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 음악역 1939, 송홍섭 대표

한국 대중음악계의 거장을 만나다, 연주자 송홍섭

1970년대 말 밴드 사랑과 평화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며 리듬을 몸으로 체득한 그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베이시스트이자 김현식, 한영애, 봄여름가을겨울 등 90년대 대중음악계에 한 획을 그은 명반들을 잇따라 탄생시킨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음악과 처음 만난 순간부터 한국 밴드 음악의 마에스트로라 불리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음악과 혼연일체로 살아온 거장 송홍섭, 현재는 가평뮤직빌리지 복합 문화공간 음악역1939의 대표로서 후배 음악인들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있는 그의 삶의 연대기를 레전드 매거진에서 만나보도록 하자.

<음악을 만나다>

저희 집안이 대가족이에요. 8남매인데 형들 네 명이 모두 악기를 다뤘어요. 제가 가평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고 지금 아내도 동창인데요, 형님들이 학창시절 밴드부를 했어요. 어릴 때부터 형들이 음악 하는 걸 보면서 자라서인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니 자연스레 통기타를 잡고 있더라고요. 

<Sea Man’s Town>

고등학교 때 인천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인천항 앞에 Sea Man’s Town이라고 뱃사람들이 오는 거리가 있었어요. Sea Man’s Town에 클럽이 대략 10개쯤 있었는데 그곳에서 연주를 했죠. 보컬 없고 기악으로만 이루어진 팀이었는데 ‘마스터’라 불리는 리더가 있었어요. 셋 리스트를 정해두지 않고, 즉흥적으로 연주했죠. 리더가 악보집을 보다가 ‘몇 페이지’라고 말하면 바로 펼쳐서 연주를 시작했어요. 악보집도 헤드와 코드만으로 이루어진 거라 비어있는 부분이 많았어요. 그럼 어떡하냐고요? 그때그때 분위기와 상황에 맞게끔 연주자가 즉흥적으로 채워나가는 거죠. 당시 그런 연주를 하며 순발력이 많이 늘었고 또 기악적인 앙상블도 많이 알게 된 거 같아요.

<사랑과 평화>

1978년에 <사랑과 평화>라는 밴드에 들어갔어요. 당시 제가 막내라 다들 실력이 출중하셨는데(웃음). 당시 미 8군에서 연주를 하는 여러 밴드가 있었는데 사랑과 평화는 더블에이 그레이드를 받는 밴드였어요. 그래서 그 팀이 공연하는 날이면 다른 클럽은 텅텅 빌 정도로 인기가 좋았죠. 대한민국에서 전무후무한 멤버들이 모인 팀이었어요. 탄탄한 멤버들이 완벽하게 이뤄내는 리듬의 하모니. 그게 인기의 핵심이었어요. 

저 또한 그 밴드를 통해 리듬을 배웠어요. 리듬은 제가 음악을 분석하는 잣대이자 기준입니다. 리듬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은 물론 이를 몸으로 체득하는 것까지 그 밴드에서 알게 되었죠.  이것이 지금도 제 음악을 지탱해주는 동력이에요.

편곡이란 게 일단 남의 곡을 받아들이고, 분석해서, 제 안에 있는 것들과 섞어서 재조립하는 과정이잖아요. 제가 거의 1000여 곡 정도 편곡 작업을 했었는데 그중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곡들은 화려한 멜로디나 논리적인 화성으로 편곡했다기보다는 리듬을 근거로 분석하고 살을 입히고 색칠을 한 곡들이에요. 

요즘 제가 정악을 편곡하고 있어요. 무형문화재 30호 이수자이신 강권순씨가 어느 날 저를 찾아오셔서 ‘정악을 대중화시켰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정악은 반주는 거의 없고 멜로디만 진행돼요. 저는 노랫소리 뒤에 감춰져 안 들리던 리듬을 캐내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박자가 아주 재밌어요. 30/4, 51/8, 48/4, 18/4 이런 식으로 생소한 박자들이죠. 근거 없이 캐낸 게 아니라, 정간보라는 바둑판처럼 생긴 전통 악보와 일치하도록 만든 거예요. 안 들리던 리듬을 붙인거에요. 이런 작업은 제가 당시 사랑과 평화에서 리듬을 몸으로 체득했던 경험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그 밴드는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어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조용필 선배님 밴드에 5집부터 참여했어요. 그때는 연주자로 참여했고, 7집에서는 멤버 섭외부터 프로듀싱까지 전부 도맡아서 작업했어요. 그래서 7집 수록곡은 하나하나 다 기억에 남아요. <여행을 떠나요>와 <미지의 세계>가 특히 기억에 남아요.  기억에 남는 이유를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그러니까 제일 심하게 일했던 기억이 있네요.(웃음) 

<디터 람스>

앨범을 만들기 위해서 목욕재계한다고 하잖아요. 철저하게 준비를 했어요. 제가 실수하면 저 혼자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제가 틀리면 다음 순서가 지연되니 집중하고 기다리고 있을 멤버들도 지치고, 스튜디오 렌탈비의 제한같은 현실적 이유도 있고, 앨범 발매와 관련된 투자자에게도 손해를 끼치는 거니까 아주 긴장되는 일이죠.

녹음할 때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제가 레코딩한 앨범들을 잘 들어보면 베이스 연주가 딱히 들을 만한 게 없어요. 왜냐하면 베이스보다는 그 곡에 핵심이 되는 멜로디나 보컬에 힘을 실어 줘야 하기 때문에, 베이스가 앞으로 나와서 뭔가를 들려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디터 람스라는 디자이너 아세요? 세계적으로 이름난 독일의 디자이너인데, 필요 없는 것을 담지 않는다는 철학을 가지고 계세요. 가능하면 빼는 거죠. 덜어내는 철학을 알게 되면서 초반에는 쉽지 않았지만 차차 음악에 이를 적용하게 되었어요. 

<핵심과 균형>

프로듀싱의 핵심은 균형을 잡는거에요. 보컬이건 기악이건 주인공은 솔리스트잖아요? 이를 기준으로 나머지는 다 균형을 잡아줘야 하죠. 처음에는 저도 일일이 밴드 스코어를 그려서 줬어요. 건반 손 모양도 그려주고 기타 지판도 다 그려주고.. 정작 녹음실에 가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왜냐하면 녹음실에서 이걸 바로 실행할 수 있는 연주자는 없거든요. 그땐 그걸 몰랐죠.

프로듀서 생활 초기에는 히트작이 없어서 힘들었어요. 처음 1년 정도 힘들게 지내다가 어느 날 스코어를 생략한 적이 있어요. 아마 시간이 없어서였던 것 같아요. 녹음실에서 급하게 골격만 잡고 녹음을 들어갔죠. 그런데 그 곡부터 히트하기 시작했어요. 결론은 핵심만 잘 잡고 있으면 상세한 부분은 조금 비워내도 된다는 거죠. 그런데 핵심을 놓치면 아무리 잘 꾸며서 만들어도 사람들에게 절대 와닿지 않아요. 

<시대의 변화에 대한 고찰>

요즘 후배들의 연주를 보고 있으면 종종 감탄이 나와요. 퍼포먼스가 굉장히 뛰어나거든요. 제가 조용필 씨랑 일본 투어를 다닐 때만 해도 한국과 일본 양국 간 뮤지션들의 실력의 차이가 컸어요. 일본인들이 기본기도 더 탄탄하고 음악에 대한 이해도 좋았는데, 요즘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요즘은 평준화가 된 것 같아요.

세상이 좋아진 만큼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달라진 것 같아요. “옛날에는 이렇게 했으니 지금도 이렇게 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에요. 제 기준과 좀 다르다는 거죠. 제 기준은 예를 들면.. ‘녹음은 한 번에 끝내야 한다’ 이런 거예요. 붓글씨는 중간에 끊지 않고 한 번에 쓰잖아요? 그런 만큼 더 집중해야 하고 한 획, 한 획 신중을 가하죠.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지금은 녹음을 할 때 원테이크가 거의 없어졌어요. 아니 더 정확히는 ‘원테이크로 진행해야 한다’는 기준이 없어진 거죠. 요즘은 음향 기술이 많이 발전하고 보급화도 많이 이루어져서 녹음도 쉬워지고 수정도 쉬워져서 그런것 같아요.

녹음에는 상당히 다양한 변수가 존재해요. 당일 컨디션, 함께 작업하는 파트너, 작업 환경 등등.. 특히 이런 변수 속에 던져진 연주자의 감정이 어떠한 지가 중요하죠. 녹음은 결국 연주자의 감정을 담아내는 과정이잖아요. 이런 것들이 한데 버무려져 고스란히 음악에 담기는 것인데, 어제 빨간 감정으로 녹음했던걸 오늘 파란 감정으로 수정하고 내일 하얀 감정으로 뒷부분을 녹음하니 소리의 순수한 표현이 어려워지는 거죠.

요즘은 샘플링도 다양하고 템플릿이 너무 많다 보니 이런 걸 몇 개만 조합해도 겉보기에 그럴싸한 음악이 완성돼요.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그 안에 자신만의 고유성을 얼마나 담을 수 있는지.. 전 그게 의문인 거예요. 물은 늘 수평을 유지하죠. 저는 음악가를 비롯해 모든 아티스트들이 물과 같은 상태만 유지하면 성공인 것 같아요. 욕심도 없고, 어떤 주제이건 자신에게 왔을 때 순수하게 반응할 수 있는 거죠. 

<전원생활>

가평이 고향이다 보니 편안한 마음으로 내려왔어요. 처음부터 사업을 구상하고 내려온 건 아니에요. 그저 노후에 전원생활하면서 음악 하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이었죠. 생활권이 서울에 있다 보니 처음에는 좀 힘들었어요. 서울로 공연도 가고 녹음도 하러 가야 하는데 직접 운전을 하려니 지치더라고요. 그런데 ITX 전철이 들어오고 교통편이 좋아지면서, 가평에서 살기로 마음먹게 됐어요. 그 무렵 가평군에서 음악역 1939라는 공모 사업을 준비하더라고요. 저에게 관련된 자문을 구하러 자주 오시고, 이 사업에 필요한 부분을 제가 공부하고 준비도 하면서 음악역1939 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어요.

[음악역 1939]

처음에는 고향에 이런 시설이 만들어졌으니 제대로 만들어놓은 뒤, 은퇴 후 노후에 보면 보람이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가볍게 자문을 하다가 직접 해보면 어떻겠냐는 주변의 권유도 있어 많은 준비끝에 공모에 참가하여 대표직을 맡게 되었죠. 

모든 장르의 음악을 아우르는 것이 원칙이에요. 국악, 팝, 재즈 등. 올해는 아쉽게도 클래식을 못해서 내년에는 꼭 해보려고 해요. 현재의 음악 시장은 대형 아이돌 음악 말고는 자생할 수준의 시장 형성이나 환경 조성이 미흡하다고 봅니다. 한국에 뛰어난 음악가들이 정말 많아요. 그런 분들이 음악역 1939에 와서 공연도 하고 녹음도 하면서 여러 장르의 음악들이 자생할 토대를 만드는 것이 목표예요. 

하지만 그런 목표가 전부일 수는 없어요. 음악역 1939는 가평군의 새로운 경제 동력이 되고자 하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 공모사업이에요. 가평군은 청정지역이라 제조업이 들어올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방향을 잡은 것이 문화라는 코드였어요.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이 15년째 세계적인 페스티벌로 자리 잡혀 있잖아요. 그런데 가평 지역과의 연계는 잘 안되어있어요. 그냥 공연만 보시고 가거든요.(웃음) 음악역 1939는 음악을 즐기러 오는 분들이 자연스럽게 가평의 경제적 동력이 되어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주려고 시작된 거죠. 

지역 경제 활성화에 힘쓰는 한편 음악가들을 위한 토양을 형성하고, 관객이 만족할 수 있는 공연을 유치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균형점을 맞추고 있어야 하는 점이 편곡과도 비슷한 것 같아요.

또, 음악역 1939에서는 음악을 주제로 하는 포럼을 개최하고 있어요. 현시점의 한국 음악계의 문제들에 대해서 화두를 던지죠. 사람들이 토론에 참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각들이 생기죠. 각자의 생각은 저희가 컨트롤할 부분은 아니고, 문제 제기만 하고 흘러가는 방향은 토론자들에게 맡기는 거죠. 

<음향시설>

9억짜리 콘솔을 쓰고 있어요. 니브(Neve) RS88이라는 커스텀 메이드 제품인데 국내에 딱 다섯 대 밖에 없을 거예요. 제가 조용필 씨 음반을 만들며 늘 접했던 브랜드인데, 부드럽고 친화적인 소리를 내는 것이 특징이에요. 전체적으로 소리의 질이 아주 좋고, 스며들듯 누구나 좋아할 만한 소리를 내어줘서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모델이죠. 70~80명 규모의 오케스트라 밴드도 녹음이 가능하고요.

공연장과 스튜디오는 영국 록밴드 <비틀스>가 음반을 녹음한 애비로드 스튜디오의 리모델링 설계자인 샘 도요시마가 설계했어요. 공연장과 스튜디오의 거리가 50M는 되는데, 지하 광케이블로 연결되어 있어서 현장의 소리를 동시에 담아낼 수 있습니다.

<아날로그 사운드를 담다>

요즘은 대부분 디지털 음원으로 된 음악을 듣잖아요.  LP나 카세트테이프로 듣는다면 조금 낯설게 느끼기도 하죠. 그런데 사실 음질은 아날로그가 훨씬 뛰어나요. 현재 우리가 듣고 있는 디지털 음원을 제작하려면 음원을 데이터화해서 0과 1로 분해했다가 재조립할 때 컨버터라는 게 필요한데, 브랜드마다 컨버터의 소리가 다 달라요. 디지털은 해상도가 작용하는데 아날로그는 있는 그대로의 소리를 담잖아요? 그러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거죠. 디지털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아날로그라는 말 들어보셨을거에요. 발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개인이 부정한다고 바뀌지는 않지만, 저희 음악역 1939에서는 카세트와 LP로만 음악을 만들어요. 소리의 기준을 마련하고, 제대로 된 소리를 담아내자는 취지에요. 

<영화관>

주민들이 음악역 1939에 영화를 보러 많이 오시는데, 그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껴요. 왜냐하면 가평에 50년 가까이 영화관이 없었거든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근처에 영화관이라곤 군인극장밖에 없었어요. 자라면서 본 모든 영화는 그곳에서 본 것이나 다름없죠. 시설도 조악하고 필름도 끊기곤 했지만, 그래도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그때 봤던 영화들이 지금 음악을 하는 데에도 커다란 자양분이 되고 있습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저희 영화관에서 어린 시절의 저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자극도 받는다고 생각하니 정말 기쁩니다.

<완벽주의>

제가 음악에만 너무 몰두하다 보니 인간관계에 굉장히 날이 서 있었어요. 저랑 같이 작업했던 음악가들이 당시의 힘든 기억 때문에 지금도 저를 잘 안 만나요. 예를 들어 어떤 가수가 녹음을 할 때, 좋은 결과물을 원하니까 저에게 ‘정말 잔인하게 프로듀싱을 해주세요’라고 요청을 해요. 그러면 저는 프로듀싱을 할 때 그 가수의 문제점들을 낱낱이 지적하면서 진행하곤 했었어요. ‘넌 여기가 문제야’, ‘이 부분은 어떻게 처리할 건데?’, ‘계획도 없이 녹음하러 온 거야?’, ‘이 상태로는 녹음 못하니까 다시 연습해와’ 이런 식으로요. 지금 당장 녹음해야 하는데 어떻게 연습해오겠어요? 못 고치죠 당연히.. 그런데도 저는 계속 이야기하고.. 생각해보면 그땐 저도 어렸죠. 현재 가능한 것만 가지고 완성을 시켜야 하는데, 문제점을 다 지적하니까 서로 힘들어져서 오히려 될 것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그러다 우연히 장자라는 책을 읽게 되었어요. 사람과 더불어 살 때에 지키고 주의해야 할 것을 책에서 많이 배웠죠. 그게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결국 중요한 것은 균형인 거 같아요. 집에서는 아버지와 남편으로서의 균형, 밴드에서는 멤버로서의 균형, 음악가와 음악역 대표로서의 균형 등등.. 지금은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작업을 시작하면 안먹고, 안자면서 작업이 모두 끝날 때까지 몰입하곤 했어요. 중간에 쉬면 작업이 마이너스가 되는 것 같아서 쉴 수가 없었어요. 지금 당장 최고의 결과물을 완성하고 싶다는 욕망이 강했죠. 그러다보니 여섯 번이나 중환자실에 실려갔었어요. 그래도 30대까지는 몸이 버텨 주어 응급실 정도 왔다갔다 했는데 나중에는 중환자실에 실려갔어요. 이제는 몸 생각도 해요. 그래서 더욱, 욕심을 덜어내고 균형을 찾아가려고 하죠.

<악기를 모으지 않는 이유>

보통 음악가라면 악기를 잔뜩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연상하잖아요? 아예 방 하나가 통째로 악기만으로 채워져있기도 하고. 그런데 저는 지금까지 수많은 곡을 만들었는데도 최근에 작업할 때 사용하는 악기 말고는 거의 안 가지고 있어요. 작업할 때 너무 고생하다 보니 진저리가 나서, 작업이 끝나고 나면 다시 연주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 거예요. 어쩌다 눈에 띄면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라 또 스트레스받고. 그러면 후배들이 슬쩍 빌려 가곤 하는데 실은 반영구적 대여인 거죠(웃음). 상패들도 다 버렸다가 누가 찾아와줘서 챙겨 둔 거예요. 무언가를 수집하고 보관하는 걸 잘 못해요.

<음악 외에 즐기는 취미>

근래 3년 동안 제가 등산을 다니고 있어요. 체력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확인차 시작해본 거였죠. 그런데 완전히 바닥이더라고요. 제가 굉장히 강한 줄 알았는데 정신력이 강한 거지, 몸은 아니더라고요.(웃음)

<후배들에게 조언>

항상 음악가로서 바람직한 상태를 유지하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기회는 언젠가 오니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요. 그 상태를 유지 못한다면 기회가 와도 못 잡아요. 그래서 항상 자기를 가다듬고 서 있어야 해요. 좀 쉽게 표현하면 본인이 평소에 받아들이는 게 몸에 쌓이는 거예요. 만화를 보면 만화가 쌓이고, 책을 보면 책이 쌓이고, 야한 걸 보면 야한 게 쌓이겠죠? 이렇게 알게 모르게 쌓여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튀어나와요. 그러니 평소에 자신을 가다듬고 생활하지 않는다면 정말 좋은 기회가 왔을 때 그걸 놓쳐버리기 쉽다는 거죠.

음악을 하려면 의심이 없어야 돼요. 되돌아보면 ‘나는 음악가니까 음악을 해야한다’는 아주 단순한 생각밖에는 없었고 다른것은 별로 생각해본적이 없어요. 하고 당연히 음악으로 무언가를 이룰 거야’ 이런 믿음이 있어야 고생을 고생이라 못 느껴요. 자꾸 딴 생각이 나면 더 힘들게 느껴지고 그럴수록 다른 곳으로 눈이 돌아가기 마련이거든요. 그저 매 순간이 좋으니까, 그리고 거기에 몰두할 만큼 충족감이 생기니까 계속 음악을 해왔던것 같아요.

또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물이 든 컵을 기울여도 안에 담긴 물은 언제나 수평을 유지하잖아요? 외부 자극에도 언제나 수평인 물처럼, 나를 잃지 않고 외부에서의 자극을 낱낱이 느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자기다운 아웃풋이 나오는 날이 올 거에요. 이게 진정한 본인의 개성인 거죠. 또 그런 수평을 유지해야 균형을 맞출 수 있어요. 나와 악기와의 균형, 나와 다른 연주자와의 균형, 나와 관객과의 균형, 나와 음악과의 균형, 나와 내 인생 간의 균형. 서로 밀지도 밀리지도 않고 딱 맞아떨어지는 균형점을 찾고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평생을 음악가로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밴드, 무한 신뢰의 합>

오아시스나 U2 같은 밴드들은 초등학교 동창들이에요. 수십 년을 함께 연주한 사람들이 이루어내는 합이 주는 공력은 아무도 따라갈 수 없어요. 수십 년을 동고동락하면서 같이 호흡한 멤버들이다 보니 말을 하지 않아도 눈빛을 보면 생각이 읽히고, 표정을 보면 다음에 무엇을 연주할지 알 수 있죠. 그러다 보니 그날그날 멤버들의 소리가 어떻게 합을 이룰지 관객들은 쉽사리 예측을 못하는 거예요. 제가 옛날에 롤링스톤즈 공연을 가봤는데, 공연 시~작! 하고 연주를 시작하면 바로 앰뷸런스가 와서 수십 명을 싣고 가요. 그대로 기절해서 쓰러지는 거예요. 현장의 분위기 탓도 있겠지만, 소리가 가진 힘이  관객을 압도한 거라고 생각해요. 멤버들 간의 무한 신뢰를 바탕으로 얻을 수 있는 소리의 합. 그것이 밴드 사운드가 갖는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옛날에 레코딩 한 멀티 트랙을 들어 보세요. 그 곡 안에는 드럼, 베이스 등 여러 개의 트랙들이 있겠죠. 하나로 합쳐졌을 때 멋진 음악이니 한 트랙씩 살펴봐도 다 잘했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 하나씩 따로 들어보면 다 이상해요. 구겨져 있어요. 연주하면서 자신의 소리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다른 악기들의 사운드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면서 하나의 흐름으로 완성될 수 있게끔 연주한거죠. 파트별로 들어보면 요즘 음악처럼 매끈하지 않아요. 하지만 어떠한 신 기술로도 결코 흉내낼 수 없는 합이 존재하죠. 

밴드는 사라지지 않아요. 밴드 멤버들간에 무한신뢰가 생기면 성공하는 밴드라고 보거든요? 마치 연인과 같은 상태라고 할까요. 그런 밴드 멤버를 만나는 것은 평생을 두고 정말 대단한 일이죠. 

<희망사항>

제가 요즘 시간이 없어요. 음악을 만들려면 한가하게 한 달은 멍 때리고 있어야 간신히 한곡 나올까 말까 하는데, 그런 시간을 갖는 게 쉽지 않아요. 온전히 저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하루에 3시간이 될까 말까 하더라고요. 음악인으로서의 바람이 있다면, 제 음악을 하기 위한 시간을 많이 갖고 싶어요. 

<가족>

음악에만 몰두해서 만족감만 쫓으며 살다 보니 가족에 조금 소홀했던 것 같아요. 그걸 뒤늦게야 알았죠. 제가 행복한 만큼 가족들도 행복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안정된 가정에서 오는 충족감은 음악이 주는 충족감과는 다르더라고요. 

<마치며>

앞으로 음악역 1939에서 음악가들이나 음악 관련 종사자들에게 도움이 될 환경을 조성할 테니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노력으로 다소나마 우리 음악계가 발전하고, 또한 음악가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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