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매거진 여성 조리기능장 1호, 이순옥 – 레전드매거진

여성 조리기능장 1호, 이순옥

어머니의 마음으로 식재료 본연의 맛을 담아내다
여성 조리기능장 1호 이순옥

음식을 바르게 활용하면 약이 되지만, 나쁘게 사용하면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조리 과정에 따라 사람의 목숨까지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게 음식이다 보니, 조리사가 바른 인성을 가지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안녕하세요 여성 조리기능장 1호 이순옥 선생님. 레전드매거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거진 구독자분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레전드매거진 구독자 여러분. 저는 여성 조리기능장 이순옥이라고 합니다. 조리기능장이란 조리에 관한 지식과 기술을 겸비한 최고 수준의 전문기능인력입니 다. 1992년 대한민국 최초의 조리기능장이 생긴 이후, 1993년 저를 포함한 여섯 명의 조리사가 조리기능장이 되었는데, 저는 여성 중에 최초로 그 자격을 당당히 인정받았습니다. 서울종합직업전문학교, 한국폴리텍대학에서 1980년부터 2000년까지 교수직을 맡아 한식, 양식, 일식, 중식, 제과, 제빵 등 모든 조리 과정을 총망라하여 학과장까지 지내기도 하였고, 2000년부터는 한국 관광대학교의 개교 멤버로 현재까지 호텔 조리학과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조리기능장회를 설립하여 회장직을 맡아 운영하였고 사단법인 한국조리기능장협회에서 초대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조리기능장으로서 사회의 취약계층을 찾아가 음식을 나누고, 대중들에게 한식 조리 실습을 만들어 참여를 유도하는 등 우리 국민들이 한식을 바로 알 수 있도록 한식의 보급화에 힘쓰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어린 시절이 궁금합니다. 조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나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저도 어릴 적 부모님께서 해주신 칭찬 덕에 조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충주에서 나고 자랐는데, 하루는 어머니께서 서울로 나들이를 가시며 제게 아버지의 식사를 부탁하셨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평소 어머니가 하시던 대로 아궁이에 불을 피워 가마솥에 밥을 지었고, 찬거리가 마땅치 않아 눈동냥으로 보던걸 흉내 내며 계란찜을 해드렸어요. 난생처음 해보는 요리였는데 아주 잘 되었던 게기억납니다. 아버지께선 맛있게 드셨는지, 어머니가 돌아오시자 우리 순옥이가 차려준 밥상이 그렇게 맛있었다고 칭찬해 주셨지요. 그게 국민학교 3학년 무렵의 일이었는데, 그때 부터 요리에 관심이 생기고 시작하였고 어머니를 도와 부엌을 들락거리는데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던거 같습니다.

당시는 625 사변을 겪은 지 얼마 안 되었던 터라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선 없는 살림으로도 다양한 찬거리를 만드시곤 하였죠. 어머니의 손을 거치면 평범한 식재료도 훌륭한 요리로 재탄생하였습니다. 콩잎으로 장아찌를 담그기고 하시고 고추로 초절임을 하거나 감자나 깻잎, 컴프리 등을 말려 부각을 만들어 겨울을 나기도 하셨죠. 부각은 기름에 튀겼기 때문에 칼로리가 높고 마른 식재료로 만들었기 때문에 보관도 용이하였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훌륭한 저장 식품이었던 것이죠.

부모님의 칭찬과 어머니의 가르침에 힘입어 조리에 빠지게 되셨군요. 그러면 조리사를 꿈꾸기 시작한 것은 언제였나요?

제가 본격적으로 조리사의 일을 시작한 것은 1979년부터 입니다. 그 당시는 조리를 특별한 자격 없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겼고, 지금 같이 체계적으로 정립되어 있지 않았으며 조리를 배울 수 있는 기관 역시 많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요리 학원이 전부였지요. 그래서 사실은 고등 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을 준비하였습니다. 약 4년 정도 공무원 생활을 하였는데, 할수록 저와 맞지 않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을 그만두고 조리사를 목표로 하게 되었습 니다. 수소문 끝에 서울에 계신 유명한 요리 선생님을 소개받았고, 선생님 댁에서 숙식을 같이하며 음식을 배우며 요리학원의 강사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학원의 강사로 4년 정도 일을 하던 1983년 봄에 일입니다. 그날도 평소 처럼 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어떤 수강생이 시금치를 데치는데 소금을 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왜 뚜껑을 열고 데쳐야 하는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 질문을 받자 저는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그동안 어머니나 선생님으로부터 전수받은 대로만 조리만 했던 저는 그런 의문을 가진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도 자신의 어머니, 선생님도 자신의 선생님께 전수받은 그대로를 물려주셨던 것이었지요. 그 일로 자신에게 크게 실망한 저는, 그날로 사표를 쓰고 체계적인 공부를 결심합니다. 서른의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경희대 식품영양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실기로만 알고 있던 조리 과정을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론까지 알게 되니 머릿속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습니다. 그렇게 영양사 자격증을 얻고 실기와 이론 모두를 양립할 수 있는 조리사로 활약하게 되었습니다

협회를 운영하는 것이 어렵진 않으셨나요?

협회의 일원은 조리에 도가 트신 조리장분들이기 때문에 실무적인 부분 에서 오는 부족함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들 직장을 가지고 현직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이 많기에 한자리에 모여서 의논할 시간을 갖는 것에 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혼자만의 아이디어로 협회를 운영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보다 둘이 낫고 둘보다 셋이 낫듯이, 협회를 운영하기 위해선 여러 사람의 참여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바쁜 탓에 정기총회를 제외하 고는 모일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이 아쉬운 점입니다.

그러면 가장 좋아하는 한식은 무엇인가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한식은 김치입니다. 김치는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하여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무궁무진한 맛과 영양을 챙길 수 있고, 발효 과정 에서 생성되는 유기산 및 젖산균, 비타민과 무기질 등 신진대사에 필요한 영양소를 고루 갖추고 있어서 훌륭한 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세계적인 음식이기 때문에 김치를 좋아합니다.

조리기능장으로서 느끼는 음식을 만드는 행위, 그 자체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데 빠질 수 없는 요소 중 하나 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음식을 더욱 맛있게, 더욱 효과적으로 영양소를 흡수하기 위해 조리라는 과정이 탄생했습니다.
최고의 음식은 간이 맞는 음식이며, 간이 맞는 음식은 사랑이 가득한 음식 이고, 사랑이란 곧 어머니의 마음으로 만든 음식을 말합니다. 즉 최고의 음식은 어머니의 사랑으로 만든 음식입니다. 사랑과 정성으로 조리한 음식은 먹는 사람은 물론 만든 사람에게도 감동과 충족감을 선사해 줍니다. 조리의 매력은 자신의 사랑을 담아 먹는 이에게 선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구독자 분들 중엔 을 통해 선생님을 보신 분들도 많을 거 같습니다.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다양한 요리의 비결을 전수 해주셨는데요, 이 자리에서 짧게나마 조리를 위한 팁을 부탁드립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선 신선하고 좋은 식재료를 준비하는 것은 기본이고 바탕이 되는 조미료에 따라 음식의 최종적인 맛의 방향이 바뀌기 때문에 알맞은 조미료를 선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단순히 재료를 손질하는 도구나 칼질의 방향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식재료의 식감이 크게 변화합니다. 그러니 조리의 각 부분을 세분화하여 다양한 시도해보시기 바랍니다. 약간의 변화로도 맛이 크게 차이 날 것입니다.

조리기능장으로 활동하시며 어떤 순간에 보람을 느끼시나요?

음식은 사람이 태어나서 사망할 때까지 먹어야 하는 필수 불가결의 생존 에너지이기 때문에 조리기능장이라는 직업을 택해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음식을 만드는 일을 하는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조리 기능장은 공인입니다. 공인은 자신의 기능뿐 아니라 인격, 예의, 성실성 모두를 갖추어졌을 때 더욱 인정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역시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에 늘 겸손한 자세로 임하고 있으며, 국가적으 로도 조리사를 기능직으로 인정하여 기능장 자격증을 발급한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제가 교직에 서서 후학을 육성한지도 어느새 30여 년을 넘는 세월이 흘러 정년을 2년 앞두고 있습니다. 정년을 맞이하면 한국 음식을 더욱 깊이 있게 연구하고 대중에게 손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쉽고 편한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틈틈이 하던 봉사를 본격적 으로 하여 한식의 보급을 위해 발 벗고 나설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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