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매거진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 레전드매거진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마이클 잭슨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미국의 가수이자 작곡가로 잘 알려진 그는
스미소니언 선정의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이며,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자신의 이름을 두 번이나 올린 몇 안 되는 뮤지션이다. 또 기네스북 선정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연예인, 가장 많이 팔린 앨범, 최연소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등재되었으며, 빌보드 선정 1980년 시대별 아이콘으로 선정되는 등
마이클 잭슨은 명실상부 20세기 팝을 지배했던 아티스트였으며
전 세계를 떠들썩이게 한 슈퍼 스타이자 시대의 아이콘이다.

마이클 잭슨 이전에도 엘비스 프레슬리나 비틀스 같은 슈퍼스타들은 존재했으나,
그들은 모두 영미 사회의 백인들에게 인기를 누렸던 반면,
마이클 잭슨은 인종을 초월하여 흑백 사회 모두에서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 내었다.
귀로 듣고 만족하는 시대를 넘어 눈과 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보는 음악의 시대를
연 주인공으로 마이클 잭슨이라는 이름이 현대 팝에서 갖는 의미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잭슨 5로 시작하여 팝의 황제로 거듭나기까지, 가상 인터뷰를 통해 그의 삶을 살펴보자.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死者와의 인터뷰 by 김규민

1. 안녕하세요 마이클 잭슨 님,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항상 비슷하죠. 2014년도에 [XSCAPE] 앨범을 발표하고 나서는 나이가 들어서 인지 음악활동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노래를 통해 흑인,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앨범을 준비하고는 있지만 발매 시기와 앨범명은 아직 말해드리기 힘든 단계입니다.

2. 앞에서 말씀하신 흑인,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은 어떤 점을 말씀하시는가요?

많은 사람들이 흑인 음악 스타일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흑인이라면 마땅히 소울이나 진한 펑크 음악을 해야 하며 록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저는 록인지 펑크인지 아니면 디스코인지 딱 잘라 정의 내리기 힘든 독특한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 흑인의 음악적 뿌리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백인들도 납득할 수 있는 팝 음악을 들려주며, 흑인 음악과 백인 음악의 크로스오버가 새로운 사운드로 탄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하였죠. 과거 30년 동안 미국 팝의 근간을 이루었던 흑인=소울, 백인=록의 등식을 영원히 바꿔 놓았다, 대중음악사를 새로 쓰고 있다는 찬사를 들었으니 남은 생도 열심히 노력해야죠.

3. 잭슨 5가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잭슨 5라…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네요. 추억이 새록새록 돋습니다. 어릴 적 저는 10명의 자식 중에 8번째였어요. 어머니는 소아마비를 가지고 있었고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자였습니다. 아버지는 음악을 좋아하셨고 음악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아버지는 저희들을 모아서 잭슨 브라더스라는 밴드를 만들었죠. 저는 나이가 너무 어려 밴드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제 모습을 본 어머니의 추천으로 밴드 멤버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잭슨 브라더스에서 잭슨 5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죠.

4. 잭슨 5의 시절과 활동

저는 가장 어린 나이였지만 뛰어난 가창력을 인정받아 형과 함께 메인 보컬을 담당했습니다. 뛰어난 테크닉에 매우 독특한 목소리로 사실상 저의 형을 밀어내게 되었지만요. 저희들은 여러 지역의 탤런트 쇼와 학교 축제, 스트립 쇼, 칵테일 바 등에서 공연을 했으며, 나중에는 인디애나주의 게리에 위치한 레코드 사인 스틸 타운에서 최초로 BIG BOY라는 상업용 싱글을 녹음했습니다. 저희 음악은 여러 방송에서도 송출되었고 가족들은 매우 기뻐했었죠. 1960년대 110여 개의 곡을 빌보드 싱글 차트 TOP 10위 안에 진입시켜 흑인 음악계의 영원한 전설로 불리는 모타운 레코드 사와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70년에는 4곡을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렸습니다. 물론 앨범도 셀 수 없이 많이 팔렸었고요.

5. 잭슨 5 이후의 시절

1971년에 빌 위더스(Bill Withers)의 ‘Ain’t no sunshine’를 멋지게 커버하며 성공적인 솔로 데뷔를 하였어요. 그다음 해 발매한 싱글 앨범 [Ben]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랐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부른 라이브가 절 대표하는 기념비적인 라이브 영상 중 하나로 남게되었죠. 1971~1975년 동안 4장의 솔로 앨범을 발매하였어요. 그 이후로 모타운 레코드 회사와 사이가 틀어지면서 Epic 레코드사로 이적을 하였는데 모타운에서는 계약 위반을 핑계 삼아 잭슨 5라는 이름을 쓰지 못하게 하였어요. 그래서 결국 저희는 The Jacksons로 이름을 바꾸어 활동하였죠. 저희의 음원은 각종 빌보드 차트에 기록되고 앨범을 출시했다 하면 엄청난 인기를 끌었어요. 1978년 제 혼신의 힘을 다한 역작 [Destiny]를 발매했어요. 흑인 음악의 영원한 걸작 중 하나라 평가받으며 미국에서만 200만 장이 넘게 팔렸고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도 7위를 차지하였죠.

6. 뉴욕타임스에서 엘비스 프레슬리나 비틀스와 마찬가지로 마이클 잭슨이 음악 세계에 미친 영향력을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였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쑥스럽네요. 저를 흑인으로서 인종적인 장벽을 허물고 흑인 음악의 저변을 넓혔다고 평가해 주시곤 하는데, 저는 제 자신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는 게 싫어서 한 행동일 뿐이었습니다. 절 엘비스 프레슬리나 비틀스 같은 뛰어난 아티스트와 나란히 평가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7. King of Pop, MJ 등 별명이 많으신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선 King of Pop, 팝의 황제라는 별명은 너무 과찬인 거 같네요.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전 그저 음악을 좋아했을 뿐이고,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기 위해 노력을 했을 뿐인데 팝의 황제라는 별명이 붙어버렸네요. MJ는 제가 어렸을 때 음악으로 꼭 성공하자는 다짐으로 마이클 잭슨 말고 MJ로 불러달라는 뜻으로 제가 만든 별명입니다.

8. 언론과 루머에 대해

저랑 관계가 있었던 사람 혹은 사이가 틀어진 사람들이 언론사에서 돈을 받고 거짓 이야기를 지어냈어요. 예를 들면 제가 여자와 다니면 섹스광, 남자와 다니면 동성애자라는 거짓 기사를 보도하거나, 수염 없는 말끔한 얼굴을 보고 여성호르몬이 과다 분비되는 거 아니냐는 거짓 기사를 싣기도 했죠. 제가 이에 대응해서 턱수염을 길렀더니 턱에 모발을 이식했다고 하는 엉터리 기사가 나돌기도 했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개소리들을 매우 싫어했고 상처도 많이 받았습니다. 타블로이드(가십거리와 루머를 담는 황색 언론이나 발행물)를 모아서 산처럼 쌓아놓고 불태워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어요. 그래서 저는 언론과 파파라치, 루머들을 대놓고 저격하는 곡들을 발표하기도 하였죠.

9. 마지막으로 전 세계에 있는 팬들에게 한마디

안녕하세요 팬 여러분. 이렇게 인터뷰로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조금 긴 공백기간이 있었지만, 여전히 저를 사랑해주시고 제 노래를 들어주시는 전 세계의 팬 여러분들께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조만간 새로운 앨범을 들고 여러분을 찾아뵐 예정입니다. 그리고 앨범 발매와 함께 투어도 준비되어 있으니 여러분의 갈증을 달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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