 위한 음악만 듣고 했기 때문에 음악적 사상과 철학, 견해와 지식의 폭이 너무나 좁은 거예요. 대학에서 그걸 넓혀줘야 하고 저 역시 넓힐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참 힘들더라고요.     

오죽하면 제가 영화 ‘백 투 더 퓨쳐’에서 주인공이 과거로 가는 것처럼, 학생들의 과거인 중학교, 고등학교로 가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까지 들까요? 심하게 말하면 정말 미래가 없습니다. 지금의 실용음악과에서는 음악을 하는 음악가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음악을 만드는 기술자들만 양성하고 있어요. 정말 암담한 현실입니다.      

물론 뛰어나게 연주를 잘하는 친구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명곡들을 끊임없이 들으며 연습해 완벽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내는 재능은 정말 높이 살만합니다. 그 역시 음악에 대한 열정이라 생각하고 있고요. 하지만 이 학생들 역시 자기가 욕심나는 몇 곡만을 들으며 자라왔다는 단점이 있죠. 똑같이 따라는 하지만 거기에 자신의 상상력이 더해지는걸 두려워하죠. 자신의 마음대로 곡을 바꿀 엄두를 못 낸다고나 할까요?      

그러다 보니 기계적으로 복사하는 음악에 끊임없이 몰두를 하는 것 밖에 안 되는 거예요. 심지어 미국이나 해외로 유학까지 다녀온 친구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들이 유학 생활을 했던 해외에서는 음악을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는데 한국에 돌아오면 한국에 뿌리내린 기계적 환경에 급속한 속도로 적응을 해서 그런 거 같아요.     

[한국의 음악 교육]

미국이나 캐나다의 경우는 부모님들이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한 가지 악기는 연주할 수 있게 길을 열어줍니다. 여기까지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죠. 우리도 어릴 때 피아노 학원이나 바이올린을 배우는 아이들이 많잖아요. 문제는 그 학생들이 ‘학교’하는 곳에 진학하면서부터 완벽한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우리는 일단 초등학교 저학년이 되면 수학, 영어를 집중적으로 교육받아야 합니다. 우리말도 서투른 아이들일 학원에 자리를 꽤 차고앉아 남의 말을 배워야 하죠. 음악은 그리 중요한 학과도 아니고 아예 수업이 없어진 학교도 허다합니다. 우리 학생들은 이미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죠. 엄청난 ‘월반’을 경험해야만 합니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학교 생활을 하면서 악기 하나는 기본적으로 계속 배워야 합니다. 학교 내에 오케스트라, 스쿨밴드도 방과 후 수업으로 하나의 학과목으로 편성되어 있죠. 억지로 배울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친구들과 어울려 놀며 악기로 화음을 맞춰보고 서로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의견도 나누며 하나의 음악을 함께 만들어 갑니다.     

이렇게 음악을 접하다 보니 그들은 그들이 듣던 음악에 상상력을 더하는 법을 너무나 일찍 배우게 됩니다. 음악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데 익숙해 있으니까요. ‘원곡에서는 이렇게 되어있는데 우리는 이렇게 한번 해보면 어떨까?’ 이런 발상과 시도 자체가 그들의 음악적 시야를 무한하게 넓혀줍니다. 또 학생들이 태어나기 40년, 50년 전의 노래들이 항상 라디오 전파를 타기 때문에 그들은 ‘올드’한 음악이라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아버지가 듣는 음악은 일단 무조건 안 들으려 하는 습성이 있잖아요. 해외에서는 이런 세대 간의 격차를 없애며 세대 간 공감을 할 수 있는 역할을 라디오나 TV 등 미디어가 완벽히 수행해냅니다.      

[한국, 그리고 미디어]

우리의 미디어는 어떤가요? 여러분은 혹시 요즘 라디오를 들으시나요? 아마 서른이 넘은 나이가 된다면 TV 음악 프로도 안 볼 거라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죠.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한국의 미디어 매체에서는 10대 만을 위한 가수들만 모습을 드러내니 기성세대는 그 틀에 굳이 들어갈 이유를 못 느낍니다.     

우리 기성세대의 부모님 세대는 먹고살기 바빠 문화예술을 즐길 여유조차 없었어요. 극장에 가서 영화 한 편 보는 것도 큰 일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남녀가 영화라도 한편 보고 나면 결혼을 고민해야 할 만큼 어려운 일이었죠. 그 세대의 다음 세대인 지금의 기성세대는 경제적으로는 조금 나아졌습니다. 하지만 보고 듣고 즐길 거리가 없는 거죠. 이미 ‘바통’은 그들의 자녀 세대에게 넘어간 지 오래니까요.      

기성세대는 휴대폰에 자기가 즐겨 듣던 80년대, 90년대 음악을 다운로드하여 아무도 모르게 이어폰을 끼고 조용히 음악을 즐겨야만 하죠. 간첩이 염탐하기 위해 산속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라디오를 듣는 것처럼. 미디어와 매체에서 앞장서서 한국 국민들을 문화예술의 ‘맹인’(盲人)이나 ‘농아’(聾兒)으로 둔갑시켜버리는 것이죠.      

[유학을 권하는 교수]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요점은 지금 학생들이 깊이 있게 음악을 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미디어와 매체가 그런 환경을 조성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 정말 뛰어난 재능과 음악적 감성, 그리고 의욕을 가진 친구들에게는 유학을 권합니다. 대한민국의 대학 교수가 자신의 제자에게 유학을 권한다? 이게 과연 말이 되는 일일까요?     

하지만 저는 정말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 이유는 그 학생이 여기서 음악을 배우기 너무 아깝다는 생각 단 하나입니다. 1리터의 열정을 가진 학생을 200ml 우유팩에 담으려 하는 게 눈에 빤히 보이는데 어떻게 교수의 입장으로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어요? 교수와 학생의 사이를 떠나 하나의 어른과 아이라는 ‘인간 대 인간’의 입장으로 저는 그렇게 못합니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유학 가라 하지는 않죠. (웃음) 내가 이 학생에게 유학을 권해 이 학생이 어려운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한국에서 음악적으로 성공하거나, 아니면 해외 현지에서 주목받는 한국인 음악가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서는 학생들에게만 진지하게 이야기합니다.   이는 재능과 더불어 아주 많은 시간을 온전히 음악에 몰두해야 하는 ‘재즈 연주자’로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는 학생이 되겠죠?

그렇다고 다른 학생들이 뛰어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학생들 개개인마다 모두 재능이 있고 장점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학생들이 부족하다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교육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저는 정말 음악에 열정을 가진 학생들을 위해 저녁 8시에 방과 후 수업을 하기도 합니다. 놀라운 것은 출석률이 대단히 높아요. 이는 학생들 역시 음악을 배우고자 하는 의지는 대단히 강하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재능있는 학생들에게 밴드로든 작곡가로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만들고 여러 분야에서 연주로 작곡 편곡으로 참여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

[교육을 탈피한 교육]

방과 후 수업은 입시나 교육이라는 느낌은 철저히 배제하고 정말 순수하게 음악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하고 또 연습하는 시간입니다. 싱어송라이터 관련된 수업은 각자 2주 동안 개별적으로 곡을 완성해 저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저 역시 그 사이 새로운 곡을 하나 써서 저와 학생들이 모여 서로 만들어온 곡에 대한 의견도 나눕니다.      

예를 들어 이번 주 ‘싱어송라이터’ 수업의 주제는 ‘음악에서 자기 색깔을 갖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요?’라는 한 학생의 질문에서 시작됐습니다. 제가 답을 하지는 않죠. 학생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으로 이 질문의 정답을 유추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렇게 자유롭게 오고 가는 대화에 모든 정답이 들어있다는 거예요. 자기가 아는 뮤지션 누구누구는 이러했다, 자기가 아는 어떤 곡은 이러이러해서 색깔이 뚜렷하다 등. 단순히 자기 의사만 표현하는 게 아니라 그 의사의 근거로 아티스트나 노래를 예시로 제시하기까지 하는데 정말 놀랐습니다.      

그렇게 심도 있게 의견을 나눈 학생들은 이제 2주 동안 자기가 써왔던 곡에 자신만의 색깔을 입히는 작업을 합니다. 학생들이 서로 공유한 지식과 정보, 감성과 견해가 더해진 곡은 확실히 틀려집니다. 그리고 저 분만 아니라 학생들의 선배들도 이 학생들에게 레슨을 합니다. 저는 선배 학생들에게 “너희가 배운 것처럼 이 학생들을 가르치치 마라. 너희는 비록 엉망진창으로 배웠지만, 이 학생들은 최소한 아름다운 음악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라”라 당부합니다.     

[마지막 메시지]

저는 학생들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훌륭한 예술인이라 생각하길 바랍니다. 자기 스스로가 자기를 높게 평가하지 않는데 어느 누가 그 사람을 높게 평가해 줄까요? 이런 자부심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부단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내가 노력하지 않은 일에 자부심을 갖는 것 역시 거짓말쟁이죠. 그리고 ‘음악을 한다고 꼭 음악만 하지는 마라’라 얘기하고 싶어요.

가사를 쓰건, 멜로디를 만들건, 연주를 하건, 노래를 하건 이 모든 일련의 활동의 바탕은 바로 감정입니다. 왜 우리도 가끔 십 수년 전 일을 생각하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거나 때로는 갑자기 펑펑 울고 그러잖아요. 그게 예전에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나 그렇게 되는 건데, 그 감정이 바로 경험입니다. 화났거나 슬펐던 경험이 있으니 그 감정이 되살아나는 거죠.     

음악을 만들거나 가사를 쓸 때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려 합니다. 이때 감정을 끌어올릴 수 있게끔 해주는 힘이 바로 경험이죠.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책 표지를 봐도 아무 감흥이 안 오지만, 책을 읽은 사람은 책 표지만 봐도 그 책의 내용 때문에 슬프거나, 웃기거나, 감동적이거나 하는 감정을 표출하게 되죠.      

돈과 입시만을 위해 음악을 해야만 하는 시대를 벗어나 우리 감성을 자극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음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기를 바랍니다. 이 학생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음악을 그만두어야 하는 일도 없어야 하며, 또 그들이 꿈을 이루는데 우리 기성세대가 걸림돌이 되어서는 더욱 안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라디오와 TV, 신문과 잡지 등 모든 미디어와 매체가 더욱 다양한 장르와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문화예술 콘텐츠를 소개해, 우리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문화예술적 선택권의 폭이 넓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이렇게 장황한 저의 이야기를 끝까지 귀 기울여주시고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우리 대한민국 음악, 그리고 음악인들을 항상 응원해주시고 많이 사랑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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