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매거진 영화감독, 권수경 – 레전드매거진

영화감독, 권수경


영화감독 권수경

가족, 사랑

가족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단위이며, 세상 모든 인연의 시작과 끝에는 항상 혈연관계 즉, 가족이 있겠죠. 시대의 변화로 인해 현대사회의 가족관계는 점점 파편화되는 양산을 보이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이 지닌 고유 가치는 변함없는 안정감으로 우리를 굳건하게 지탱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어린 시절 경상북도 예천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권 씨 집성촌을 일구고 대가족이 복작복작 하게 한데 모여 살아가며 느꼈던 화목함과 따스함, 그리고 어리고 부족한 저를 늘 감싸주시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은 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든든한 정서적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족 이야기는 제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이기도 하고요, 경험적으로 느껴온 가족의 가치와 소중함을 작품을 통해 많은 이들과 나누고자 했어요. 어쩌면 누군가는 제 영화를 보고 난 뒤 시골에 계신 아버지께 전화 한 통이라도 더 걸게 될지도 모르고, 주말에 어머니와 함께 맛집에 갈 계획을 세울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 걸 기대했어요. 작품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상기하게 되는 거요.

학창시절

이렇다 할 사건사고도 없고 크게 말썽을 일으키지도 않은 그저 소심하고 평범한 남학생이었어요. 가끔 부모님께 혼이 날 때면 가출을 하는 상상도 해봤지만, 그저 상상에 그쳤을 뿐 실제로 해본 적은 없었어요.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에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 정도의 가벼운 반항심 정도였죠.
고향인 경상북도 예천에는 당시만 해도 젊은이 들이 즐길만한 공간이 거의 없었어요. 작은 소극장 하나가 마을에 존재하는 유일한 문화시설 이었죠. 저의 풍부한 감수성과 상상력을 채워주는 통로는 TV를 통해 매주 방영되던 ‘주말의 명화’ 였답니다. 매일 주말의 명화가 방영하기만 손꼽아 기다리곤 하던 어느 날, 마침내 주말의 명화를 통해 제 인생을 바꿔놓은 일생일대의 영화 한 편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혹성탈 출’! 제가 본 건 1968년에 개봉한 오리지널 원작이었어요. 신선한 소재, 황당할 정도로 기막힌 세계관, 경악할 수밖에 없었던 반전의 엔딩 까지.. 지금 생각해도 너무 떨리는데 어린 저에 게는 얼마나 충격이었겠어요. 그날 이후 혹성탈 출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도대체 이런 영화는 어떻게 만드는 걸까? 이 매력적인 아이러니는 어떻게 연출할 수 있단 말인 가?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영화에 대한 호기심으로 점점 불어났어요. 혹성탈출은 제영화 인생의 진입로였어요. 처음으로 영화에 매료되었던 기억,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힘에 압도되어 밤잠까지 설쳤던 기억이죠.

영화계를 향하여

어린 시절 즐겨봤던 주말의 명화와 소설책을 통해 받은 자양분을 머금고 무럭무럭 성장한 저는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습니다. 대학교에 입학 하자마자 영화동아리에 가입했어요. 동아리 선후배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며 조감독도 해보고 촬영도 해보고 연출도 해보며 이것저것 많은 활 동을 했어요. 동아리 활동은 직접적으로 영화계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이었다기보다는 그저 하고 싶었던 일을 취미로 하는 것 정도였어요. 물론 저에게는 그 활동이 취미 이상의 의미는 있었으나 전문적으로 영화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에 그 이상의 커리어로 발전하기는 어려 웠어요. 졸업을 한 뒤에는 광고회사에 취직했어 요. CF 감독으로 일을 하며 나름대로 돈도 아쉽지 않을 만큼 풍족하게 벌면서 잘 살아가고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 남아있는 영화에 대한 갈증이 단 한순간도 사라지지 않더라고요. 일을 마친 뒤 바쁜 하루를 마감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거리 전광판에서 빛을 토해내며 반짝이는 개봉 예정작들의 예고편 영상과 마주할 때면, 가슴속에 품고 있던 영화에 대한 열망 때문에 입이 바싹 마르곤 했어요.
저는 영화감독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촬영, 조명, 소리, 분장, 의상, 헤어를 담당하는 백여 명 이상의 스태프들을 지휘하며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한 가지 일관된 의미를 부여해 작품의 존재가치를 상기시키죠.
너무 매력적인 일인 것 같아요.

강단에 서다

2016년에 영화 ‘형’ 개봉 후 동아방송대 영화예 술학과에 교수로 재직하게 됐어요.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배세영 작가님으로부터 2018년에 ‘스텔라’의 시나리오를 받아 함께 각색 준비에 들어가 각색과 촬영을 모두 마쳤고요, 올해 하반기에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영화에 대한 이야 기는 뒤에서 하고요, 학생들 이야기를 조금 더들려드릴까요.
베이징으로 유학 갔던 때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요즘의 캠퍼스 분위기는 그때와는 사뭇 다른것 같습니다. 그때만 해도 교수는 위엄이 느껴 지고 학생들과 조금 동떨어져 있는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존재였다면, 요즘의 교수는 학생들의 친구이자 선후배, 형 동생 같아요. 학교는 영화를 사랑한다는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수평적인 구조 속에 대화를 나누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하며 성장해 가는 모임인 거죠. 저는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역으로 제가 학생들로부터 배울 때도 많아요. 고마운 친구들에게 저만이 할 수 있는 수업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 다. 현장 이야기 위주로 학생들과 소통하며 현장의 언어를 전달하는 교육을 하고 있어요.

손호준

영화 ‘스텔라’를 제작하면서 주연배우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이 손호준 씨였어요. 손호준 씨의 이력을 보면, 우리 영화에서 호준 씨가 맡은 캐릭터와 맥락이 비슷한 ‘눈이 부시게’라는 작품이 있죠. 약간은 찌질하고 코믹한 역할인데 영화 스텔라에서의 호준 씨캐릭터와 비슷해요. 또 ‘응답하라 1994’와 ‘고백 부부’ 등을 통해 봤던 호준 씨의 연기가 너무 좋았어요. 스텔라의 주연 인물로 절대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었죠. 마침 시나리오 담당인 배세영 작가님도 호준 씨를 너무 좋아하시고, 손호준 씨도 시나리오를 받아보고는 단번에 오케이를 했죠. 호준 씨의 캐릭터와 연기 패턴을 영화 스텔라 속에서도 잘 살려서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올 수 있었어요.

영화 <스텔라>

현대자동차에서 1983년에 생산한 ‘스텔라’라는 자동차를 모티브로 한 영화예요. 당시 택시의 대명사나 다름없을 만큼 스텔라 차량으로 택시를 운행하는 기사님들이 많았어요. 영화 촬영을 위해 오래전 단종된 스텔라 차량을 구하려고 전국을 다 돌았어요. 겨우 세대를 구해서 도색작 업을 해 하나의 차량으로 만들어 촬영을 했죠.
자동차 추격씬에서 차가 부딪혀 망가지기 때문 에, 망가지면 버리면서 총 세대의 차량으로 촬영을 했습니다.
스텔라는 저의 전작 ‘맨발의 기봉이’ ‘형’과 마찬 가지로 가족을 주제로 하는 휴먼 드라마예요.
저는 따뜻한 영화가 좋아요. 웃기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하고, 그 끝에는 감동이 있는 인간 적인 영화요. 배세영 작가님이 좋은 시나리오를 주셨고, 연출도 너무 멋지고, 손호준 씨가 캐스팅 제의에 흔쾌히 수락해주셔서 이번 영화는 정말 일사천리로 진행이 됐어요. 지금은 영화가 개봉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마 구독자 여러분도 영화가 개봉하고 극장에 앉아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편안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예요.

최종적인 목표

제 삶의 가장 큰 목표는 영화감독이었어요. 그런데 달성했으니, 당장의 거창한 목표는 없어 요. 저는 그저 앞으로도 계속해서 영화를 하고 싶습니다. 영화감독들이 인터뷰를 통해 가끔 이런 말을 해요. ‘영화를 찍다가 죽고 싶다’라고.
이건 제 꿈이기도 합니다. 죽기 전까지 계속 영화를 하고 싶어요. 100년 뒤에는 아마 우리가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겠지만, 제 영화는 어딘 가에 남아있겠죠? 어떤 영화학도가 휴먼 드라마 장르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다가 문득 저의 이름을 볼 때, 이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영화를 만들었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어딘가에 제 이야기가 한 줄 실리면 충분 해요. 저는 그렇게 기억되고 싶어요. 그리고 죽기 전에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는데요, 바로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를 만드는 거랍니 다. 포레스트 검프는 한 인물을 통해 미국의 근대사와 현대사를 관통하는 미국인들의 삶과 정서를 보여주잖아요. 저도 한국의 근현대사를 아우르며 그동안의 한국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 왔고, 한국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며그 정서의 밑바탕에 휴머니즘이 물씬 느껴지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물론 비슷한 영화들이 있지만, 저는 저의 방식대로 조금 드라마틱한 인물 구성을 통해 인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포레스트 검프를 인생영화로 손꼽곤 해요. 어눌한 소시민이 어떻게 미국 사회를 통과해 왔는지를 보며 느끼는 수많은 감정들 때문이겠죠. 제가 만드는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도 그런 영화라면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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