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탐사그룹 ‘셜록’, 박상규

고농도 미세먼지와 더불어 춥고 강한 바람이 대차게 불어오던 2019년 2월의 어느 목요일, 그와 만나기로 한 날이다.

권력의 상징물을 향한 시민들의 애타는 호소가 한자리에 모이는 그곳, 일제강점기 3.1 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가 2016년 적폐 청산과 진상 규명을 외치던 촛불 혁명에 이르기 까지. 부조리에 맞서 온 시민들의 피와 땀의 역사가 새겨진 바로 그 자리, 광화문 광장에서 진실 탐사 그룹 ‘셜록’의 대표기자 박상규를 만났다.

[박상규, 진실탐사그룹 ‘셜록’ 대표 기자]

Q: 최근 드라마 제작사와 계약을 하셨다던데

책 ‘지연된 정의’를 드라마화하는데, 각본을 제가 직접 쓸 가능성이 높아요. 제안이 왔으니 해보고 싶고, 또 새로운 일을 한다는 기대와 설렘은 있는데 처음 해보는 일이라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네요.

Q: 원래 가보지 않은 길 전문가 아니세요?

뭐.. 그런가요? 하하

Q: 어떤 계기로 지금의 일을 하게 되셨는지

스물일곱에 대학교 졸업 후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러다 강남에 타워 팰리스 지을 때 공사장에서 일을 했었어요. 그러다 삼성전자 생산직에 비정규직으로 입사를 했죠. 일을 하면서 틈틈이 오마이뉴스에서 시민기자로 활동했어요. 그게 계기가 되어 오마이뉴스에 입사하게 되었죠.

Q: 셜록 매체를 만들게 된 과정을 말씀해 주세요

재심 프로젝트로 ‘다음’에서 스토리 펀딩 하면서 제가 1억 5천 정도를 벌게 됐어요. 이 돈으로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데.. 주변 기자들이 그러더라고요. 자기도 너처럼 그런 일 해보고 싶다고. 뉴스타파가 지금 영상 중심의 탐사 보도를 하고 있는데, 저는 글로 승부를 거는 탐사보도 매체를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Q: 셜록에서 글쓰기 학교도 진행을 하시는 걸로 아는데, 앞으로도 이런 프로젝트를 하실 생각이신지. 또 셜록과 뜻을 함께 할 수 있는 방법도 궁금하고요

현재 셜록은 후원자 분들에 의해 운영이 되고 있어요. 여기에 대한 서비스로 글쓰기 학교를 하고 있고요. 또 저희 후원하시는 분들 중 글 쓰는 것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아 글쓰기 학교에 대한 참여도도 좋은 편이고요. 그리고 제가 또 글은 잘 쓰거든요. 제가 가진 능력으로 뭔가 해드릴 수 있으니 저도 좋은 거죠. 앞으로도 셜록 구독자들과 글쓰기와 토론 등 함께 할 수 있는 활동들을 늘려 가며 꾸준히 관계를 만들어 가려합니다.

Q: 감명 깊게 본 책이나 영화, 하고 계신 일에 영향을 받았던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스무 살 때 읽었던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제가 전교 꼴등으로 졸업을 했어요. 친구들은 다들 뿔뿔이 흩어지고 저는 딱히 할 게 없어서 태백산맥을 읽었어요. 그러다 역사에 관심이 생겨 공부를 해 사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죠. 그리고 다시 읽고 싶은 책을 꼽으라면 박경리 선생의 ‘토지’입니다.

Q:그 이유가 뭔가요?

태백산맥은 한국 사회 부조리의 뿌리가 어떻게 현재까지 뻗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부조리한 현실 속에 등장하는 각 인물들은 사회를 바꾸기 위해 무모하게 도전하죠. 자신이 믿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 인생을 걸고 싸우는 이들의 모습이 멋져 보였고, 어떻게 보면 그런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조금씩이라도 달라져 왔다고도 생각해요.

또 토지에서는 양반집 딸 서희가 노비 길상이랑 결혼하잖아요? 서희 엄마는 바람이 나서 도망을 가고, 서희 아버지는 신분 상승을 꿈꾸던 노비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이 캐릭터들의 공통점은 경계를 뛰어넘는다는 거예요. 경계를 뛰어넘는 인물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죠. 문학적으로 봤을 때도 정말 멋있는 작품이에요.

여담이지만 작품에 애정이 가다 보니 토지와 태백산맥의 배경이 된 지역도 자연스레 좋아져서 구례 쪽에 방을 얻어 살았던 적도 있어요. 그쪽이 지리산 근처인데, 봄 되면 꽃 피고 참 아름다워요.

Q: 저도 그쪽 지역에 한번 살아보고 싶습니다. 대표님 얼마 전 세바시 강연에서 ‘두렵고 떨리는 길이 당신을 구원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대부분 두렵고 떨리면 피하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정면으로 맞서면 구원이 올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던 계기가 궁금해요

제가 그간 살아오며 경험으로 알게 된 한 가지가 있는데, 무언가를 시작할 때는 나의 모든 것을 다 걸어야 한다는 겁니다. 오마이뉴스에서 10년 동안 일을 하고 사표를 낼 때는 놓기가 쉽지가 않았어요.

그런데 그때 문득 떠오른 게요, 황우석 사태 때 내부 고발자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제가 그분에게 오마이뉴스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시작하려 하는데, 고민 중이다. 이렇게 말을 했는데 그분이 사람은 때로 벼랑 끝으로 가야 새로운 길이 열린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이 무서웠지만 한편으로는 희망이 되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새 길을 갈 때는 두렵고 떨려도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안정적인 삶이 주는 달콤함이 아무리 달다고 해도, 그걸 과감히 끊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저는 워낙 잃을 것도 없어요.(웃음) 계기가 뭐냐고 물어보셨는데, 제가 좀 힘들게 살았어요. 그러다 보니 지금 겪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닌 거죠. 취재하면서 두렵고 떨릴 때도 물론 있지만, 뭐 그래도 깡이 좀 세서 잘 이겨내는 것 같아요.

Q: 슬럼프가 찾아올 땐 없었나요? 그럴 때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2017년도 9월부터 셜록이 어려웠어요. 직원들 월급 주기도 벅찼어요.

Q: 봤어요. 벚꽃 헤딩하시는 거(웃음)

네, 별 짓 다했어요.(웃음) 제가 아무리 힘들어도 박준영 변호사에게 돈을 빌린 적은 없었는데, 저를 지켜보더니 그분이 그러는 거예요. ‘아직 배가 덜 고팠구나?’라고. 니가 지금 물불 가릴 때냐는 이야기죠.

그 말 듣고 나니 오히려 후련했어요. 그래서 그분에게 돈 빌렸어요. 내가 돈 빌리는 것보다 직원들한테 월급 못 주는 게 더 부끄러운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실패는 할 수도 있다는 겸허한 마음가짐도 있었고. 당시 슬럼프는 그렇게 극복했던 것 같고, 평소 스트레스가 쌓일 때는 그저 많이 걷고, 많이 자고, 등산도 많이 하면서 해소해요. 때로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술도 마시며 해소할 때도 있고요.

사진설명 : 셜록 구독자 ‘왓슨’ 참여율이 저조해 벚꽃 헤딩을 하는 박상규 (출처 : 박상규 기자 페이스북)

Q: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으신 것 같아요. 주변에서는 대표님의 행보에 대해 뭐라고 하던가요?

처음에 제가 셜록 한다고 할 때 한 사람 빼고 모두가 말렸어요. 안 말린 사람은 바로 오마이뉴스 오현오 대표였죠. 그분은 멋지다. 해봐라. 이러시더라고요. 하여간에 다들 말리니 또 반항기가 생기더라고요. 내가 그러면, 되는 거 한번 보여줄게! 이런 마음이었던 거죠.

저는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사람이에요.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은 원래 직업이 경찰이었는데, 그만두고 직접 파리와 런던에서 부랑자가 되어 살아보기도 하고 르포도 쓰고 했었죠. 저도 그렇게 직접 겪어보고, 타인의 삶을 살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하루 이틀 체험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삶과 사고관에 깊숙하게 들어가 이해하는 경험을 해보고 싶은 거죠.

Q: 대표님은 뼛속까지 기자인 것 같아요. 나중에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같은 세계문학의 반열에 오를만한 책도 기대해도 될까요?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조지 오웰이에요. 하하.

Q: 재심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요. 자료 조사하면서 알게 된 건데 이 일들이 불과 2000년대 그러니까 꽤 최근에 일어난 일이잖아요? 그런데 더 최근에는 미투 운동 등을 비롯한 젠더 이슈도 그렇고 여러 가지 사회적인 분위기나 시민들의 인권 의식이 최근 들어 전반적으로 성장하지 않았나. 저는 그렇게 보거든요. 기자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또 이런 달라진 면이 사법부 등 권력기관 및 제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시는지 궁금해요

세상은 지금도 불평등하지만, 조금씩이라도 더디게 평등해지고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낙관적으로 보는 거죠.

사실 조금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그 일들이) 모두 21세기에 벌어졌다는 건 깜짝 놀랄 일이죠. 21세기에 민주국가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그렇게 놀라시는 분들도 많을 텐데 지금도 사회의 제도권 내에 들어오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관심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은 지금도 아주 많습니다.

자기 스스로 표현하는 법도 모르고, 억울한 일을 겪어도 호소할 데가 없는 그런 사람들. 그들은 언론사에 가는 법도 모르고, 그저 자기 말만 들어줘도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보도 안 해도, 지금 자기 말 들어줘서 고맙다고. 여전히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비참하게 외면받고 소외되고 있어 여기에 대한 문제의식은 늘 가지고 있죠.

Q: ‘여전히 지속되는 문제다’라는 말씀인 거죠?

과거에 비해서는 나아졌죠. 하지만 또 다른 소외는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어요. 서울만 벗어나도 힘든 사람들은 너무나 많아요. 제가 만났던 재심사건 사법 피해자들 모두가 가난하고 힘없고, 부모가 없거나 장애인이거나. 그런 분들이었는데 지금도 그런 분들은 계속해서 사회 보호망 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있죠. 가야 할 길이 멀어요.

Q: 혹시 그분들이 제도적으로 도움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나 기관이 있다면?

글쎄요.. 지연된 정의에 집필했던 ‘삼례 나라 슈퍼 3인조 강도사건’ 취재하면서, 청소년 세 명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고 이들이 3~6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뒤 만기 출소하는 동안 어떻게 이렇게 누구도 관심을 안 가졌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이들 중 두 명은 지적 장애인이었죠.

근데 또 이 사람들 감옥가게 누명 씌웠던 사람들 보면 악한 사람들도 아니에요. 일반 경찰, 검사, 판사들. 즉 공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총체적으로 실수하고, 잘못한 거죠. 그런데 그 숱한 과정에서 이들 중 누군가는 분명히 진실을 알았거나 짐작했을 거란 말이죠. 얘네 아닌데.. 아닌 것 같은데.. 이러면서도 그냥 넘어갔겠죠.

이들이 범인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런데도 그냥 넘어갔던 그 사람들은 도대체 뭘까. 너무 바빠서, 밀어내기로 일 처리한 거죠. 그렇게 해도 찍소리도 못할 사람들이었으니까.

제도 말씀하셨는데, 우리 사회가 보면 제도는 잘 완비가 되어있어요. 민주주의도 발달된 형태고요. 그런데 이것을 진행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들을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는 거죠. 절차를 집행하는 사람들이 약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절차를 만들어놔도 소용이 없어요. 참 씁쓸해요.

Q: 저는 사회가 더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개개인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를 물어보고 싶었는데, 답이 된 것 같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존중이 필요해요. 우리도 지금 서울 사대문 안 있는 광화문 한복판의 비싼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죠. 그나마 먹고살만하고, 많이 배우고, 성공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그런 자리죠. 여기에만 살다 보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잘 안 보게 되거든요.

저도 오마이뉴스 그만두고 느낀 가장 큰 충격 중에 하나가 그거였어요. 아 내가 그동안 아픈 사람, 슬픈 사람들 못 보고 살았구나. 잘난 사람들만 봤었구나.어머니 집이 경기도 화성에 있어서 그쪽에 한 번씩 가는데, 수원역에 내리면 사람들 외향, 냄새, 풍경이 서울과 정말 다르다는 걸 느껴요. 서울은 가장 살기 좋은 곳이죠 특히 사대문 안은 더 그렇고요. 그런데 현재 한 사회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은 모두 서울에 모여있죠.

여기에서만 지내다 보면, 힘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잘 몰라요. 예전에 취재 때문에 인터뷰를 했었는데, 그분에 공장 노동자였어요. 카페에 갔는데 물어보시더라고요. 이런 데서는 뭘 시켜야 하나요? 카페에 처음 와 보셨다는 거예요. 내가 서있는 세상과 다른 세계에도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선 안돼요.

Q: 그동안 셜록 운영해 오시면서 해오신 일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말씀해 주세요

오마이뉴스 그만두고 백수 기자로 재심 프로젝트 취재할 때 만난 분들은 대부분 제가 밥을 사야 하는 분들이었어요. 이 사람들은 저에게 오천 원 짜리 백반 하나를 사 주기도 힘든 분들이었죠. 그래서 저랑 박준영 변호사가 그분들에게 생활비 주면서 취재를 해왔죠.

그러다가 스토리 펀딩도 하고, 이 사건이 잘 해결이 되어서 그분들은 누명도 벗고, 저는 책도 내고, 강연도 하고. 그랬었죠. 그러다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600명 정도 모아놓고 진행하는 토크쇼 행사를 마친 날이었어요. 뒤풀이에 가서 고기도 먹고, 술도 많이 먹고. 그런데 삼례 나라 슈퍼 사건 피해자 중 한 분에게 문자가 왔어요.

저는 술 취해서 문자를 못 봤고요. 다음날 해장국 먹으며 그제야 문자를 봤어요. 그때가 12월 22일이었는데, ‘기자님 저 너무 추워요. 따뜻한 물 나오는 집에 살고 싶어요’라고 왔더라고요. 문자 읽은 순간.. 일단 큰 충격을 받았죠. 나의 위선이 들통난 느낌. 난 좋은 일 한다고 육백 명에게 박수받고, 술도 얻어먹고 그랬는데 정작 내가 취재한 사람은 한 겨울에 보일러도 안 나오는 집에 살고 있는 거죠.

그래서 원룸 구하시라고 삼백만 원을 빌려드렸어요. 부동산 비도 없다고 해서 50만 원 더 주고. 그 뒤로도 계속 10만 원 50만 원 지원 요청이 왔는데, 그다음 해 봄에 자동차 보험료가 없다고. 밀렸다고 50만 원만 빌려달라는 거예요. 갑자기 화가 나더라고요. 저도 그때는 돈 없어서 현금서비스받으며 살고 있었거든요. ‘적당히 합시다’. 이렇게 말하고, 빌려주긴 했어요.

시간이 좀 지나서 그분들 모두가 누명을 벗고 배상금으로 수 억 원씩 받았어요. 저는 기대도 안 했는데, 돈 입금된 날 그분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그동안 제가 빌려준 돈들을 노트에 다 적어놨더라고요. 그리고 너무 고마웠다면서 돈을 갚겠다는 거예요. 그걸 보고 정말 엉엉 울었어요. 그동안 나는 돈 주면서 착한 척했는데, 당신이 돈을 갚아버리면 이제 내 선량함을 팔아먹을 수가 없잖아.. 제가 말했어요. ‘이제 나한테 빚진 것도 없으니 서로 당당하게 삽시다.’ 라고요.

그때 일은 정말 잊을 수 없어요. 그런 분들을 계속 만나다 보면 서울의 잘난 사람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답고 인간적인 매력이 있어요. 그게 제가 계속 취재를 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기도 해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혹은 오빠나 형으로서 조언 부탁드려요

기자는 직업인이고 생활인이죠. 그런데 저는 다른 곳에서 글도 쓰고 인터뷰도 했지만, 기자는 월급쟁이가 되는 순간 끝나는 거예요. 월급에만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제가 감히 주제넘게 해주고 싶은 말은, 타인의 고통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는 거예요.

타인의 상처, 고통, 이런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감능력을 키웠으면. 그리고 무언가를 시작할 때는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밀어붙였으면 좋겠어요. 기자는 아무리 힘들어도 권력과 자본에 철학을 팔면 안 돼요. 그 철학과 근본을 지키는 것이 어려울 때 위기를 돌파하는 돌파구가 될 거예요.

언제나 기본을 지키는 기자가 되기를. 또, 기자가 되는 루트도 좀 더 다양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젊었을 때에는 제가 엘리트 코스를 밟아 기자가 된 게 아니라는 것에 대한 열등감도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오히려 그쪽 출신이 아닌 게 장점이 되었죠. 다양한 루트를 통해 기자가 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세상에 더욱 다양하고 수많은 이야기가 나올 것 같네요.

대표님께서 더 많은 진실이 올라올 수 있는 그물을 던져 놓으신 것 같아요. 오늘 인터뷰 허락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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