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매거진 개그맨, 장동민 – 레전드매거진

개그맨, 장동민

원 없이 웃고 싶을 때 생각나는 사람
개그맨 장동민

개그맨, 연기자, 엠씨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장동민은 만능 희극인이자 예능인이다.
그는 데뷔 초창기 만든 ‘그까이꺼’라는 유행어와는 정 반대로 모든 일에 결코 대충인 법이 없으며, 뭐든 꼼꼼히 따져보고 의심하는 완벽주의자다.
치밀한 준비와 타고난 끼를 발휘해 2004년 KBS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거의 한주도 방송을 쉰 적이 없을 만큼 누구보다도 바쁜 나날들을 보내온 그와 마주했다.
약간 피곤한 안색이었다.
그는 자신을 ‘소’라고 표현하며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웃어도 되는 거겠지?

인터뷰는 얼마만이에요?

진짜 오랜만이죠. 2004년 데뷔 초에 소속사 방침이 인터뷰를 많이 해서 이름을 알리자는 거였어요. 그때 하루에 한 번도 빠짐없이 어떤 날은 다섯 번도 인터뷰를 했어요. 일 년 내내 그렇게 하다가 인터뷰라면 정말 넌덜머 리가 나서 소속사 옮긴 후 인터뷰는 절대 안 하겠다고 선언해 버렸죠. 그때는 정말 매일매일 인터뷰를 했어요. 어휴.

남다른 소년이었던 학창 시절을 보낸 후, 어쩌다 개그맨이 되셨어요?

어릴 때부터 이런 걸 하고 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저도 그렇고 제주변에서도 모두 제가 개그맨이 되어 다른 사람들 앞에 나와 웃음을 주는 사람이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처음에는 대학 동기인 상무가 개그맨 시험을 볼 건데 도와달라고 해서 저랑 세윤이랑 셋이 갔어요. 상무가 어릴 때부터 꿈이 개그맨이었고, 세윤이는 배우나 가수가 되고 싶었 고, 저는 사업을 하고 싶었어요. 각자 다른 꿈을 갖고 있었는데 친구가 도와달라니 간 거죠. KBS 공채 개그맨 시험을 봤는데, 1차 시험에서 떨어졌 어요. 어릴 때부터 승부욕이 남달랐던지라 떨어지고 나와서 정문을 바라 보는데 화가 나더라고요. 한참을 문을 노려보며 생각했어요. 나를 떨어뜨 려? 지들이 뭔데. 내가 시험 보러 왔는데 날 떨어뜨려? 안 되겠다. 열 받아서 안 되겠다. 그랬죠.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갔지만 돌아온 뒤 일 년 동안 시험 준비에만 올인했어요. 그리고 다음 연도에 셋이 함께 다시 시험을 보러 갔고 결과는 세명 모두 합격. 그렇게 된 거죠.

처음으로 했던 코너 기억나세요?

내비게이션. 기억나죠. 세윤이가 운전기사, 상무가 탑승객, 제가 내비게이션 역할이었어요. 개그맨 공채를 합격한 바로 그 주에 개그콘서트 무대에 나가서 했던 코너예요. 신인이 바로 단독 코너로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가 정말 이례적인 일이었는데 제작진과 PD가 저희를 좋게 봐서 많이 밀어줬죠 뭐. 헤헤.

대학에서 극작을 전공하셨잖아요. 개그맨을 하는데 어떤 영향이 있었어요?

보통 개그맨들이 아이디어를 직접 내고 대본 작업도 기본적인 건본인이 직접 해요. 그래서 대학에서 극작을 배운 게 도움이 많이 됐죠. 저희 학과에서 개그맨이 많이 배출됐어요. 또래 후배들도 영향을 많이 받아서 3회 차에서 4회 차 걸쳐서 총 열다섯 명이 개그맨 공채시험에 합격을 했거든요. 이렇게 합격을 많이 하니까 누가 지식인에 개그맨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에 ‘동아방 송대학교 방송극작과에 가서 장동민이 회장인 연극동아리에 들어 가라’는 답변이 달렸어요. 질문 의도는 학원을 어디를 가야 하며뭘 배워야 하냐는 질문이었는데. 그렇다고 딱히 제가 후배들을 개그맨으로 키웠던 것도 아닌데 유독 제가 다닌 학과에서 개그맨이 많이 배출됐네요.

장동민 씨는 언제부터 유명해졌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요. 하하. 데뷔하자마자 운 좋게 잘 됐어요. 내비게이션 이란 코너 처음으로 했을 때는 지하철 타고 출근하면 사람들이 몇명 정도만 저를 알아보곤 했어요. 당시 일요일 저녁에 온 가족이 개그콘서트를 보는 것이 하나의 문화였던 시대니까요. 그걸 안 보면 다음 날 회사나 학교에 가서 대화가 안 되는 시대였으니 이런 시대적 호황도 많이 누렸죠. 그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봉숭아학당에서 경비아저씨 캐릭터를 했던 날이 생각나요. 그날 방송국에서 만난 어떤 분이 ‘너는 이번 주 일요일 저녁이 지나고 나면 인생이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죠. 그때는 무슨 소린가 했어요. 그런데 정말 그분 말대로 방송 나가고 나서 제가 계속 네이버 검색어 1위인 거예요. 1등 장동민 2등 경비아저씨 3등 그까 이꺼. ‘이게 뭐지?’ 싶었어요. 그리고 그분 말씀대로 정확히 다음 날부터 저의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광고문의, 행사 섭외로 전화기는 불통이 되었고 지하철을 탔더니 사람들이 ‘어 그까이꺼그 사람 맞지?’ 이러면서 저를 알아봤어요. 그리고 그 주에 또 방송이 나가고 나서는 더 달라져있고. 그렇게 정신없이 바쁜 나날들이 시작됐어요.

절친 유세윤 씨와 유상무 씨는 동민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모지리들이지 뭐 의미가 있겠어요. 스물한 살때 만나서 지금 마흔두 살이니 인생의 반을 함께 했죠. 참. 그 친구들 안 만났으면 제 인생이 지금 어떨까 생각해보면 더 나았겠다는 생각이들 때도 있지만.

더 나았겠다고요?

이 일 안 하면 사람들한테 악플 시달릴 일도 없고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겠어요. (웃음) 사실 뭐다 운명인 거 같아요. 제가 이런 일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고, 사람들 사랑받으며 살 거란 생각도 못했었죠. 이렇게 살게 된 건 저 친구들 만나서였거든요. 물론 이런 환경에서 함께 열심히 했고 운도 좋았던 요소들이 다 맞아떨어졌지 만, 결정적으로는 셋이 함께였기 때문에 그 난관들을 다 헤쳐나간 거라고 생각해요. 이제 20 년이 넘게 지내다 보니까 다들 환경이 많이 달라졌잖아요. 세윤이는 결혼해서 학부모고. 상무도 결혼해서 신혼이고. 저는 아직 총각이고. 비슷한 시기에 결혼해 애도 낳고 애들 나이가 비슷하고 그러면 좋을 텐데. 뭐 지금 만나도 즐겁고 재미있지만 생활환경은 공유가 안 되는 게아쉬운 부분이고요. 제가 미안하죠. 제가 빨리 장가가고 애도 있고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싶고 요. 그래도 여전히 즐겁고 행복하죠. 걔들 만나면 대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이에요. 재밌죠.

제일 좋아하는 영화 한 편만 소개해주세요.

‘터미네이터 2’ 요. 그저 단순한 액션 영화만은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요즘 시대에 더욱 공감 하게 되는 영화인 것 같아요. 결말에서 자기 몸에 들어있던 마이크로칩을 없애려고 아널드가 용광로에 들어가잖아요. 그러면서 이전에는 사람의 눈물을 보고 왜 눈에서 물이 나오냐고 묻는데, 그때는 왜 눈에서 물이 나는지 알 것 같다고 그래요. 자기도 기계지만 감정이 있는 걸 표현하는 거죠. 최근에는 AI 등 인공지능을 통해 기계에도 사람과 똑같이 감정 반응을 하는 시스 템을 도입하잖아요. 저는 그때 영화 보면서 아언젠가 이런 세상이 오겠구나 싶었는데, 그게 바로 요즘이더라고요.

훗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사람들에게 많은 웃음을 주었다. 당시에 인기가 많았다. 이렇게 남는 것도 좋겠지만, 그보다는 이거예요. 내비게이션이라는 코너 처음 했을 때 TV에서제 개그 보면서 어머니가 무슨 소린지 잘 몰라서 못 웃더라고요. 그냥 나오 니까 보는 거지 웃는 게 아니었어요. 전 그때부터 우리 엄마도 웃을 수 있고, 남녀노소가 다 웃을 수 있는 그런 걸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다음부터 제가 했던 캐릭터는 경비 아저씨도 마찬가지고 대화가 필요해 같은 코너들도 가족들이 다 재미있게 볼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거였죠. 그런 개그맨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개그계의 아이돌보다는, 남녀노소 모두가 두루두루 웃을 수있는 폭넓은 개그를 했던 사람으로.

마지막으로 레전드매거진 구독자 분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올해 제가 유튜브나 다른 활동들을 비롯해 방송 외적인 부분에서도 다양한 콘텐츠를 보여드릴 예정이니까 많이 지켜봐 주시고요, 제가 원래 도전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지만 올 한 해는 새로운 일에 좀 더 도전해 볼 수 있는 한해 이길 소망해요. 여러분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조금 늦었지만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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