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매거진 영화의상/분장, 남지수 – 레전드매거진

영화의상/분장, 남지수

‘남지수’가 이끄는 ‘우리 스타일’은 영화와 여러 분야(광고, 개인 스타일리스트, 드라마, 잡지 등)의 의상, 메이크업, 헤어를 담당하는 전문 뷰티 크리에이터 집단이다.

남지수는 2003년 이영재 감독의 ‘뫼비우스의 띠’라는 독립 영화를 시작으로 ‘강력 3반’, ‘피의 고사’, ‘꿈은 이루어진다’, ‘결정적 한방’, ‘은밀하게 위대하게’등의 영화에서 의상 , 분장을 맡으며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백운학 감독의 ‘악의 연대기’에서 의상팀과 분장팀을 동시에 이끄는 총괄 스텝으로 참여하며 ‘더폰’, ‘굿바이 싱글’, ‘원라인’, ‘원더풀 고스트’, ‘범죄도시’, ‘동네 사람들’, ‘어쩌다 결혼’, ‘챔피언’, ‘성난 황소’, ‘악인전’, ‘나쁜 녀석들’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대표 명작들의 의상 또는 분장(메이크업, 헤어)을 책임져왔다.

최근 개봉한 ‘악인전’이 칸 영화제에 초대되며 감독, 배우들과 함께 칸 영화제에 참석해 배우들이 세계 무대에 당당히 설 수 있도록 했고, 현재는 ‘시동’ 촬영에 여념이 없다.

위에 나열한 대작 외에도 틈틈이 독립영화 스텝으로서도 참여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제작비가 넉넉지 않지만 저예산 영화만의 독립되고, 창의적인 작업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장률 감독의 ‘필름 시대의 사랑’, ‘춘몽’, ‘영아’ , 그리고 김영남 감독의 ‘오리의 웃음’, 허철 감독의 ‘돌아온다’, 노진수 감독의 한일합작영화 ‘세상의 끝’, ‘피해자들’, 한중 합작영화 ‘주점세가’ 등 수많은 독립영화와 단편영화가 최고의 작품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영화 외에도 ‘토지’, ‘부활’, ‘별난남자 별난여자’, ‘프라하의 연인’, ‘한국어학당’, ‘쓰리데이즈’, ‘황금의 제국’, ‘38사 기동대’ 등의 드라마와 삼성, 현대 등 200여 편의 광고 제작에도 참여한 대한민국 스타일리스트 남지수를 만나 그녀의 인생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눠봤다.

[남지수]

레전드 매거진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영화 의상, 분장을 하고있는 남지수입니다. 너무나도 부족한 저에게 이렇게 인터뷰할 자리가 마련되어 정말 기쁘고 또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처음 인터뷰 요청을 받았을 때는 의아했는데, 인터뷰를 준비하며 저의 과거를 돌아보니 (웃음) 여러분께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고민을 하다 이번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고, 아직은 ‘해온 일’보다는 ‘해야 할 일’이 더 많은 저이지만 영화, 드라마, 광고의 의상과 분장을 담당하며 지내왔던 저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며 저의 지난 날들에 대해 돌아보았습니다. 정신없이 살아오며 ‘내가 무슨 일을 하고있지?’라는 고민을 해본 적도 없던 저였으니까요. 일단 제가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지?’였습니다. (웃음)

돌이켜 생각해보니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아주 어린 시절에는 종이 인형이란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인형에 옷을 입혀주고 놀았던 기억밖에 없어요. 그리고 조금 커서는 헤진 양말이나 옷을 이용해 직접 인형의 옷을 만들어보기도 했죠.

비록 종이인형과 장난감 인형을 위한 옷이었지만 제가 만들었다는 것 자체에 너무나 큰 성취감과 행복감을 느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키우던 강아지 옷을 직접 만들어주기도 했으니까요. (웃음)

청소년 시절에는 여학생이면 누구나 그렇듯이 유명 가수나 배우의 옷차림을 보며 잘 차려입은 연예인 패션을 따라 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단순히 패션을 따라 하는 것보다 내가 직접 옷을 만들거나, 혹은 그들에게 더 멋진 모습을 갖춰주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그때는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이 있는지도 몰랐고 그저 그런 일을 동경했던 거죠.

대학에 진학은 했으나 ‘방송정보학과’라는 전공이 제가 꿈꾸고 있는 이상과 맞지 않아 과감히 그만두었어요. 그리고 제가 원하는 일들을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보다가 ‘수빈 아카데미’라는 곳에서 메이크업과 의상의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가게 됩니다.

아카데미 과정 수료 후 저는 드라마 현장에 배우 개인 어시스트 스타일리스트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배우의 경우 헤어 1명, 메이크업 1명, 의상 어시스트 1명 이렇게 총 3명의 인원이 함께 움직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의상과 헤어, 메이크업을 다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현장에 저 혼자 3명의 일을 해낼 만큼 인정을 받게 되었죠. 제가 맡았던 배우분이 영화, 광고 등 여러 분야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현장에서 경험을 쌓아왔지만, ‘영화’란 분야가 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제 커리어의 첫 상업영화 ‘강력 3반’을 만났죠.

광고의 경우 이미 짜여진 ‘콘티’에 맞춰 일이 진행되다 보니 개인 스타일리스트로서 제가 스스로 창의력을 발휘할 기회는 거의 없었죠. 하지만 영화는 조금 달랐어요. 일단 시나리오상으로나 감독님이 원하는 ‘캐릭터’는 분명히 정해져 있지만, 그 캐릭터를 어떻게 꾸밀지는 전적으로 제가 고민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고민이 너무나 즐거웠어요. 그리고 그 고민을 저 혼자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님, 배우분들과 직접 소통하며 하나하나 구축해 나가는 것이 너무 매력적이었습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 제 머릿속에는 전체적인 인물의 스타일이 스케치되고, 저는 그 스케치된 스타일을 감독님, 배우분과 공유하며 완벽한 하나의 캐릭터를 완성해 나가는 작업이죠. 그런 과정이 너무 즐거워 영화 쪽으로 몰두하게 되었고, 이제는 주로 영화 일을 제 일에서 최우선시 하게 되었습니다.

[남지수, 그리고 영화]

사실 위에서 ‘스타일리스트’란 말을 많이 썼는데, 영화 현장에서는 ‘코디네이터’나 ‘스타일리스트’라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대신 ‘영화 의상팀’, ‘영화 분장팀’이라 표현하죠. 이 ‘팀’이라는 개념은 한 명의 배우를 위한 것이 아닌 영화에 나오는 모든 배우의 ‘의상과 분장’을 담당하는 팀입니다. 주연배우와 조연배우부터 단역분들까지 전체적인 콘셉트를 설정하고 이미지를 구축하는 일을 책임집니다.

이렇게 ‘의상’과 ‘분장’은 두 개의 팀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요. 다행히 저는 두 가지 모두 교육을 받았던 터라 멀티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의상팀으로 일을 하거나, 분장팀으로 일을 하거나, 때로는 의상과 분장 두 팀에서 모두 일을 하는 식이었죠. 저희 아버지께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이력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항상 강조하셨는데, 의상과 분장 모두 연구반 과정을 거쳐 각각 파트의 일을 하며 제 또래 동료들보다 더 많은 이력을 쌓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후 스타일리스트로 화보 촬영을 많이 경험하며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한 사람의 모델을 의상과 메이크업, 헤어 뿐만아니라 그 모습을 직접 사진으로 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뒤늦게 사진과 졸업을 하였어요. 2년제 백제예술대학교를 일을 하면서 졸업을 하기까지 (휴학기간이 있어서) 4년이 걸렸습니다. (웃음)

[남지수, 그리고 악인전]

최근 개봉한 ‘악인전’은 2005년을 배경으로 한 시대물입니다. ‘장동수’라는 건달 역할을 맡으신 마동석 배우님과는 그동안 많은 작품을 함께 했습니다. 이번에는 마동석 배우분에게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의상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일단 2005년의 느낌을 살려야 하니 은갈치 빛감의 컬러를 정해봤고요, 여기에 강인한 느낌을 더하기 위해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원단을 사용했습니다. 또 밝은 톤의 더블 슈트와 화이트 슈트, 셔츠도 깃을 더 올려 조직에서 권력 최상위에 위치한 ‘보스’ 이미지를 표현해봤어요.

여기에 금장 액세서리와 고급스러운 구두로 디테일한 마감을 했죠.영화의 중반이 지나면서 ‘살인마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역동적인 상황부터는 블랙 슈트로 액션에 부피감과 멋스러움을 더했습니다. 액션이 더 커 보이게, 또 더 강해 보이게 표현하려는 의도와 잘 맞아 떨어졌습니다.

특히 주연인 마동석 배우분은 의상부터 안경, 구두와 같은 액세서리까지 모든 요소를 제작 진행했습니다. 마동석 배우는 근육질로 다져진 탄탄한 몸이라 일반적인 의상은 소화가 안되고요. (웃음) 스판기가 있는 소재로만 특수 제작해야 찢어지지도 않을 뿐더러 편하게 액션신을 촬영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슈트 제작에 필요한 ‘실크 소재의 광이 나며 스판기까지 갖춘 원단’을 찾기 위해 부산 국제시장부터 동대문 원단시장까지 힘들게 돌아다녔던 기억도 있어요.

또 ‘정태석’ 역을 맡은 김무열 배우는 ‘장동수’와 손을 잡고 K(살인마)를 잡아야만 하는 형사 역할로 등장합니다. 깡패를 죽이려 한 살인마를 잡는 ‘미친개’라는 별명을 가진 형사입니다.

일단 이 캐릭터는 장동수 못지않게 강렬해 보여야 했고, 또 거기에 살짝 ‘날티’까지 나야 했습니다. 그래서 가죽재킷을 메인으로 잡고, 여기에 형사다운 활동성이 돋보이는 ‘카고 바지’, 그리고 차가운 느낌을 주는 ‘데님’으로 전체적인 이미지를 구축했죠.

영화 촬영 초반에는 사이즈가 105였는데 시간이 지나며 몸집을 늘리다 보니 110까지 커지고, 또 보호구나 안전장치까지 착용하면 더 커지니 사이즈별로 세벌 이상의 가죽점퍼를 제작했어요. 갑자기 몸집이 늘어났을 때는 저희 의상팀이 현장에서 가죽을 잡고 늘리기도 했어요. (웃음) 후반부에는 블랙 가죽점퍼를 입어 점점 건달이 형사가 되고, 형사가 건달 같이 보여지는 교차점을 만들어냈습니다.

마지막으로 K역을 맡은 김성규 배우는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입니다. 이 캐릭터의 가장 중요한 콘셉트는 바로 평범함이었습니다. 우리가 평범하게 살아가는 세상 속에 조용히 잠재되어 있던 광기를 가진 살인마라는 섬뜩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반목 폴라티로 답답함을 표현했고, 누구나 다 하나쯤은 있을 법한 후드티로 얼굴을 가리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의 특징을 살려냈습니다. K의 눈빛을 알 수 없도록 가려주는 역할을 완벽히 수행해냈죠.

처음 악인전 미팅을 했을 때 느낀 건데, 이원태 감독님이 이 영화에 엄청난 준비를 하셨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대부분 영화사의 첫 미팅은 가볍게 인사 나누고 다음을 기약하는 정도의 얼굴 도장 찍는 자리인데 감독님은 달랐어요. 첫 미팅부터 저를 붙잡아 앉혀놓고 감독님이 준비한 자료들을 모니터에 띄워 한 시간 반 이상 저에게 설명해 주셨어요.

특히 제가 놀라웠던 것은 감독님이 직접 시나리오 작업을 하시면서 각 인물의 스케치를 직접한 자료들, 그리고 캐릭터 하나하나와 관련된 방대한 문서 자료를 보여주시는데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명작은 이렇게 탄생하는구나’를 느꼈고 또 ‘이번 악인전은 더욱 열심히 해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감독님의 섬세한 준비가 우리 스태프들 마음에 응원을 북돋아주신 거죠.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이원태 감독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남지수, 그리고 일]

일단 제가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의상과 분장에 대한 지식, 그리고 그 지식을 정확히 표현해낼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그 아이디어를 정확히 표현해내지 못한다면 그 어느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되고 말죠. 반대로 아무리 뛰어난 표현을 해냈다 하더라도 아이디어 자체가 좋지 않다면 주목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단순히 화려한 일이라 생각하고 시작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거의 99% 오래 버티지 못하고 이 일을 그만둡니다. 그들이 그렇게 쉽게 떠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라 생각해요. 이 일이 너무나 화려해 보이고 멋져 보였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멋있는 배우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자신이 멋있어지려 이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버틴다 하더라도 전체적인 업무와 흐름에 적응하는데 꽤 많은 시간을 버텨내야 한다는 것을 각오하셔야 합니다. 제가 업무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아카데미를 통해 습득한 것처럼 교육기관에서 정규 교육을 수료받고 현장에 투입되는 것도 좋은 시작이라 추천하고 싶습니다.

상업 영화의 규모는 일단 절대 혼자 해낼 수 있는 규모가 아닙니다. 분장팀, 의상팀으로 나뉘어 팀원들과의 협동으로 작품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이런 협업의 기본은 ‘책임감’과 ‘자신감’입니다. 나 하나가 책임감을 갖지 않는다면 나는 그 팀에서 소외될 것이고, 또한 자신감이 없다면 내 아이디어를 분명히 표현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여기에 나의 능력과 기술이 뒤쳐지지 않도록 꾸준히 새로운 트렌드를 연구하고 받아들이며 나만의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해내야 합니다.

저 역시 현업에 뛰어든 이후에도 새로운 트렌드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일본 ‘도쿄모드 학원’, 프랑스 ‘아뜰리에’ 란 곳 등을 수료하며 또다른 시각을 갖고자 노력했습니다.

[마지막 메시지]

저 역시 영화 현장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매 영화는 항상 새로운 도전입니다. 같은 영화를 두 번 찍지는 않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현장에서 새로운 감독님, 새로운 배우분들과 함께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내야 합니다.

두려움이 앞설 때도 많지만 극복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즐거움’입니다. 이 즐거움은 나를 자극하고 자신감을 심어주죠. 현장에서 즐거움과 행복함을 느끼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즐기고, 또 사랑하기 때문에 항상 좋은 결과를 얻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영화 제작 환경도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표준 근로계약서’가 적용되어 4대 보험과 업무에 합당한 처우를 받을 수 있게 되었죠. 영화 산업 자체가 기준으로 삼을 급여가 모호하다 보니 같은 시간을 일해도 받을 수 있는 급여는 천차만별이었습니다. 부당하다고 느껴도 어쩔 수 없이 일을 하던 근로자의 고질적인 병폐가 많이 개선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어요.

이번 칸느 영화제에서 또 많은 것을 느끼며 영광스러운 자리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항상 도전하며 새롭고 더 큰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우리 스타일’을 이끌어가려 합니다. 앞으로 개봉될 ‘나쁜 녀석들’과 ‘시동’ 역시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리며 항상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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