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니 보컬리스트, 김신의

갓 제대한 김신의가 오랜 시간 품어왔던 음악인의 꿈을 안고 만든 밴드가 몽니였다.
몽니는 2005년 12월에 1집 정규앨범 ‘첫째 날, 빛’으로 데뷔했으며 데뷔 전부터 이미 재야의 음악인들을 발굴하는 프로젝트인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의 숨은 고수로 선정되는 등 인디씬에서 잔뼈가 굵은 실력파 밴드였다. 올해로 데뷔 15주년 차에 접어드는 몽니의 보컬리스트로서 쉽지만은 않았을 그간의 음악적 행보를 묻는 과정에서 한 가지만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몽니가 15년간 변함없이 음악을 만들고 앨범을 발매하며 그룹의 이름을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은 스타덤에 오르겠다는 거창한 포부가 아닌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에서 온 단순함에 있었다는 것을.
또한 그 단순함이 앞으로도 이들을 굳건하게 지켜주리란 것을.

한국 인디계의 대표적인 락 밴드
몽니 보컬리스트 김신의

얼마 전 불후의 명곡 박진영 편 왕중왕전 무대 마치셨죠?
어떠셨는지 소감 한 말씀 부탁드려 요.

그날따라 목 상태가 안 좋아서 잘할 수 있을지 걱정했어요. 그런데 막상 무대에 올라가니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평소에 준비하고 연습했던 만큼 다 보여드리고 내려왔던 것 같아서 후회는 없습니다. 장르적으로도 그렇고 분위기도 저희와는 전혀 다른 박진영 씨의 음악을 저희 스타일대로 해석하고 편곡해서 무대에서 들려 드리는 건 새롭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무대를 마친 뒤 박진영 씨의 반응은 어땠나요?

락을 직접 연주해 보신 적이 없으셔서 더 새롭게 느껴졌다고 하시더라고요. 내 음악이 이렇게도 들릴 수도 있다는 게 놀랍고, 저희의 연주가 흥미로웠다고 말씀하셨어요.

박진영 씨와 콜라보를 해보시면 어떨 것 같나요?

당장 계획이 있는 건 아니지만, 하게 되면 재미있겠네요.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뚜렷하게 그려지지는 않지만 박진영 선배님의 소울풀한 에너지와 저희 밴드의 락 음악이 만나면 예상 밖의 시너지가 나올 수도 있겠어요.

지금은 어떤 공연을 준비하고 계세요?

몽니 멤버들과 함께 내년 2월 ‘우리의 봄은 아름다울거 야’라는 제목의 소극장 공연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 무대에서 그간 발매한 적 없던 미발매곡들을 라이브로 들려드릴 예정이며, 티켓 오픈은 레전드매거진 1월호 발행무렵인 1월 첫 주부터 열릴 것 같습니다.

음악인생의 전환점이 있었다면?

데뷔 후 10년 이상 힘든 시간들을 보냈던 것 같아요. 경제적 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완전히 지쳐있을 무렵, 그러니까 2012년 즈음 방송에 출연할 기회가 찾아왔어요. <탑밴드>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 등 방송에 출연하면서 몽니의 이름과 음악이 대중들에게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죠.

그 무렵 저는 뮤지컬 배우로 발탁되었어요. 첫 작품은 ‘록키호 러쇼’의 리브라프 역할이었죠. 작품 자체가 락 성향이 두드러 지고, 캐릭터도 락 보컬의 요소가 필요한 역할이다 보니 마침 감독님이 저를 눈여겨보고 캐스팅하신거죠. 연기보다는 노래와 퍼포먼스가 더욱 중요한 작품이라 저와도 참 잘 맞았던 것같고요. 즐겁게 공연을 마쳤고, 그 뒤로도 락 보컬이 어울리는 역할에 대한 작품 의뢰가 종종 들어왔어요.

장르가 같아도 뮤지컬 공연에서 노래할 때와 몽니 보컬로 노래할 때는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아요.

네. 많이 다르죠. 예를 들면 몽니 보컬로 라이브 무대에 설 때 가장 중요한 건 현장감 이에요. 현장의 분위기와 관객들을 압도하면서 그 순간에 흠뻑 빠져들게 하고, 저 또한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몰입하기 때문에 노래를 하기에 훨씬 편안해요. 익숙하기도 하고. 반면에 뮤지컬은 노래 가사가 곧 대사이므로, 대사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발음이 정말 정확해야 해요. 그래서 단어 하나하나를 찍듯이 발음하고, 성악 발성도 조금 사용하게 되고요. 그 점이 특히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뮤지컬 넘버들은 어떻게 연습하셨어요?

음악감독님과 연출님 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함께하는 배우들도 저에게 발성부터 제스처까지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셨어요. 경험이 부족한 저에게 배우분들이 주시는 팁은 정말 유용했어요.

2020년인 올해로 데뷔 15주년을 맞이했잖아요.
그동안 몽니에 위기가 찾아온 적은 없었나요?

멤버들의 군 입대가 가장큰 사건이었죠. 기타리스트 공태우의 입대와 함께 첫 번째 위기가 찾아왔는데, 기타가 공석이니 남은 세 명이서 밴드를 했어요. 밴드의 꽃은 기타리스트라고도 흔히들 말씀 많이 하시 잖아요. 그만큼 기타가 밴드의 색을 좌우한다고도 볼 수 있을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마찬가지로 저희 팀에서도 태우의 역할이 정말 중요했고 태우의 빈자리에 다른 멤버를 영입 하는 건 상상도 안됐어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든 해보겠다며 태우 대신 기타를 연주하면서 노래했어요. 사실 정말 힘들었 어요. 노래도 잘해야 하고 그러면서 기타 연주까지 해야 하니까 연습도 두 세배로 해야 하고, 때로 태우의 빈자리가 참 크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그래도 다른 멤버를 영입할 생각은 없었기에 묵묵히 그 시간을 견뎠어요. 힘들었기 때문인지 그때 좋은 곡들이 많이 나왔어요. 저희의 대표곡인 ‘그대와 함께’ ‘일기’ 같은 곡들을 그때 쓴 거거든요. 힘들수록 더욱 음악에 몰입하고 집중했어요. 드러머인 훈태가 군입대 했을때도 기다 렸다가 제대 후 완전체가 됐어요. 멤버들의 군입대로 포지션이 공석일 때가 저희 밴드의 위기였지만, 결국에는 다 잘 극복 했죠. 근데 군대 또 간다고 하면 말릴 거예요.

몽니가 유명해졌구나, 사람들이 우리의 음악과 이름을 알아보는구나. 이렇게 느낀 시기는 언제였어요?

2012년에 KBS < 탑밴드>에 출연하면서 많이 알려졌던 것 같아요. 저희뿐 아니라 장미여관, 데이브레이크, 피아, 로맨틱 펀치 등 음악 잘하는 인디밴드들이 당시 방송을 통해 사람들에게 이름을 많이 알렸죠. 밴드가 주인공인 음악 프로그램을 만들어 줘서 고마웠어요.

시작부터 지켜본 팬들이 몽니의 성공을 함께 기뻐했을 것 같아요. 

팬이야기를 하니 생각나는 일화가 있는데, 방송에 출연하기 전 밴드 초창기에 홍대에서 인디밴드로 한창 라이브 공연을 하며 활동할 때였어요. 하루는 어떤 분이 저희 팬이라면서 함께 밥을 먹자며 와서는 고깃집에 데려가서 소고기를 사주셨어요. 사람이 힘들고 위축될 때 누군가 대접해주고 응원해주면 오래도록 고맙고 기억에 남잖아요. 그때 그분이 사준 소고기가 참 맛있었고, 참 고마웠어요.

음악 하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큰 병으로 병상에 누워계신 분께 몽니의 음악을 들으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고 용기를 얻었다는 메시지를 받았어요. 그때가 가장 뿌듯했어요. 저희의 음악이 누군가에게 힘든 삶을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이 된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그것 만으로 음악을 시작한 보람은 충분하지 않을까요.

몽니의 음악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앨범이나 곡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몽니 1집 수록곡 ‘소나기’. 예전에 정말 좋아했던 여자아이가 병으로 먼저 하늘나라로 떠났어요. 태어나서 그렇게나 많이 울어본 적이 없었는데, 하늘로 먼저 간 그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만든 노래에요.
또, 팬분들이 많이 좋아해주시는 ‘소년이 어른이 되어’라는 곡. 어릴 때의 순수함을 점점 잃어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어른의 마음으로 담아낸 노래죠. 두 곡 모두 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더특별하게 느껴져요.

김신의 님의 10년 후는 어떤 모습일 것 같나요?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저는 늘 지금과 같은 모습일 거예요. 비록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면서 겉모습은 늙어갈지라도, 무대에서 노래할 때는 한결같은 모습 이고 싶어요. 오래오래 멋진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서 평소에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자기관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그게 저희를 응원하고 사랑하는 팬분들은 물론 저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몽니의 10년 후는 어떤 모습일까요? 

저희끼리는 건강관리를 잘 하자는 이야기를 항상 하곤 합니다. 직업의 특성상 체력의 제약을 많이 받기 때문에, 평소에 관리를 잘해야 롱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늙어서도 건강한 모습으로 음악을 만들고 들려드리는 건 저의 목표이자 몽니 멤버들 모두의 바람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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