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매거진 전설의 골키퍼, 김병지 – 레전드매거진

전설의 골키퍼, 김병지

추운 겨울, 광명시 한 아트 갤러리에서 인터뷰를 위해 소탈하고 다부진 느낌의 그와 마주했다. 프로 축구 최다출장 706경기, 최다 무실점 229경기, 최고령 출전 45년 5개월, 골키퍼 최다 득점자 3골. 그의 남다른 실력과 성실함 뒤에는 치열한 자기관리와 노력 그리고 무거운 책임감이 있었다.

이 날, 쉼 없이 달려온 그의 일대기를 허심탄회하게 들어봤다. <기자 주>

축구와의 인연은?

놀이로 시작했죠.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전교에서 가장 달리기가 빨랐어요. 당시 재학 중이던 밀양초등학교에서 축구와 육상 두 가지를 육성했는데, 저는 달리기가 빨라 육상을 했다가 교내에서 더욱 밀어주던 축구를 하게 됐어요.

당시에는 분위기가 엄격했어요. 저는 그저 놀기 위해 시작한 축구였는데, 열심히 안 하면 체벌을 받았죠. 그러다 흥미를 잃기도 하고.. 뭐 그러다 축구를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게 고등학교 때였어요.

그런데 대학교를 못가 직장 팀을 가게 됐는데, 당시 따지고 보면 축구선수로서는 포기라고 봐야 할 위치에 간 거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으니까..

하지만 꿈을 놓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던 중 기회가 생겨 국부 체육부에 들어가게 되어 이후 울산 현대 축구단에 들어가고, 좋은 지도자와 좋은 선배님들을 계속해서 만나면서 스물 세 살에 프로에 입단하게 됩니다.

스물다섯에 국가대표가 되고, 월드컵에 나가고 706경기를 하기까지 마흔 여섯 되기까지 선수생활을 한건데.. 그간의 이야기를 다 하자면 한 달도 부족해요.(웃음)

선수생활중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제 별명이 공격하는 골키퍼 였어요. 헤딩 골 넣으면서 케이리그 최초의 골키퍼 프리더볼로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계시죠.

그리고 2002년 월드컵 앞두고 드리블로 히딩크 감독님과 멀어져 기회를 잃었을 때가 좀 어려웠던 시기였고.. 그래도 그 후 14년 정도 선수생활 하면서 과거 어려웠던 경험이 밑거름이 되어 팬들과의 소통, 신뢰관계를 쌓는 데에 밑거름이 됐어요.

‘나이가 있으니 한번 미끄러지면 끝이잖아요. 하루하루가 전쟁이었죠.’

그가 선수 생활을 오랫동안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철저한 관리와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었다.

제가 500경기를 뛰었을 때가 딱 제가 마흔 살이 넘었을 때였어요. 그럼 이제 600경기를 넘으려면 3년간 풀 시즌을 뛰어야 하는데, 팀 내부적으로도 경쟁자들이 있으니까..

나이가 있으니 한번 미끄러지면 끝이잖아요. 하루하루가 전쟁이었죠, 뭐.

힘든 상황들을 이겨내기 위한 훈련이나 마음가짐은?

20대 초반부터 10년간은 상승기였어요. 젊을 때니까. 체격도 점점 좋아지고, 심리적으로도 도전할 수 있는 것들 것들도 다양하고. 그런데 서른두살부터는 저 뿐만 아니라 모든 분들이 생체능력이 떨어지게 되잖아요.

그래서 최대한 당시의 상태를 유지하려고 했어요. 술 담배 안 하고, 몸무게 조절하고, 최대한 이 상태를 유지하자. 그렇게 14년을 보냈어요. 10년간 상향, 14년은 하강하지 않도록 ‘유지’하는 데에 전력을 쏟은 거죠.

<꽁병지TV로 새로운 목표를 향해가다>

꽁병지TV는?

제가 92년도에 꽁지머리 했었잖아요? 당시에 젊은 남자가 노란색으로 당시 염색을 하는 건 일반적인 범주를 벗어났던 거에요. 같은 맥락으로 공중파와는 다르게 내 표현을 자유롭게 구사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유투브에 끌렸어요.

공중파는 선수가 부족하다는 소리를 못하죠. 분위기도 맞춰야 하고. 슈팅이 잘 맞았니? 라고 물었을 때 ‘아니야. 빗맞았는데, 왼쪽으로 들어갔어. 운빨이야.’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콘텐츠가 유투브죠.

저는 그런 매력에 끌려 최근 유투브가 대세가 되기 전부터 시작했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콘텐츠는?

축구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입니다. 저의 장점은 30년 이상을 축구에 몸 담으며 경험을 통해 얻은 전문성이죠. 저희는 어떻게 전문가적 지식과 견해를 일반 팬들에게 제시를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해요. 그렇다고 저희가 예능감이 떨어지는 건 아니고.(웃음)

이런 눈높이를 맞춰줄 수 있는 유투브가 꽁병지TV 가 아닌가.

꽁병지TV 외 추진중인 사업은?

김병지 축구 클럽, 유투브 꽁TV, 꽁쇼핑. 이런 다양한 것들이 있는데 꼭짓점은 구단주에요. 구단주가 되기 위해 여러 퍼즐을 맞추는 단계입니다.

에이전시와 진행중인 건도 있고, 프랜차이즈 사업계획도 잡고 있어요. 이런 비즈니스들이 성공하여 하나로 뭉쳐 교육 콘텐츠를 잘 만들어 구단주가 되는 것이 목표인데, 지금 제가 하는 일들을 완벽하게 하고 난 다음에 생각해 볼 문제죠.

실은 프로축구단 단장자리에 대한 제의가 들어왔었는데, 지금 계획하고 있는 일들 때문에 거절했어요. 우리 나라 축구인들 중 단장직 마다하는 사람이 있을까 물었더니, 아마 없을 거라 하더라고요.

제가 은퇴를 마흔 여섯에 했으니, 지금의 2-3년의 시간은 다음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정말 속도감 있게 가야 하는 시간들이에요.

19년도 우리의 꽁TV 구독자 수 목표는 50만 입니다. 쉽지 않겠죠. 하지만 40만까지만 채워도 노력에 대한 보상차원으로는 보고 있어요. 나아가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가기 전에 80만 내지는 100만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말씀을 듣고 꽁병지TV를 떠올리니, 감회가 특별하네요.

근데 늘 조심스러워요. 세상이 변해가는 속도가 너무 빠르잖아요? 유투브를 능가하는 새로운 장르가 나올 것에도 미리 준비를 해야 합니다.

저는 서른여섯부터 은퇴 준비를 했어요. 은퇴를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 그때를 위한 뭔가를 만들어 놔야 한다고 늘 생각했죠. 그렇게 대비를 해두니 은퇴 후에도 생활고에 허덕이지 않았죠.

그럼 유투브의 효용 기간을 얼마나 내다보시는지?

5년 이상 안 봐요. 그래서 내실있게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후원이건 브랜드건 튼튼하게 만들어, 플랫폼이 바뀌더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끈한 관계를 기반으로 플랫폼만 옮겨 간다면 이 관계가 우리를 지탱해 줄 거에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행사에도 도움을 주는 분들이 많은데, 참 감사한 일입니다. 제가 2회째 자선 골프 대회를 진행했는데, 셀럽 100명 게스트 30명이 참여했어요.

이 과정에서 새로운 비즈니스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그런 것들을 보면 뿌듯하고요.

탄탄한 인맥의 기반에는 아날로그적 인맥 시스템 플랫폼이 있었군요.

옛날 우리 동네 상점은 사람과 사람 관계로 이어지는 아날로그 방식이었죠. 그런데 마트가 생기고, 쇼핑몰이 생기고, 이런 것들이 온라인으로 들어갔죠.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셀럽들이 개인적으로 만드는 온라인 쇼핑몰들이 흥했죠. 생각해 보면, 옛날 동네 상점이랑 비슷해요. 사람들은 상점을 운영하는 셀럽 인물을 보고 찾아오는 거죠. 그 사람의 장점을 갖고 연계되는 걸 상품화하는 이 시스템에 아날로그적인 측면이 있다고 봐요. 저희가 운영하는 꽁쇼핑은 기존의 소셜커머스와 똑같은 방식을 취해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꽁쇼핑만의 전략은?

오로지 질로 승부하자. 치약이라면 정말 구강에 도움이 되는 치약을 판매하면 되는 거고. 디지털 속에 판매가 이루어짐에도 관계의 신뢰감이 저변에 형성되어 있기에 상품성에 믿음을 주는 거죠. 구매까지 연결되는 밑바탕은 아날로그적 관계에 기반한다는 것을 잊지 않는 거죠. 지난 추석 때 3일만에 1억원 매출을 올렸어요.

부모님께 효도선물로 드릴 수 있는 건강식품들을 추천해 드렸는데, 믿고 구매하셨던 거죠.

<가족이야기>

사모님께서 이번에 개인전을 여셨죠?

네. 기존에도 작업을 꾸준히 했었는데, 저 때문에 미뤄놨던 일들이죠. 내조하다 보면 시간을 많이 놓치게 되는데, 저 은퇴하고 난 뒤에 시간을 많이 가진 거예요. 와이프 전공이 섬유디자인 쪽이에요.

섬유를 하나의 표현예술 쪽으로 보고, 실을 통해 단색으로 표현하는 거죠. 아이를 낳으면 잠시 그만뒀다가, 또 좀 크고 나면 다시 하고. 그렇게 쉽지 않은 시간들을 보냈죠. 제가 선수 생활하는 동안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 다 내려놓고 가정에 헌신한 사람이에요.

저희는 아들 셋이 있는데, 큰 애가 올해 스물하나, 둘째가 열일곱, 셋째가 열셋이에요.

저희는 대화도 많이 하는 편이고, 서로 하는 일들에 대해 이해를 해줘요. 첫째는 스포츠 비즈니스 마케팅 분야 공부를 하고 있고, 둘째는 드럼 세션과 작곡 공부를 병행하고 있고, 셋째는 엄마를 닮았는지 만드는 것에 남다른 손재주가 있어 학과 공부와는 별개로 조각도 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살면 좋겠나요?

사기 안당하는 사람? (웃음)

아무래도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 우리 애들은 사기 안 당해야 할 텐데. 라고 생각한 거죠.

그러려면 주변에 친구관계, 인프라 형성 뿐만 아니라 세상을 보는 지혜가 있어야겠죠. 사실 사기 안 당하는 사람은 농담조로 한 말이고, 무엇보다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스트레스 받지 않고 꾸준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실은 예전에 우리 아이 학교폭력 구설수로 힘들었어요. 유명한 사람이다 보니까, 진위 여부를 떠나 한번 이슈가 되고 거론이 되었다는 것 만으로 대미지가 커요.

진실이 무엇이건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거죠. 진실을 끝까지 파헤치겠다던 언론이 이슈가 터질 때만 발표해 버리고 그 뒤로는 침묵하고..

제가 진실을 밝히는 데에 2년 반 넘게.. 3년 정도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 진실은 더 이상 뉴스는 아니었죠. 입에 오르내리는 재미를 가지고 하나의 흥미거리로 올렸다가 시들해지면 버리고.

사실 둘째가 축구를 그만하게 된 데에도 이 이유도 있지 않았나. 둘째에게도 페이스북에 온갖 악성 댓글이 달렸는데, 그때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그 무렵 음악으로 전향을 한다 했어요.

잘못한 부분은 끝까지 찾아가서 용서를 구하고 사죄했지만, 진실이 아닌 부분까지 왜곡시킨 것에 대해서는 상대방도 그 대가를 치르게 했습니다.

진실은 밝혀야죠. 살아가며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잘 견뎌내며 긍정적으로 이겨낼 수 있도록 도움 주신 주변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인간관계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토대로 늘 새로운 것을 계획하고 목표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는 김병지 씨의 앞날에 앞으로 더욱 무궁한 영광이 있기 바라고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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