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탈 명인 김동표












하회탈, 곡선에 담긴 희로애락
하회탈 명인 김동표

장맛 구름에 가린 태양이 잠시 고개를 내민 7월의 어느 날, 우리는 하회탈 제작자이자 하회세계탈박물관 관장인 김동표 명인을 뵙기 위해 안동으로 걸음을 옮겼다. 산을 넘고 터널을 통과해 안동으로 다가갈수록 서울의 퍽퍽한 공기는 싱그러운 녹음을 머금으며 시시각각 변해갔고, 안동 하회민속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쾌청한 하늘과 상쾌한 공기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전통 경관과 생활양식이 잘 보존되어 중요 민속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된 안동의 하회민속마을은 세계적으로 그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이러한 마을의 초입에 박물관이 위치해 있는데, 1995년 개관한 하회세계탈박물관은 한국에서는 최초이자 유이하게 존재하는 탈 전문 박물관이다. 이곳에는 300여 점의 한국 탈과 해외 35개국의 탈 800여 점 등 각양각색의 탈이 전시되어 있으며, 보관소에 잠들어 있는 약 2000점의 탈을 꾸준히 교체, 전시하는 중으로 수많은 탈이 관람객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만난 김동표 명인은 일찍부터 목공에 재능을 깨닫고 공예에 입문했다고 한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하회탈을 만들게 되었는데, “처음부터 잘 되었더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을 생각처럼 되지가 않아 오기가 생기더라.”며 넌지시 웃는다. 제작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를 추억하며 우리에게 전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그의 꼼꼼하고 세심한 관찰력과 한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강직한 신념이 느껴졌다. 그는 이후 하회탈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 하회별신굿탈놀이를 직접 이수하였으며,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 하회별신굿탈놀이 탈 제작 담당자로 활동 하고 있다. 동시에 그간 수집해온 탈을 전시하기 위해 하회세계탈박물관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박물관에서의 시간은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탈을 통해 인류의 보편적 정서를 찾을 수 있었고, 지역마다 삶을 바라보는 인식이 다양했다는 사실도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조상들의 생애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이곳, 하회마을에서 그들의 정취를 느끼며 다양한 탈이 전해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 올여름 짧은 휴가로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김동표 선생님. 이렇게 뵙게 되어 반갑 습니다. 우선은 구독자분들을 위해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김동표입니다. 저는 안동 구담리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나무 만지는 걸 좋아했는데, 나이도 어린것이 어른 못지않게 야무진 솜씨를 보여주니 마을에선 안골 김대목이라 불리기도 했지요. 성인이 되고선 목공예 공방을 운영했는데 우연한 계기로 하회탈을 접하며 제작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회탈을 더욱 깊게 이해하기 위해 하회별신굿탈놀이를 이수받기도 했으며, 현재는 하회탈 제작 및 하회세계탈박물관의 관장을 맡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계신 안동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안동은 ‘정신문화의 수도’라 불리는 곳입니다. 조선의 대표 선비로 성리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퇴계선생의 고향이기도 하지요. 퇴계의 뜻을 기리는 도산서원에서 후학이 많이 배출되니 “조선 선비의 반은 영남에서 태어났고, 영남 선비의 반은 안동 출신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교사상, 선비정신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과 하회탈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목공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십대 중반의 나이에 서울 천호동에 작은 공방을 차렸 죠. 불상, 접시, 꽃 등등 나무를 깎을 수만 있다면 대상을 가리지 않고 별의별 것들을 전부 만들었습니 다. 그러다 하루는 이웃 가게분이 하회탈이 그려진 우표를 보여주시며 이런 것도 제작이 가능하냐 물으 시더군요. 혈기 왕성하던 저는 간단한 일이라며 보란 듯 탈을 만들어 내려했지요.

그런데 웬걸? 생각처럼 만들어지지 않더라고요. 제가 만든 탈에는 우표 속 그 오묘한 표정이 담겨있지 않았어요. 남는 게 기운밖에 없던 때니 마음에 들때까지 다시 만들 수밖에. 그렇게 두 개, 세 개, 네개… 탈이 점점 쌓여가는데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 죠. 시중의 탈을 참고하고자 백화점엘 갔는데, 글쎄 그곳의 탈도 투박하고 엉성하니 올바르게 만들어진게 없지 않겠어요. 이러면 내가 한번 제대로 만들어 봐도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을 갖고 더 열심히 만들 었던 것 같아요.

툭 솟은 광대와 우뚝한 코, 커다란 눈매 등 하회탈은 굉장히 과장된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하회탈이 이런 모습을 형태를 지닌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회탈의 외모를 설명드리기 전에 하회탈의 쓰임을 먼저 이야기해야 할 거 같습니다. 국보 121호로 지정된 하회탈은 하회별신굿탈놀이에서 쓰이던 가면으로 한국에 현존하는 탈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양반, 각시, 선비, 부네, 중, 백정, 할미, 초랭이, 이매, 주지탈이 전해지며 총각, 별채, 떡달이탈이 있었으나 현재는 그 존재가 소실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회별신굿이란 특별한 신에게 드리는 제사로 홍수나 화재, 가뭄이나 기근 등 마을에 우환이 발생하거나, 서낭당 산주(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에게 신탁이 내려오면 이를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별신굿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탈놀이를 통하여 세상을 풍자하고 억눌린 감정을 거리낌 없이 발산할 수있었던 행사인 것이죠. 이러한 하회별신굿의 유래는 12 세기부터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제 치하였던 1928년 무진년에 치러진 굿을 마지막으로 명맥이 끊기게 되었죠. 강점기를 겪으며 많이 부분이 소실 되어 현재는 별신굿의 자세한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하회탈은 허도령이 서낭 신의 계시를 받아 만든 것으로, 하회탈춤은 하회별신굿의 일부였던 탈놀이가 복원된 것이지요. 복원 과정에서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중요 무형문화재 69호로 지정되 었으며 하회마을에 전수회관을 두고 연행과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회탈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나요?

긴 시간 직접 제작하신 만큼 누구보다 더 잘 파악하고 계시지 않을까 합니다. 하회탈은 저마다의 표정을 가지고 있는데 당시 사회를 살아가던 구성원의 신분적 특징과 애환이 고스란히 담긴 것이 특이점이라 할 수 있겠지요. 양반은 소나기를 만나도 경망스럽게 뛰지 않는다, 물에 빠질지언정 개헤 엄은 치지 않는다는 말처럼 체면을 중시하고 허풍을 부리는 양반의 유유자적한 태도가 탈의 부드러운 곡선과 미소를 통해 나타나 있습니다. 부러질지언정 휘어질 순없다는 선비의 대쪽 같은 지조와 세속에 타협하지 않는 성품은 우뚝 선 코와 부라리는 듯 성난 눈으로 표현되어 있지요. 시집살이를 말할 때면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 년, 봉사 3년이라는 말이 있듯이, 각시탈의 꾹 다문 입과 내리 깐 눈은 어려움을 인내하며 속으로 삼키던 조선 시대 여인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하회탈의 또 다른 특징은 비대칭성입니다. 초랭이의 입을 보면 오른쪽은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반면 왼쪽은 굳게 다문 듯 아래를 향해있죠. 그로 인해 탈놀이 중 양반이 바라보는 방향에서는 헤실헤실 웃는 표정으로 보이나 관객의 입장에선 경직된 듯 험악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는 얼핏 계급사회에 순응하는 듯 하나 실은 양반을 얕보고 골탕 먹이는 초랭이의 성격을 반영한 것입니다. 얼굴의 두께도 입체적으로 설계되어 있는데, 부네탈은 왼쪽은 얇고 양반은 오른쪽이 얇습니다. 서로 얇은 쪽으로 서면 수줍게 곁눈질하는 것처럼 보이고, 두꺼운 쪽으로 서게 되면 마치 외면하듯 눈 돌린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 요. 이렇듯 하회탈은 탈놀이에서의 역할과 탈의 외형이 일치하도록 계획 하에 설계되어 있습니다.

하회탈의 종류에 대하여
한국의 탈은 종이나 바가지로 만든 것이 많고, 놀이가 끝나면 태우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오래 보존된 예가 드물다. 하지만 목조로 만들어진 하회탈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대대로 계승되는 신성한 물건이었기에 탈에 대한 금기가 엄숙히 지켜져 현재까지 그 원형이 잘 남아있다.

양반탈
하회탈을 대표하는 탈로 대단히 한국적인 모습을 띄고 있으며 곡선을 통한 묘사는 조형의 정점, 가면 미술의 극치로 인정받는다. 얼굴 전체가 부드 러운 선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목구비를 구성하는 굴곡에서 양반의 여유와 허풍이 묻어난다. 부네를 사이에 두고 선비와 겨루어 패하고 초랭이에게 번번이 골탕 먹는 등 지체 높은 신분임에도 신분적 허위만 드러내고 망신당하여 관중에게 조롱 거리가 되고 만다.

각시탈
양반탈과 더불어 하회탈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탈로서 마을을 수호하는 서낭신의 현신으로 여겨지고 있다. 놀이에서 서낭신의 대역으로 무동을 타고 하늘에서 강신하는 형상으로 등장한다. 눈은 아래로 깔고, 입은 힘을 주어 꾹 다물고 있는데, 이는 새색시가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속으로 삭이는 표정이라 볼 수 있다. 좌우가 바뀌며 흔들거리는 머릿단이 조심스러운 모습을 상기시킨다.

선비탈
눈꼬리는 위로 치켜지고, 오른쪽 입 꼬리가 올라간 형상으로 뭔가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며 깊은 상념을 담아 찌푸리고 있는 표정을 하고 있다. 툭튀어나온 눈에서 독서량이 많다는 사실을 읽을 수있는데 지식층으로서 가진 사회에 대한 불만일 것이다. 부네를 사이에 두고 양반과 함께 지체 자랑, 학식 자랑을 펼치는데, 양반과 함께 높은 신분을 지니고 있지만 엉터리 학식을 자랑하며 스스로 무식함을 드러낸다.

부네탈
일명 과부탈로 불리며, 갸름한 얼굴, 반달 같은 눈썹, 오뚝한 코, 조그마한 입술 등 전통적인 한국의 미인상을 갖추고 있다. 눈가와 입 언저리의 가벼운 웃음기는 바람기가 있는 상으로 여겨지며 놀이 에선 여러 남자와 얽히는 인물이다. 기녀 또는 양반의 소첩 신분으로 등장하며 중을 유혹하고 양반과 선비 사이에서 어울려 놀아난다.

중탈
구도하는 수도승이 아닌 떠돌이 파계승을 묘사한 탈로 음흉한 웃음을 띠고 있고 둥글게 미소진 눈에서 계율을 어긴 자의 엉큼함과 능청스러움을 엿볼 수 있다. 부네의 미색에 취해 어울려 놀다가 초랭이에게 들키자 부네를 업고 도망가는 등 속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백정탈
분리된 턱은 발언의 자유, 즉 보장된 신분을 뜻하나 생계를 위해 고된 일을 할 수밖에 없던 백정 계급의 노고가 깊은 주름과 험악한 눈매로 잘 표현 되어 있다. 대체로 심술궂은 표정이며, 고개를 숙이면 살생을 할 수 있는 험악한 표정으로 나타나 고, 뒤로 젖히면 살생으로 인한 죄의식 때문에 미쳐 버린 듯 실성한 웃음을 띄고 있다. 소를 몰고 나와 때려눕힌 다음 우랑과 염통을 꺼내어 관중들에게 권하며 농담하는 등 일면 유쾌한 모습을 보이 지만 살생의 죄책감에 시달리다 실성하고 만다.

초랭이탈
양반의 종 신분으로 주인을 대하는 태도가 불손 하고 경망스러우며, 양반 계급의 부조리한 실상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인물이다. 비틀어지고 안으로 물려서 웃음과 불만이 섞인 현실에서는 지을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데, 이는 자기 상전인 양반 앞에서는 순응하나 뒤에서는 신랄하게 풍자 하는 초랭이의 이중적인 성격을 잘 대변한다. 부네를 사이에 둔 인물 간의 갈등을 부채질하며 겉으론 점잔 빼지만 속내는 서민과 바를 바 없는 지배계급의 이중적 모습을 조롱한다.

할미탈
한평생을 가난에 찌들어 살아온 노파를 묘사한 것으로 툭 불거진 이마와 동그랗게 돌출된 눈, 얼굴 전체의 주름에서 고달픈 우리네 삶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뾰족한 코 끝과 처진 입 꼬리, 살이 없는 턱은 말년이 박복하고 빈곤한 상을 나타낸다.
놀이에서 베틀에 올라앉아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베틀가로 풀어낸다.

이매탈
선비의 하인으로 언청이에 절름발이이다. 아래로축 처진 눈과 눈썹, 웃고 있는 입 모양은 순박한 이매의 성격을 나타내는데, 세습 신분인 종과 달리 하인은 신분을 보장받을 수 있음에도 바보스러울 정도로 선한 모습에 측은함마저 느껴진다. 허도령 전설에 따르면 탈 제작자인 허도령이 완성을 하기 전에 금기를 어겨 사망했기에 아래턱이 미완성인 채로 남아있다.

주지탈
주지는 상상 속의 동물로 굉장한 힘을 지닌 것으로 통한다. 암수 한쌍이 존재하며 손으로 주둥이를 조정할 수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놀이의 첫 번째 마당에 등장해 잡귀를 몰아내고 탈판을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박물관을 운영하며 다양한 탈을 접하셨을 텐데, 탈이 가진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대다수의 사람에게 얼굴을 그려보라면 보통 자기 얼굴을 닮은 그림을 그리기 마련입니다. 탈도 마찬가지지요. 우리나라의 탈은 누가 봐도 한국인의 분위기를 풍기고, 아프리카의 탈은 아프리카인처럼 보입니다. 유럽의 탈은 제작자가 유럽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세부적으로 조목조목 따지면 다를 수 있어도 대체적으로 그런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그 말인 즉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이 탈의 조형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러니 탈은 그 자체로 훌륭한 조형 미술품일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상징성을 지닌 역사적 유물입니다. 그것이 탈이 가진 매력이지요.

수집하신 많은 탈 중에서 그 과정이 힘들어 특히 애착이 가는 탈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파푸아뉴기니의 머드맨 가면. 최초 수집 때는 일정이 엇갈려 그 지역까지 가질 못하고 그냥 돌아와야 했어요. 그래서 지인에게 대신 구해다 달라고 부탁을 했죠. 몇 주 뒤 현지에서 화물이 도착하였는데, 개봉을 하니 마스크가 퍼석 깨져있었어요. 머드맨 마스크는 흙으로 빗어 굽지 않고 말리기만 한 거라 내구성이 취약하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또다시 부탁을 하게 됩니다. 이번에는 지인이 서울까지 귀국한 후 택배를 보냈는데 그것도 열어보니 쩍쩍. 세번째는 작정을 하고 현지에서부터 애지중지하며 무릎에 앉혀놓고 버스를 타고 비행기를 거쳐 서울에서 제 손에 인계됐죠. 저도 무릎에 올려서 안동까지 애지중지 가져왔는데, 지금 전시장에 있는 머드맨 마스크는 바로 그런 사연을 안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박물관을 운영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에는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하셨는데요. 이에 대한 소감을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운영되는 사립 박물관들이 많습니다. 국립 박물관처럼 국비 지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인데요. 그러다 보니 관장들의 일념 하나만으로 어렵게 어렵게 운영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저도 사비를 들여가며 운영을 지속해왔는데, 한결같은 올곧음을 보이다 보니 외부에서 모범적으로 운영하는 사례로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이쯤 되면 수상식장에서 박수만 칠게 아니라 우리도 받을 자격이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 무렵, 박물관 활성화를 통하여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 공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게 되었죠. 표창을 받으니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는 기분도 들고 위로가 많이 되었죠. 앞으로도 계속 박물관을 운영할 기운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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