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악기 연주자, 권병호

2018 제1회 대한민국 대중음악상에서 대중연주실연상을 수상한 권병호는 현 한국 음악계를 대표하는 특수 악기 스페셜리스트이다. 고교시절 성필관으로부터 오보에를 사사받고, 대학에서는 재즈 피아노를 전공했으며 아이리시 휘슬, 재즈 플루트, 아코디언 연주자로도 활발한 황동을 하고 있다. 특별한 음악, 특별한 무대가 만들어지는 다양한 음악 방송에 출연하고 있고, 그 횟수에서 그의 가치를 가늠케 한다.

‘SG WANNABE의 라라라’란 곡을 통해 하모니카 붐을 일으켰고 수없이 많은 광고, 드라마 등을 통해 하모니카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Gag Concert – 감수성’이라는 인기 코미디 TV 쇼에 그의 하모니카 연주가 소재로 쓰이며, 전화벨 소리, 방송 배경음악 등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다. 국립국악원, 국립창극단,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전주시립국악단 등과의 작업으로 ‘국악의 대중화’에도 기여하고 있으며 magazine Flute&(대한민국 유일의 flute 매거진)의 칼럼니스트로 클래식과 팝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현재 Irish Music & World Traditional Music 등 비주류 음악에서도 다양한 악기를 통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미국의 SHURE, 독일의 HOHNER, 일본의 BOSS, Roland 등의 아티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대체 불가 멀티악기 연주자

권병호

저는 멀티악기 연주자 권병호입니다.
멀티악기라는 용어를 최초로 정착시킨 연주자로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현재 방송, 녹음, 공연 등 많은 영역에서 멀티악기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악기를 통해 한국 대중음악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는 연주자입니다.

즉흥연주로 시작된 음악인의 꿈

음악과의 첫 인연은 7살 무렵에 친구들이 피아노 학원을 가니까 저도 배우고 싶다고 부모님을 졸라대던 게 시작이었어요. 어린 시절의 저는 음악적 재능은 정말 찾아볼 수도 없는 아이였어요. 그런데 어른스러운 면이 있었는지, 남자가 시작했는데 힘들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도 있었고, 제가 졸라서 시작한 피아노를 그만두는 것이 부모님께 큰 폐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재미도 없고 재능도 없지만 포기하지 않고 피아노를 계속 배웠어요.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운 좋게 일본에서 재즈를 공부하고 오신 선생님을 만나면서 눈이 띄었어요. 그동안의 피아노 수업은 지루하고 답답했었는데, 악보에 구애받지 않는 선생님의 자유롭고 화려한 즉흥 연주를 보면서 저도 즉흥 연주의 길로 빠져들었죠. 악보를 벗어나 들리는 소리에 맞춰 자유롭게 연주했고 기타도 연습하고 외국의 팝송을 카피하며 점점 음악에 빠져들었어요.

아직 재즈라는 장르가 한국에 퍼지지 않았던 중학생 시절, 제 기억으론 매일 밤 새벽 3시경에 진행하는 <전영혁의 음악세계라는 라디오 방송이 있었어요. 매일 밤 즐겨 들으며 좋은 곡은 녹음하고 연습하곤 했는데, 라디오 방송 이외의 방법으론 재즈 를 비롯한 월드 뮤직을 접하기 어려웠어요. 그때는 실용음악이라는 용어 자체를 모르던 시절이라 음악을 전공하려면 클래식 밖에 없는 줄 알았어요. 전공을 하고는 싶었지만 집안 사정이 넉넉지 않아 혼자 계속 음악을 한 거죠.

그렇게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했는데 제가 너무 음악을 전공하길 원해서 결국 오보에로 전공을 바꾸게 되었어요. 성필관 선생님께 배웠는데 대한민국에 한 획을 그은 괴물 같은 연주자 셨어요. 그분께 단순히 음악적인 지식이나 표현 방법만이 아니라, 연주자로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나 태도 그리고 마음가짐까지 참 많은 것을 배웠어요. 그분을 통해서 배운 것들이 지금의 권병호를 만들어 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철저한 완벽주의자 셔서 항상 자신의 소리를 녹음하고 모니터 하셨던 분이신데, 그 영향으로 저도 모든 걸 기록하고 체크하고 있어요. 그렇게 자신의 소리를 모니터 하며 체크하고 대가들의 연주와 비교해서 부족한 부분을 깨닫고 연습의 방향성을 잡을 수 있었기에 독학으로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흔히들 귀가 좋다고 하면 음정적인 부분을 떠올리는데, 저는 소리의 질감, 연주의 뉘앙스를 파악하는 귀를 가지고 있어요. 성대모사를 정말 잘 하면 대상의 얼굴까지 떠오르잖아요? 독학할 때 성대모사처럼, 단순하게 멜로디만 카피하는 게 아니라 대가의 연주가 떠오를 만큼 습관, 질감, 뉘앙스, 호흡을 다 흉내 내려고 노력했어요.

여러 악기를 다루지만

현재 심도 있게 사용하는 악기는 2~30여 종 정도 되는 것 같아요. 흥미가 붙고 재능이 싹트려는 악기들도 있었는데 많은 악기를 다루다 보니 잊어버린 아까운 악기도 있고, 좋아하는 악기인데도 쓸 기회가 없다 보니 공백 기간이 몇 달씩 지속돼서 기억이 안 나 포기한 악기도 있어요. 악기가 많다 보니 종종 튜닝이나 주법을 잊기도 해요. 진짜 몇 년 만에 녹음하는 악기는 전날다시 연습해서 리마인드하고 녹음에 들어가는 거죠. 이렇게 악기가 많은데도 악기를 좋아해서 아직도 모으고 있어요.(웃음)

넘버원이 아닌 온리원

사실 저는 아직도 연주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요. 대신 제가 가진 재능은 집중력과 분석력인 것 같아요. 다른 연주자들이 3분 동안 연주하고 있다면 저는 정말 딱 필요한 4~8 마디 정도만 채워주는 역할이거든요. 어떤 악기가 갖고 있는 요소를 끄집어내서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 다른 연주자처럼 계속 곡을 유지하고 쌓아가는 능력과는 약간 다른 부분이죠. 멀찌감치 보고 있다가 정말 필요한 순간에 점 하나만 찍는 작업인데, 제가 좋은 작품에 많이 참여하고 마무리를 짓는 역할이다 보니 더 돋보여서 좋게 보고 기억해 주시는 것 같아요.

많은 연주자들이 자신의 연주에 집중하기보다, 앞선 사람을 쫓아가고 그보다 조금 더 잘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오히려 스스로 한계를 정해버리고 그 안에 갇히는 것 같아서 조금 안타까워요. 저는 남들보다 잘하냐 못하냐보다 자기 소리가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자기 소리가 안 나오면 더 잘하고 못하고의 차이만 있지 결국 똑같은 연주자가 되는 거잖아요. 제가 ‘국제 하모니카 페스티벌’에 나가서 외국 뮤지션과 연주하면 Mr. 권은 독특하고 개성 있는 연주를 한다고 좋아해요. 참가자들이 서로 보여주기 위해 더 빨리 불고 더 많이 불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어요. 제가 거기서 느리더라도 임팩트 있는 한방을 던져주면 정말 반응이 좋아요. 만약 저도 그들과 똑같이 더 화려하게 더 빠르게 연주하려 했으면 제 스타일을 인정받지 못했겠죠.

남의 것에서 내 것이 되기까지

예전 모뎀 시대 때는 사진만 보고 고민고민하다 구입한 악기들도 많아요. 그렇게 힘들게 구한 악기들로 직접 소리를 내어보며 시작한 거죠. 어게 해외 사이트에서 레슨 자료를 찾아도 도무지 무슨 설명인지 알 수 없어서 실제로 5분이면 배울 수 있는 하모니카 주법을 1년 동안 고민하면서 익힌 것도 있어요. 아니 그렇게 늘어난 주법이 많아요.

휘슬도 주법을 7번이나 바꿨어요. 아일랜드에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간 적이 있어요. 나름 그곳에서 인기 있는 음악을 커버를 해서 갔었는데, 아일랜드 사람들이 너무 좋다며 무슨 노래냐고 묻더라고요. 흑인들이 한국의 창을 카피했는데 완전 R&B로 카피한 셈인 거죠. 본인들은 똑같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인 입장에선 완전 R&B로 들리니까… 그렇게 R&B에서 창이 되기까지 오래 걸렸어요. 처음엔 그 나라 민속 음악을 들으며 소리를 흉내 내다 남의 것을 따라 하면 잘해도 결국 남의 것이구나라는 것을 느껴서 흉내 내는 민속 음악은 그만두고 악기가 가진 본래의 뉘앙스나 소스를 잘 뽑아내서 지금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데 집중하고 있어요.

희귀 악기

전자 백파이프라고 컴퓨터나 다른 악기와 연결해서 다양한 소리를 내고 편집할 수 있는 악기예요. 어쿠스틱 악기와는 달리 마이킹하고 스톰프 박스를 연결하는 복잡한 과정 없이 쓸 수 있는 것이 장점입니다. 현실에서 표현하기 힘든 악기나 소리도 컴퓨터 가상악기를 통해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요.

특수한 악기들은 개인 공방에서 만들어져서 비싼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디지털 악기들은 어떤 장치와 연결해서 어떻게 소리를 불러오느냐가 제게 있어선 숙제인 거죠. 악기 본연의 소리를 찾아야 하는 거고 동시에 바리에이션 할 수 있는 소리도 찾아야 하는데, 스톰프 박스를 거쳐서 소리를 바꾸느냐, 가상악기를 불러와서 소리를 바꾸느냐 하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어요. 프로토타입을 사면 고생을 많이 해요. 호환성 문제도 있고 개량 모델이 나오면 바로 구형이 돼버리니까 한 번의 레슨비가 너무 비싼 거죠, 고생은 덤이고요. 다행히 엔도서를 받는 브랜드도 있어서 지원해 주시는 악기들을 연구하며 잘 쓰고 있습니다.

평생을 연주자로 활동하길

최근 김현철 씨와 작업하고 있어요. 정말 좋아하는 뮤지션이고 제 앨범에도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인데, 김현철 씨와 작업하며 느낀 점이 ‘나는 이런 천재 뮤지션들이 멋진 앨범을 제작할 수 있도록 좋은 연주를 하는 것이 내 역할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분들이 멋진 앨범을 제작하려는데 표현을 하고 녹음을 해줄 사람이 없으면 도루묵이잖아요. 특히나 필요한 게 특수 악기 연주자라면 더욱 그러하죠.

제 앨범은 제가 작곡하긴 했지만, 저는 사실 작곡을 안 하고 있어요. 제게 작곡, 편곡, 음악감독 의뢰를 주시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오로지 연주에 모든 걸 바치고 싶어요. 작곡과 연주를 병행할 수도 있겠지만, 곡이 나오기까지 많은 습작과 공부 그리고 노력이 필요할 텐데 그 시간을 오로지 연주에 힘 쏟고 싶어요. 그래서 좋은 연주자로 멋진 작곡가, 최고의 편곡가가 만든 곡을 연주하는 연주자로 남고 싶어요.

선배들과도 많이 이야기한 부분인데, 한국에서 연주자가 연주자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정말 드물어요. 외국에선 연주자의 나이를 묻지 않잖아요. 한국은 나이를 물어요. 한국에서 연주자로서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점점 설 무대가 없어지는 것을 의미해요. 그래서 나이가 들기 전에 연주자의 타이틀을 벗어야만 해요. 교수가 되던지, 프로듀서가 되던지, 작곡가가 되던지, 편곡가가 되던지, 제작자가 되어서요. 대부분 연주자로 나이 들고 싶어 하지 않아요. 연주자로 나이 들고 계신 선배가 몇 분 계신데 이런 형님들을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있어요. 종종 ‘그 형님들 왜 아직까지 연주하고 계셔? 학교를 가셔야지’라고 말하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그런 선배들이 스티브 갯(Steve Gadd)과 같은 불멸의 레전드 연주자로 평가받는 날이 오면 좋겠어요. 훌륭한 연주자일수록 빨리 연주자 타이틀에서 벗어난다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레전드 연주자가 한 명도 남지 않는 현실이.

대체 불가 멀티악기 연주자

멀티악기 연주자라는 말을 쓰려고 만든 게 아니라 방송 크레딧에 하모니카, 플루트, 아코디언 등등 항목이 길어지니까 줄여 쓰려고 시작한 거예요. 정확히는 멀티 인스트루먼트인데 그것도 길어서 멀티 악기라고 쓰자고 한 거거든요.

30대 때는 공연을 하도 많이 해서 이제는 지쳤어요.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이젠 좋은 무대, 재밌는 무대만 서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좋고 재밌는 무대가 겹치면 또 욕심이 나는 거죠. 그러다 보면 일정이 겹치고 곤란한 상황이 발생해요. 그래서 제 일을 줄이고 후배들에게 많이 넘겨주려 하고 있어요. 제가 공연을 받을 때 항상 ‘형님들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를 생각해요. 형님들의 시각으로 후배들에게 전달하는 게 좋겠다 싶은 공연들은 넘겨주는 거죠. 제가 보고 자란 선배 연주자들처럼 되고 싶어서 그렇게 기준을 잡고 있어요. 30대 때는 그런 기준이 없어서 모조리 다 수락했어요. 연주를 좋아하는 것도 있고 제가 도와주면 공연이 잘 진행되는 보람이 있어서 무조건 ok였는데, 이제는 모든 공연을 만족스럽게 준비를 못 하겠더라고요. 또 제가 무대 뒤에서 연주를 하는 걸 어려워하는 상황이 있어요. 그래서 요즘은 친한 가수들과 콜라보로 대등한 무대를 갖고 그런 무대에 게스트 뮤지션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앨범 작업이나 공연을 하면 제가 마무리를 짓거든요. 특히 규모가 작은 공연은 하다 하다 안 풀려서 부르는 경우도 있고, 앨범 제작 시에도 마스터링까지 다 끝났는데 뭔가 허전하고 아쉬워서 절 부르시는 경우도 있어요. 다양한 컬러의 악기로 허전하고 아쉬운 부분을 채워서 더 멋지게 만들어내는 사운드 디자이너적인 일을 하는 거죠. 편곡자에 이름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부분을 마무리 짓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때 보람을 느끼죠.

기본에 충실한 연주

어릴 때부터 멋있다고 느꼈던 것이, 대가들 한음만 연주해도 그 안에 그 사람의 내공과 깊이가 드러나잖아요. 저도 사실은 기본적인 소리를 내는 연습만 하고 있어요. 현란한 연주나 에튀드라든지 연습 곡은 하지 않아요. 다른 것보다 모든 소리가 제 뉘앙스대로 정확하고 깊이 있게 나는지 확인하고, 내가 정확한 박자에 정확하게 소리를 내는지를 체크하는 거죠. 특히 녹음할 때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세기로 정확한 음정을 낼 수 있느냐가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그걸 위한 연습이에요. 여러 악기를 다루기 때문에 초절 기교의 테크닉 연습할 여유가 없어요. 악기가 무슨 소리를 내는지 기본을 기억하고 그 소리를 정확하게 낼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두죠.

보통 젊은 연주자들은 SNS에 빠르고 화려한 것만 올리잖아요. 저도 그 시절 연주를 들어보면 ‘와 내가 이걸 어떻게 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지금은 그렇게 빠른 연주는 못하겠어요. 반대로 20대 때 녹음한 느리고 깊이 있는 연주를 들어보면 엄청 창피해요. 나이 들면서 점점 깊은 목소리에 들어가는 거죠. 최백호 선생님이 음역대로 경쟁하진 않잖아요. 깊이 있는 목소리에 경쟁력이 있는 거지. 저도 모든 악기를 최백호 선생님 같은 목소리를 내겠다는 걸 목표로 하고 표현을 하고 연습하고 있어요.

Footsteps과 청춘티켓 여섯장

<Footsteps>은 제 첫 번째 앨범이에요. 그전까지만 해도 저는 세션맨이지 아티스트라고 말할 수 없었어요. 앨범을 발매하고 제 음악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고 저를 유명한 세션맨에서 아티스트로 바꿔준 앨범이라 굉장히 각별해요.

그리고 청춘 티켓 여섯 장은 총 여섯 장으로 기획된 리메이크 앨범으로 저예산으로 소박하게 제작되는 리메이크 앨범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나는 가수다급으로 퀄러티 있는 앨범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리고 리메이크 연주곡 앨범도 연주자가 이만큼이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단순히 앨범을 제작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게 아니라, 연주자의 리메이크 앨범도 우리가 듣던 대중음악만큼이나 스펙터클하고 웅장한 음악이 나올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도전과 시도를 담은 앨범이에요.

세션맨에서 아티스트로 거듭나기까지

세션맨과 아티스트는 많이 다르죠. 자기 앨범이 나왔다고 무조건 아티스트로 인정받는 것도 아니고요. 자기 앨범을 갖고 자기 음악을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중요해요. 물론 우리가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세션을 하지만, 자기 색깔 내면서 세션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누구나 들었을 때 딱 알아들을법한 그런 연주자들이 거의 없죠. 그리고 사실 당신의 색깔을 내주세요라고 세션맨을 요청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도 하고요. 우리가 알고 있는, 항상 하던 대로, 가요의 법칙을 따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요.

방송에 나오는 훌륭한 연주자들도 자신이…

인터뷰 전문은 레전드매거진 8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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