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닉코리아 음향감독, 채승균

단국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채승균은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KINGSTON 대학에서 MUSIC TECHNOLOGY전공, 수석 졸업하였다.
런던의 RIVER RECORDING STUDIOS에서 일을 시작하여
음향 감독까지 재직하게 된다. 인종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타지에서의
유학생활이었지만,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기에 그는 지치지 않았다.
한국으로 귀국한 뒤 운명적 만남으로 소닉코리아와 인연을 맺어 20년째
음향감독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한국음향예술인협회의
이사로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직업이 아닌 소명으로 
소닉코리아 음향감독 채승균

안녕하세요 채승균 감독님,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네, 안녕하세요~ 레전드매거진 구독자분들도 반갑습니다. 저는 소닉코리아 마스터링 스튜디오에서 음향감독으로 일하고 있는 채승균이라고 합니다. 소닉코리아에서 근무한 지 어느덧 20년째 되어가고 있네요. 당연히 주된 업무는 음향 관련 일인데 음향이라고 이야기하면 생소한 분들도 계실 거예요. 구체적으로 음원, 음반 제작 과정에서 사운드 메이킹의 최종 단계인 마스터링 작업을 맡고 있고요. 주로 대중음악을 중심으로 그밖에 다른 장르의 음반 제작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경기대학교 실용음악과에서 겸임교수 맡아 강의를 하고 있고요. 한국음향예술인협회라고 현직 음향감독들이 모여계신 단체에서 이사직을 역임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작은 음반 레이블을 하나 운영하며 음원 및 공연 제작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음향감독의 레이블이라니, 무언가 다른 점이 있을 거 같아요.

탈 [TAL, The Arts Label]이라는 레이블입니다. 상업성보다 예술성, 자유로운 실험정신을 제약 없이 수용해 보자는 취지로 설립했고요, 현재 주로 작가주의 재즈 뮤지션들과 활동하고 있습니다. 미술이나 무용도 마찬가지겠지만, 음악은 사상을 표현하는 예술이잖아요. 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는 스펙트럼의 폭이 훨씬 넓다고 생각해요. 그림이나 조형은 캔버스나 공간이라는 물리적 제약이나 형태가 필요한 반면에, 음악은 그러한 제한 없이 뮤지션 개개인의 생각을 훨씬 더 자유로이 연주하고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레이블을 통한 활동이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음향감독을 마음먹은 계기가 무엇인가요?

저는 음향감독이라는 직업을 뒤늦게 알게 돼서 시작이 늦은 편이에요. 어릴 때부터 음악 감상을 좋아했지만 취미로 즐겼던 수준이었고, 중학교 때 시작하여 대학생이 되서까지 밴드를 하였지만 프로 연주자를 지망할 만큼 연주를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어느 날 우연히 음향 전문잡지를 통해서 음향감독이란 직업을 알게 되었는데 수많은 채널의 믹서를 다루고 있는 모습이 멋져 보였어요. 특히 악기를 연주하지 않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사실에 굉장히 기뻤어요. 그런데 국내엔 음향을 교육받을 수 있는 기관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욕심을 내서 영국 런던의 KINGSTON 대학으로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어요. 그러한 결심이 선 것은 대학교 2년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온 뒤 복학을 준비하는 기간이었죠. 틈틈이 음향 공부를 하며 대학교를 졸업한 뒤, 유학을 떠나며 본격적인 음향감독을 위한 길을 걷게 되죠. 제 인생의 방향이라고 할까? 제 인생은 유학 전과 후로 굉장히 명확하게 나뉜다고 볼 수 있어요. 그전까지는 제 삶이 다분히 수동적이었고 시류에 따라 흘러가는 삶이었죠. 전공인 전기공학도 관심이 있어서 진학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 삶을 살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기 때문에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삶으로 바뀌는 큰 계기가 되었어요. 영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런던에서 리코딩 스튜디오 일을 하며 경험을 쌓았고 후엔 한국에 돌아와서 소닉코리아와의 만남으로 지금의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유학 시절 대학에선 어떤 것을 배우셨어요?

KINGSTON 대학에서 MUSIC TECHNOLOGY를 전공했습니다. 음악을 만드는 기술을 배웠는데 구체적으로 리코딩과 믹싱에 관련된 커리큘럼이었어요. 스튜디오 테크닉 이외에도 광범위한 음향 공학을 포함해서 샘플링, 신디사이징, 디지털 오디오등 사운드 메이킹에 필요한 다양한 지식들도 함께 공부했고요. 뮤직 비즈니스나 뮤직 마케팅 같은 어찌 보면 음반 제작보단 비즈니스적인 과목도 배웠어요. 그 당시엔 이런 것까지 배워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런 커리큘럼이 현명했단 생각이 들어요. 대중음악이란 연주만 필요로 하는 기교적인 것도 아니고 리코딩만 잘하면 되는 기술적인 것도 아니에요. 대중음악은 예술작품인 동시에 상업적인 상품이기 때문에 결국 금전적인 수익이 발생해야 하거든요. 노력의 결실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 어떻게 돈으로 바뀌어 나에게 돌아오는지에 대해 관심 없는 뮤지션이 굉장히 많아요. 아니, 관심 갖지 않으려 해요. 과거엔 예술가로서 돈을 이야기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이 상당히 많았고 지금도 그런 분들이 계신데 그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믿고 있어요. 나의 노력이 투명한 과정을 거쳐서 정당한 대가로 돌아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잖아요. 그래야 생활을 영위하면서 다음 작품을 준비할 여유가 생길 테니까요. 그것을 등한시하고 있는 뮤지션분들을 보면 저런 지식을 알았더라면 하는 안타까움도 있어요. 물론 영국에서 배웠기 때문에 한국에서 1:1로 적용되긴 어렵겠지만 인식을 넓혀준 수업이었고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하셨잖아요, 유학시절이 힘들진 않았나요?

유학시절 같은 반 친구들이 모두 영국 아이들이었고, 영어만 썼기 때문에 공부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어요. 하지만 제가 선택하고 제가 원했던 길이었기에 언어의 장벽이 높게 느껴지진 않았어요. 성적이 잘 나온 건 그런 결과물이겠죠. 그 당시엔 전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배고픈 유학생의 모습이었죠. 매일 샌드위치를 싸 갖고 다녔던 게 기억나요. 평범한 유학생들이 다 그렇듯이 하루 세끼를 사 먹을 여유는 없었죠. 아침으로 시리얼 먹으면서 식빵 8장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두 개는 점심, 두 개는 저녁으로… 매일같이 3년을 샌드위치만 먹었어요. 그래도 물리거나 불편하지 않았어요. 이곳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배우고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어요. 이렇게 내가 원하는 것을 배워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오는 기대가 더 컸어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선택이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거 같아요.

영국으로 유학 갈 때도 아무런 연고도 없이 혼자서 무작정 갔었고, 런던에서 직장을 구할 때도 맨땅에 헤딩하듯이 구했어요. 런던에 있는 모든 음향 관련 스튜디오 주소록을 구해서 동네별로 구분한 뒤 하루에 한 동네씩 다니면서 제 이력서를 주고 다음날 확인 전화를 했어요. 버스나 지하철로 다녔기 때문에 하루에 3군데를 도는 게 고작이었죠. 그래서 런던 한 바퀴를 도는데만 두 달 가까이 걸리더라고요. 그렇게 다 돌렸는데 딱 한 군데서에서만 연락이 왔어요. 제가 일자리를 구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사실 그들 입장에서 영국인도 아닌 동양인을 채용할 이유가 없을 수도 있었겠죠. 같이 학교를 졸업한 동기 중에서도 스튜디오에 들어간 친구가 두세명 정도밖에 없었어요. 런던은 원래 스튜디오의 문턱이 높던 곳이기도 하고, 제가 듣기로는 당시 런던이 사정이 안 좋다는 말도 있었어요. 힘들게 얻은 일자리니 전에도 열심히 했지만 더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되었고, 제 노력을 알아준 것인지 그곳에서 음향 감독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어요.

소닉코리아와의 인연은 이때부터 시작된 건가요?

네 무작정 영국으로 갔던 것처럼 한국에 올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영국에서 배우고 영국에서 일했기 때문에 한국에 이렇다 할 연고가 없었어요. 그런데 딱 하나 닿아있던 줄이 <사운드 아트>라는 잡지사였어요. 제가 영국에 있을 때 그 잡지가 막 발간됐다는 소식을 듣고, 편집장님께 전화를 드려서 자발적으로 그 잡지의 영국 리포터 역할을 맡아왔어요. 한국에 돌아와서는 무작정 편집장님을 찾아갔죠. “제가 한국에 왔습니다. 다른 건 필요 없습니다, 서울에 있는 스튜디오 목록 한부만 주십시오.” 그리곤 런던에서와 마찬가지로 연락을 돌렸죠. 그러던 중 소닉코리아 대표님이 저를 흔쾌히 불러주셨어요. 그 후로는 자리 옮기지 않고 같은 직장에서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는 인연이 되었네요.

음향감독 이외에도 많은 일들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네, 한국으로 돌아와서 한눈팔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수입이 생기고 그것이 직업이 되어있더라고요. 전 그저 좋아서 했을 뿐인데 너무 감사한 일이었죠. 그래서 저도 보답하는 마음으로 제가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한국음향예술인협회라는 단체가 있는데, 이곳은 비영리 단체, 공익을 위한 법인으로 음향예술이라는 키워드로 실전에서 작업하시는 음향감독님들이 모여계신 곳이에요. 이분들이 갖고 있는 예술적, 기술적인 지식들을 대중과 나누고 같이 발전시키는 장이 되는 것을 목표로 모였고요. 저도 보답하는 마음으로 한국음향예술인협회의 일을 돕다 보니 2005년부턴 이사로 선출해 주시더라고요. 일을 더 많이 하란 얘기죠. (웃음)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사직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한국음향예술인협회에서는 아직 생소한 음향감독이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지위를 향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음향에 관심 있고 진입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학술적, 경험적 지식으로 도움을 드리는 것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이를 위한 친목 모임을 만들고 학술 세미나, 워크숍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또 산하에 제가 소장을 맡고 있는 한국음향연구소라는 기관이 있습니다. 이곳은 좀 더 학술적인 접근을 통해서 실용음악을 풀어나가고 정리하는 작업들을 하고 있습니다. 음악 산업 전반적인 분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그런 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같은 맥락으로 시작한 게 학교 강의였던 거 같아요. 우연한 기회로 선배를 통해 2006년에 처음으로 대학교 강의를 시작했는데, 전 제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나누고 베푸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거든요. 제가 가진 노하우라고 해서 숨길 수도 있겠지만. 숨긴다고 영원히 나의 것 인 것도 아니고, 베푼다고 그 사람이 나와 똑같아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노하우는 나누면 나눌수록 좋은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해요. 꼭꼭 숨기고 있다가 없어진 고려청자도 있잖아요. 그런 선례를 거치기보단 같이 소통하고 같이 나누면서 같이 발전하는 길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으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사용 중인 시스템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저희는 요즘 스튜디오답지 않게 아웃보드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요. 컴퓨터 플러그 인이라는 소프트웨어로도 작업할 수도 있고 저희처럼 하드웨어 장비로 작업을 할 수도 있는데, 제가 일해온 경험과 역사가 있다 보니 아무래도 오랫동안 사용해 온 장비들이 많이 구축되어있어요. 개인적으로는 플러그 인 의존도가 높지 않은 편이어서 작업의 대부분을 아날로그와 디지털 아웃보드를 통해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운용하는 장비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공간이에요. 소리를 변형시키고 가공하기에 앞서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공간을 가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자산이고 제일 강력한 장비거든요. 그래서 컴프레서나 EQ 같은 장비보다 더 우선해서 생각해야 하는 게 모니터링 시스템이에요. 모니터링 시스템은 스피커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피커를 통해 공기가 진동하는 이 공간까지 통틀어서 모니터 시스템이라고 인식해야 되고, 그런 의미에서 장비뿐 아니라 좋은 공간을 구성하는 것까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간 작업했던 곡들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사실 하나를 꼽는다는 게 부담스러워요. 저는 하루에도 여러 곡을 작업하잖아요. 그러면 여러 명의 음악가를 만난다는 이야기고, 그런 일상이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는데, 그 음악들이 저에겐 매일매일 작업하는 재료 중의 하나가 되어버리기 십상이거든요. 이것이 굉장히 위험한 순간이죠. 제가 매일의 일상으로 해치워버리는 일이 될 수도 있는데 클라이언트 입장에선 목숨 걸고 작업한 굉장히 중요한 작품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것을 쉽게 대할 수 없고, 제 취향이 아니거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그 작품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거죠. 작품 하나하나가 다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소중한 콘텐츠여서 무엇 하나를 꼽을 수가 없어요. 제일 기억에 남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바로 직전에 작업한 작품일 수밖에 없는 거죠.

음향 시장의 미래에 대해서 어떻게 보고 계세요?

제가 시장을 전망할 만큼의 식견은 없는 거 같은데, (웃음) 방향적으로 보면 과거와 달라진 점은 확연하게 있어요. 입체음향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죠. 입체음향을 선도하고 있는 게 영화 산업인데요. 극장에 가보면 입체음향 시스템이 너무나 발전해 있어요. 전통적인 채널 방식의 서라운드에서 벗어나서 오브젝트 방식의 서라운드로 더 진보된 방식의 사운드를 구현하고 있는데, 그것이 공연 쪽에서도 많이 접목이 되고 있는 추세예요. 앞으로는 음원과 음반 쪽에서도 접목이 될 거 같고요. 그러다 보니 공연이나 극장처럼 시설이 인스톨되어서 음악이 구현되는 쪽은 물량공세가 지금보다 심해질 거 같아요. 더 많은 채널의 스피커와 앰프, 그리고 장비로 승부를 보겠죠. 반면에 실제 소비자가 소비하는 음향 쪽은 점점 더 포터블 한 환경에서 입체 음향을 구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 같아요. 지금은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었고 되고 있는 세상인데 그에 반해 아날로그에 대한 수요도 분명 있어요.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거라 믿고 있어요. 태블릿 PC가 아무리 편리하더라도 종이로 된 책과 잡지가 아직도 유효하고 MP3이나 flac 같은 디지털 포맷으로 대부분의 음악이 소비되지만, 한쪽 구석에선 여전히 LP라는 아날로그 포맷이 생산되고 팔리고 있거든요. 다변화된 소비 시장은 계속 유지되지 않을까? 이런 추측을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우리 삶에 음악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 삶에 있어 필요한 의식주 세 가지를 제외하면 모두 사치품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굉장히 오래된 관념이 아직까지 팽배하다 생각해요. 그런 생각 때문에 자신의 능력과 가치에 비해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분들이 계시고 그런 분들을 보고 있으면 안타까워요. 제가 보기에 음악은 이미 생필품 경계 안으로 들어와 있어요. 의식주 그리고 음악. 우리 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어요. TV에서 가장 인기 좋은 프로그램은 여행, 음식 그리고 음악이잖아요. 여행 프로에서도 음악을 주제로 다루는 경우도 많고요. 좋은 음식 먹으며 느끼는 행복감 이상으로 좋은 음악, 멋진 노래 들으며 희열을 느끼고 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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