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매거진 뮤지컬 배우, 남경주 – 레전드매거진

뮤지컬 배우, 남경주

캐릭터의 매력은 진솔한 삶으로부터
뮤지컬 배우 남경주

한국 뮤지컬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사람. 그에 대해 검색해 보면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다. 1984년 뮤지컬 ‘포기와 베스’로 데뷔한 그는 ‘사랑은 비를 타고’, ‘시카고’, ‘아이 러브 유’, ‘위키드’, ‘빅 피쉬’등 수많은 히트작들을 남기며 다짐이라도 하듯 베테랑으로서의 업력을 성실히 채워나갔다. 우리는 36년째 현업 뮤지컬 배우로 살아가고 있는 남경주를 만나 무대 뒤 배우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배우의 사회적 역할은 정말 중요합니다. 공연이 끝난다는 건 저에게는 일과의 끝을 의미하지만, 관객들에게는 공연을 본 후 느껴지는 온갖 감정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임을 깨닫게 되면서 생산적인 활동이 시작되거든요.” – 남경주

뮤지컬 배우 남경주의 일상이 궁금합니다. 최근 어떻게 지내셨나요?

코로나19로 인해 상반기 스케줄 이었던 ‘맘마미아’ 공연이 취소됐 어요. 홍익대학교에서 원격강의를 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주력하고 있고, 그 외에는 많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고 있습 니다. 가장 최근에 했던 뮤지컬 ‘ 빅 피쉬’ 는 코로나19가 심각해 지기 전에 공연되었기에 감사하 게도 마지막 공연까지 잘 마쳤어요. 지방 투어를 갈 계획이었으나 그것까지는 못하게 되어 아쉬 웠지만요. 스케줄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더 많은 시간을 가족 들과 보내고 있고 최근 몇 년간 너무 바빴던 스케줄로 인해 갖지 못했던 쉼과 재충전의 시간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삶을 다시금 찬찬히 되돌아볼 여유도 갖게 되고 행복은 작은 것에 있음을 새삼 깨달으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실 삶에 필요한 용기와 힘을 얻는 건 결국 일상생활에서 느껴지는 기쁨과 슬픔의 사소한 감정들에서 비롯되거든요.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하는 평범하지만 가장 특별한 나날들은 저에게 매우 소중합니다. 일상적인 삶과 무대 위에서 필요한 긴장감 사이의 균형감을 찾으려고 노력하며 공연계 전체가 힘든 시기이지만 긍정적인 마음으로 더 좋은 내일을 바라보고 있습 니다. 이번에 저에게 주어진 재충전의 시간을 통해 얻은 힘을 앞으로의 작품 활동에서 마음껏 쏟아부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ㅣ 뮤지컬, 나의 삶

남경주에게 뮤지컬이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된다는 것, 제가 맡은 등장인 물의 삶을 깊이 있게 분석해 알아내고 제 안에서 등장 인물의 모습을 발견해내어 그의 삶을 완성하는 일. 한마디로 ‘탐구’와 ‘도전’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데뷔한 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매 순간 무대는 저에게 새로운 탐구와 도전의 장입니다. 따라서 예술가는 늘 작품을 위해 자신만의 철저한 훈련, 루틴을 필요로 하죠.

어떤 계기로 뮤지컬 배우의 길을 걷게 되셨나요?

반드시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살았던 건아니에요. 뮤지컬에 대한 관심은 제가 어릴 적,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형님을 보며 느꼈던 배우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내내 기계체조를 배워서 워낙 몸이 가볍고 춤을 잘 췄어요. AFKN의 소울 트레인 Soul Train 방송을 즐겨 보며 그들의 춤을 곧잘 따라 했었고, 집에서도 형 덕분에 항상 음악과 함께하는 환경에서 지낼 수 있었어요.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어머니께서 빠듯하게 모은 돈으로 피아노를 사주셨고, 형과 함께 열심히 피아노 를 연습해 교회에서 연주할 기회도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제가 했던 모든 활동들이 뮤지컬에 필요한 요소들이 었던 것 같아요. 알게 모르게 준비될 수 있었다고 할까 요? 어쩌면 제가 뮤지컬 배우가 된 것은 환경적 요인에 의한 필연적 결과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죠. 어린 시절 형님이 저에게 늘 교훈이 되고 도움이 될 만한 원론적인 이야기들을 해주셨는데, 그게 지금의 저를 있게 했던 것 같아요. 1995년도에 우리 형제의 실화를 모티브로 만든 창작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라는 작품 속 ‘ 형의 잔소리’라는 넘버가 바로 그 당시 형님에게 들었던 잔소리, 옥신각신하던 우리 형제의 이야기죠.

뮤지컬은 한번 무대에 올리면 보통 최소 3개월에서 1년씩 공연하는 데, 처음 시작할 때와 공연 후 시간이 지나면서 연기에 변화가 생기기도 하나요?

좋은 연기란 철저한 분석을 토대로 순간의 진실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해요. 만약 배우가 기분에 따라 어느 날 애드리브를 하고 관객이 좋아했다고 해서 다음날 또 애드리브를 통해 같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죠. 등장인물과 주어진 상황에 관한 철저한 연구를 통해 순간의 진실을 따라가다 보면 배우와 관객이 혼연일체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 찰나의 순간에 양쪽 모두 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고 이런 사전 준비는 공연이 관객을 만나기 전에 반드시 선행되고 정리되어야 하죠. 공연을 하면서 약속에서 벗어난 애드리브나 주어진 상황에서 벗어난 연기는 절대 해서는 안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첫 공연과 마지막 공연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배우로서의 나를 성장시켰다고 느낀 건 어떤 작품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공연이 성공했건 실패했건 상관없이 지금껏 해 왔던 모든 작품들을 통해 성장해 왔다고 생각해요. 그중에서도 특히 ‘아이 러브 유’라는 작품이 유난히 기억에 남습니다. ‘아이 러브 유’는 사랑을 주제로 한스무 개의 각기 다른 에피소드를 엮은 작품인데, 각 에피소드마다 총 20가지의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기했었죠. 첫 데이트를 앞둔 한껏 들떠있는 청년,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어깨가 무거운 가장, 얼마 전 첫아이가 태어난 초보 아빠, 할머니와 사별하고 새로운 사랑을 꿈꾸는 노년의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역을 맡았습니다. 이 작품을 만나기 전까지 한동안 배우로서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 작품을 통해 내 안에 있던 다양한 나 자신을 재발견하게 되었고, 그동안 배우로서 다양한 변화를 추구하지 못한 채 고정관념 안에서 표현의 한계를 느끼고 있던 차에 새로운 도전을 통해 활력을 찾게 되었고 배우로서 다시 한번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작품 중 어떤 장면 에서는 5초 만에 옷을 갈아입고 조명이 켜지자마자 순식간에 다른 캐릭터로 변신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때로는 서른 살 이상의 연령을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장면도 있어 연기하기 쉽지는 않았지만 재미있는 도전이었고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하여 원래 3개월 정도 예정되었던 공연이 연장을 거듭하여 2년 동안 장기 공연을 하게 되었죠. 그 공연을 통해서 깨달은 사실은 좋은 작품은 결코 배우 혼자서 만들어갈수 없으며 모든 스태프들을 비롯하여 배우들 하나하나가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고 서로 유기적으로 어우러져야만 아름다운 앙상블을 만들어낼 수 있고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 다. 그 이후 무대가 진실로 즐거워지기 시작했고 무대 위에서 자유로 움을 경험했습니다.

ㅣ 배움, 가르치는 삶

배우의 삶을 사는 것과 배우가 되고자 하는 이들을 가르치는 삶은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대학에서 뮤지컬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연기를 가르치고 있어요. 실기만큼이나 이론적인 접근도 중요하기 때문에 공부가 많이 필요하고 저 또한 수업을 준비하면서 기초적인 부분이 단단해지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밀도 있는 수업을 하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늦은 나이에 다시 제대로 공부를 하려니 때로는 진땀이 나기도 합니다. 경험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무대 위에서 등장인물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관객들에게 전달시키는 게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강조하고 그것이 곧 무대를 장악하는 힘이 라고 이해시키는 데 어려움이 따릅니다. 저의 무대 위에서의 경험을 분석적으로 정리하여 강의를 풀어나가는 방식이죠. 앞으로 학생들도 분석과 경험을 통해 배우로서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는 유연함을 갖게 되기를 바라는 거죠.

시장구조의 변화와 함께 배우들이 공감하는 전반적인 분위기에도 변화가 찾아왔을 것 같습니다.

뮤지컬 시장이 커진 만큼 요즘의 제작 시스템이 선진화된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저는 가끔 예전의 분위기가 그리울 때가 있어요. 왜냐하면 예전이 지금 보다 작품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아카데믹한 접근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요즘에는 아무래도 상업적인 측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무대 장치나 화려한 의상, 조명 등 외적인 것에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작품의 중심 축이 되어야 하는 드라마가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있기 때문이죠. 배우들도 이런 문제를 공감하기는 하지만 기획자나 제작자의 도움이 없이는 이런 시스템을 개선해 나가기에는 한계가 있죠. 요즘 코로 나19로 뮤지컬 시장이 다소 움츠러들기는 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뮤지컬 시장의 괄목할만한 성장 으로 배우들이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것이 사실이고, 이런 소중한 기회를 뮤지컬 종사자들 모두가 감사하게 생각하며 공연 예술에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인지를 한번 되돌아봐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금 더 책임 있는 직업윤리 의식과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배우는 삶의 진선미를 다루는 직업이고, 관객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죠.

지난해 13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서뮤지컬 ‘만덕’ 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세계인들의 찬사를 받은 데다 제주시에서 제작한 창작 뮤지컬인 만큼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의미도 남다르지 않았을까 했습니다.

만덕은 정조 왕이 다스리던 시대의 실제 인물이에요. 주인공 만덕이 존경받는 여상으로서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전까지 저를 아는 사람 들은 아마도 저를 주로 라이선스 뮤지컬을 많이 하는 배우로 알고 있을지도 모르 겠어요. 그게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하고 요. 하지만 저는 기회만 된다면 연극이나 창작 뮤지컬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습니다. 뮤지컬 무대만으로는 스스로 깊이 있는 연기적 충족감을 느끼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인간들의 유형과 인물들 간 갈등처럼 복잡 미묘한 부분 들까지 밀도 있게 다루고 연구할 수 있는 연극 무대를 그리워할 때가 있는 거죠.
또한 제가 창작 뮤지컬에 참여하려는 것은 앞으로 우리나라가 세계 뮤지컬 시장 에서 더욱 인정받기 위해 선배로서 책임 있는 중요한 교량 역할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 적인 거라는 말이 있죠. 여기에 동의합니 다. 특히 ‘만덕’에서처럼 한국 사람인 제가 한복을 입고 갓을 쓰고 연기하는 것이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도 갖게 하고 한국적인 리듬과 멜로디는 한국인으로서의 우리의 정체성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 거든요. 무엇보다 연기하는 배우들 스스 로도 외국 캐릭터를 연기할 때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가슴 깊은 곳에서 뜨겁게 차오르는 무언가가 있죠. 그것은 말로 표현 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우리의 이야 기를 바탕으로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행복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수상까지 하게 되어 정말 감사했어요.

ㅣ 가족, 나의 전부

SNS를 통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자주 목격됩니다. 남경주에게 가족이란?

내 인생의 전부입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일이 제 인생의 전부였다면 지금은 모든 것들이 가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죠. 가정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상에서 느끼는 희로애락이 배우인 저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자산이 됩니다. 나이가 든 탓이겠죠? 가족 중에 제일 먼저 일어나두 마리의 반려견들과 딸이 키우는 거북이, 햄스터의 밥을 챙기고 난후 아내와 딸을 깨워서 아침밥은 꼭 제가 챙겨주죠. 저에게는 이런 평범한 일상이 가장 특별하고 소중한 시간들입니다. 예술가는 평범함에서 비범함을 발견해 내고 특별한 것에서 또한 평범한 것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어바웃타임’에 이런 대사가 나오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 훌륭한 여행을 즐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훌륭한 여행을 소중한 저의 가족들과 마음껏 누리며 감사하고 싶어요.

동년배에 비해 젊은 외모의 보유자로서, 관리의 비결이 궁금합니다.

절제된 단순한 생활과 꾸준한 운동이 가장 중요한 것 같고요, 예술적인 활동을 통한 정신적인 생산활동을 끊임없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에게 만들어 주는 겁니다. 계속 움직이며 무언가 새로운 것을 경험하면서 지속적인 자극을 주는 게 젊음을 유지하는 제 나름대로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나면 가족과 함께 틈틈이 전시회도 가고 인접예술에 대한 경험을 늘리기 위해 노력해요. 최근에는 툴루즈 로트렉전과 마가렛 킨의 빅 아이즈 전시회에서 작가들의 삶 속 수많은 결핍을 알게 되었고 그 결핍이 예술가의 작품에서 얼마나 힘 있는 에너지로 바뀌게 되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내 인생의 결핍은 어떤 것들이 있었으며 그 결핍들이 배우로서의 내 삶과 어떻게 만나 지고 연기로 다양하게 표현되어야 하는지 다시금 곰곰이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결국, 배우라는 직업이 늘 저를 관리하고 사유 하게 만드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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