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명장, 김송기

손 끝에서 피어나는 한국의 풍미
대한민국 11대 조리명장 김송기

오늘날의 ‘식사’는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것뿐 아니라
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까지 그 의미가 넓게 해석되고 있다.
특별한 분위기에서 정성껏 차려진 음식을 먹는 일은
더이상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향유물이 아니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기회이며 나 혹은 소중한 이에게
선물하는 가치있는 경험인 것이다.
이 곳에서의 식사도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특별한 경험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국내 최고급 시설을 자랑하는 롯데호텔서울 38층 ‘무궁화’의 김송기 셰프는
한국의 땅에서 자라나는 재철 식재료를 기반으로
미식 트렌드를 반영한 품격 있는 요리를 선보이며
한식 문화의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

어떤 계기로 요리를 시작하셨나요?

어릴 때의 꿈은 조리사가 아니었어요. 다만 경제적으로 어렵고 배고팠던 어린 시절 먹을 것에 애착이 많았고, 먹고살기 바빴던 어머니의 손을 돕기 위해 주방에 자주 들락날락하곤 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부엌 일들이 자연스레 손에 익었어요. 본격적인 진로 선택의 계기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신라호텔에서 들었던 직원채용설명회였습니다. 당시 한국의 호텔 산업과 미래 조리사의 장래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외식산업에 관심을 가지다가 조리학과 진학을 결정했죠.

40여 년간 셰프로서 지녀온 요리 철학이 궁금합니다.

기본을 철저히 준수합니다. 산해진미로 요리한들 위생상에 문제가 있고 안전수칙을 어겨 사고가 발생한다면 무슨 소용이겠어요. 시대가 변화해도 위생과 안전에 대한 중요성은 절대 변하지 않는 거죠.
또 하나는 세상의 변화에 대한 유연하고 적극적인 대응입니다. 아날로그 시대와 디지털 시대 그리고 두 시대를 넘어가는 과도기의 전 과정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급속도로 변화하는 사회 트렌드의 흐름을 읽고 적응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죠.

무궁화에서는 최근 어떤 메뉴를 선보이고 있나요?

밥과 야채를 고르게 비벼 그 위에 햇볕에 고르게 말린 감태를 부숴서 채에 곱게 걸러내어 얹어낸 감태 비빔밥을 내고 있습니다. 모양새가 어디선가 본 것같죠? 감태 비빔밥은 어릴 적 한국인들이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먹었던 주먹밥의 형태에 상상력을 동원하고 트렌드를 가미해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있게 만든 요리예요. 약식동원 철학을 근간으로 자연산 식재료의 맛과 영양을 살렸고, 추억을 회상하는 이야기도 담고 있죠. 또 저희 식당은 양식 플레 이팅에서 많이 사용하는 마늘칩이나 허브잎 대신 더덕 칩, 들깻잎을 사용해 음식의 풍미를 더하고 있어요. 재료 선정 하나하나에도 한국의 맛을 살리는 데에 고심하고 있고 후식으로 내는 과일도 국산 제철 과일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국 땅에서 그 철에 재배되는 가장 싱싱하고 건강한 식재료와 과일을 맛볼 수 있게 하자는 것이 취지예요. 이제는 전통을 고집하는 것뿐 아니라 전통의 본질은 고수하되 현대인들의 입맛과 식성에 맞는 창의적 식단을 추구하는 것이 한식의 위상을 높이는 길이라는 거죠.

갑론을박이 분분한 미슐랭 가이드에 대한 견해가 궁금합니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데 따른 마찰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의 기준으로 지역 내의 모든 식당을 평가하는 데서 비롯되는 문제점도 분명 있겠죠. 그런 이유로 해외 일부 국가에서는 미슐랭 가이드를 도입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어요. 하지만 저는 한국에 도입되어 시행되고 있는 제도인 만큼 충돌을 극복하며 한국에 맞게 정착화, 한국화 되면서 순기능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국빈만찬 요리를 준비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는 무엇인가요?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첫 번째이며,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드시는 이에 대한 배려입니다. 행사장에 갑작스레 늦게 도착하시는 분들께도 식지 않은 요리를 드실 수 있게끔 준비해야 하고, 국가 간 종교나 개인의 특성을 고려해 음식에 사용되는 식재료를 사전에 신중하고 철저하게 파악해 내드려야 하죠.

명장 자격을 취득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나요?

그보다 앞서 조리기능장을 취득했는데, 실은 조리기능장 취득이 참 힘들었어요. 처음으로 조리기능장 시험을 본 1997년, 결과는 불합격. 이듬해 시험에서도 결과는 불합격이었죠. 그 후 10여 년이 넘게 흐른 2010 년 40대 후반이 됐을 무렵에 현 롯데호텔서울에 팀장으로 발령받았는데, 발령을 받고 보니 저는 조리기능장이 없는데 후배들은 대게 기능장을 취득하고 있더라고요. 팀장으로 왔는데 저만 자격증이 없는 게 조금 부끄 럽기도 해서 십여 년 만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시작한 지 1년 만인 2011년에 조리기능장을 취득했고그 후 명장까지 생각하게 되었죠. 명장이 되려면 특허 취득, 책 출간, 박사학위 등 여러 가지 조건이 전제되 어야 하는데 주변의 권유로 5년간 부지런히 준비한 끝에 자격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저 혼자만의 힘이라 고는 할 수 없어요. 지난 30여 년간 함께 일하며 저를 가르쳐주신 선배님들의 관심과 배려가 있었고, 지지하고 믿어준 후배들이 있었으니까요.

건강한 음식에 대해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원산지에서 가져온 싱싱한 식재료로 만든 음식이죠. 가령 한국 어느 지역의 특산품을 해외에서 주문한다면 유통하는 과정에서 본래의 신선도를 100프로 온전하게 유지하기는 어렵겠죠. 우리가 흔히 건강에 좋지 않은 걸로 인식하고 있는 유전자 변이식품(GMO)을 전부 피해 가는 것은 실질적으로 어렵겠지만, 쉽게 구할 수있는 신선한 음식들을 제때 섭취할 수 있다면 우리의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요리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
셰프가 되고픈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해주는 조언이 있다면?

교과서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만 의지를 잃지 말고 늘 노력하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외부 행사로 강연을 나가다 보면 어린 나이임에도 주관이 뚜렷하고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학생들과 많이 만나요. 이런 친구들이 현업에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저와 같은 기성세대의 몫이 아닐까요. 한국도 언젠가 해외 선진국가들처럼 외식업계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조기교육을 통해 전문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체계가 자리 잡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요즘 매체를 통해 최고가 된 셰프들의 인터뷰나 영상들을 접하면서 셰프를 꿈꾸는 학생들도 많아졌어요. 하지만 그 화려한 겉모습만 보고 섣불리 이 일에 도전하지는 않았으면 해요. 최고가 되어 그 자리에 있기까지 그들의 피나는 노력과 뒤로 밀려난 이들의 좌절 등 성공의 이면도 관찰해 봤으면 합니다. 물론그 후에도 본인의 미래가 이쪽이라는 확신이 선다면 그때부터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개인의 의지와 노력에 달렸죠. 만약 그렇게 해서 열심히 공부를 하다가 조리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중도에 깨닫는다 해도 괜찮습니다. 요리강사, 푸드 스타일리스트, 음식 유통업자, 푸드 콘텐츠 디렉터 등 외식산업에서 뻗어나 가는 직군 중에서도 자기와 맞는 일을 얼마든지 고를 수 있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현재의 자리에서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겁니다. 한 가지 더, 요리사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면 기회가 될 때마다 해외에 나가보세요. 본격적인 유학은 아니더라도 외국어 공부를 틈틈이 해두었다가 여유가 생기면 내가 공부하고 싶은 음식을 만드는 본고장에 방문해 음식을 직접 먹어보고 자료를 조사하는 등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미래는 안주하는 자가 아닌 개척하는 자의 몫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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