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니체

반갑습니다. 니체 님. 음악과의 만남이 철학자로서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요.

그에 대한 대답을 드리기 위해선 저희 집안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프로테스탄트 옹호 작가였던 저의 친조부가 있었고, 어느 시골의 동네 목사 였던 저의 부친과 외조부가 계셨습니다. 그 영향으로 문헌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교회를 오가며 오르간을 연주 하고 모테트(Mottete)를 작곡한 것이 음악과의 시작점 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아, 모테트란 성경을 다성적으로 해석한 무반주 악곡인데, 어린 시절 음악을 접하며 큰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이 삶의 지침에 큰 영향을 주었지요.
성장 과정에서 근위대 입대를 희망했으나 낙방하였고, 이어서 자원한 군 복무 중 낙마 사고를 당하는 등 힘든 시기를 겪기도 했지만, 비슷한 시기에 쇼펜하우어의 책을 접한 것이 두 번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쇼펜하우어를 계기로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와의 만남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허름한 옷차림으로 모임을 나가도 웃으며 반겨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만났다 하면 음악과 철학에 대한 이야기로 밤을 지새우는 등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지요. 그와의 만남을 통해 문헌학자를 지망하다 본격적으로 철학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합니다.

삶을 음악과 철학의 균형 잡힌 시선으로 바라보았는데, 음악의 어떤 부분이 인간의 삶과 공명한다고 생각했는지 궁금합니다.

음악과 철학, 그리고 인간의 삶. 모두 다 같은 맥락입니 다. 인간의 삶은 끊임없이 보고, 듣고, 생각하며 무언가 를 습득해 나가는 과정이라 정의할 수 있겠지요. 읽는 것은 곧 듣는 것이고, 듣는다는 것은 무언가를 미리 판단하지 않고 자유롭게 사유하는 것을 뜻합니다. ‘사유하는 자’는 그 생각을 모색하고 반박하기보다 음악을 듣듯이 사고해야 합니다. 즉 의식적 인식보다는 심미적인 본능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에 몰두해야 합니다. 때문에 듣는 것과 생각하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이 제가 음악과 철학이라는 도구를 바탕으로 인간의 삶을 심미적 관점에서 탐구해온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인간의 정체성 속에서 내면에 실존하는 순수한 감정의 기조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의 바탕은 ‘소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의 출발점이라고 말씀해주셨던 바그너와의 관계는 꾸준히 지속되었던 건가요?

사실 바그너와의 관계는 한순간에 틀어져 버렸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품어왔던 신앙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음악과 철학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던 시절이 있었지 요. 그 당시 저는 랑게(F. A. Lange)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의 저서에 마음이 굉장히 동했습니다. 그렇게 의지 하던 신앙과 그를 바라보는 학문적인 시각에 의구심이 생기며 인간의 본질에 대해 탐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와는 너무나도 다른 바그너의 사상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고, 점차 기독교인의 모습을 띄어가는 바그너의 모습을 바라보기 힘들었습니다.
그의 음악은 점차 술과 마약처럼 변해갔습니다. 물론 저조차도 그의 음악에 심취한 시절이 있었지만, 그의 음악은 눈먼 이를 위한 초상화, 고통을 잊고자 눈을 돌리고 완치를 논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그가 추구하는 음악은 편협한 무대들과 합쳐서 청중에게 조롱을 듣기 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비난한 바그너였는데, 한 때는 스승이었기 때문인지 제 삶에서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더군요. (웃음)

기독교적 신앙을 뒤로하고 음악과 철학에 대한 인식이 뚜렷해진 시기가 있다고 하셨는데, 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음… 본(Bonn) 대학에 들어가서는 신학, 고대철학에온 관심을 쏟았었죠. 그런데, 이 신학 수업이라는 것이 저에게 혼란을 주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진리라 믿어 의심치 않던 교리가 무너지는 것을 느끼고 신앙의 고리가 끊겨 교회를 크게 비난한 적도 있었죠. 종교에 대한 회의가 커져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조차 거부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종교적으로 믿음이 강한 어머니와의 갈등도 이에 한몫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신앙이 파훼되자 제가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철학과 음악뿐이었 고, 스물한 살 무렵 스승인 리츨(F. W. Ritschl) 교수 님을 만난 후에는 철학에 대한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 다. 철학적 사유의 확립으로 인해 종교적 사상이 조금씩 뒤틀어지던 시기였었죠.

그 이후 삶은 어떠하였나요?

제가 원하던 삶은 ‘음악을 하는 소크라테스’였습니다.
대학 교수로도 재직하여 있는 동안은, 문화에 대한 비평을 공유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한 것들로 독일 문화의 발전을 꾀하였지만, 주류에서 벗어난 저의 사상을 온전히 이해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요. 때문에 여러 어려움도 겪으며 홀로 고뇌에 빠진 적도 많습니 다. 그 시기에 도움이 되어준 사람이 루 살로메(Lou Andreas-Salomé)였습니다. 그녀는 유일하게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기도 했고, 제가 사랑했던 여인이기도 했습니다. 살로메가 써준 시를 곡으로 옮겨 제 마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제 마음이 온전히 전달되지는 않았던 건지 두 번이나 청혼을 거절당했지만요.
많은 곡을 쓰고, 다양한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며 여러 작품을 집필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 건강이 몹시 악화된 뒤로는 스스로 요양을 하며 창작 활동을 이어나갔죠.
이제 와서 보면 웃기지만 저작권 등록도 하였습니다. 사유를 언어로 정리하는 쳇바퀴의 굴레를 돌다 보니 누군 가가 저를 보고 칭하기를 정신이상자라고 하더군요. 그후 독일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신은 죽었다.” 니체 님을 대표하는 아주 유명한 말입니 다. 이는 정확하게 무슨 의미인지요?

안이하게 살고 싶다면 그저 군중 속에 머물러 있으면 됩니다. 군중 속에 섞여, 자신을 잃은 채로 흘러가 버리면 됩니다. 애초에 얻고자 했던 바가 명확하지 않은 이들은 잃을 것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있어 무신론이란 증명이 불필요한 즉각적인 사실입니다. 실존하는 세상은 상상의 세상보다 훨씬 작으 며, 옛사람들이 신을 위해 바치던 것들을 이제는 부와 권력의 유지를 위해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외쳤습니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있다.
우리가 신을 죽여버렸다.”


저에게 있어서 무신론이란 증명이 불필요한 매우 직관 적인 사실입니다. 물론 이 말로 인하여, 혹은 제가 기독 교나 불교를 비판했던 것으로 저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많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말은 후대에 서도 큰 인식이 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자극이 되어야 합니다. 종래의 가치를 극복하고 새로움을 키워가는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주변을 듣고, 생각해야 합니다.

아마 마지막 질문이 될 듯합니다. 반 유대주의를 옹호했 다는 주장이 있기도 한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선 저는 반유대주의자를 매우 매우 싫어했습니다. 이러한 오해는 여동생의 저의 필서를 의도적으로 짜깁기 하여 발간했기 때문에 생긴 것 같습니다. 제가 사상적인 이유로 유대인들을 비판하기는 했습니다만, 나치의 히틀러처럼 인종적인 이유로 비판하거나 공격적인 언행을 뱉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유대인들의 노예 도덕이 기독 교를 이루는 근본이라고 여기고 있기에 비판을 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오랜 세월 핍박을 받으면서도 고난을 헤쳐온 적응력이 뛰어난 민족입니다. 반유대주의자들은 그저 유대인들의 돈과 재능에 대한 시기와 질투의 열등적 표출일 뿐입니다. 참고로 저는 그들의 예술적 재능을 높게 평가하는 글도 집필한 적이 있답니다. 바그너와 틀어진 이유 중에 하나도 그가 반유대주의자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가 유대인을 향해 펜촉을 세운 것은, 창조 적인 개인을 중시하기보다 공동체와 그 속에 있는 사람의 자유 의지를 억압하는 도덕성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공동체의 허상을 뒤집어쓴 인간은 타인을 천박하게 매도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해야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제가 해왔던 언행들이 다소 과격하게 비치기도 하는데 독자들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네요. 그 당시 제가 비판했던 사회가 현재에도 비슷한 틀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한 시대가 새롭게 바뀌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저 혼자만의 사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때론 아쉬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저의 말들이 조금 사뭇 모순적으로 보일지라도, 지금까지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연구하는 분들께 문헌학자로서 심심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제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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