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해설가, 김찬용

미술 보여주는 남자 : 관점을 여는 해설가의 일
전시해설가 김찬용

지금은 전시 업계에서 도슨트로서 나름의 유명세를 보이며 정규해설 외에도 강연 등 러브콜이 쇄도하는 김찬용이지만, 시작할 때의 꿈은 소박했다. 서양미술을 공부하던 그는 우연히 시계 두 개가 나란히 붙어있는 ‘무제’(완벽한 연인들) 라는 작품을 만난 후 개념미술의 매력을 발견하고 도슨트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입니 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볼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행복한 삶 일거라 생각했어요. 제게는 그게 도슨트였죠. 미술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일들을 해봤지만, 결국 도슨트로 돌아왔어요. 10 년을 버티고 나니 주변에서도 직업적으로 인정하고 저를 찾아주더군요.” 해설가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반짝이는 시선에는 어떤 확고함이 느껴졌다. 그가 종종 인용하는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의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라는 말처럼, 어쩌면 삶을 잘 이해하고 자신 만의 삶을 창조하는 모든 이들을 일컬어 우리는 예술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김찬용이 내게 준 확신이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예정되었던 일 중 상당수가 코로나 이슈로 잠정적으로 연기된 상태예 요. 현재는 ‘툴루즈 로트렉展’주말 근무를 하고 있고, 매달 신인작가에 대한 칼럼을 꾸준히 기고하면서 유튜브 채널에 콘텐츠를 업데이트하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출판 건이 하나 있어 논의 중이고, 전시해설일에 관심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도슨트 멘토링 프로그램에 교육 자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먼저, 출판 건은 어떤 주제로 준비 되어 가고 있나요?

초반에 제안받은 컨셉은 미술 읽어주는 남자였어요. 그런데 제 생각에 미술은 읽는 게 아니라 보는 거거든요. 초안을 엎고 협의점을 찾다가 도슨트를 직업으로 삼으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일들 중 기억에 남았던 작품과 경험을 녹여내는 형태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 가을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ㅣ 13년차 전시해설가 김찬용

앞서 출판 건과도 맞물리는데, 전업 도슨트가 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대학교 때 서양화 실기를 전공했어요. 한 번은 학부 수업으로 미술관 에 가서 단체로 도슨트를 들었는데, 전공자인 제게도 난해하게 전달되더 라고요. 제가 아는 미술은 재미있고 볼 때마다 관점이 열리는 느낌이었는데 오히려 도슨트를 듣고 보니 작품이 더 어렵고 불편하게 느껴졌죠.
만약 작가가 이 상황을 본다면 그리는 입장에서 슬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이 일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내가 작가가 되지 않을 거라면 좋은 작품에 대해 책임감 있게 일해보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에서 출발한 거죠.

13년 전 처음으로 도슨트 일을 시작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동안 다른 일을 병행하거나 경험하신 적은 없었나요?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한 시기도 있었죠. 처음 도슨트를 할 때는 실수도 많아서 내가 과연이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경험 삼아 다양한 일을 해봤죠. 미술관 큐레이터, 작품 딜링, 입시미술학원의 강사, 미술 관련 협회 사무직 등 여러 가지 일들을 병행하면서도 주말에는 자원봉사로 도슨트를 하며 주 7일을 근무했는데요. 그렇게몇 년을 겪고 깨달은 것은 해본 일 중 가장 행복한 일이 도슨트였다는 거예요. 비록 도슨트는 당장 벌이가 아예 없는 수준이지만 미래에 내가 이 일로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보겠다 결심하고는 10년 전부터는 이걸 전업 이라고 외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차츰 나름의 수익체계를 구축해 지금은 전시해설 가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어느 정도 사는 데 지장이 없게 되었죠. 그동안 참여한 전시만 80 개가 넘는데 이렇게 도슨트만 하면서 살아남은 캐릭터가 없다 보니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는 지점에 있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중간자의 역할에 대해 좀 더 구체적 으로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작품을 보는 시점을 단순화하여 미술사적 시점과 관람객의 시점 두 가지로 놓고 볼 때, 둘중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작품과 관람객 사이에서 매개의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미술 사적 시점에 치우쳐 어려운 언어들만 쏟아내다 보면 그 이야기들은 누구에게도 와 닿지 않고 허공으로 흩어질 테고, 그렇다고 대중의 시점에서 쉬운 언어만 사용하기에는 미술에 담겨있는 것이 훨씬 복잡하거나 심오하기 때문에 중간지점에서 어려운 이야기지만 최대한 전달력 있게 하는 거죠. 관객들이 작품에 관심을 갖고 그 안에서 각자의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의미를 유추해내는 일종의 방법론을 제시하는 겁니다. 그래서 언어를 잘 사용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죠.

최근에 했던 프로젝트 중 어떤 일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

여행사에서 기획한 아트투어에 특정 전시에 대한 안내자로 고용되었어요. 가이드로 간건 아니다 보니 출발만 함께 하고 관광객들이 다른 장소를 투어 하는 동안 전 제가 안내 해야 하는 미술관에 먼저 가서 개인적으로 작품을 감상하고 자료를 수집할 시간이 있었 어요. 일을 하러 간 건데, 관람객의 마음으로 즐겼으니 그 좋다는 남의 돈으로 여행을 했네요. 그렇게 해서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 갔는데, 마침 현대미술작가 ‘올라퍼 엘리 아슨(Olafur Eliasson)’전이 열리고 있었어 요. 작가가 공간 구성에 직접 참여한 전시였 는데 관람객들이 자율 동선으로 전시를 편하게 즐기면서 현대미술을 다채롭게 맛볼 수 있게 한 큐레이팅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동시대 작가들의 전시가 자주 열리거나 흥행하기에는 여러 가지 한계가 존재하지만, 앞으로는 이처럼 기획적으로 동시대적인 작품들도 많이 들어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ㅣ 내 삶 속의 예술가들

평소 신념으로 삼는 말이 있나요?

요셉 보이스(Joseph Beuys)가 이런 말을 남겼어요.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 도슨트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제 일의 신념을 지키게 해주는 말이에요.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단순한 행위가 예술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건 그 일의 가치에 대해 신념을 갖고 행하는 유무형의 모든 것들이 예술이라는 의미가 짜릿하게 와 닿더라고요. 요셉 보이스의 개념미술을 만난 이후로는 미술이 꼭 예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시각적인 강렬함과는 다른 개념으로 사상적인 자극이 되니 삶에 대한 방향이 단단해지고, 그게 좋은 버팀목 이 되어주는 것 같아요. 작가의 작품도 좋아하고, 그 말 자체도 좋아합니다.

그렇다면 예술가란 어떤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요?

본인이 보여줄 수 있는 시각의 극한에서 오브 제에 대한 짜릿한 결과물을 남기는 게 미술가 라면, 예술가는 시대를 표현하고 다음 세대를 예견하는 사람이라고 봐야합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대중적으로 유명한 작품들 외에도 정말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들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변곡의 과정 속에서 결국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와 시대의 개념이 무엇인가를 놓고 보자면, 호크니는 끊임없이 진보적인 사람이라는 거죠. 나이가 들면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보수적으로 변하는데 그는 그 나이에도 진보적이라는 것 자체가 그사람을 예술가로 만드는 것 같아요.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 중 개인적으로 특히 좋아하는 작품이 있나요?

<나의 부모님> 지난해 서울시립미술관 데이 비드 호크니전에도 이 작품이 왔었는데요. 같은 주제의 작품이 두 가지가 있는데 초기작은 좀 더 복잡하게 거울에 반사된 본인의 얼굴도 넣었고 약간 어두운 톤이었다면 1977년에 새롭게 그릴 때는 초기작보다 훨씬 파스텔 톤 색조를 사용했고 주제도 단순하게 드러나요. 기존에 그릴 때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올곧게 앉아서 모델 자세를 취하는 모습인데, 다시 그렸을 때는 어머니는 모델 자세를 취하 는데 아버지는 집중을 못하고 책을 읽고 있는 모습으로 그렸어요. 작품을 보는데 저희 부모 님의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실제로 데이비드 호크니의 어머니는 아들을 너무 아껴서 비 오는 날에도 우비를 입고 나가 아들 앞에서 모델 자세를 취해주는 분이셔서 그림 속에서도 어머니는 아들에게 도움이 되려고 곧게 앉아 있는데, 아버지는 실제로도 호기심이 많은 분이셔서 그런지 아들이 곧게 앉아있으라고 해도 신문이나 책을 보며 딴짓을 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어요. 그 모습이 오히려 정갈하게 정돈된 가족의 이미지보다 훨씬 더 우리가 일반적으로 느끼는 가족의 모습, 내 눈앞의 부모님 모습 같았죠.

최근 몇 년간 꾸준히 화자 되고 있는 인공 지능 예술의 담론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인간의 예술이 가진 본질적인 힘은 결국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지점에 있어요. 도슨트도 마찬가지예요. 오디오 가이드가 활성화되 었고 VR이나 AR 같은 시각적인 즐거움을 줄수 있는 소재들도 연달아 등 장하다 보니 이런 기계들이 도슨트의 해설과 어떤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 저는 인간과 인간의 직접적인 소통이라고 답합니다. 미술작품 안에서 말씀하신 인공지능 예술은 이 시대의 재료로 봐야죠. 과거 유화물감이 재료의 하나였고 판화가 재료의 기법이었던 것처럼, 인공지 능은 현대미술의 재료로 어울리기에 재료화 되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그 안에서도 어쩔 수 없이 인간은 두려워하지만, 첨단 매체가 재료화 되어가는 건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분명한 건 인간은 결국 인간에게서 위안을 받는다는 거예요. 인간만이 인간에게 전할 수 있는 감성이 아직은 존재한 다고 봐요. 솔직히 그마저도 언젠가 첨단기술에 빼앗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결국 어떤 상황이 되건 두려워하기보다는 활용에 대해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요. 좋은 사람이 좋은 재료를 잘 써야죠. 나쁘게 쓰면 악영 향이 있겠죠.

ㅣ 미술관 산책

국내에 가볼만한 미술관이나 전시가 있나요?

해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올해의 작가상’은 동시대 작가들이 지금 우리의 이야 기를 하고 있는 전시이니 꼭 한번 보시길 바라며, 지역별로는 서울권에서는 혜화역 인근의 ‘아라리오 뮤지엄’에 한번 가보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한국 컬렉터임에도 세계적인 작품을 많이 들여오는 곳이라 추천드리고요.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인 강원도의 ‘뮤지엄 산’ 도 추천해요. 또 미술관이 아닌 공간 건축이 어떻게 미술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제주도의 ‘수풍석 박물관’에 가보세요. 정해진 시간에 스물다섯 명만 입장할 수 있는데, 건축물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영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지면을 통해 모두 밝히기 어려울 정도로 한국 곳곳에 숨어 있는 좋은 미술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규모가 크건 작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봐야 할지를 고민하며 내놓고 있으니 그 결과물 들에 집중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ㅣ 전시해설가의 평온한 일상

요즘도 그림을 그리시나요?

가끔요. 예전에는 시간이 날 때 유화나 드로 잉을 했는데, 독립한 후 먹고살기도 바쁘고 짐이 많아지거나 너저분해지는 걸 하기도 부담스러워 태블릿으로 그리는 정도예요.

영화 좋아하시죠? 김찬용 님의 인생영화 BEST 3 소개해주세요.

먼저 ‘쇼생크 탈출’ 장르의 개념을 떠나 영화 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죠. 가끔 TV에서 방영될 때 우연히 보게 되면 늘 끝까지 보게 돼서 몇십 번은 본 것 같아요. 두 번째는 ‘맨 프롬 어스’ 미국에서 제작된 저예산 영화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방에 앉아 각 분야의 전문 가들이 한 가지 논제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끝나는데, 영화가 화려한 연출기법 없이도 그런 식의 재미를 줄 수 있다는 것에 놀랐어요. 기회가 되면 한번 보시기를 바랍니 다. 마지막은 ‘작가 미상’ 게르하르트 리히터 (Gerhard Richter)라는 동시대 예술가의 삶을 영화화한 작품이에요. 독일이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어있던 시대에 그가 어떻게 자신의 예술을 형성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입 니다. 예술가를 표현하는 방식이 흥미로우니 예술영화를 보고 싶다면 전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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