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탈춤보존회 부회장, 김종해

전통의 당위성을 바라보는 필연적 시선
봉산탈춤보존회 부회장 김종해

좌우명, 무신불립(無信不立)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말이에요. 논어에 나오는 사자성어로,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 하는 말입니다. 사회인으로서 혹은 타인과의 유대관계에서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실함이 우선이라고 배워왔습니다. 부모님께 교육받은 성실함의 가치를 제 자녀들에게도 가르쳤어요. 남들보다 특출나게 춤에 재능이 있다거나 뛰어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성실한 삶의 태도만큼은 평생 변함없이 지켜왔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예향(藝鄕)에서 시작된 연극인의 꿈

제가 성장한 고향이 광주광역시인데, 광주는 인구 대비 수많은 예술인들을 배출하여 예향이라고도 불리는 곳이죠. 고향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음악, 문학, 미술등 다양한 예술문화를 보고 들으며 자랐어요. 어릴 때부터 연극을 하고 싶었는데, 당시 예술인들을 소위 ‘딴따라’라고 낮잡아 부르며 무시하기 일수였던 사회분위기와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 때문에 예술가가 되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다만 성실한 기지를 발휘하여 광주 상업 고등학교 재학 시절 3년 내내 방과 후와 주말 내내 좋아하는 예술활동을 마음껏 했습니다. 문학 동아리, 합창단, 연극 동아리등 대외 활동을 하루도 쉬지 않고 바쁜 나날들을 보냈어요.

국악과 탈춤은 오래전 한국인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며 대중문화로 발전해왔다.
나의 뿌리가 조상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말이 타당하게 들리는 것처럼, 나의 존재 자체가 전통의 당위성에 대한 증명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 당위성에 대해 좀 더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다. 무대에서는 탈을 쓰고 춤을 추는 예술인으로, 무대 바깥에서는 공연 기획서를 쓰고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사무국장으로 살아가는 봉산탈춤 보존회의 김종해 이수자라면 지성적인 해석과 더불어 감성적인 접근으로 우리의 갈증을 채워줄 수 있지 않을까.

한국무용과의 만남

졸업 후 국립극단의 단원 선발 시험을 봤습니다. 정단원 네 명과 준단원 네 명을 뽑는 시험이었어요. 월급을 받을 자격은 정단원 에게만 주어졌는데, 전문학교 출신이었던 저는 정단원 시험을 볼수 없었어요. 준단원으로 합격하고도 생활을 해결할 길이 막막하던 저에게 친한 후배 하나가 서울시립무용단의 단원 선발 시험을 보러 가자고 했어요. 재학 시절 연극을 하기 위한 신체훈련 수 업의 일환으로 한국무용을 접했던 저였기에 춤에 대한 전문 적인 훈련 경험은 전무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마다했지만, 안되면 말고 일단 시험이라도 보자는 후배의 말에 무용복을 빌려 입고 시험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함께 시험을본 후배는 떨어졌고, 저는 서울시립무용단의 단원이 되었어 요. 합격 이유라.. 글쎄요. 시험장에 앉아있던 단장님께서 재학 시절 한국무용 프로단체에 찬조로 출연했을 때 안면이 있던 분이었는데, 익숙한 제 얼굴이 반가워 뽑아주셨던 것인지 남자 무용수가 귀하던 시절이라 제가 눈에 띄었던 것인지 혹은 제가 찬조출연했을 때 잠재적 가능성을 보셨던 것인지, 지금 생각해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어요.

국립무용단, 12년

전년도까지 불과 한 두 명 남짓 선발하던 단원을 그 해에 유독 이례적 으로 열두 명이나 뽑았어요. 3년간 서울시립무용단에서 쌓아온 실력도 조금은 있었지만 여러명을 뽑는 행운 덕분에 저는 시험에 가뿐히 합격해 국립무용단의 단원이 되었습니다.

6개월만 하겠다더니 12년간 국립무용단에 있었던 이유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무용에 대한 큰 포부나 열망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물론 춤을 추는 것을 좋아했었고, 지금도 좋아해요. 하지만 어릴 적무용에 입문한 무용수들과 비교하자면 춤에 대한 저의 열정은 이야기를 꺼내기도 어렵죠. 솔직히 국가 문화사절단으로서 한 해에 두세 번씩 해외에 나가는 것이 큰 영광이자 혜택으로 느껴졌어요. 나라의 분위기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거든 요. 신혼여행지도 지금처럼 해외가 아닌 경주나 제주도였죠. 그런 시대에 전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우리 춤을 보여주는 공연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멋진 일로 느껴졌겠어요. 이에 대한 사명감을 깊이 있게 느끼고 있었고, 더불어 돈을 벌어와야 한다는 가장 으로서의 책임감도 있었죠. 지금까지 총 마흔다섯 번을 해외에 나갔 어요. 매년 한두 번은 나간 셈이죠. 다녀온 나라는 개수로 보자면 70 개국 정도고. 오대양, 육대주, 아프리카, 남미, 중동, 이집트 등.. 교과 서에 이름이 나오는 대부분의 나라는 전부 가봤어요.

봉산탈춤 보존회에 오기까지

그 후 우여곡절 끝에 3년 정도 기획실장을 하다가 1997년에 경기문 화재단이 창단될 때 예술부 전문위원으로 이직했습니다. 10년간 근무한 뒤 2007년에 사직서를 쓰고 나왔어요. 봉산탈춤 보존회와는 서울예술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1979년에 입회하여 지금까지 17년간 부회장으로 재임하기도 했어요. 지금은 보존회의 일에 전념하고 있습 니다. 행정처리와 보존회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도맡아 하고 있어요.
공연이 있을 때는 탈을 쓰고 무대에도 오르고요. 봉산탈춤은 극 구성상 캐릭터가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연극도 하기 때문에 제가 과거에 못했던 연극에 대한 미련을 봉산탈춤을 통해 위안을 삼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국가무형문화재 ‘봉산탈춤보존회’

봉산탈춤을 보존하고 전승하는 교육과 공연활동을 하는 단체에요.
80명 남짓 되는 구성원들과 함께 단체를 관리 및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무국장으로서 행정 운영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내부 사정에 대해 서도 자세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해요. 아마도 제가 적임자였나 봐요.
보존회에는 다양한 회원분들이 계세요. 탈과 소도구만 평생을 만들어온 장인들도 계시죠. 과거에는 무대에 서는 공연자들이 자신이 쓸 탈과 사용할 소도구를 직접 만들기도 했어요. 저도 직접 탈을 만들어 써본 적이 있죠. 하지만 지금은 단체 내에서 관련 전문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고, 의상은 외부의 의상제작자들에게 의뢰해 공급받아요.
의상을 만드는 게 굉장히 어렵거든요. 장신구도 세밀하게 달아야 하고.

전통춤에 대한 탐구

무용도 탈춤도 기력이 소진되기 전까지는 계속할 거예요.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없게 될 때까지는 무대에 오르려고요. 누가 하지 말라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계속할 거예요. 평생 무대에 서는 것은 무대에 오르는 이들의 공통된 바람이겠죠. 무대위에 서는 순간부터 춤은 나만의 것이 아니에요. 보는 이들을 위한 것이죠. 제가 고민하고 탐구하는 부분은 이거예요. 어떻게 춤을 재미있게 보여줄 수 있을까. 어떻게 사람들이 우리의 춤을 좋아하게 할수 있을까. 전통의 계승도 분명 필요하지만, 탈춤의 부흥을 위해서는 요즘 시대에 맞는 요소를 포함하여 퓨전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 다고 봐요. K-POP 도 요즘 이들의 특성과 밀접하게 맞는 부분이 있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게 된 게 아닐까요. 우리 봉산탈춤도 전통을 기반으로 대중들이 좋아할 수 있는 새로운 무언가를 창의적으로 개발해 내야 하죠. 이에 대해 기성세대로서 후세에 의무감을 갖고 있어요. 쉽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계속 탐구하고 고민하다 보면 자그마한 변화의 계기는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죠. 예를 들면 보통의 봉산탈춤 등장 형식에 농악의 상모 돌리기를 차용하여 사방으로 뛰면서 역동적으로 등장하면 어떨까요. 사람들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더끌 수 있겠죠.

동전의 앞뒤, 전통과 유행

가끔 전통국악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평가를 접하게 될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요. 예를 들어 제 칼럼에서 궁중음 악이 느리고 고리타분하다는 이야기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생각해 보세요. 대부분의 교향악은 느리고 웅장하게 전개됩니다. 그런데 궁중음악이 느려서 싫다니요. 어쩌면 우리는 우리 것을 나도 모르게 비하하거나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해요. 소위 외국 문물에 대해 자신도 모르게 선호 사상을 품고 있다면 우선은 그 편견 부터 내려놓았으면 합니다. 일본의 전통 연극 중 가부키나 노라는 장르가 있어요. 그들 한 단락에서는 배우가 발을 한번 떼기까지 한참이나 걸리기도 해요. 그런데 가부키나 노에 대해 서는 누구도 고리타분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죠. 세계적인 공연으로 해외의 유명 방송에서 여러 번 소개되기도 했고요.
물론 공연의 질적인 측면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적 차원의 홍보효과도 크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의 예를 들면 지금 한국에서 대표적인 민속마을을 떠올릴 때 많은 이들이 안동 하회마을을 손꼽아요. 과거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내한했을때 관광청 주도하에 안동 하회마을에 방문한 일이 9시 뉴스에 보도되면서 자연스럽게 하회마을에 대한 문화적 인식이 굳어진 거예요. 이처럼 각본에 의해 움직이게 되는 홍보 시스템이 존재한 다는 건 부정할 수가 없어요. 좋은 일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다만 이런 홍보 시스템이 더욱 다양하게 전통의 영역에서 작용했으면 하는 거죠. 처음부터 좋아하지 않았더라도 매체를 통해 자주 접하다 보면 생각지 못했던 매력을 발견하고 나와의 접점을 찾을수 있을 거예요.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나라에서 수능시험을 통해 봉산탈춤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하여 청소년들이 누구나 보고 배울 수 있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요. 이런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겠지요.

이 인터뷰를 널리널리 공유해주세요!
  •  
  •  
  •  
  •  
  •  
사은품증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