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리스트, 노경환

단군이래 가장 섹시한 기타리스트
배우를 꿈꾸는 연주자 노경환

“세션맨은 연주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연주력만큼이나 소통도 중요하고 매너가 필요했어요.
오히려 연주력만 좋은 분들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죠.
알고 보니 세션맨은 음악 서비스업을 하는 사람이었어요.”

안녕하세요 기타리스트 노경환 님. 매거진 구독 자분들을 위해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세션 기타리스트 노경 환이라고 합니다. 세션맨답게 주로 스튜디오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동서울대학교 실용음악학 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그리고 2018년 까지 헤비메탈 밴드 다운헬(Downhell)의 리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다 다운인어홀(Down In a Hole)이라는 밴드로 이적을 하였고, 임재범 선배님의 밴드 마스터를 맡고 있기도 합니다.

다양한 브랜드에서 아티스트 협찬을 받고 계신 것으로도 유명하시죠?

유명하다고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현재 Westone에서 인이어 이어폰, beyerdynamic에서 마이크, 야마하뮤 직코리아와 Mesa Boogie에서 앰프, Walrus Audio와 한국의 A3 stompbox에서 이펙터, Stringjoy에서 스트링, John Page Guitars에서 기타를 협찬받고 있습니다. 협찬받는 악기가 하나, 둘 늘어나다 보니 어느새 모든 파트에서 협찬을 받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인 인터뷰를 해보겠습니다. 작곡가로 활동하시다 기타리스트로 전향을 하셨죠?

맞습니다. 저는 작곡가로 먼저 데뷔를 하였어요. 1995년부터 작곡가로 활동을 하였는데, 주변에서 대중적이지 않은 멜로디를 쓰는 작곡가라는 이야 기를 듣곤 했죠. 기타는 어릴 때부터 치긴 했지 만, 제 곡을 위한 데모를 녹음하는 정도였고, 어려운 악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기타리스트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어 요. 그러다가 1998년에 우연찮게 안재욱 씨의 3집 앨범에 기타 세션으로 참여한 적이 있었어 요. 그 당시는 세션비를 현장에서 직접 주었는 데, 첫 녹음을 마치고 나니 무심하게 돈봉투 한다발을 주시더라고요. 몰래 세어보니 20만 원이나 되는 게 아니겠어요? 그 길로 부모님께 달려가 기타를 치고서 받은 돈이라며 전해드렸죠. 부모님께선 제가 음악을 하는 것에 반대가 무척 심하셨는데 그 날은 분위기가 아주 좋았어요. 자본주의의 맛을 경험한 뒤론, 부모님을 설득하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고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기 위해 기타 세션을 하기 시작하였고 자연스레 세션 연주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 같아요.

작곡가에서 연주자로 전향하여 활동하는 것이 힘들진 않으셨나요?

고생이 무척 많았어요. 저는 스승님이라 부를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몸으로 겪어나가며 배운 터라 더욱 힘들었어요. 기타가 너무 어려워서 20대 후반까지도 본업으로 삼는 것에 갈등이 끊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기타를 잘 치지 못하는데도 주변 분들이 절 찾아주셨고 때론 스튜디오로 끌고 가주신 덕분에 많은 세션 경험을 쌓을 수 있었 어요. 모르면 용감하다고, 처음엔 멋모르고 녹음했었는데 녹음 횟수가 늘어나고 기타에 대해 알면 알수록 어렵고 힘들어졌어요. 그래서 세션 활동을 하기 시작한 1998년부터 2005년까 지는 녹음을 마치고 집에 오면 체하기 일쑤였어 요. 녹음으로 인한 긴장이 워낙 심하기도 했고, 저보다 연배가 많은 분 앞에선 말을 못 하는 성격이다 보니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 또한 심했 어요. 세션맨이라는 직업이 낯선 사람과의 일이 주를 이루다 보니 어색한 분위기를 잘 이끄는 능력 또한 필요하였어요. 당시는 그런 걸 잘모르기도 했고 연주 실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괴로움이 많았고 연주한 시간에 비해서 수고비는 굉장히 많이 받았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부담감도 컸어요. 세션맨으로서 어느 정도 소통이 익숙해진 지금도 30대 이하의 젊은 작곡가분들이 저를 부를 때면 긴장되곤 해요. 하지만 누군가가 제 기타를 필요로 한다는 것 자체로도 기분이 좋은 일이고, 제가 참여한 앨범이 히트하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죠. 가끔 길거리에서 제가 연주한 노래가 들릴 때면 뿌듯한 마음에 가만히 서서 듣기도 해요.

흔히들 한국에서 음악 하기 어렵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메탈 씬만큼 힘들고 배고프진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메탈과 뮤지션과 세션 뮤지션 양극단을 병행하며 느낀 점을 말씀해주세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메탈을 좋아하긴 하지만 냉정히 말해서 지금의 한국에선 시장성이 전혀 없는 장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는 금전적인 이익과 상관없이 제가 좋아서 하는 거지만, 현실 적으로 봤을 때 메탈을 계속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죠. 어떨 땐 일종의 자원봉사 같기도 해요.
(웃음) 사실 처음엔 괴로운 일도 많았어요. 워낙 인지도가 낮은 장르다 보니 공연을 해도 관객이 라곤 공연 관계자 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거든 요. 관객은 없지, 연주는 어렵지, 그렇다고 돈이 되는 것도 아니지. 내가 무엇을 위해 이 고생을 하는 있는 건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20년 가까이 필드에서 활동한 지금은, 이렇게 해서라도 메탈이라는 음악을 알리고 끌고 가야 한다고 느끼고 있어요. 이제는 의지만 가지고 하기엔 쉽지 않은 나이가 되었는데, 그래도 마음만은 언제나 헤비메탈에 머물러 있습니다. 저는 메탈을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첫 번째로 부자라서 돈 걱정 없이 살고 있거나, 다른 업을 갖고 이쪽에다가 돈을 붓는 방법이죠. 저뿐만 아니라 많은 동료나 친구들도 세컨드 잡으로 메탈을 하고 있어요. 생업을 이유로 잠시 물러나는 동료들도 있는데 얼마 가지 못하고 다시 돌아오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그런 마력을 지닌 장르입니다.

유튜브 채널 <기타리스트 노경환 TV>의 영상을 보면 기타 연주만큼이나 찰진 비유와 심금을 울리는 어휘력이 눈에 뜨입니다. 이런 어휘력을 습득하신 비결이 무엇인가요?

제가 처음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학교를 홍보하기 위해서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방향이 묘하게 바뀌 어서 제 개인 채널이 되어버린 것 같은데, 해학 속의 교육을 콘셉트로 기타리스트 노경환의 일상을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연주자뿐 아니라 일반인 분들도 관심 갖고 지켜봐 주신 덕에 기대 보다 훨씬 큰 성장을 이뤄서 구독자 분들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찰진 어휘력의 비결은 SNS 같아요. 그 옛날 싸이월드라는 SNS가 있던 시절부터 우스갯소리 하는 걸 좋아했어요.
SNS에 자신의 심각한 감정을 노출하기보다 보는 사람들을 즐겁고 유쾌하게 만들어 주고 싶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스갯소리를 쓰곤 했 는데 그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어느덧 채널을 개설한 지 반년 정도 지났는데 새로운 콘텐츠 개발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여러분의 관심이 시급합니다.

유튜브에서 배우를 꿈꾸고 있다고 이야기를 자주 하시는데 가벼운 분위기가 주를 이루다 보니 농담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이 자리에서 진실을 말씀해주세요!

영상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언제나 배우를 꿈꾸고 있습니다. 세션맨이라는 직업은 음지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대중과 가까우면서도 대외적으로는 드러나는 일이 없다는 데에 항상 아쉬움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연주자가 TV에도 나오고 CF 광고에도 나오는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유튜브를 시작한 덕에 여러 사람들과 연락이 닿았는데 그중에는 영화감독님도 계셔서 어쩌면 가까운 시일 내에 영화로 여러분을 찾아 뵐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기타리스트로 보람을 느끼실 때는 언제인가요?

제가 쳤던 곡을 다른 분들이 카피하고 연습하는 모습을 볼 때 신기하다고 할까요? 뭐라 말하기 어려운 뿌듯한 기분이 들어요. 그리고 간혹 다른 분들이 제가 참여한 곡을 듣고는 이거 노경환 씨가 친 거 아니냐고 묻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깜짝 놀라기도 해요. 내가 이만큼이나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마치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집니 다. 기타를 쳐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는 것도큰 보람이 아닐까 싶어요. 기타리스트가 된 덕에 결혼을 하였고, 아이를 낳아 부양하고 있고, 자신의 명의로 된 집을 갖게 되었어요. 큰 보람 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무엇보다 당당하게 “기타리스트 노경환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에요. 제가 서른이 넘었을 때 까지도 남에게 기타리스트라고 이야기하지 못하였어요. 내놓을만한 이력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어딜 가서도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타리스트로 살고 있다는 것에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이 시대의 메틀러들에게.

저희끼리는 “우리가 어쩌다가 메탈에 빠져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건지…”라며 농담을 하곤 해요. 선배들 앞에서 이런 소리 하면 혼나기도 하는데, “여러분은 어쩌다 메탈에 빠지셨나요?” (웃음) 메탈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메탈의 강력한 매력에 대해 충분히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음악적 이야기보단 경제적인 안정에 좀 더 신경 쓰길 권해드리고 싶어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메탈을 한다고 해서 뭐 하나 돌아오는 것이 없기 때문에 즐겁게 메탈을 하기 위해, 늙어서도 멋있는 메틀러로 활동하려면 안정적인 수입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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