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매거진 김문정 음악감독 – 레전드매거진

김문정 음악감독

뮤지컬은 관람자에게 상상력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이는 무대라는 한정된 규모의 공간을 지중해로, 브로드웨이로, 1600년대의 파리로 이동하거나 확장시키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힘의 움직임에 동참하고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짐으로써 결코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생생한 현장감각에 동화되기 위한 관객으로서의 역할이기도 하다. 녹음된 음원을 듣거나 영상을 볼 때와는 달리 배우들의 컨디션과 객석의 호응에 따라 분위기가 좌우되는 뮤지컬 현장은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나 미래로 가지 않는 한 오로지 ‘지금 여기’ 에만 존재한다. 온전한 진실의 살아있는 순간이 내 앞에서 펼쳐지기에, 전장에서 피어나는 붉은 꽃처럼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배우의 몸짓과 노래가 매체나 스크린 바깥 나의 실제 경험세계에 있기에, 먹고 마시는 것을 공복을 채우는 알약만으로 대체할 수 없듯 뮤지컬을 관람하는 행위는 결코 언택트 공연만으로는 대체될 수 없다. 살아있기에 느낄 수 있는 무대와 객석 간의 단단한 교감, 그 공감대를 실체화하는 결정적인 열쇠는 바로 뮤지컬 넘버, 즉음악이다. 뮤지컬 무대 위의 살아있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무대 아래 존재 하는 공간, 오케스트라 피트를 이끄는 김문정 음악감독의 표정과 몸짓에는 무대의 기승전결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공연이 멈춰도 무대는 영원하다  

코로나 사태로 공연 일정에 상당 부분 변동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공연이 취소되거나 미루어지는 상황이에요. <모 차르트>의 10주년 기념공연이 예정보다 3일 앞당겨 종료되면서 주말 공연이 취소되었다는 것도 오늘 아침에 알았어요.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기 전까진 줄곧 바쁜 나날들을 보내왔어요. <제 이미>와 <모차르트> 두 개의 작품에 참여하면서 9월 14일 오픈 예정인 <그레이트 코맷>과 방금 막 잠정 연기가 결정된 <쇼 머스트 고 온!>을 준비하고 있었고, 뮤지컬 외 개인적인 활동으로는 슈퍼주니어의 규현 씨와 함께 뮤지컬 토크쇼 ‘뮤:시즌’을 진행하 면서 손준호 씨와 옥주현 씨의 콘서트 준비작업으로도 바쁘게 지냈어요. 일이 많아 힘들다고 투정 부리기에는 많은 기회가 주어져 감사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는데, 상황이 이러니 어쩌면 당분간 조금은 한가해질지도 모르겠네요.

<그레이트 코맷>은 어떤 작품인가요?

관객과 객석의 구분 없이 관객과 배우가 직접 소통하며 즉흥성을 추구하는 이머시브 공연(Immersive Theatre) 방식의 뮤지컬이에요. 한국에서는 이런 방식이 자주 소개되지는 않아 생소하실 수도 있는데, 무대 가운데에 지휘자가 있고 배우들이 원형 동선으로 움직이면서 객석은 그 안에 군데군데 짜여 있어 마당 놀이를 연상시키기도 하죠. 오리지널은 이런 방식이지만, 시국을 고려해 객석 수를 최소화하는 등 규모를 축소시켰어요. 그마저도 지금은 본래 일정대로 오픈할 수 있을지 불안한 상황이긴 합니다. 그레이트 코맷은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중 일부인 포화 속에서도 사랑을 고민하고 번뇌했던 장면을 발췌해 제작한 뮤지컬이에요. 그 장면을 음악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이 매우 기발한데 일렉트로닉, 오페라, 팝, 힙합 등다양한 음악 장르가 등장하고 출연배우들의 일부는 직접 연주도 해요. 때문에 피아노, 아코디언, 바이올린, 클라리넷 등 다양한 악기를 배우들이 오로지 이 공연만을 위해 상당 시간 동안 연습했어요. 티켓팅을 시작 하자마자 금세 매진될 만큼 사람들의 반응도 뜨거웠죠. 기본적으로 스피커가 정면으로 향해있는 공연들과는 다르게 전면에 스피커가 하울링 없이 셋업 되어야 하고 배우들의 연주와 노래, 관객 반응까지 모두 느껴야 하는 상황이기에 모니터링 환경이 굉장히 중요해서 음향 감독님과 계속 모니터에 대해 확인하는 중이 며, 저는 현장에서 모든 것을 조율하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섬세한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떤가요?

극 하나를 올릴 때의 연습시간은 보통 6주에서 7주 정도인데, 이번 작품은 9주에서 10주 가까이 연습했어 요. 개인 악기를 소화해야 하는 주연배우 케이윌 씨와 홍광호 씨는 지난겨울 일찍이 연습을 시작하셨죠. 두분 모두 꾸준한 노력으로 지금은 피아노와 아코디언 연주를 수준급으로 잘 소화해내고 있습니다. 본인들의 연습량이 많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인내심을 갖고 연주자와 합주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려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작품조차 올릴 수 없게 된다면 많이 아쉬울 것 같아요. 오랜 기간 모두가 정말 공들여 열심히 준비했고, 표도 금세 매진될 정도로 주목받고 있는데 말이죠.

■ 음악, 참을 수 없는 기쁨

어떤 성장과정을 통해 음악감독이 되셨어요?

음악가 분들 중 상당수가 음악가 집안에서 자라 부모님 혹은 친척 형제의 영향으로 음악을 시작하곤 하는데, 우선 저희 집이 음악가 집안은 아니에요. 저는 어릴 때부터 악기에 대한 욕심이 많았어요. 어머니가 사주신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연주에 재미를 느껴 음악을 하게 됐지만 피아노 외에 다른 악기 들에도 욕심이 많았어요. 이사 간 옆집에 바이올린 교습소가 있었는데 엄마를 졸라 바이올린을 배웠 었고, 교회에 다니면서 핸드벨도 배웠는데 연주를 곧잘 해서 핸드벨 콰이어에도 들어갔어요. 콰이어 에서는 솔리스트를 했었죠. 그 무렵에 관한 가장 예쁜 기억은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날 저녁 핸드 벨을 들고 다니며 캐럴을 연주했던 기억이에요. 그날 밤, 핸드벨로 연주한 맑고 아름다운 캐럴의 선율이 온 사방에 축복처럼 울려 퍼졌죠.

최초의 뮤지컬 경험은?

중학교 2학년 때 반에서 단체로 관람했던 <아가씨와 건달들>이 제 인생 최초의 뮤지컬 경험이 에요. 관람 후 엄마를 모시고 한번 더 보러 갔었어요. 넘버들이 너무 좋아 OST 가 수록된 카세 트테이프를 사서 정말 매일매일 들었어요. 원작은 빅밴드 구성인데, 당시 보고 들었던 작품의 악기 구성은 피아노 한대뿐이었죠. 시간이 흘러 2014년에 음악감독으로 <아가씨와 건달들> 을 맡게 되었어요. 옛날 생각이 나면서 기분이 묘했고, 그때 듣던 카세트테이프를 찾아서 다시 듣다가 피아노 하나로만 녹음했다는 걸 알고 새삼 놀랐어요. 그때는 인지도 못했던 시절이라.
나중에 알았는데 그때 들었던 테이프는 정식으로 라이선스를 받아와 녹음한 건 아니더라고요.
대학교 졸업 전에 뮤지컬 <코러스라인>의 세션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당시 가수 세션을 하고 있었는데 그에 비해 뮤지컬 쪽에서 제시된 조건은 열악했지만 얼마를 버는지 생각이 안 날 정도로 너무 재미있게 했어요. 음악을 계속한다면 뮤지컬 쪽에서 하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으로 했었죠. 실용음악을 전공하면서 중점적으로 배웠던 재즈에는 큰 흥미를 못 느꼈던 것에 반해, 음악만 들어도 그림이 펼쳐지며 인간의 정서를 대변하는 듯한 느낌과 악곡의 진행이 규칙적이지 않은 뮤지컬의 매력에는 점점 빠져들었어요. 보통 앨범을 내면 평균 러닝타임 같은 것이 있는데, 뮤지컬은 구성이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러닝타임도 1분, 3분, 10분 등 천차만별에 장르도 정말 다양하잖아요. 이렇듯 뮤지컬이기에 가능한 특징들이 큰 매력으로 느껴졌어요.

내 인생 최고의 뮤지컬 넘버는?

<레미제라블>의 ‘I dream a dream’. 레미제라블 10주년 기념 콘서트를 보며 그 곡에 감동받아서 언젠가 저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어요. 영화 레미제라블을 통해 앤해서웨이가 부른 버전이 많이 알려져 있는데, 실은 지난 30년간 뮤지컬 여배우들이 정말 많이 불러왔던 넘버죠.

■ 나의 공간 나의 무대, 오케스트라 피트

무대 한 편을 올리기 위해 어떤 준비와 노력을 하시나요?
연습시간, 연습과정, 신경 써야 하는 부분 등.

작품 의뢰가 들어오면 먼저 작품 분석을 통해 그 안에서 요구되는 배우의 심리와 음악의 스타일, 그리고 극장 규모 등 전반에 대해서 스탭회의를 하는데 길게는 공연을 올리기 1년 전부터도 논의해요. 그다음 진행되는 게 오디션이죠. 작품에 적합한 스태프와 배우에 대해서 사전 조사하고 공개 오디션을 진행하는데, 요즘은 1년 전부터 하는 경우도 많아졌어요. 그리고 만약 외국 작품이라면 가사를 번역해야 하기 때문에 가사 회의를 하죠. 1차 적으로 작가가 작업을 하면 음악감독과 음악팀이 피아노를 연주해보며 발음상의 어려움이나 진행상의 매끄러움 등을 확인해 요. 그런 과정을 거쳐 보통 공연을 올리기 2개월 전부터 배우들을 만나서 첫 연습을 시작합니다. 첫째 주에는 전적으로 음악연 습을 하고, 그다음에는 음악만 쭉 연결해보는 작업을 해요. 음악을 알아야 안무를 할 테니. 안무와 드라마를 동시에 진행하기 전까지 그렇게 2주 정도의 작업 기간이 소요되죠. 음악은 중간중간 계속 체크하면서 연습 4주 차부터 단락을 나눠 조각조각을 붙여보는 작업을 일주일 정도 하고, 끝나면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쭉 이어서 해보죠. 거기까지 배우들과 마치면 저는 오케스트라와 연습을 들어가요. 오케스트라와의 연습을 일주일 정도 하고 배우와 오케스트라를 비롯해 출연진 모두가 만나 시츠프로브 리허설을 진행합니다.

작품을 선정하는 감독님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첫 번째,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가 있는가. 그것이 사람이건 음악이건 작품이건. 뭐가 되었건 마음을 움직인다면 해요. 저 사람과 함께 일을 하고 싶거나, 컴퍼니에 대한 좋은 인상이 있거나. 스토리가 좋거나. 과거 <서편제>를 제안받았을 때는 국악이라는 생소한 장르에 경험해보지 않은 판소리라는 장르는 저에게 새로운 영역이었지만, 주연배우 이자람 씨와 꼭 일을 해보고 싶어 도전했죠. 두 번째는 재미있어야 하고, 세 번째는 돈이기도 해요. 하지만 돈에 대한 가치는 상대적인 거라서 큰돈이 아니어도 앞서 첫 번째 두 번째가 만족되면 할 수 있는데, 내가 상대적으로 큰돈을 받더라도 이 돈을 받고 여기서 뭘 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 것 같으면 참여하지 않겠죠.

감독님이 설립하신 더피트(THE PIT)는 어떤 회사인가요?

뮤지컬 무대에서 오케스트라가 있는 공간을 피트라고 이야기해요. 피트 출신들끼리 모인 회사이기에 피트라고 이름 지었어요. 저희가 추구하는 방향은 이쪽 일을 하고 싶은 아티스트들을 발굴해 연결시 키는 연결고리가 되는 거예요. 그 외에도 뮤지컬 음악의 가치를 대중들이 알 수 있도록 저변 확대를 하고 싶어요. 연주자 분들 중에 20년 동안 저와 함께 하고 계신 분들도 계신데 그들이 은퇴 후에도 내가 그동안 정말 잘 해왔다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단체로 자리 잡는 것이 제가 함께 그려가고자 하는 회사입니다. 해외에는 연주자 유니온이 있어 코로나 시국에도 어느 정도 생계가 지원되는데, 한국은 당장 공연이 취소되면 생계가 막막한 분들도 많다 보니 그런 부분들을 자체적으로 해결해보고자 하는 노력으로부터 출발한 회사죠. 얼마나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모르나 음악의 힘을 전하는 자랑스 러운 회사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 다시, 무대로

더 이상 음악을 듣고 싶지 않을 만큼 권태를 느끼거나 무기력해지는 순간이 찾아올 때도 있었나요? 그럴 때 나를 다시 무대로 이끌었던 힘은 무엇이었나요?

있었죠. 아무리 좋아해도 일로 다가오는 건 좀 다른 것 같아요. 저는 쉴 때는 음악을 듣지 않아요. 운전할 때도 참여하는 작품의 음악을 듣죠. 그러다 보니 여가시간에 음악을 찾아 듣지 않는 게 습관이 됐어요. 예전에는 수시로 음악을 찾아들었었는데 음악감독이 되고 나서는 참여하는 작품 외에 다른 음악을 듣기가 버겁더라고요. 어릴 때는 돈이 생기면 음반을 하나씩 모으는 게 기쁨이고 행복이었던것 같은데, 그런 작은 행복이 사라진 것 같아서 조금 아쉬워요. 그러다 한 번은 뮤지컬 <도리안 그레 이>라는 작품을 써야 했을 때, 작품이 저에게는 어렵고 기괴하게 느껴져서 쉽지 않았어요. 그때 개인 사까지 겹쳐 사람에 대한 실망도 크게 느끼면서 일에 대한 권태도 한 번에 찾아와 참 힘든 시기였는데 결국 쓸 수 있었던 것은, 그 시절에 그런 감정을 겪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 후로는 권태를 겪을 때 그 위기나 시련 자체도 축복이고 훗날 나에게 새로운 에너지가 될 것이라 생각하며 극복하려고 노력했어요. 권태를 느낀다면 그 또한 결국 저에게 필요한 시기이며, 저라는 사람이 한번 더 성장 하는 계기가 될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의 저를 다독여주는 건 딸아이들이에요. 엄마를 자랑 스러워하고, 엄마의 길을 걷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며 아, 내가 헛살진 않았구나 싶죠.

감독님의 꿈이 궁금합니다.

저는 매일 꿈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어요. 솔직히, 그동안 하고 싶었던 건 다했어요. 곡을 써서 작품도 올렸고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레미제라블>도 했었고 지난해에는 단독 콘서트도 했죠. 그 누구보다도 많은 작품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래서 이것만은 꼭 이루고 싶다는 건 지금 시점에는 존재하지 않아요. 다만 오늘의 공연을 보러 찾아온 모든 관객 분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하루하루를 오랫동안 이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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